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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는 순간, 당신의 품격은 무너집니다. 저는 삼성을 이끌며 깨달았습니다. 진짜 위기는 멀리서 오지 않는다는 것을요.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작은 무례로 시작됩니다.
해시를 나서 저는 종종 생각했습니다. 왜 사람들은 가까운 사람에게 더 함부로 대할까? 임원들은 외부 손님 앞에선 정중합니다. 말 한 마디, 표정 하나까지 조심하지요. 그러나 회의가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가면 어떻습니까? 부하직원에게 소리를 지릅니다. 가족에게 투명스럽게 말합니다. "편한 사이니까 괜찮겠지?" 하는 착각 속에서요.
저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젊은 시절 저는 사업에 몰두했습니다. 새벽같이 출근해 밤 늦게 귀가 했지요. 집에 돌아와서도 머릿속은 온통 경영 전략뿐이었습니다. 가족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도 말수가 적었습니다. "오늘 학교에서 어땠니?" 아이들이 물으면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그래, 잘했구나." 하는 무심한 대답으로 대화를 끝냈지요. 제 마음속에선 이미 다음날 미팅 자료가 돌아가고 있었으니까요.
그런 어느 날이었습니다. 제 작은 아들이 그림을 그려왔습니다. 유치원에서 그린 가족 그림이었지요. "아버지는 어디 있냐?"고 물었더니 아이가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아빠는 항상 멀리 있어서 안 그랬어요." 그 순간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저는 매일 같은 집에 살았습니다. 같은 식탁에 앉았고 같은 공기를 마셨지요. 하지만 제 마음은 늘 회사에 있었습니다. 아이에겐 아버지가 가까이 있지만 멀리 있는 사람이었던 겁니다. 가까운 사람을 소홀히 대하는 것. 그것이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기는지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회사로 돌아가 임원들을 보았습니다. 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객 앞에선 미소를 짓다가 직원 앞에선 얼굴을 굳히는 사람들. 외부 미팅에선 정중하다가 내부 회의에서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 왜 그럴까요? 편하니까요. 어차피 가까운 사이니까 조금쯤 무례해도 이해해 주리라 믿으니까요. 하지만 그 믿음이 바로 관계를 무너뜨리는 독입니다.
심리학자들의 연구가 있습니다. 사람은 가까운 관계일수록 감정 통제 능력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익숙함이 경계를 무너뜨리기 때문이지요. 낯선 사람 앞에선 긴장합니다. 실수하면 안 된다는 두려움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가족, 친구, 오랜 동료 앞에선 방심합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안일함에 빠지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묻습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낯선 이에게만 예의 바른 사람입니까? 아니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도 품격을 지키는 사람입니까? 제가 평생 경영하며 배운 것이 있습니다. 진짜 리더는 밖에서 드러나지 않습니다. 회의실이 아니라 복도에서, 무대가 아니라 뒷무대에서 드러나지요. 부하 직원에게 어떻게 말하는가? 집에 돌아가 가족에게 어떤 표정을 짓는가? 피곤할 때, 화가 날 때, 스트레스 받을 때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 그것이 바로 당신의 진짜 모습입니다.
세상은 당신의 명함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직함도, 성과도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죠. 하지만 사람들은 기억합니다. 당신이 자신을 어떻게 대했는지를요. "그 사람은 참 예의도 바르더라." "그 사람은 지위가 높아도 겸손하더라." "그 사람은 바빠도 나를 무시하지 않더라." 이런 평가가 당신의 진짜 유산입니다. 반대로 이런 말도 남습니다. "지위는 높은데 사람 대하는 게 형편없더라." "가까운 사람한테 함부로 하더라." "말은 그럴듯한데 행동이 영 아니더라." 어느 쪽으로 기억되고 싶으십니까?
제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간단합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예의를 지키는 것. 그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투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삼성을 40년 넘게 이끌었습니다. 수만 명의 직원을 만났고 수천 번의 결정을 내렸지요.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무너지는 관계의 시작은 언제나 작은 물에서 비롯됩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어떻게 조직을 오래 이끌 수 있었냐고. 비결이 무엇이냐고. 저는 대답합니다. "가까운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거창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침에 출근하면 경비원에게 먼저 인사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말단 직원에게도 고개를 숙였지요. 회의 중에 누군가 말할 때는 끝까지 들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말이지요.
