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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가까이해서는 안 될 ‘미숙한 사람’의 9가지 습관 | 이병철의 조언 | 이병철 | 인생조언 | 삶의지혜 | 오디오북

옛사람들의 지혜41:02

Transcription

전쟁이 막식은 서울 남대문 시장 쌀자루 위로 먼지가 내려앉던 그날, 한 중년이 상인을 밀치며 외쳤다.

"어제보다 비싸잖아! 나를 속이나?"

주변은 얼어붙었고, 나는 조용히 그 장면을 바라봤다. 나이는 늘었으나 마음은 자라지 않은 사람. 그들이 시장을, 가정을, 회사를 가장 먼저 망가뜨린다는 사실을 그날 알았다.

나는 평생 기업을 세우며 두 부류를 보았다. 변명 앞에서 성을 내고 책임을 미루는 사람. 그리고 침묵으로 해를 거두고 내일의 신뢰를 쌓는 사람. 겉모습은 비슷했다. 다른 것은 단 하나,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가였다.

비가 쏟아지던 날, 말린 생선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려는 순간, 나는 멈춰 섰다. 천을 덮고 수첩을 열고 약속 시간을 다시 적었다. 분노 대신 기록, 탓 대신 대비. 그 작은 선택 하나가 거래처에 문을 열고 내 이름을 신용으로 바꾸었다.

나는 묻는다. 당신은 오늘 무엇을 다스렸는가? 남의 잘못인가, 아니면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인가? 기업은 숫자로 움직이지만, 숫자를 움직이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마음을 놓치면 원칙은 껍데기이고, 원칙이 비어 있으면 장기적 안목도 장식일 뿐이다.

이 영상에서 나는 미숙함의 아홉 가지 그림자를 따라 걸을 것이다. 그러나 시작은 언제나 하나다. 화를 낮추고 책임을 높이는 것. 그때부터 신뢰는 이자가 붙는다. 오늘 당신의 첫 이자는 무엇인가?

사람들은 종종 말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한다. "언젠가 시작하겠다. 준비만 되면 하겠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미루는 자들을 너무 많이 보았다. 그들의 '언젠가'는 결국 오지 않았다.

1950년대 초, 나는 대구에서 서울로 진출하려던 시기였다. 상공회의소에서 만난 한 상인이 내게 말했다. "이 회장, 나도 마음만 먹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아직 끝난 사람 아니야." 그는 몇 년째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말은 남았으나 손의 온기는 사라졌다. 그의 아내는 시장 구석에서 작은 포장마차를 운영하며 그의 생활비를 감당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젊은 시절의 나를 떠올렸다. 자본도, 인맥도, 신용도 없던 시절. 그러나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문을 열고 손으로 거래 장부를 썼다. '언젠가' 대신 '오늘' 움직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왜 다시 시작하지 않으십니까?" 그는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괜히 시작했다가 또 망하면 사람들 비웃을 겁니다." 나는 천천히 대답했다. "남이 비웃을까 두려워 멈추면, 언젠가 스스로를 비웃게 됩니다."

몇 달 후, 그는 작은 직물점을 열었다. 63세의 새로운 출발이었다. 처음에는 손님도, 직원도 없었다. 그러나 1년, 2년이 지나자 가게에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는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이 회장, 말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소. 몸으로 움직이니 세상이 나를 다시 보더이다."

나는 그날 또 하나의 법칙을 배웠다. 생각이 아무리 커도 행동이 없으면 그것은 공허하다. 리더의 길은 계획이 아니라 실행에서 시작된다. 말은 미래를 약속하지만, 행동은 현재를 바꾼다. 오늘 당신의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당신의 내일도 제자리에 머물 것이다.

사람은 과거의 영광에 오래 머물수록 현재의 기회를 놓친다. 나는 그것을 수없이 보았다. 성공한 자일수록 '그때는 말이야'라는 말에 스스로를 가두고 결국 내일의 문을 닫는다.

1950년대 중반, 전쟁이 끝난 직후였다. 모두가 재건의 힘을 썼던 시기, 나는 을지로 인근에서 공장 설립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상공회의소 모임에서 한 은퇴 군인을 만났다. 그는 처신사부터 이렇게 말했다. "이 회장, 나는 예전에 군에서 대대장을 했소. 내 밑에 부하 수백 명이었지." 그의 말은 처음엔 당당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자랑이 아니라 과거에 갇힌 증거로 들렸다. 그는 현재를 살지 않았다. 여전히 어제 속에서 살았다.

나는 그를 보며 내 인생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해방 직후, 그리고 전쟁의 혼란 속에서 나는 거의 모든 것을 잃었다. 공장도, 자금도, 사람도 사라졌다.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이 회장, 그래도 한때 잘 나갔잖아요." 그러나 나는 그 말을 거부했다. 과거는 나를 위로하지만, 미래를 세우진 못한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다시 시작했다. 전쟁 직후, 남은 것은 사람 몇 명과 의지뿐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우리에게 남은 건 과거가 아니라 지금이다. 오늘부터 삼성은 다시 시작한다." 직접 현장을 돌고 손으로 공장 바닥을 닦았다. 누군가는 미쳤다고 했다. "이시국에 방직 공장이라니, 재정신입니까?" 그러나 나는 단호했다. "불가능할 때 도전하는 것이 진짜 경영이다." 그 결심 하나로 1년 뒤 제일방직의 첫 제품이 나왔다. 그 공장은 훗날 삼성전자의 기초가 되었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과거의 영광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지만, 내일의 발판은 되지 않는다. 그 군인을 다시 만난 것은 몇 년 뒤였다. 그의 아들이 나를 찾아와 말했다. "회장님, 아버지는 여전히 옛날 이야기만 하십니다. 가족들도 지쳐 있습니다."

