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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서 나고 자란 젠슨은 미국으로 올 수 있었던 건 한 기적적인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젠슨의 부모님에게는 자식을 미국에 유학 보내겠다는 꿈이 있었는데, 현실은 경제적으로 녹록지 않아서 전 재산을 다 팔아 치운다 해도 어림없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젠슨의 부모님에게 한 기적 같은 소식이 들려오게 되는데, 젠슨의 삼촌이 미국의 명문 학교이면서도 학비가 무료인 곳을 알아냈다며. 이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직접 청소나 장리를 조금 해 주기만 하면 학비는 물론 숙식까지 무료로 제공해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있다니, 하늘이 도왔다고 생각한 젠슨의 부모님은 어떻게든 비행기값을 겨우 마련해 젠슨을 미국으로 보냈습니다. 이렇게 젠슨은 아홉 살의 나이에 미국 기숙 학교에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는데, 그런데 여기서 엄청난 반전이 벌어집니다.
알고 보니 그가 입학한 학교는 명문 학교가 아니라 문제아들만 모아 갱생시키는 마치 소년원 같은 교정 학교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학비도 숙식비도 무료였던 것이죠. 명문 학교라고 생각하고 첫 등교를 했던 젠슨은 10대 초반에 불과한 아이들이 웬 문신이 가득하고 담배를 들고 다니고, 심지어 많은 이들이 주머니칼을 소지하고 있어서 미국은 다 이런 줄 알았다고 합니다.
젠슨의 부모님은 뒤늦게야 이상한 학교에 잘못 들어갔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전 재산을 털어 아들을 보낸 상황이라 입학을 물릴 수는 없었죠. 문제아들만 모여 있던 것이다 보니 젠슨의 기숙사 룸메이트 역시도 무시무시한 인물이었습니다. 무려 여덟 살 연상의 형으로 교도소 생활을 오래했다 보니 학년을 낮춰 입학한 학생이었죠.
젠슨의 룸메이트와 처음 만난 그날을 영원히 잊을 수 없었는데, 젠슨의 얼굴을 처음 본 그는 갑자기 옷을 훌렁 벗어 제끼더니 온몸에 있는 일곱 군데의 칼자국 흉터를 보여주며 앞으로 말을 잘 듣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이런 룸메이트와 한 방을 쓰게 된 아홉 살의 젠슨, 그의 앞길이 막막했습니다.
이때 그의 생존 본능이 빛을 발했습니다. 룸메이트가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이라는 걸 알고는 자청해 일기를 알려주고 수학까지도 가르쳐 주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작은 동양인의 친절함에 감동한 룸메이트는 자신 또한 보답을 해주고 싶다며 운동 하나만큼은 자신 있으니 젠슨의 비실비실한 몸을 바꿔 주겠다고 했죠. 이에 젠슨의 몸에는 밤마다 팔굽혀펴기 100개를 시키는 하드한 트레이닝을 해주며 다부진 몸매를 만들어줬습니다.
어쩌면 반강제적으로 운동을 한 것일 수도 있지만, 신체를 단련하고 나니 젠슨에게 의외의 반전이 찾아옵니다. 그를 향한 인종 차별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죠. 당시 젠슨은 학교에서 거의 유일한 동양인이었는지라 인종 차별의 타깃이었습니다. 길에는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낡은 다리가 있었는데, 곳곳에 판자집이 부서지고 흔들리기까지 하는 위험한 다리였습니다. 그런데 백인 학생들은 젠슨이 등교길에 이곳을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가 그가 지나가는 타이밍에 맞춰서 양쪽 끝에서 다리를 잡고 흔들어 댔죠.
뿐만 아니라 아예 직접적으로 주먹질을 당하는 적도 있었으며, 학교 친구들과 청소 당번을 정할 때면 언제나 더러운 화장실 청소는 젠슨의 몫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룸메이트의 특훈을 받으며 다부진 몸이 되자 백인들은 예전처럼 그를 무시하지 못했습니다. 이때 젠슨이 좌우명으로 살았던 말은 "나는 싸움을 먼저 걸지는 않지만, 싸움을 걸어오면 절대 물러서지는 않는다"였다고 합니다.
