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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작정 (창 25:19-34)

웨이코 한인 교회 Korean Church of Waco 44:35

Transcription

[음악] 다 같이 기도드리겠습니다.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 아버지,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받게 하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주간도 저희를 지켜 주셔서 은혜와 사랑 안에 거하게 하시고 오늘 아버지께 나와 예배를 통해 주님과 만날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지난 한 주간 감사하며 살지 못하고 주님을 믿는 크리스천의 모습을 보이지 못한 저희들의 삶을 이 시간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외입고에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작은 나눔을 하고 도울 수 있길 원합니다. 또한 우리의 고국을 위해 기도합니다. 남과 북 그리고 미국이 가까워지고 서로 좋은 교류를 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이곳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기억하여 주시고 방학 동안 주님을 더 많이 만나는 시간이 되길 기도합니다. 주님의 몸됨 교회를 열심히 섬겨 주시는 성도님과 집사님들에게도 주님께서 축복하여 주시고 항상 그들과 같이 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이 시간 목사님께서 주님의 말씀을 주실 때 생명의 말씀으로 증거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며 그 말씀이 한 말씀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성도들의 마음 밭에 새겨져 세상에 세상에 나아가 말씀으로 무기 삼아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축복과 은혜에 감사함으로 헌금을 합니다. 저희의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나옴을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물질의 일부를 드립니다. 주님께서 기뻐 받아 주시고 그 헌금이 주님을 위해서 쓰이길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오늘 저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구약 성경 창세기 25장 말씀입니다. 구약 성경 창세기 25장 19절부터 34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창세기 25장 19절부터 34절까지의 말씀 제가 읽습니다.

다음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족보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이삭은 40살 때에 리브가와 결혼하였다. 리브가는 바나람의 사람 아람 사람인의 딸이며 아람 사람인 라반의 누이이다. 이삭은 자기 아내가 임신하지 못함으로 아내가 아이를 가지게 해 달라고 주님께 기도하였다. 주님께서 이삭의 기도를 들어 주시니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게 되었다. 그런데 리브가는 쌍둥이를 배웠는데 그 둘이 태 안에서 서로 싸웠다. 그래서 리브가는 이렇게 괴로워서야 내가 어떻게 견디겠는가 하면서 이 일을 알아보려고 주님께로 나아갔다. 주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두 민족이 너의 태 안에 들어 있다. 너의 태 안에서 두 백성이 나눌 것이다. 한 백성이 다른 백성보다 강할 것이다.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 다리 차서 몸을 풀 때가 되었다. 태 안에는 쌍둥이가 들어 있었다. 먼저 나온 아이는 살결이 붉은 데다가 온몸이 털투성이어서 이름을 에서라고 하였다. 이어서 이어서 동생이 나오는데 그의 손이 에서의 팔 뒤꿈치를 잡고 있어서 그 이름을 야곱이라고 하였다. 리브가가 이 쌍둥이를 낳았을 때에 이삭의 나이는 예순 살이었다. 두 아이가 자라. 에서는 날센 사냥꾼이 되어서 들에서 살고 야곱은 성격이 차분한 사람이 되어서 주로 집에서 살았다. 이삭은 에서가 사냥해 온 고기에 맛을 들이더니 에서를 사랑하였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다. 한번은 야곱이 죽을 끓이고 있는데 에서가 허기진 채 들에서 돌아와서 야곱에게 말하였다. 그 붉은 죽을 좀 빨리 먹자. 배가 고파 죽겠다. 에서가 붉은 죽을 먹고 싶어 하였다고 해서를 에돔이라고 한다. 야곱이 대답하였다. 형은 먼저 형이 가진 마다들의 권리를 나에게 파시오. 