나는 그를 직접 찾아갔다. 그리고 조용히 물었다. "대장님, 그때의 경험을 지금은 어떻게 쓰고 계십니까?" 그는 잠시 침묵하다 대답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내 말을 안 듣습니다."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젊은 세대는 과거의 자랑이 아니라 교훈을 듣고 싶어 합니다. 그때의 경험을 자랑이 아닌 가르침으로 바꾸어 주십시오. 그게 진짜 리더의 일입니다."

그는 고개를 숙였고, 눈시울을 붉혔다. 며칠 뒤, 그는 퇴직 군인들을 모아 청소년들에게 전쟁의 교훈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은 자랑이 아니라 반성으로 바뀌었고, 그를 찾는 젊은 이들이 늘어났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과거를 넘어 현재를 살리는 울림이 되었다.

그를 보며 나는 확신했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과거의 의미는 바꿀 수 있다. 그것을 자랑으로 삼으면 사람을 멀어지게 하지만, 교훈으로 삼으면 세상을 다시 가까워지게 한다. 혹시 당신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는가? "나도 예전엔 잘 나갔는데."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보라. 그때의 경험을 지금 누구를 위해 쓰고 있는가?

기업이든 인생이든, 과거는 깃발이 아니라 그림자다. 그림자를 쫓으면 빛을 잃고, 빛을 향하면 그림자는 뒤로 간다. 나는 그렇게 살았다. 끊임없이 뒤돌아보지 않고 다음을 향해 한 발 더 내딛는 사람으로. 그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제기의 법칙'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내 모든 사업 일기에 한 문장을 썼다. "과거에 나는 스승이지만, 내 일에 나는 제자다." 이 문장은 오늘도 내 서재 한켠에 남아 있다. 그 문장을 읽을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병철, 너는 아직 배우고 있는가?" 성장은 그 질문을 멈추지 않는 사람의 특권이다. 그리고 진짜 어른은 자랑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묻는 사람이다. 묻는다는 것은 배우겠다는 뜻이고, 배우겠다는 것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과거를 묻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를 다시 세운다. 왜냐하면 진짜 부자는 돈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깨달음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욕망이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될지, 아니면 남을 가리는 벽이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수많은 기업인들을 만나며 깨달았다. 진짜 리더는 빛나는 사람이 아니라 남을 빛나게 하는 사람이다.

1960년대 초,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던 시기였다. 삼성도 그 흐름 속에서 새로운 산업, 전자 사업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무렵 내 곁에는 탁월한 영업 임원이 있었다. 머리도 좋고 추진력도 뛰어났으며, 누구보다 열정이 있었다. 그러나 단 하나의 약점이 있었다. 그는 항상 주목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회의가 열리면 제일 먼저 손을 들고 말했고, 다른 사람의 말을 끊어가며 자기 의견을 길게 펼쳤다. 성과가 좋으면 "이건 전적으로 제 아이디어 덕분입니다." 부하 직원이 계약을 따오면 "그건 내가 다 밑그라운드 워크를 해 놨기 때문이야." 그는 언제나 중심에 서야 했다. 결국 사람들은 그의 주변에서 떠나기 시작했다.

그를 바라보며 나는 오래전에 내 모습을 떠올렸다. 1930년대 후반, 삼성상회를 막 키워 가던 시절이었다. 처음으로 큰 거래를 성사시켰을 때, 그 성과는 사실 내 밑에서 일하던 젊은 직원 김성호의 공이었다. 그러나 회식 자리에서 나는 무심코 말했다. "이 계약은 내 판단이 맞았던 덕분이지." 그 순간 김성호의 얼굴에 스친 짧은 그림자를 나는 잊지 못한다.

그날 밤 아내가 내게 말했다. "그 직원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당신도 알잖아요. 그런데 그 공을 빼앗으면 그 사람은 남은 열정도 잃어요." 그 말이 가슴을 찔렀다. 다음날 나는 김성호를 불러 진심으로 사과했다. "이 계약은 네가 이끈 결과야. 나는 단지 기회를 만들었을 뿐이다." 그는 놀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다 미소지었다. "회장님, 그 말씀 한 마디면 저는 평생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습니다."

그때 나는 알았다. 사람은 인정받을 때 가장 강해진다. 그 이후 나는 회사의 모든 회의 자리에서 한 가지 원칙을 세웠다. "성공은 직원의 공이다. 실패는 나의 책임이다." 그것이 단순한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 원칙 하나가 회사를 바꿨다. 사람들은 더 자발적으로 일했고, 서로를 신뢰했다. 나는 매번 느꼈다. 진정한 리더십은 권위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신뢰로 자라난다는 것을.