왜 그랬을까요? 제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셨음. "가까운 사람을 소중히 대하는 자가 큰 일을 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늘 바쁘셨습니다. 사업 초기였으니까요. 하지만 집에 돌아오시면 달랐습니다. 피곤한 기색을 감추고 가족과 대화하셨지요. "오늘 학교에서 뭘 배웠니?" "선생님 말씀 잘 들었니?" "힘든 일은 없으니?" 하나하나 물으셨습니다. 그 질문 속에 진심이 담겨 있었지요. 형식적인 물음이 아니었습니다. 정말로 궁금해하셨고 정말로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며 배웠습니다. 진짜 어른은 밖에서만 훌륭한 게 아니라는 것을요. 집에서도, 가까운 사람 앞에서도 똑같이 품격을 지킨다는 것을요.
그러나 제가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는 어땠습니까? 아버지의 가르침을 잊었습니다. 회사일에 치어 가족을 뒷전으로 밀어냈지요. "나중에 성공하면 그때 잘해 주면 되지" 하는 안일한 생각이었습니다. 큰 착각이었습니다. 관계는 나중에 만들어지는게 아닙니다. 매일매일 쌓이는 겁니다. 오늘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오늘 무관심하게 지나친 순간 하나가 결국 관계의 전부가 됩니다.
제가 변한 건 위기를 겪고 나서였습니다. 9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회사가 어려웠지요. 세계 시장은 급변했고 경쟁은 치열했습니다. 저는 신경영을 선언했습니다.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자"고 외쳤지요. 조직을 뒤흔들었습니다. 불필요한 관행을 없앴습니다. 속도를 높이고 효율을 극대화했지요.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변화를 선언했는데 조직이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명령을 내렸는데 실행 속도가 느렸지요. 왜일까요? 한 임원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회장님, 직원들이 두려워합니다." "뭘 두려워한단 말인가?" "회장님의 말투를 두려워합니다. 때때로 누군가 실수하면 차갑게 대하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다들 입을 다뭅니다."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저는 변화를 외쳤지만 정작 제 태도는 변하지 않았던 겁니다. 직원들에게 창의를 요구하면서도 실수에는 가혹했습니다. 소통을 강조하면서도 제 말만 했지요. 가까운 사람일수록 함부로 대했습니다. "이 정도는 알아서 해야지." "왜 뜻대로 못하나?" "내가 몇 번을 말해야 하나?" 이런 말들을 쏟아냈습니다. 제 입장에선 채찍질이었지만 그들에겐 모욕이었지요.
그날 이후 저는 달라지기로 했습니다. 회의 방식을 바꿨습니다. 누군가 의견을 내면 끝까지 들었습니다. 설령 어리석은 생각이라도 일단 경청했지요. "좋은 의견이네" 하고 인정한 뒤에 "이런 점은 보완하면 어떨까?" 하고 부드럽게 제안했습니다. 말투를 바꿨습니다. "왜 이것도 못하나?" 대신 "어떤 부분이 어려웠나?" 하고 물었지요. "알아서 해라." 대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게" 하고 말했습니다. 작은 변화였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회의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지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쏟아졌습니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으니 도전하는 문화가 생겼습니다. 조직이 살아났습니다.
삼성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기술 때문만이 아닙니다. 사람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 때문이지요.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심리학자들의 연구가 있습니다. 부부 관계에서 서로에게 함부로 말하는 빈도가 높을수록 이혼율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반대로 서로를 존중하는 표현을 자주 쓰는 부부는 관계 만족도가 높다고 하지요.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립니까? 하지만 우리는 실천하지 않습니다. 머리로는 알면서도 행동으로는 반대로 하지요. 왜일까요? 편했습니다. 가까운 사이니까 조금쯤 무례해도 괜찮다고 착각하니까요.