말하였다. 이것 봐라. 나는 지금 죽을 지경이다. 지금 나에게 마다들의 권리가 뭐 그리 대단한 거냐? 야곱이 말하였다. 나에게 맹세부터 하시오. 그러자 에서가 야곱에게 마다들의 권리를 판다고 맹세하였다. 야곱이 빵과 팥죽 얼마를 에서에게 주니 에서가 먹고 마시고 일어나서 나갔다. 에서는 이와 같이 마다들의 권리를 가볍게 여겼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성령 강림 주일에 저희들 저희들 안에 계시는 하나님 우리 안에서 우리의 지혜와 능력이 되시고 우리 구원의 반석이 되시는 그분을 함께 경배하고 감사드립니다. 오늘 주의 앞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또한 예배하러 나온 주의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복음의 메시지로 또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해 주시고 그 믿음을 세워 주시며 강건케 해 주시옵소서. 우리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주님께서는 말씀의 진리 위에 설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붙잡아 주시고 또 우리의 마음이 우리 자신의 관심에만 집중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눈을 들어서 하나님의 뜻을 쫓고 또한 그것을 바라보는 자들 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오늘부터 야곱의 인생을 함께 살펴보게 될 것인데 주님께서는 그 인생을 통해서 일하시는 것들을 저희들에게 드러내셔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에 함께 참여하고 또한 경배하는 시간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예. 오늘부터 산상수훈 설교를 다 끝내고 나서 야곱의 인생을 여름 내내 살펴보려고 합니다. 야곱은 12지파의 시조가 된 12 형제의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름을 야곱이라고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고 해라. 그렇게 이름을 바꾸어 주신 사람인데요. 그래서 야곱의 이름인 이스라엘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나라 이스라엘이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얼른 생각해 봐도 이스라엘 나라의 12지파의 시조가 된 사람이고 또한 그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이름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이 야곱이라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 백성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죠.

어 그래서 이 여름 동안에 저희들이 야곱의 인생 가운데 행하시는 하나님, 야곱을 이스라엘의 시조로 만드시고 자기 계획의 가장 중요한 지점에 사용하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보통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의 생애 전체, 그 한 사람의 생애 전체를 살펴본다고 할 때 몇 가지 유익이 있습니다. 제가 이제 여러분과 야곱의 얘기를 쭉 하면서 그런 유익들을 누려 가시기를 바라는데요.

첫 번째 유익은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다루시는 것을 훨씬 더 큰 시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냥 오늘 하루 또는 뭐 월해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 인생 전체를 놓고 하나님께서 행하고 계시는 것들을 볼 수가 있어요.

그리고 그 두 번째 유익은 그 전체의 생애를 저희들이 살펴보면서 그 안에서 그 사람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어떻게 다루어지고 성장해 가고 또 하나님의 목적에 알맞게 다듬어지는지를 볼 수가 있게 됩니다. 처음에는 굉장히 엉망으로 시작했는데 어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훌륭한 믿음의 사람으로 건축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보고 아 우리도 어떤 희망을 가지게 되죠. 나도 지금 부족하고 연약하고 또 믿음이 흔들흔들하지만 주님께서 내 삶 가운데에 여전히 은혜를 베푸시고 또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이렇게 될 수가 있겠구나. 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그렇게 될 수 있겠구나 하는 그런 희망을 가질 수가 있게 됩니다.