그런데 그 영업 임원은 달랐다. 그는 여전히 모든 성과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결국 어느 날 부하 직원 전원이 내게 찾아와 말했다. "회장님, 저희는 더 이상 저분 밑에서는 일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를 불렀다. 단둘이 앉아 차를 마시며 물었다. "자네는 왜 그렇게 주목받으려 하는가?" 그는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회장님, 이제 나도 50이 넘었습니다. 회사에서 잊혀질까 두렵습니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진정으로 기억되는 사람은 자신이 빛나는 사람이 아니라, 남을 빛나게 한 사람이다."

그에게 나는 내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김성호의 이름을 말하며, 그 한 번의 사과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바꾸었는지를 전했다. 그는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회장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앞으로는 부하직원의 이름을 먼저 말하겠습니다."

그 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는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좋은 아이디어야. 자네 이름으로 보고 올리게. 이번 계약은 우리 팀 덕분입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그리고 그가 변하자 팀 전체가 달라졌다. 서로를 인정하는 문화가 생기자 성과는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그가 정년을 맞던 날, 부하 직원 전원이 울었다. "부장님, 당신 밑에서 일해서 행복했습니다." 그도 울었다. "이제야 진짜 리더가 뭔지 알겠네."

나는 그날 그를 보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사람의 성공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데서 오지 않는다. 진짜 성공은 남의 마음속에 '당신 덕분입니다'라는 한 문장을 남기는 것이다.

세상에는 스스로 빛나려 애쓰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진짜 어른은 자신을 감추어도 주변이 자연스럽게 빛나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 빛은 조용하고 오래 가며, 사라지지 않는다. 기업도, 가정도, 인생도 마찬가지다. 주목받으려 애쓰는 이는 결국 외로워지고, 남을 세우는 이는 결국 기억된다. 나는 그 차이를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 "진짜 리더는 무대의 중심이 아니라 조명 뒤에 선 사람이다." 빛을 독점하는 사람은 그림자를 낳지만, 빛을 나누는 사람은 세상을 밝힌다. 그것이 내가 평생 믿어온 경영의 본질이었다.

세상은 냉정하다. 그러나 냉정함과 무정함은 다르다. 나는 수많은 사업가들을 보며 이 두 단어를 혼동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계산이 빠르고 판단이 정확하지만, 마음이 없다. 그들은 단기적으로는 승리했으나, 장기적으로는 늘 고독했다.

1960년대 후반, 한국 경제가 고도 성장기에 접어들며 삼성도 여러 사업으로 확장하던 시기였다. 당시 내 협력 업체 중 한 곳의 사장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겉보기엔 매우 유능한 사람이었다. 언제나 말쑥했고, 숫자 감각이 뛰어났으며,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그에게는 결정적인 결함이 있었다. 그는 언제나 자기 이익만을 계산했다. 납기를 지키라고 직원들을 다그치면서, 정작 자신의 대금 지급은 몇 달씩 미뤘다. 직원에게 "사람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말하며 냉정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효율을 말했지만, 그 효율의 끝에는 사람의 마음이 없었다.

처음엔 그의 회사가 번창했다. 수익률이 높고 단기 실적이 좋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직원들이 떠났다. 거래처들은 그와의 거래를 끊었다. 숫자는 아직 남았지만, 신뢰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 소식을 들으며 나는 오래된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1950년대 초, 삼성상회가 아직 작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공장 여직원 한 명이 아이가 아프다며 조퇴를 요청했다. 현장 관리자가 보고했다. "규칙상 근무 중 퇴근은 불가능합니다." 나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물었다. "그 직원에게 자녀가 있나?" "예, 초등학생입니다." "그럼 자네 아이가 갑자기 병이 나면 어떻게 하겠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규칙은 회사를 지탱하지만, 마음은 회사를 살린다. 규칙이 사람보다 앞서면, 그 회사는 오래 가지 못한다."

그날 이후 나는 조퇴 허가 제도를 새로 만들었다. 가족의 병이나 사고에는 예외를 두었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결근율은 줄었고, 직원들의 충성심은 높아졌다. 그들은 회사가 자신을 사람으로 대한다는 걸 느꼈다. 그 신뢰가 곧 품질로, 그리고 생산성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때 확실히 깨달았다. 이익은 숫자로 계산되지만, 신뢰는 마음으로 쌓인다. 이익은 잃어도 다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나는 그 협력 업체 사장을 직접 불렀다. "사장님, 직원은 기계가 아닙니다. 사람을 소모품처럼 대하면, 회사도 언젠가 그렇게 취급받게 됩니다." 그는 냉소적으로 웃었다. "이 이 회장, 사업은 냉정해야 합니다. 감정으로 하면 망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그러나 냉정함과 무정함은 다릅니다. 냉정하게 판단하되, 사람을 버리지 않는 것이 진짜 경영입니다."

그는 침묵했다. 잠시 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회장, 나는 사람보다 숫자를 믿었습니다." 그 후 그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직원 가족이 아프면 직접 병문안을 갔고, 명절마다 작은 선물을 건넸다. 사람들은 말했다. "이제야 진짜 사장님 같아요." 그의 회사는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품질은 좋아졌고, 거래처도 늘었다. 은퇴를 앞두고 그는 내게 찾아와 말했다. "이 회장, 이제야 알겠습니다. 돈보다 중요한 건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을 얻으면 돈은 따라오지만, 돈만 쫓으면 사람은 떠나더이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사람을 잃은 이익은 결국 손해다. 사업의 핵심은 구조나 기술이 아니다. 그 본질은 언제나 사람이다. 나는 평생 사람을 보며 경영했다. 사람을 잃지 않으려면 먼저 사람을 이익보다 위에 두어야 했다. 이익은 종이에 남지만, 신뢰는 세대에 남는다. 회사를 키우는 것도, 가정을 지키는 것도 결국은 신뢰였다.