젠슨은 워낙 성실하게 공부를 하던 학생이었기에 또래보다 1년을 더 빠르게 조기 졸업했습니다. 어쩌면 살벌한 학교를 하루라도 더 빨리 벗어나기 위해 더 길을 쓰고 조기 졸업을 한 것일지도 모르죠. 그는 이 지역의 주립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사실 젠슨의 성적이면 더 상위 대학도 노려볼 수 있었으나, 오리건주 거주자였던 그는 오리건주 안에 있는 대학을 가야지만 학비를 세 배 이상 감면받을 수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그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죠.
그런데 돈이 부족해서 가게 된 이 대학으로 인해 젠슨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게 되는데, 사건의 시작은 젠슨이 신입생 시절 그가 한 여자에게 반하면서 시작됩니다. 공학도였던 그의 학과에는 단 세 명의 여자만 있었는데, 무려 247명의 남자들이 세 명의 여자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죠. 젠슨 역시도 이 세 명의 여자 중에 마음에 드는 백인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인종적으로도 외모적으로도 불리하다고 생각했고, 이에 자신만의 전략을 세웠습니다. 다른 남자들이 경제력, 외모, 유머러스함 등을 내세운 것에 반해 젠슨은 좋아하는 여자 앞으로 가서 학교 숙제를 보여줬습니다. 자신과 함께 매주 숙제를 하면 전 과목 A+가 확실하다며 호언장담을 했죠.
에이롤이라는 백인 여성은 젠슨과 함께 학교 숙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젠슨의 자신감이 허풍이 아니었던 것이, 가장 악명 높은 교수님의 어려운 과제마저도 척척해낼 정도였죠. 에이롤은 날이 갈수록 젠슨을 믿고 의지하게 되었고, 어느덧 매주 일요일은 단둘이 만나 함께 숙제를 하는 일명 '숙제 데이트'의 날이 되었습니다.
어느 새 숙제 데이트는 영화 데이트, 여행 데이트 등으로 거듭나기 시작했고, 결국 이 둘은 자연스럽게 연인 사이가 되었죠. 그렇게 꽁냥꽁냥 연애를 하던 어느 날, 젠슨은 에이롤에게 파격적인 발언을 합니다. 자신과 결혼을 해주면 30살의 어엿한 회사의 CEO가 되어 호강시켜 주겠다는 것이었죠. 그동안 젠슨의 똑똑함과 성실함을 가까이서 봐온 에이롤은 이 말을 그저 근거 없는 호들갑으로 보지 않았고, "당신이라면 진짜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며 프로포즈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 둘은 대학을 졸업하던 그 해, 곧바로 결혼식을 올렸죠. 짝사랑하던 첫사랑과 결혼까지 하게 된 데다가 현재까지도 애처가로 유명한 젠슨의 모습은 평생 한 명의 여자만을 사랑하는 로맨티스트 그 자체로 여겨집니다.
결혼 이후 젠슨은 성공적인 취업을 했습니다. 유명한 반도체 기업 AMD에 입사해 꽤 괜찮은 연봉을 받았죠. 그런데 이렇게나 멀쩡한 대기업 직장을 돌연 하루아침에 때려 치우게 만드는 한 사건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사건의 시작은 어느 주말 저녁, 젠슨의 아내와 함께 영화관에 갔을 때였습니다. 이날 본 영화 한 편이 그에게 엄청난 충격을 선사했고, 이 영화는 바로 당시 수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비주얼 쇼크를 안겼던 그 영화, '쥬라기 공원'이었습니다.
이때까지는 그저 상상 속에만 존재했던 공룡이라는 존재가 영화 속에는 마치 실사처럼 생동감 있게 움직이고 있었죠. 바로 이 순간, 젠슨은 미래는 3D 그래픽의 세상임을 확신했습니다. 지금의 직장을 그만두고 직접 3D 그래픽 전문 회사를 차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이에 평소 마음이 잘 맞던 동료 회사원 두 명과 공동 창업을 하게 되는데, 이 회사가 바로 오늘날의 전 세계 시총 1위의 대기업 엔비디아입니다.