세 번째 유익은 그런 어떤 시야를 가지게 되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큰 어떤 그림으로 볼 수가 있게 되면 낙심하지 않고 기다릴 수가 있습니다. 그렇죠? 오늘 하루를 보면 답답하기 없고 또 단기간으로 생각하면 이걸 어떻게 견디나 그런 생각을 하지만 오늘 야곱과 같은 사람들의 인생 전체를 놓고 우리가 한 시야로 보게 될 때 아 이게 지나가는 것이구나. 아, 이 시험도 하나님께서 통과하고 나면은 또 하나님께서 주시는 또 은혜가 있구나 하는 것을 보고 혹시 자기 자신에 대해서 또는 내 가족이나 이웃에 대해서 조급한 마음을 가졌던 분들도 참을 수 있게 돼요. 하나님이 행하실 거야.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를 이 어려운 때를 통과해서 성숙한 데까지 나아가게 하실 거야는 그런 여유가 우리 가운데 생겨요. 다급하지가 않아요. 그런 그 유익함이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살펴볼 때 저희들에게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어떤 성경에 있는 인물들의 삶을 살펴볼 때 주의할 점들도 있습니다. 음. 보통 우리가 어떤 사람의 뭐 전기를 읽는다 그럴 때 그 사람의 어떤 좋은 점을 본받자 그렇게 읽기 쉽잖아요. 금면한 사람을 보면 우리가 금면해 금면해져야 되겠다. 그러고 믿음이 강한 사람을 보면 저 사람처럼 믿음이 강해야 되겠다. 뭐 이렇게 생각하는데 아 물론 보도 도덕적인 교훈이 있습니다. 물론 사람의 어떤 좋은 점들을 보고 그것을 닮을 순 있어요. 그러나 그것이 가장 먼저 우리가 취해야 될 가르침은 아닙니다. 우리가 한 사람의 인생을 살펴보는 이유는 그 사람을 배우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 위에서 행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그 사람을 인도하고 계시는가? 하나님이 어떻게 그를 다루고 계시는가? 그 하나님을 보고 싶은 것이지 사실은 그 사람의 어떤 특지를 담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어 야곱의 인생을 저희들이 시작해서 여름 내내 이제 볼 텐데 여러분이 질문하셔야 될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이 본문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 계신가? 그는 이 사람을 어떻게 다루고 계시는가? 그것을 먼저 보시고 두 번째는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그렇게 행하셨다면 나에게는 어떻게 하고 계시는가? 그것을 질문하시면 되겠습니다. 그 두 가지를 질문하시는 거예요. 여름 방학 내내.

오늘 이 본문은 사실은 야곱에 대한 본문이라기보다는 야곱의 부모에 대한 본문입니다. 물론 뒤에 뒷부분은 야곱에 대한 부분들도 조금 나오긴 하지만 야곱의 출생 이전에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그의 부모 이삭과 리브가를 믿음으로 인도하셨는가를 다루고 있고 또 믿음에 어떻게 성장이 일어나게 됐는가를 다루고 보여주고 있는 그런 본문이죠. 여러분이 읽지는 않았지만 야곱의 어머니인 리브가는 사실 어 굉장히 특별한 과정을 거쳐서 그 남편 이삭을 만났습니다. 아브라함이 할아버지잖아요. 할아버지 아브라함 그다음에 이삭 그리고 야곱 이렇게 돼 있는데 아브라함이 이삭의 배필을 찾으려고 자기의 종을 보냅니다. 자기 고향으로 종을 보냈는데 그 종도 아브라함을 따라서 믿음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디서 배필을 찾을지 알지 못하여서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하나님이 뭐 이런 이런 사람을 만나면은 제가 이 사람이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배필로 알겠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나타납니다. 자기가 기도한 대로 그대로 이루어져요. 그래서 리브가를 아이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사람이 분명하다는 확신 가운데 리브가를 데리고 옵니다. 그러니까 이삭한테 왔을 때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어요. 그 종이 분명히 말했을 거예요. 내가 기도하고 이렇게 이렇게 했더니 하나님께서 기도가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를 만나서 이런 사람을 어 나에게 보여 주셨고 그래서 데리고 왔다 그랬 그랬으니까 이 아브라함도 이삭도 아이 사람이 진짜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내 짝이구나 하고 맞았을 거란 말이죠. 그런데 그 리브가가 부림입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셨다고 해서 우리 집에 왔는데 그 사람이 부림이에요. 하나님은 아브라함 너의 씨가 바다에 모래와도 같고 하늘의 별과 같이도 많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아브라함의 안에도 부림이었고 이삭의 아내도 부림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야곱이 사랑했던 라헬도 부림이었어요. 왜 믿는 자에게 오히려 이런 어려운 일이 생기는가? 하나님은 복의 하나님이신데 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복과는 정반대의 일들이 생기는가? 그거는 우리가 야곱의 이야기를 보면은 너무나도 분명해지는 어 이유를 갖고 있죠. 두 가지를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자기의 한계를 보게 하심으로 겸손케 하시고 두 번째는 그 겸손한 가운데서 내 삶의 근원이 되시고 이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찾게 하려는 것이죠. 그게 사실 믿음의 두 가지 필수 요소예요. 사람이 믿음을 가지려면 자기 한계를 봐야 돼요. 자기 한계를 보지 않는 사람이 믿음을 가지기가 너무 어려워요. 사실은 왜냐면 자기가 할 수 있으니까. 기회가 많을 때 기도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냥 기회 중에 하나를 골라잡죠. 기회가 없을 때 기도하는 거잖아요. 자기의 능력이 출중할 때 기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내가 능력이 없으니까 기도하는 것이죠. 자기의 한계를 알고 자기가 겸손한 가운데 하나님을 구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그 두 가지 자기 한계를 아는 것과 하나님을 찾는 것 두 가지가 믿음의 필수적인 요소이죠.