저는 이걸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첫째, 익숙함의 함정입니다. 같은 사람을 매일 보면 특별함이 사라집니다. 처음 만났을 땐 조심스럽지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방심합니다. "저 사람은 원래 그래" 하고 단정 짓지요. 그래서 노력을 멈춥니다. 인사를 생략합니다. 고맙다는 말을 아낍니다. "당연한 거 아니냐?" 하는 태도로 상대를 대합니다. 하지만 당연한 관계는 없습니다. 모든 관계는 매일 새롭게 만들어지는 겁니다.
둘째, 감정의 오판입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에게 감정을 쉽게 드러냅니다. 화가 나면은 소리를 지르고 짜증이 나면은 퉁명스럽게 대하죠. "어차피 가족이니까 이해하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족이라고 상처받지 않는게 아닙니다. 오히려 더 깊이 상처받지요. 가까운 사람의 말 한 마디가 낯선 사람의 열 마디보다 더 아픕니다.
셋째, 기대의 착오입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우리는 더 많은 걸 기대합니다. "이 정도는 알아서 해 줘야지" 하고 바라지요.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실망합니다. 그리고 그 실망을 무례한 태도로 표현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당신의 기대를 읽을 수 없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모릅니다. 짐작하라고 요구하는 건 폭력입니다.
이 세 가지 함정에서 벗어나야 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간단합니다. 가까운 사람을 낯선 사람처럼 대하면 됩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은 가까운 사람을 귀한 손님처럼 대하는 겁니다. 손님에게 하듯 정중하게 말하십시오. 손님에게 하듯 미소를 지으십시오. 손님에게 하듯 감사를 표현하십시오. "우리 사이에 그게 어디 있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생각이 관계를 망칩니다. 우리 사이니까 더 신경 써야 합니다. 가까우니까 더 조심해야 하지요.
제가 평생 배운 교훈이 있습니다. 예의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이 착각합니다. 예의를 격식이라고 생각하지요. 허리를 굽히고 공손하게 말하고 형식을 갖추는 것, 그게 예의라고 믿습니다. 틀렸습니다. 예의는 형식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상대를 소중히 여기는 태도의 표현이지요.
제가 젊었을 때 일입니다. 아버지를 따라 일본 출장을 갔습니다. 한 기업인과 저녁 식사를 했지요. 거구는 나이가 많았습니다. 100년을 넘긴 노인이었습니다. 식사 중에 제가 실수로 물잔을 쏟았습니다. 당황했지요. 물론 냅킨으로 닦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노인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자신의 냅킨으로 테이블을 닦았지요. 그러고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괜찮습니다. 물은 다시 채우면 됩니다." 미소를 지으며 말이죠. 저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나이도 많고 지위도 높은 분이었습니다. 제가 실수했으니 제가 수습해야 마땅했지요. 하지만 그분은 달랐습니다. 상대의 당혹감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게 진짜 예의였음. 형식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젊은 사람이 조심해야지 하고 핀잔을 주지도 않았지요. 그저 상대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저런 게 진짜 어른이다. 예의란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거란다." 그 말씀이 제 가슴에 새겨졌습니다. 예의란 상대를 높이는게 아닙니다. 상대를 편하게 하는 겁니다. 존중한다는 걸 보여 주는 거지요.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가까운 사람에게 예의를 잃습니다. 왜 잃을까요? 편하니까요. 격식을 차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예의는 격식이 아닙니다. 예의는 관계를 지키는 기술입니다. 제가 임원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부하 직원에게 함부로 말하지 마라. 그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이다." 어떤 이는 묻습니다. "회장님, 그럼 잘못한 것도 지적하지 말란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지적은 해야 합니다. 하지만 방법이 있지요. "왜 이것도 못하나?" 이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이 부분이 아쉬운데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까?"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둘 다 같은 내용을 전달합니다. 하지만 받는 사람의 느낌은 천지 차이죠. 첫 번째는 인격을 공격합니다. 두 번째는 문제를 함께 풉니다. 첫 번째는 상처를 남깁니다. 두 번째는 성장을 이<0xEA><0xB9><0x81>니다. 예의란 바로 이겁니다. 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전달하느냐의 문제지요.