자신들의 제품이 차세대의 혁신이 될 거라는 의미로 '넥스트 버전'이라는 단어의 각 앞글자를 따고, 그 뒤에는 로마 신화 속 질투의 여신인 '인비디아'를 정했습니다. 회사 이름에 질투의 여신을 넣은 이유는 경쟁사들을 부러워하고 질투해야 그들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업계 탑이 되어 그때는 오히려 우리 회사가 다른 기업들의 시기 질투의 대상이 되겠다는 당찬 포부가 담겨 있기도 했죠. 실제로 오늘날의 엔비디아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세계 1위 기업이 되었으니, 회사명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정한 듯 싶습니다.
어쨌든 엔비디아를 창업했을 당시 젠슨의 나이는 30. 결혼 전 아내에게 말했던 30살의 CEO라는 약속을 지킨 셈이죠. 회사를 설립한 젠슨은 게임 쪽으로 그래픽 사업을 하려 했습니다. 영화에 비해 게임 쪽은 아직 그래픽 발전이 더딘 상황이었기에, 게임 그래픽이야말로 향후 유망한 산업이라고 믿었죠. 당시 3D 게임 쪽은 이제 막 태동이었어서 인기 3D 게임으로 분류됐던 '울펜슈타인 3D'조차도 사실상 완전한 3D라기보다는 2D를 섞어 만든 2.5D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렇게 젠슨은 3D 그래픽 쪽의 선구자가 되고자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독자적인 첫 그래픽 칩을 출시했죠. 그리고 망했습니다. 그냥 망한 것도 아니고 완전히 쫄딱 망해서 그야말로 파산 직전까지 몰렸습니다. 하필 젠슨이 첫 제품을 출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컴퓨터 그래픽 처리 방식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기 때문이었는데, 이에 젠슨의 그래픽 칩은 출시되자마자 90년대 유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 당시 젠슨은 소닉으로 유명한 일본의 게임 회사 세가와 5년 계약을 맺고 새로운 게임기에 들어갈 그래픽 칩을 개발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직원들 월급도 못 줄 정도로 파산 직전에 놓이게 됐으니 더 이상 계약을 이행하기 불가능해졌고, 이에 젠슨은 직접 세가의 CEO를 찾아가 터무니없는 발언을 하게 됩니다.
젠슨은 세가의 CEO에게 자신의 기술은 이제 90년대 유물이 되어 버렸다며 계약을 없던 일로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사실 이것만 해도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지만 더 충격적이었던 건 이 다음 발언이었던, 계약은 이행하지 못하게 됐지만 계약금 500만 달러는 그대로 지급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만들어 주기로 한 제품은 결국 못 만들어 주게 되었다면서 돈은 돈대로 달라는 어찌 보면 뻔뻔한 발언이었죠.
이런 상황이라면 마동석 같은 경호원에게 목덜미가 잡혀 그대로 쫓겨나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을 텐데, 세가의 사장은 젠슨의 이 부탁을 들어줬습니다. 젠슨의 진정성과 엔비디아의 잠재력에 확신을 느낀다며 투자금 명목으로 500만 달러라는 거액을 투척해 줬죠. 이 돈을 바탕으로 다시 신제품 개발에 착수한 젠슨은 오늘날 게임이나 영화의 화려한 그래픽을 구현하는 그래픽 카드라는 각종 AI 기술에 들어가는 칩들의 개발에까지 성공하며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었습니다.
젠슨은 세가의 사장을 늘 인생의 은인으로 여겼는데, 강연이나 인터뷰에서 그를 가리켜 "엔비디아를 구한 사람"이라고 공개적으로 감사를 표했고, 단순히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도 은혜를 갚았습니다. 일단 투자해 줬던 500만 달러를 세 배에 달하는 1,500만 달러로 돌려주었고, 이로부터 무려 20년이 지난 시점에는 한 특별한 행동으로 세가의 사장을 크게 놀라게 했습니다.
그때는 2017년. 어느덧 80대를 앞두고 있던 세가의 사장이 이제는 세계적인 거물이 된 젠슨에게 옛 친구로부터 아는 제목의 이메일을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이메일에는 20년 전 함께 일했던 자신을 혹시 기억하냐며, 이번에 자신이 AI 관련 강연을 맡게 됐는데 혹시 짧게 영상 편지라도 보내줄 수 없겠냐고 물었죠. 바쁜 시간을 방해해 미안하다며 거듭 사과를 해대는 그의 이메일에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겸손함과 친절함이 묻어나 있었습니다.