지금 그런 경지에 왔어요. 어, 이거는 뭐 무슨 약을 먹을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무슨 불임 시술을 할 수도 없는 문제 아니겠습니까? 아, 그 리브가가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셨다고 이 가정에 왔는데 아, 부림이란 말이죠. 그럴 때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럴 때는 기도해야 되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죠? 그런데 기도한 사람은 리브가가 아니었습니다. 기도를 한 사람은 이삭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실 왜냐하면 리브가는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든요. 리브가는 아브라함 가정에서 큰 사람이 아닙니다. 리브가는 먼 아브라함의 고향에서 온 사람이에요. 우상을 섬기던 자기 아버지의 집에서 컸던 사람이에요. 그래서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리브가가 아닌 이삭이 기도하는 거예요. 근데 여러분, 경지에 닥쳤을 때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거잖아요. 아, 이삭은 리브가가 부림인 것을 보고 누구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하필이면 이런 여자가 들어와 갖고 우리 집에 부림이 대가 끊기게 되는 그런 일이 벌어지다니 하고 리브가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또는 이 결혼을 어레인지한 자기 아버지를 원망하지도 않죠. 우리 그런 경우들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여러분 시집 갔는데 며느리가 새로운 사람이 우리 집안에 와서 이런 화가 임했다고 그런 얘기들 하잖아요. 복덩이라고 할 망정 못 할 망정 이상한 여자가 들어와 갖고 우리 집에 이런 불란이 일어난다고 뭐 그런 소리를 하지 않습니까? 그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얘기할 수 있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은 결코 그렇게 얘기해서는 안 되죠. 왜 그렇습니까?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네가 와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다. 네가 이런 상태로 우리 집에 왔어도 집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고 하나님 섬기는 사람이기 때문에 너도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야죠. 그래서 기도하는 거예요. 내게 복 주는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 복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경지에 통해서 기도하게 하시는 것이죠. 아 이삭이 기도하는데 여러분 얼마나 오래 기도했을까요? 성경은 이삭이 40살에 리브가를 만났다고 하고 어 우리가 읽은 본문 끝에쯤에 60살에 이삭을 낳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20년을 기도한 것입니다. 20년을 기도했다. 저는요. 우리 여성 성도들 중에는 그렇게 오랫동안 한 가지 기도 제목을 갖고 기도하는 사람은 봤지만 남자들은 잘 못 본 거 같습니다. 남자들은 참을성이 굉장히 짧아요. 그래서 기도하다 금방금방 포기합니다. 그런데 이삭이 20년 동안 기도했다고 합니다. 자기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사실은 자기 아내를 위해서 기도했기 때문에 20년 동안 기도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20년 동안 기도한다. 해가 가면 갈수록 믿음이 적어지는 거 아니에요? 첫 말씀대로 아 기도한 대로 되지 않아요. 그 뭐 2, 3년 더 기다려 보자 하고 2, 3년 기다려 보지만 5년 지나고 10년 지나면 어떻게 됩니까? 이 기도 하나님께서 들으시나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이 리브가는 당연히 그런 생각을 더 하게 됐겠죠. 뭐 하나님 섬기는 거 알겠는데 당신이 섬기는 하나님은 별로 당신의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는 것 같아.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겠습니까? 