반례를 봅시다. 어떤 사람들은 예의를 비효율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의 차리느라 시간 낭비할 결이 없어요. 직설적으로 말하는 게 더 빠르잖아요. 가까운 사이에 그런 거 따지면 오히려 어색해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결과는 어떻습니까? 조직에 불신이 쌓입니다. 사람들이 위축됩니다. 소통이 막히지요. 겉으로는 빨라 보이지만 속으로는 느려집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사이에 고맙다는 말이 어디 있어? 부부가 뭘 그렇게 따져? 가족끼리 미안하다고 할 필요 있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결과는 뻔합니다. 관계가 식어갑니다. 정이 떨어지죠. 결국 남남이 됩니다. 예의를 생략하는 순간 관계도 생략됩니다.
그럼 진짜 예의는 무엇입니까? 세 가지로 정교화해 봅시다. 첫째, 예의는 경청입니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는 것. 그게 예의 시작입니다. 제가 회의를 할 때 규칙이 있었습니다. "누가 말하든 중간에 끊지 않는다. 아무리 어리석은 소리처럼 들려도 일단 끝까지 듣는다." 왜일까요? 말을 끊는 순간 상대는 무시당했다고 느낍니다. "내 의견은 중요하지 않구나. 내 존재는 가치가 없구나." 하고 생각하죠. 경청은 상대에게 말합니다. "당신의 생각이 중요합니다. 당신이 중요합니다."
둘째, 예의는 감사입니다.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 것. 그게 예의입니다. 제가 출근하면은 운전 기사에게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매일 아침 똑같이 말했지요. "오늘도 고생이 많습니다." 기사가 서류를 가져오면은 고개를 숙였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청소하는 분이 지나가면 인사했습니다. "늘 깨끗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이는 물었습니다. "회장님, 그건 그분들의 일 아닙니까? 왜 매번 감사하다고 하십니까?" 저는 대답했습니다. "일이니까 감사해야 합니다. 그 일을 해 주는 사람이 있기에 내가 내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당연한 일은 없습니다. 모든 일은 누군가의 수고입니다. 그 수고를 인정하는 게 예의지요.
셋째, 예의는 절제입니다. 감정이 올라올 때 멈추는 것. 그게 예의입니다. 저도 사람입니다.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실망스러울 때도 있지요. 소리를 지르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참았습니다. 왜일까요?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으니까요. 순간의 감정이 평생의 관계를 망칠 수 있으니까요. 화가 날 때 저는 이렇게 했습니다. 심호흡을 했습니다. 하나, 둘, 셋까지 셌지요. 그러고 나서 입을 열었습니다. 그 몇 초가 모든 걸 바꿨습니다. 감정은 파도와 같습니다. 몰려왔다가 사라지죠. 그 순간만 견디면 됩니다. 견디고 나면 이성이 돌아옵니다. 예의란 바로 그 견딤입니다.
많은 사람이 묻습니다. "그럼 솔직한 감정은 어떻게 합니까? 다 참고 살란 말입니까?" 아닙니다. 감정을 표현하되 방법을 바꾸는 겁니다. "너 때문에 화가 나"가 아니라 "이 상황이 내게 힘들다" 하고 말하는 거지요. 상대를 공격하지 말고 내 감정을 설명하는 겁니다.
제 인생을 바꾼 깨달음은 늦게 도착했습니다. 50대 중반이었지요. 그때까지 저는 일만 했습니다. 결과만 봤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소홀히 했지요. 어느 날 한 임원이 사표를 냈습니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회사에 꼭 필요한 인재였지요. 저는 물었습니다. "왜 떠나려 하나?" 그가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회장님, 저는 이 회사에서 한 번도 인정받은 적이 없습니다." "무슨 소린가? 자녀 성적은 내가 다 알고 있네." "아는 것과 인정하시는 건 다릅니다. 회장님은 제게 한 번도 고맙다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 말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사실이었으니까요. 저는 그의 성과를 알았습니다. 하지만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닌가?" 하고 생각했지요. 큰 실수였습니다. 사람은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자신의 노력을 알아봐 주길 바라죠.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아니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달라졌습니다. 성과를 낸 사람에게 반드시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작은 일이라도 인정했지요. "잘했네." 한마디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변화는 놀라웠습니다. 사람들이 달라졌습니다. 더 열심히 일했지요. 스스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조직의 활기가 돌았습니다. 예의가 성과를 만들었습니다.