이제는 세계적 거물이 된 젠슨에게 그는 답장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죠. 그런데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젠슨에게서 바로 답장이 날아왔습니다. 젠슨은 "내가 어떻게 당신을 잊겠냐. 당신을 위해 살라면 모든 걸 할 수 있다. 연락을 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거듭했고, 그러더니 영상 편지로 할 것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일본으로 가서 함께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젠슨은 진짜로 일본으로 날아가 오랜만에 그의 두 손을 덥석 잡았고, 장시간의 연설까지 해 주었습니다. 이 두 남자의 우정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죠.
이렇듯 젠슨은 유독 은혜를 잊지 않는 성격으로 유명한데요. 명문 학교인 줄 알았다가 알고 보니 양아치 학교였던 자신의 모교에 다가도 200만 달러의 거금을 기부하며, 이 학교가 자신을 받아 주었기에 미국에서의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감사함을 표했고, 자신이 나온 대학에도 660억 원에 달하는 통 큰 기부를 했습니다.
젠슨은 세계적인 CEO 중에서도 유독 가족적인 것으로 유명한데요. 어떤 거물 CEO들은 가족보다는 일을 더 중시하는 이미지가 많은 반면, 젠슨은 아무리 바빠도 한 달에 횟수를 정해 놓고 꼭 가족과 식사를 하는 시간을 확보한다고 합니다. 특히 아내와 자식들의 말을 잘 듣는 걸로 유명한데요. 1년 내내 입고 다녀 젠슨의 시그니처가 된 가죽 재킷 패션도 아내와 딸의 아이디어였다고 합니다. 패션 센스에 대해 칭찬을 받을 때면 늘 "아내와 딸이 준 것을 입고 다닐 뿐이다"라고 대답하죠.
한여름에도 가죽 재킷을 입고 다니다 보니 덥지 않냐는 질문을 받은 경우도 있었는데, 이때 그는 "나는 언제나 쿨하기 때문에 시원합니다"라는 재치 있는 답변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쿨해서 구설수에 오른 경우도 있었는데요. 대만의 한 여성이 젠슨에게 다가와 자신의 가슴 부위가 드러난 타이트한 상의에 사인을 요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젠슨은 정말 이걸 원하는 게 맞냐고 재차 묻더니 결국 가슴 위쪽에 사인을 해줬죠. 이후 여성은 자신의 SNS에 사진을 올리며 "너무 짜릿했다"는 소감을 올렸고, 이 사건은 일파만파 퍼져 나가며 화제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일각에서는 유머러스한 팬 서비스였다며 우선 넘겼던 반면, 내각에서는 젠슨이 신중하지 못했다며 이런 부탁은 거절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또 화제가 되었던 반응 중에는 "이 옷은 이제 50만 달러에 팔릴 것 같다. 결국 최후의 승자는 저 여성이다"라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젠슨이 대만을 갔다가 휘말렸던 또 다른 사건이 있습니다. 대만의 야시장에서 즉석 인터뷰를 하던 그가 "대만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 중 하나다"라는 발언을 한 것인데, 대만을 중국의 일부가 아니라 독립적인 국가로 지칭했다는 이유로 중국인들로부터 엄청난 공분을 샀죠. 중국의 SNS에는 "돈만 생각하는 기업인은 결국 신념이 없다는 걸 증명했다", "젠슨은 자신의 뿌리를 잊었다", "중국에서 불매해야 한다" 등 수천 개의 비난 댓글이 쏟아졌고, 중국의 한 관영 매체에서는 "젠슨은 역사를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며 강력히 비난했습니다.
심지어 중국 정부의 공식 대변인까지 나서서 "대만은 단 한 번도 국가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결코 아닐 것이다"라며 젠슨을 저격했고, 반면 대만에서는 이 발언으로 인해 국가적인 영웅으로 거듭났습니다. 대만 네티즌들은 젠슨이 당연한 말을 했다며 그를 격하게 칭찬했고, 이후 대만에 머무는 동안 그가 가는 모든 곳은 더욱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그야말로 영웅 대접을 받았죠. 대만 현지 언론들은 이 현상에 대해 젠슨의 이름과 열광, 광기를 뜻하는 '인세니티'라는 단어를 합성해 '젠슨 신조어'로 지칭하며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했습니다.