시간이 가면 갈수록 기도를 붙들기도 힘들고 그 믿음을 붙들기도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필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왜냐면 기회는 그만큼 적어지기 때문이죠. 제가 아까 말씀드린 대로 기회가 많을 때는 기도할 필요가 없지만 기회가 적으면 기회가 적으면 적을수록 기도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사실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기도해야 되는데 사실 그렇게 하기는 어렵습니다. 왜 기도했어요? 근데 왜 기도했을까? 자기 아버지를 보고 배웠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잖아요.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겠다고 했는데 오랫동안 기다렸는데도 아들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한 10년쯤 지나고 나서 혹시 사라가 아니고 하가를 통해서 주시려는 건가? 그리고 하가를 들여보내요. 사라가. 아 그렇게 해서 이스마엘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그거 아니다. 이렇게 말씀하세요. 이삭도 봤죠. 그래서 한 10년쯤 기도하다가 하나님께서 들어 주시지 않는데 거기서 딴짓을 하지 않아요. 하나님이 듣고 계신다. 그렇게 믿는 거예요. 내가 우리 아버지 케이스 봐서 아는데 이거 여기서 딴짓하면 안 된다. 계속 기도해야 된다. 그러고 더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것을 이미 받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우리가 왜 성경 읽습니까? 이 성경에 보면 믿음으로 잘 가다가 중간에 포기하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실수하기도 하는데 그거 보고서 우리가 아 그렇지 그때 더 기도해야 되는 것이지 하고 그거 넘어가려고 성경 보는 거 아니에요? 하나님이 조금만 더 기다리면은 들어 주셨을 텐데 조금만 더 기다리면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되어서 열매가 맺쳤을 텐데 지금 포기해서는 안 되지. 그 하나님 보는 거예요. 하나님의 때를 모르니까 조급한 것이지만 남의 일생을 보면서 아 그때 조금 더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열매 맺게 하실 거야. 그래서 아마도 이삭이 20년 동안 기도하지 않았나 그렇게 저는 생각합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무려 25년이 지난 후에야 이삭을 낳았습니다. 이삭이 그거 20년 기다리자. 그러고서는 기도하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되기까지 내가 하나님 앞에 마음을 낮추고 주님의 일하심을 기다리라 하는 것이 믿음이죠. 여러분, 고난은요. 우리를 하나님 바라보게 만듭니다. 어려울 때에 딴짓하지 마시고 하나님 바라보세요. 주님이 정하신 때가 되면 이 문을 여실 것이고 주님이 정하신 때가 되면 태의 문을 여셔서 열매 맺게 하실 것이다. 그 믿음을 가지세요. 우리 손의 수고는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열지 않으시면 문은 열리지 않는 것이죠. 그때까지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도를 20년 동안 했더니 드디어 기도가 이루어져서 아이를 가지게 됐습니다. 기가 막힌 일이죠. 그래서 누가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리브가입니다. 와 진짜 애가 나오는구나. 진짜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는구나. 그것을 리브가 알게 됐어요. 여러분 가운데 친한 사람, 믿음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 기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포기하면 그 사람도 믿음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릴 수가 있기 때문이죠. 신자인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를 기다리면서 신실하게 기도해야 될 필요가 있어요. 왜냐하면 그때가 돼서 하나님이 그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을 보고 어떤 사람은 돌아오거든요. 