나는 오늘도 후배 경영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냉정하게 판단하되, 따뜻하게 결정하라. 사람을 먼저 세우면 돈은 반드시 그 뒤를 따른다." 당신의 주머니에 돈이 얼마 있느냐보다, 당신 곁에 몇 명의 사람이 남아 있느냐가 더 큰 자산이다. 기업의 성장은 자본이 아니라 신뢰로 만들어진다. 그 신뢰는 단 하루 만에 쌓이지 않는다. 그러나 단 한 번의 무정한 선택으로 무너질 수 있다. 나는 평생 그 단 한 번의 선택을 두려워했다. 돈보다 신뢰를 택해야 할 그 갈림길에서 잠시의 손해를 받아들이는 용기. 그것이 진짜 경영의 심장이라고 믿었다.

이제 나는 후대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당신은 오늘 무엇을 선택했는가? 돈인가, 아니면 사람인가?" 그 답이 당신의 내일을 결정할 것이다. 왜냐면 사람을 잃은 이익은 결국 빈잔에 담긴 물과 같기 때문이다. 반짝이지만 금세 증발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비판을 받으면 얼굴이 굳고, 조언을 들으면 바로 변명부터 하는 사람. 그들은 겉으로는 자신감이 넘쳐 보이지만, 사실은 배움의 문이 닫혀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경영 현장에서 수도 없이 봤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젊은 시절에 나 또한 그 중 하나였다.

1970년대 초, 삼성은 전자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당시 나는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기술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직원들과 함께 밤을 세워 연구를 이어갔다. 그러나 그 시절 내 곁에는 한 명의 전무가 있었다. 그는 능력도, 경험도, 충성심도 뛰어났다. 다만 한 가지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그는 지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회의 때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 일을 30년 동안 해왔네. 자네들이 뭘 안다고 그러는가?" 젊은 직원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면 얼굴을 붉혔다. "내가 틀렸다는 말인가?" 사람들은 점점 그와 일하기를 피했다. 그는 자신이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를 몰랐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배움을 멈췄기 때문이었다.

그를 보며 나는 오래 전 한 사건을 떠올렸다. 1950년대 중반, 라디오 사업을 막 시작했을 때였다. 그때 한 거래처 사장이 내게 조심스레 말했다. "이 회장, 라디오는 소리는 크지만 음질이 좋지 않습니다."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이건 최신 기술로 만든 제품입니다. 함부로 말하지 마시오."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지만, 마음 한 켠이 불편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정말 그가 틀렸을까? 며칠 뒤 팀을 불러 테스트를 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그의 말이 옳았다. 음질은 불안정했고, 부품 연결에도 문제가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지적을 거부하는 순간, 신뢰를 잃는다. 그리고 문제는 커진다. 그날 이후 나는 누군가의 비판을 들으면 메모부터 했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먼저 들었다. 왜냐하면 비판은 나를 공격하는 게 아니라, 회사를 살리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다시 그 전무 이야기로 돌아가자. 어느 날 젊은 과장이 그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전무님, 이번 마케팅 전략은 조금 수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는 화를 냈다. "내가 틀렸다는 건가? 내가 이 일을 자네 나이에 두 배는 해봤어." 그 말을 들은 나는 그를 따로 불렀다. "전무, 자네 30년 경험은 자부심일 걸세. 하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네. 그 경험이 오늘을 막고 있다면, 그건 자산이 아니라 짐이야."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계속 말했다. "내가 예전에 라디오를 만들 때 똑같았네. 지적 하나를 듣지 않아서 수백만 원의 손해를 봤지. 실패는 두렵지 않지만, 배우지 못하는 건 치명적이야."

그의 눈빛이 바뀌었다. 며칠 뒤, 그는 그 젊은 과장을 찾아가 말했다. "지난번 말, 다시 이야기해 봐. 자네 생각을 듣고 싶네." 그날 이후 부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젊은 직원들이 의견을 자유롭게 내기 시작했고, 그 전무는 그들을 진심으로 존중했다. 회의는 활기를 되찾았고, 팀의 성과는 빠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회사를 떠나던 날, 그 젊은 과장이 울며 말했다. "전무님께 배운 건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깊이 생각했다. 사람은 기술로 일하지만, 마음으로 성장한다. 지적을 피하는 사람은 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편안함은 곧 정체가 되고, 정체는 곧 몰락이 된다. 비판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건 나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단단하게 다듬기 위한 과정이다. 불편함은 성장을 위한 훈련이고, 반발심은 아직 배우지 않았다는 신호다.

나는 내 인생의 모든 전환점에서 지적을 통해 성장했다. 비판을 들을 때마다 메모했고, 그 메모가 내 경영의 교과서가 되었다. 사람의 말 속에는 늘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그 진실을 먼저 잡는 사람이 결국 이긴다. 오늘 당신의 곁에도 당신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을 피하지 마라. 그는 당신의 적이 아니라, 당신의 미래다.