중국에는 다른 나라들의 반응은 거의 다 대만 편이었는데요. 특히 아무리 중국이 열받았다지만 엔비디아에게 만큼은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엔비디아가 중국을 필요로 하는 것보다 중국의 엔비디아를 더 필요로 하고 있다고 말이죠. 젠슨은 이 사태에 대해 중국 측에게 사과를 하진 않았고, 다만 대만을 떠나던 날 "정치적인 의도는 없었다. 단지 대만이 엔비디아의 성공에 기여한 것에 대해 감사함을 표현한 것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젠슨의 성공에는 이런 특유의 담대함이 한몫했지만, 모니모니 해도 그의 독특한 기업 운영 방식이 늘 찬사를 받습니다. 특히 대기업 CEO 중에서도 실패로부터 가장 잘 배우는 CEO로 유명하죠. 젠슨은 자사의 제품이 실패할 때면 언제나 직원들의 감정적으로 문책하기보다는 실패의 원인을 스스로 분석하게 하는 프레젠테이션을 시킵니다. 그런데 이를 유머러스한 분위기 속에서 하게 해 실패한 제품의 부담을 덜어주면서도 실패한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히 깨닫게 해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죠.
엔비디아의 실패 발표에는 여러 레전드 에피소드들이 있는데, 그중 영상으로까지 남아 있는 한 유명한 사건이 있습니다. 그때는 엔비디아의 한 그래픽 카드가 소음과 발열 문제로 인해 출시 직후 처참히 망했을 때였습니다. 이때 엔비디아 직원들은 이 실패 발표에서 이 제품의 끔찍한 소음을 일상 속 다양한 기기로 패러디했습니다. 드라이기로 써서 머리를 말린다는 둥, 진공청소기로 사용한다든지, 심지어 발열이 엄청나다며 그래픽 카드 위에다 스테이크까지 굽는 자학 개그를 선보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실패를 유머로 승화시키기 하니 직원들은 숨김없이 자신들의 실패를 드러내게 되었고, 이를 반면교사 삼아 다음에는 반드시 더 나은 제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렇듯 젠슨은 실패한 직원들을 해고하기보다는 "한 번 뽑은 직원은 내 사람"이라는 마인드로 믿고 교육시키고 또 계속 기회를 줘 결국에는 해내게 만드는 CEO로 유명합니다. 이러다 보니 대기업 CEO 중에서는 드물게 직원들 사이에서 승인율 96%라는 압도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참고로 메타의 CEO 마크 저커버그는 승인율 45%, 일론 머스크는 35%에 불과합니다.
젠슨과 엔비디아에 대한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엔비디아 레볼루션'이라는 책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장장 400페이지에 걸쳐서 젠슨과 엔비디아의 대기를 엮어낸 책입니다. 출간 직후 AI 분야 1위를 포함해 아마존 세계 분야에서 1위를 휩쓸었죠. 별점 또한 다섯 개 만점 기준 4.6점을 받았습니다. 관련자들은 무려 100여 명을 취재해서 쓴 책이라 여러 에피소드들을 대화 하나까지 리얼하게 복원했는데요. 마치 당시 에피소드들을 실제로 눈앞에서 지켜보는 듯 젠슨과 주변 인물들의 표정, 그리고 목소리까지 생생하게 들리는 듯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엔비디아의 독특한 조직 문화를 다루는 파트가 특히 인상적이었는데요. 전 직원들에게 쓰게 한다는 탑 5 이메일, pvt가 아니라 화이트보드 만들기, 그리고 작업 속도를 높이는 그만의 비법 등 흥미로운 파트가 많았습니다. 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젠슨의 새로운 모습도 알게 됐는데요. 이렇게 엄청난 성공을 거뒀음에도 그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스스로를 향해 "너 정말 형편 없구나"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글로벌 대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나 애플마저도 제치고 전 세계 시총 1위 기업을 이룬 창업자 이야기이자 그 기업의 모든 여정을 담고 있는 이 책은 두고 나서도 소장하고 싶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선 SK 하이닉스의 부회장도 이 책을 추천한 바 있습니다. 요즘 AI 분야가 난리인데다가 가장 핫한 주식 중 하나가 엔비디아인만큼 엔비디아 주식 투자에 관심 있는 분들께도 참고서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더보기란에 서점 링크가 있으니 확인해 보세요.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