예의는 행동이 아니라 순간마다 선택하는 절제입니다. 많은 사람이 예의를 어렵게 생각합니다. 특별한 훈련이 필요하다고 믿지요. 하지만 아닙니다. 예의는 거창한 게 아닙니다. 일상의 작은 습관입니다. 제가 평생 실천한 방법을 나눕니다.
첫 번째 단계. 아침에 첫마디를 바꾸십시오. 집에서 일어났을 때를 생각해 봅시다. 가족과 마주칩니다. 뭐라고 말합니까? "아침 몇 시야?" "밥은 됐어." "오늘 바쁘니까 빨리 준비해."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저도 그랬습니다. 아침은 늘 바빴습니다. 회사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지요. 가족에게 무심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깨달았습니다. 하루에 천 마디가 관계를 만든다는 것을요. 그래서 바꿨습니다. 일어나서 가족을 보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잘 잤어요."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하루도 즐겁게 보내요." 간단한 인사였습니다. 하지만 효과는 컸지요. 가족의 표정이 달라졌습니다. 아침 식사 시간이 따뜻해졌습니다. 당신 어떻습니까? 오늘 아침 가족에게 뭐라고 말했습니까? 직장에 출근해서 동료에게 어떻게 인사했습니까? 첫 마디를 바꾸십시오. 하루가 달라집니다.
두 번째 단계. 상대의 말을 끊지 마십시오. 대화할 때 우리는 실수합니다. 상대가 말하는 중인데 끼어듭니다. "그래서 결론이 뭔데?" 하고 제촉하죠. 혹은 "내 말 좀 들어 봐" 하며 자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왜 그럴까요? 급하니까요. 내 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말을 끊는 순간 상대는 마음에 문을 닫습니다. 저는 회의 시간에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발언하는 사람이 있으면은 끝까지 듣는다. 아무리 내 의견이 떠올라도 참는다. 메모만 하고 기다린다." 처음엔 답답했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말이 길지? 요점만 말하면 되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지요. 하지만 참았습니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람들이 더 솔직해졌습니다. 평소 말이 없던 직원도 의견을 냈지요. 회의가 길어지는 것 같았지만 오히려 결정은 빨라졌습니다. 왜요? 모두의 생각을 들었으니 결정에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이가 학교 이야기를 할 때 끝까지 들었습니다. 중간에 끊지 않았지요. "그래서 하고" 제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더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고민도 털어 놓았지요. 아버지와의 거리가 좁혀졌습니다. 사랑의 언어입니다.
세 번째 단계. 고맙다는 말을 매일 하십시오. 감사를 습관으로 만드십시오. 아침에 커피를 받으면 "고맙습니다" 하고 말하십시오. 누가 문을 잡아 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하십시오. "그런 것까지 고마워 해야 해요?" >> "네. 해야 합니다. 당연한 일은 없습니다. 모든 일은 누군가의 수고니까요." 저는 매일 저녁 집에 돌아가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도 수고했습니다." 가족에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저를 위해 집을 지켜 준 것에 대한 감사였지요. 처음엔 어색했습니다. 가족들도 당황했습니다. "갑자기 왜 이러세요?" 하고 물었지요. 하지만 계속했습니다. 한 달이 지나자 달라졌습니다. 가족도 저에게 고맙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도 고생하셨어요" 하고 맞이해 주었지요. 감사가 감사를 낳았습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임원들에게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성과를 낸 팀에게 감사 메시지를 보냈지요. 작은 일이라도 인정했습니다. 조직 문화가 바뀌었습니다. 서로에게 고마워하는 분위기가 생겼습니다. 협력이 늘었지요. 성과도 따라왔습니다. 감사는 공짜입니다. 돈이 들지 않습니다.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죠. 단 3초면 됩니다. 하지만 그 3초가 관계를 바꿉니다.