리더란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배우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지금도 회의가 끝나면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 나는 무엇을 배웠는가?" 그 질문이 멈추는 순간, 성장은 끝난다. 지혜는 나이가 아니라 겸손에 깊이해서 나온다. 그리고 그 겸손은 언제나 듣는 귀에서 시작된다. 나는 오늘도 내 마음에 문을 연다. 그 문 너머에서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늘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 배움이 있다. 비판은 나를 작게 보이게 하지만, 결국 나를 크게 만든다. 그것이 내가 평생 배운 리더십의 역설이었다.

나는 늘 말했다. "고집은 경험의 산물이지만, 변화에 닫힌 경험은 쇠사슬이 된다." 그 말은 내 젊은 시절의 실패에서 태어났다.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변화를 두려워한다. 자신의 방식이 옳다고 믿는 순간, 그 사람의 성장도 멈춘다.

1970년대 중반, 나는 반도체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그때 한국에서 '반도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다. 많은 이들이 내게 말했다. "이 회장, 그건 미국이나 일본에서나 하는 일입니다. 우리 기술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완강하게 반대하던 사람이 있었다. 삼성의 재무 담당 임원이었다. 그는 단정한 말투로 말했다. "회장님, 기술도 중요하지만 기업은 결국 돈으로 움직입니다. 지금 있는 사업을 안정시키는 게 먼저 아닙니까?"

나는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자네 말이 틀린 건 아니네. 하지만 돈은 눈앞의 결과고, 기술은 미래를 여는 열쇠야."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제 방식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확실한 숫자 없이 위험한 도박은 안 됩니다." 그때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은 숫자를 아는 사람이지, 시대를 읽는 사람은 아니구나.'

그를 보며 나는 오래된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1950년대 후반, 일본의 한 전자 회사가 내게 기술 제휴를 제안했을 때였다. 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해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몇 년 뒤, 그 회사는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이 되었다. 그때 나는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자기 생각만 옳다고 믿는 순간, 세상은 나를 추월한다.

그 후 나는 직접 미국 실리콘 밸리를 방문했다. 젊은 연구원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며 기술로 세상을 바꾸려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나보다 훨씬 부족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생각은 나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귀국길 비행기 안에서 나는 다짐했다. "이제는 배워야 한다. 젊은 세대에게서라도, 세계에게서라도." 그 결심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시작이었다.

나는 다시 그 재무 담당 임원을 불렀다. "자네, 우리가 반도체를 시작했을 때 반대했지." 이제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직접 보게. 우리는 생산 라인을 함께 걸었다. 수백 대의 기계가 정교하게 움직이고, 젊은 연구원들의 눈빛이 불타고 있었다. 그는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회장님, 제가 틀렸습니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기회를 놓칠 뻔했군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틀리는 건 부끄럽지 않네. 틀렸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게 문제지."

그날 이후 그는 완전히 달라졌다. 회의 때마다 젊은 직원의 의견을 먼저 들었고, "자네 생각은 어떤가?" 하고 묻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곧 팀 전체가 달라졌다.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오가며 혁신이 속도를 냈다. 그의 태도 하나가 회사의 문화를 바꾸었다. 몇 년 후,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 회장,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제가 가진 경험은 벽이 아니라 다리가 되어야 했습니다." 나는 미소지었다. "그렇지. 경험은 고집으로 쌓는 게 아니라, 세대와 세대를 잇는 다리로 세워야 하네."

나는 평생 젊은 사람들과 일하며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 했다. 세대의 차이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벽으로 세우는가, 다리로 놓는가가 리더의 품격을 결정한다. 나는 회의 자리마다 내 자리 옆에 젊은 엔지니어를 앉혔다. 그들이 낯선 제안을 할 때마다 들었다. "존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설명해 보게." 그들의 말 속에서 나는 늘 새로운 것을 배웠다.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권위가 아니라 유연함이다. 자신의 경험이 빛을 잃을 때, 그 빛을 다음 세대에게 넘겨 줄 수 있는 용기. 그것이 진짜 리더십이다.

나는 종종 나 자신에게 물었다. "이병철, 너는 여전히 배우고 있는가?" 그 질문은 나를 늘 겸손하게 했다. 경험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지만, 겸손은 그 단단함을 유연하게 한다. 그리고 유연한 강함이야말로 가장 오래 가는 힘이다. 나는 세상을 이렇게 정의한다. "배우지 않는 리더는 과거의 지도에 머무르고, 배우는 리더는 새로운 지도를 그린다." 세상은 늘 바뀐다. 오늘의 정답이 내일은 틀릴 수 있다. 그러므로 진짜 어른은 자신의 방식을 절대화하지 않는다. 늘 묻고, 늘 배우고, 늘 새롭게 태어난다. 당신은 오늘 어떤 태도로 세상을 보고 있는가? 자신의 경험을 벽으로 세우고 있는가? 아니면 다리로 놓고 있는가? 변화는 두렵지만, 고집은 더 위험하다. 고집은 사람을 고립시킨다. 배우는 사람은 실패에도 돌아올 수 있지만, 닫힌 사람은 성공에도 멈춘다. 나는 평생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으려 했었다. 그리고 그 결심 하나가 나를, 삼성을, 그리고 수많은 젊은이의 미래를 바꾸었다. 경험은 나를 지키는 성이 아니라, 세상을 잇는 다리여야 한다. 그 문장은 지금도 내 일기 첫장에 적혀 있다. 그것이 나의 신념이며, 내가 후대에게 남기고 싶은 단 하나의 교훈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실수가 아니라 남 탓이다. 나는 수십 년간 경영을 하며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를 분명히 보았다. 전자는 결국 성장했고, 후자는 자기 인생의 핑계 속에 갇혀 버렸다.

1970년대 후반, 삼성은 세계 시장을 목표로 수출 중심의 구조로 전환하고 있었다. 그때 한 부서의 실적이 좋지 않았다. 보고를 받던 중 그 부서장이 말했다. "회장님, 이번 분기 매출이 떨어진 건 경기 탓입니다. 달러 환율이 안 좋고 정부 규제도 심해졌습니다." 말은 그럴듯했지만, 나는 이미 여러 번 같은 변명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는 언제나 누군가에게 탓을 했다. "시장 상황이 나빴습니다. 부하 직원들이 제 뜻을 잘 못 따랐습니다. 본사 지원이 부족했습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은 스스로를 설명하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변명하고 있구나.' 그를 보며 나는 1940년대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그때 나는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운영하고 있었다. 큰 거래가 틀어져 손해를 봤다. 상품 운송 중 사고가 나고, 고객은 손해 배상을 요구했다. 처음엔 화가 났다. "이건 운송업자가 잘못한 일이지, 우리 책임이 아니야." 하지만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정말 내 책임은 전혀 없을까? 새벽이 되어 나는 운송 업체를 직접 찾아갔다. 계약서를 확인하는 순간, 한 줄이 눈에 들어왔다. "운송 중 손상 책임은 판매자 부담으로 한다." 그것은 내가 미처 꼼꼼히 보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남 탓을 하는 순간, 배움은 멈춘다. 그날 이후 나는 문제가 생기면 언제나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더 잘할 수 있었던 건 무엇일까?" 그 질문 하나가 내 인생을 바꿨다. 남을 탓하던 마음이 내 책임으로 옮겨가자, 실패는 더 이상 수치가 아니라 승리가 되었다.

다시 그 부서장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그는 여전히 외부 요인만을 언급하며 보고를 마쳤다. 나는 그를 조용히 불렀다. "자네, 왜 그렇게 남을 탓하나?" 그는 당황한 듯 말했다. "회장님, 저는 그저 상황을 설명드린 것뿐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설명과 변명은 종이 한 장 차이야. 설명은 해결책으로 이어지지만, 변명은 핑계로 끝나네. 자네는 지금 스스로에게서 배움을 끊고 있어."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잠시 침묵하더니 고개를 숙였다. "회장님, 저는 단 한 번도 제 책임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날 이후 그는 완전히 달라졌다. 성과가 나쁘면 "이건 제 관리가 부족했습니다."라고 먼저 말했다. 문제가 생기면 "제가 잘못 판단했습니다."라고 솔직히 인정했다. 놀랍게도 그가 변하자 팀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부하 직원들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 서로가 책임을 나누는 조직은 더 강해졌다. 몇 달 뒤, 그 부서의 실적은 전사 중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는 나를 찾아와 말했다. "회장님, 남 탓을 멈추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더군요. 제가 바꿀 수 있는 건 환경이 아니라 제 태도였습니다."

나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렇지. 남을 탓하는 사람은 늘 세상을 원망하지만, 책임을 지는 사람은 세상을 움직인다." 그날 나는 내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변명은 실패의 언어이고, 책임은 성장의 언어다." 남 탓을 하는 사람은 늘 피해자다. 그들은 세상이 자신을 억누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진짜 피해자는 그들이 아니라, 자신의 가능성을 버린 자기 자신이다.

나는 가끔 젊은 직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왜 당신은 실패했다고 생각합니까?" 그들이 외부의 이유를 말할 때, 나는 조용히 말했다. "그럼 그 상황에서 당신이 할 수 있었던 일은 없었습니까?" 그 질문을 받은 직원들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 침묵 속에서 성장이 시작됐다.

리더의 첫 번째 덕목은 변명을 멈추는 것이다. 리더는 이유를 찾지 않는다. 대신 방법을 찾는다. 책임을 지는 순간, 문제는 나의 손 안에 들어오고, 그때부터 해결의 길이 열린다. 나는 늘 이렇게 생각했다. "문제를 밖에서 찾는 사람은 늘 늦게 배우고, 문제를 안에서 찾는 사람은 끝내 이긴다." 내 인생의 수많은 위기 속에서 남을 탓할 이유는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원칙이 나를 살렸다. "모든 일에는 내 몫이 있다." 그 말은 내게 두려움이 아니라 자유였다. 왜냐하면 내 몫이 있다는 건, 그만큼 내가 바꿀 수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인생을 경영하듯이 경영을 인생처럼 했다. 실패는 언제나 따라오는 손님이었다. 그러나 그 손님에게서 배우면 그것은 스승이 되었고, 탓을 하면 적이 되었다. 세상은 공평하다. 책임을 지는 사람에게는 더 큰 기회를 주고, 변명하는 사람에게는 변명할 또 다른 이유를 준다. 당신의 인생은 그 둘 중 어느 쪽인가? 혹시 오늘 당신이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는가? "왜 나만 안 풀릴까?" 그렇다면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보라. "정말 나는 내 몫을 다했는가?" 진짜 어른은 세상을 탓하지 않는다. 그들은 상황을 바꾸려 하지 않고, 태도를 바꾼다. 태도를 바꾸는 순간, 세상도 달라진다. 나는 이제 확신한다. 책임을 인정하는 순간, 인생은 바뀌기 시작한다.