네 번째 단계. 화가 날 때 삼 초를 기다리십시오.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누군가 실수했습니다.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소리를 지르고 싶습니다. 멈추십시오. 3초만 기다리십시오. 그 3초 동안 심호흡하십시오. 감정의 파도가 조금 가라앉습니다. 그러고 나서 입을 여십시오. "왜 이것도 못 하나?" 대신 "무슨 일이 있었나?" 하고 물으십시오. "내가 몇 번을 말해서" 대신 "어떤 부분이 어려웠나?" 하고 물으십시오. 차이가 보입니까? 첫 번째는 공격입니다. 두 번째는 질문입니다. 첫 번째는 관계를 끊습니다. 두 번째는 관계를 잇습니다.
제가 이 방법을 익히기까지 오래 걸렸습니다. 처음엔 실패했습니다. 화가 나면 참지 못했지요.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중에 후회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연습했습니다. 화가 날 때마다 3초를 셌지요. 때론 성공했고 때론 실패했습니다. 6개월쯤 지나자 달라졌습니다. 자연스럽게 멈출 수 있었습니다. 감정을 다스릴 수 있었지요.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제게 더 솔직해졌습니다. 실수를 숨기지 않았지요. "회장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고 먼저 말했습니다. 왜일까요? 화를 내지 않으니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조직이 건강해졌습니다.
예전에 저를 봅시다. 아침에 일어나 가족에게 무심했습니다. 회사에 가서 직원들에게 냉정했습니다. 회의 중에 말을 끊었습니다. 실수하면 소리를 질렀지요. 그 결과는 어땠습니까? 집에서는 가족과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회사에서는 직원들이 움츠러들었지요. 혁신은 없었습니다. 분위기는 경직됐습니다. 성과<0xEC><0x9D><0x80> 나왔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지쳤습니다.
변화 후에 저를 봅시다. 아침에 가족에게 따뜻하게 인사했습니다.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경청했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지요. 화가 나도 3초를 기다렸습니다. 결과는 어땠습니까? 집에서는 가족과 대화가 늘었습니다. 아이들이 고민을 털어 놓았지요. 회사에서는 직원들이 활기를 찾았습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쏟아졌습니다. 성과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사람들이 행복했습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변화는 거창하지 않았습니다. 말투를 바꿨습니다. 태도를 바꿨습니다. 습관을 바꿨지요. 하지만 그 작은 변화가 모든 것을 바꿉니다.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당장 시작하십시오. 아침에 일어나 가족에게 따뜻하게 인사하십시오. 출근해서 동료에게 미소를 지으십시오. 회의 중에 끝까지 들으십시오. 퇴근할 때 고맙다고 말하십시오. 하루하루 반복하십시오. 한 달 후를 상상해 보십시오. 관계가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분위기가 바뀌어 있을 것입니다. 당신 자신도 변해 있을 겁니다.
예의는 거창한 미덕이 아닙니다. 매일 실천하는 작은 습관입니다. 그 습관이 쌓여 인생이 됩니다. 제가 70평생을 살며 배운게 있습니다. 관계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매일매일 쌓이는 거지요. 오늘 한 말 한 마디가, 오늘 한 행동 하나가 내일의 관계를 만듭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예의를 지키십시오. 그것이 당신의 인생을 바꿀 것입니다.
인생의 끝자락에서 무엇이 남을까요? 저는 이제 70을 넘겼습니다. 길을 돌아보면 많은 것이 보입니다. 성공도 있었고 실패도 있었지요. 영광도 있었고 아픔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기억에 남는 건 따로 있습니다. 사람입니다. 제가 어떻게 됐는가? 그들이 제게 어떤 마음을 품었는가? 그것만이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가까움은 믿음의 증거가 아니라 예의를 시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사업 초기를 떠올립니다. 어려울수록 더 예의 바르게 됐습니다.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의견을 경청했습니다. 돈으로 보답할 순 없었지만 마음으로 보답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삼성의 초석이 됐습니다. 회사가 커진 후에도 그들을 잊지 않았습니다. 만날 때마다 옛날을 회상했지요. "그때 자네가 없었으면 오늘이 없었네" 하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울먹였습니다. "회장님, 저희야말로 그때 회장님을 만나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했습니다. 그게 진짜 관계였습니다. 지위도 돈도 성과도 아니었습니다.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관계를 만들었지요.