사람이 가장 위험해지는 순간은 자신의 미숙함을 모를 때다. 나는 많은 이들을 보았다. 경험이 쌓일수록 겸손해야 하지만, 오히려 스스로를 완성된 존재로 착각하는 사람들. 그들은 더 이상 배우지 않았고, 결국 성장도 멈췄다.

1980년대 초, 나는 이미 80원이 넘은 나이였다. 삼성은 국내를 넘어 세계 시장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언론에서는 나를 한국 경제의 상징이라 불렀다. 그러나 그때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를 맞았다. 그것은 외부의 위기가 아니라 내 안의 위기였다.

어느 날 한 젊은 임원이 조심스레 말했다. "회장님, 요즘 현장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습니다. 젊은 직원들이 회장님께 의견을 드리는 걸 주저합니다." 나는 처음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나 며칠 뒤, 우연히 유리창 너머 회의실을 보게 되었다. 젊은 직원들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문제는 그들이 아니었다. 문제는 나였다. 나는 어느새 권위의 갑옷을 입고 있었다. 배움을 말하던 내가 배움을 멈추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서재에 홀로 앉았다. 책상 위에는 오래된 노트 한 권이 있었다. 삼성상회를 처음 세우던 시절의 일기장. 그 속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는 아직 배움의 길 위에 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병철, 지금의 너는 그때보다 더 배운 사람인가?" 그 질문이 가슴을 깊게 찔렀다.

다음날 나는 전 임직원에게 지시를 내렸다. "회장 이병철의 잘못을 솔직히 써서 나에게 보고하라." 처음엔 아무도 쓰지 않았다. 누가 감히 회장의 잘못을 적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며칠 후, 한 엔지니어가 조심스레 메모를 내밀었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회장님은 너무 완벽을 원하십니다. 그 때문에 현장은 늘 긴장 속에 있습니다." 그 문장을 읽고 나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그 한 줄이 내 자존심을 무너뜨렸지만, 동시에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날 이후 나는 회장실의 문을 활짝 열었다. 누구든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했다. 매주 현장을 직접 찾아가 직원들과 식사하며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곧 모든 것이 달라졌다.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돌아왔고, 회의에는 목소리가 생겼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권위는 명령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경청으로 쌓이는 것이다. 듣는 자가 진짜 강한 사람이다.

그 후로 나는 매년 스스로를 점검했다. "지금의 나는 성장하고 있는가?" 그 물음이 평생의 습관이 되었다. 나이가 많다고 지혜로운 것은 아니다. 직급이 높다고 배움이 끝난 것도 아니다. 진짜 어른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 인정이 곧 새로운 성장에 문을 연다. 나는 종종 젊은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직 배우는 중이네. 사람이 배움을 멈추는 순간, 그때가 진짜 은퇴일세." 그 말을 들은 젊은 이들이 놀라며 물었다. "회장님처럼 성공한 분도 여전히 배운다고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성공은 배움을 멈춘 순간 사라진다네."

나는 내 인생을 돌아보며 깨달았다. 성공보다 더 큰 가치는 성찰이다. 성공은 사람의 이름을 남기지만, 성찰은 사람의 품격을 남긴다. 나는 늘 내 안의 미숙함을 들여다보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병철, 아직 부족하다. 아직 멀었다." 그 부족함이 나를 끌고 갔다. 그 미완의 의식이 나를 매일 새로 태어나게 했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이 미숙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완성에 가까워질 수 있다.

나는 자주 젊은 세대에게 경고한다. "자신이 충분히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바로 배움의 끝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어제의 진리는 오늘의 장애물이 된다. 그러니 스스로를 의심하라. 그 의심이 당신의 생각을 깊게 만들 것이다.

삼성의 초창기 시절,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실패했다. 그러나 그 실패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나는 아직 모른다"는 자각이었다. 그 자각이 있었기에 나는 늘 배웠고, 늘 새로워질 수 있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자주 말했다. "겸손은 나를 작게 만드는 게 아니라, 내 세계를 넓히는 일이다. 겸손은 사람을 낮추지만, 동시에 세상을 높인다."

나는 이제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배우고 있다. 배움이 나를 살게 했고, 성찰이 나를 인간으로 남게 했다. 나는 불을 쌓기 위해 산 것이 아니라, 불을 통해 배움을 지속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 살았다. 내가 살아온 길을 돌아보면, 성공보다 부끄러웠던 순간에서 더 많이 배웠다. 실패는 나를 낮추었고, 낮아진 자리는 새로운 배움으로 다시 채워졌다. 나는 이렇게 믿는다. "배움을 멈추지 않는 사람은 결코 늦지 않는다. 그 사람은 언제나 내 일을 향해 걷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오늘 당신은 무엇을 배웠는가? 자신의 부족함을 마주했는가? 아니면 숨겼는가?" 그 대답이 당신의 내일을 결정할 것이다. 사람은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미숙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미숙함을 인정하는 순간, 그 사람은 진짜 어른이 된다. "나는 아직 배우는 중이다." 이 한 문장이 내 인생의 마지막 문장이 되기를 바란다. 그 문장 속에 나의 실패와 성장,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길이 모두 담겨 있으니까.

나는 평생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을 가르는 것은 돈도, 지위도 아니었다. 오직 하나, 스스로를 볼 줄 아는가 아닌가? 나는 사람을 판단할 때 언제나 한 가지를 보았다. 그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가? 자신의 부족함을 말할 수 있는가? 그 두 가지가 안 되는 사람은 결국 아무리 똑똑해도 무너졌다. 왜냐하면 진짜 실패는 외부의 사건이 아니라, 내면의 닫힘이기 때문이다.

내가 젊었을 때 세상은 늘 불안정했다. 전쟁이 있었고, 가난이 있었고, 불신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무엇을 놓쳤는가?" 그 단 하나의 질문이 그들을 어른으로 만들었다. 나는 그들을 보며 배웠다.

화를 내는 사람은 결국 자신을 태우고, 말만 하는 사람은 기회를 놓치며, 과거에 사는 사람은 현재를 잃고, 주목만 바라는 사람은 신뢰를 잃고, 이익만 좇는 사람은 사람을 잃는다. 그리고 지적을 못 받아들이는 사람은 발전을 멈추고, 자기 생각만 옳다고 믿는 사람은 고립되며, 남 탓하는 사람은 배우지 못하고, 자신의 미숙함을 모르는 사람은 결국 스스로를 잃는다.

나는 내 인생의 마지막 시기에 이 아홉 가지를 정리했다. 그것은 경영의 원칙이기도 했고, 인생의 경고이기도 했다. 나는 그것을 이렇게 부른다. "미숙한 사람의 아홉 그림자." 이 그림자들은 겉으로는 평범하다. 하지만 그것이 마음속에 자리 잡는 순간, 사람은 천천히 무너진다. 회사는 썩고, 관계는 멀어지고, 인생은 방향을 잃는다.

나는 그 아홉 가지를 모두 지나왔다. 분노하던 청년이었고, 말만 하던 젊은 사장이었으며, 과거를 자랑하던 실패자였다.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았다. 실패를 인정했고, 지적을 들었으며, 스스로의 미숙함을 끝없이 마주했다. 그 싸움이 나를 어른으로 만들었다. 나는 젊은 시절의 나에게 말하고 싶다. "성공은 완벽함이 아니라, 미숙함을 인정하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그 용기를 잃는 순간, 아무리 커진 기업도 껍데기에 불과하다." 기업은 사람으로 세워지고, 사람은 성찰로 성장한다.

나는 수많은 사람을 지도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 "사람은 완성될 수 없다. 다만 성장할 뿐이다. 그리고 성장의 첫걸음은 자기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다." 나는 내 인생의 끝에서도 여전히 그 부끄러움을 느꼈다. 삼성이 세계를 향해 나아가던 그때에도, 나는 스스로에게 매일 물었다. "이병철, 오늘은 무엇을 배웠는가?" 그 질문 하나가 나를 멈추지 않게 했다.

많은 이들이 내게 물었다. "회장님, 경영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나는 대답했다. "사람을 아는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어려운 건 자신을 아는 일이지." 자신을 모르는 리더는 결국 판단을 잃고, 판단을 잃은 조직은 방향을 잃는다. 그러나 자신을 돌아보는 리더는 언제나 길을 찾는다. 나는 인생을 긴 항해라고 생각한다. 바다는 늘 변하고, 파도는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선장이 나침반을 잃지 않는다면, 배는 결코 길을 잃지 않는다. 그 나침반이 바로 자기 성찰이다.

오늘도 나는 후대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남을 탓하지 말고 자신을 보라. 책임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것을 기회로 삼아라. 완벽을 쫓지 말고 진심으로 성장하라." 그 길은 느리지만 오래간다. 그 길의 끝에는 신뢰가 있고, 평온이 있고, 인간다움이 있다. 사람들이 내게 남긴 칭호나 업적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내 안에 남은 문장 하나만은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아직 배우는 중이다." 그 문장은 나의 신념이자, 내가 평생 지켜온 인간의 길이었다.

세상은 변하고 사람은 늙는다. 그러나 배움을 멈추지 않는 사람만이 언제나 새롭게 젊다. 나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다. "진짜 어른이란 자신을 꾸짖을 줄 아는 사람이다." 그 한마디가 내 삶의 요약이자, 삼성을 세운 철학이었다. 내가 걸어온 길 위에 수많은 흔적이 남았다. 그러나 나는 그 흔적 위에 또 하나의 문장을 새긴다. "나는 여전히 미숙하다. 그러나 그 미숙함 속에서 성장하고 있다." 그 문장을 남기고 나면, 나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안다. 배우는 자는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가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날이 온다면, 나는 조용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병철, 오늘도 배웠다." 그 말 한마디면 내 인생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