반대 경우도 봤습니다. 성공한 후 교만해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돈을 벌고 지위가 높아지자 태도가 달라졌지요. 아랫 사람에게 함부로 대했습니다. 가족을 소홀히 했습니다. "내가 이만큼 성공했는데 뭐. 나 하나 먹고 살기도 바쁜데 누구 신경 쓸 결을 잃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습니까? 외로워졌습니다. 성공했지만 곁에 아무도 없었지요. 돈은 많았지만 마음은 가난했습니다. 어느 날 그중 한 사람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병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치료를 받고 있지만 외롭다고 했지요. 가족도 친구도 곁에 없다고 했습니다. "회장님, 제가 뭘 잘못한 걸까요?" 저는 조용히 물었습니다. "자녀는 주변 사람에게 어떻게 됐나?" 그가 고개를 떨궜습니다.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자신이 가까운 사람들을 함부로 대했다는 것을요. 이제 와서 후회해도 늦었습니다. 관계는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지위로 강요할 수도 없죠. 오직 태도로만 쌓을 수 있습니다. 매일매일 쌓이는 겁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오늘 가까운 사람에게 어떻게 됐습니까? 아침에 가족에게 따뜻하게 인사했습니까? 동료의 말을 끝까지 들었습니까? 고맙다는 말을 했습니까? 아니면 무심하게 지나쳤습니까? 퉁명스럽게 됐습니까? 당연하게 여겼습니까? 오늘의 태도가 내일의 관계를 만듭니다. 명심하십시오. 명함은 사라집니다. 지위도 언젠가 내려놓습니다. 돈도 결국 남의 것이 되지요. 하지만 태도는 영원히 남습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습니다. "그 사람은 이런 사람이었다" 하고 기억되지요. 당신은 어떻게 기억되고 싶습니까? 성공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품격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저는 후자를 택했습니다. 물론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실수도 많이 했지요. 가끔 화를 내기도 했고 무심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노력했습니다. 내일 아침 다짐했습니다. "오늘은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고. 가까운 사람에게 더 예바르게 대하겠다고." 그 노력이 쌓여 지금의 제가 되었습니다. 후회는 없습니다. 제 곁엔 여전히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족이 있고 오랜 동료가 있지요. 그들은 제 성공 때문에 곁에 있는게 아닙니다. 제 태도 때문에 남아 있는 겁니다. 그게 제일 진짜 자산입니다.
당신에게 부탁합니다. 오늘부터 시작하십시오. 거창한 결심은 필요 없습니다. 작은 실천이면 충분합니다. 오늘 저녁 집에 돌아가면은 가족에게 이렇게 말하십시오. "오늘도 고생 많았어요." 단 한 마디면 됩니다. 진심을 담아 말하십시오. 눈을 마주치고 말하십시오. 그 한 마디가 관계를 바꿉니다. 내일 아침엔 "좋은 아침입니다." 하고 인사하십시오. 회사에 가서는 동료에게 미소를 지으십시오. 회의 중엔 끝까지 들으십시오. 매일 반복하십시오. 한 달 후 당신의 관계가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1년 후 당신의 인생이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10년 후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때 작은 변화를 시작하길 잘했다."
예의는 거창한 철학이 아닙니다. 매일 실천하는 작은 습관입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따뜻하게 대하는 거. 그게 전부입니다. 하지만 그 전부가 인생을 만듭니다. 제가 평생 배운 교훈을 마지막으로 전합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기억됩니까? 성과로 기억되지 않습니다. 태도로 기억되지요. 지위로 존경받지 않습니다. 품격으로 존경받습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품격으로 기억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것이 당신의 인생을 가장 고귀하게 만드는 길입니다. 오늘 저녁 한 마디를 건네십시오. 그 한 마디가 당신의 미래를 바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