와,네 하나님이 진짜 살아 계신 게 맞나 보다. 그리고 하나님을 하나님의 일하심을 그때 봐요. 그게 믿음에 접촉되는 순간이란 말이죠. 그걸 위해서 신자들은 그걸 위해서라도 신자들은 사실은 진지하게 기도하고 근질이게 기도하는 것이 맞습니다. 특별히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때를 저희들에게 주시기 때문이죠. 리브가는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로 나오게 됐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죠. 하나님께서는 그 경지를 통해서 믿음을 잘하게도 하십니다. 이삭의 기도로 임신이 됐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한 거예요. 그래서 믿음이 생겼어요. 아직 걸음마 믿음입니다. 그렇죠? 그러나 여러분 믿음이 아무리 작다 할지라도 그게 겨자씨만한 믿음이라 할지라도 그 믿음이 일단 우리 마음 가운데에 시작되면은 엄청난 변화가 생깁니다. 믿음 우습게 봐서는 안 돼요. 겨자씨만한 믿음만 들어와도 엄청난 변화가 생겨요. 쌍둥이가 태우고 있어요. 아니 이게 웬 일이죠. 아니 애를 임신했다고 좋아했는데 쌍둥이가 안에서 싸운단 말이죠. 저는 남자라서 한 번도 경험한 적은 없습니다. 사실 우리 임신하고 애를 낳으신 낳아 보신 분들은 이 뱃속에서 애가 발로 이렇게 쿡 찰 때 그때 굉장히 뿌듯하다고 해요. 저도 만져봐서 알긴 하지만 실제로 경험은 못 해 봤기 때문에 아 얘가 안에서 이렇게 발로 이렇게 차면은 아 이게 태동이 느껴진다고 되게 좋아하잖아요. 근데 엄마를 차는게 아니고 제 동생이나 형을 차면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아, 이 녀석들이 나오기도 전부터 더 싸우기 시작하네. 그게 얼마나 심했는지 오늘 본문 22절에서 리브가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본문 22절을 사실 히브리어로 굉장히 번역하기가 어 난해한 그런 구절인데 한글 성경에서 이렇게 얘기했어요. 이렇게 괴로워서야 내가 어떻게 견디겠는가? 영어 성경 중에는 why should live 이렇게 번역하기도 합니다. 도대체 살아서 뭐 할까? 너무 이상한 얘기죠. 아니 그렇게 임신을 원했던 사람이 아이가 속에서 막 싸우고 있으니까 이제는 죽어 버리고 싶어. 뭐 그런 생각을 한다는 거예요. 이 아들 놈들 때문에 죽어 버리고 싶다. 이제 그런 얘기죠. 거기까지는 똑같습니다. 그 믿음이 있는 사람이나 믿음이 없는 사람이나 거기까지는 똑같아요. 이놈들 때문에 내가 죽어 버려야지. 뭐 그런 마음이 든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다음을 보세요. 22절 하면서 그렇게 말하면서 이 일을 알아보려고 주님께로 나갔다. 보통 그렇게 괴로운 일이 생기면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게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랬거나 또는 아이 우리 남편 그렇게 못된 못된 성질을 가지더니 애새끼도 똑같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말들을 막해요. 누군가에게 탓을 하는 것이죠. 내가 지금 뱃속에서 아이들이 싸우고 있는데 이것은 뭔가 누구의 잘못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 그런데 리브가는 하나님께 나왔습니다. 하나님 이거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그게 믿음이 갖고 온 변화예요? 그게 별거 아닌 것 같은 변화 같이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엄청난 변화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과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라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다른 두 가지의 것이기 때문이죠. 당장의 고통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기도하면은 마치 내 남편이 기도해서 내가 임신한 것처럼 내가 기도하면은 이 쌍둥이들이 싸우는 것을 말려 주시려나 평화롭게 해 주시려나 하는 기대 갖고 나왔겠죠. 근데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그렇게 역사하시지를 않으세요. 리브가는 자기 뱃속이 편안해지기를 원했겠지만 하나님께서 이번에 의도하신 것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리브가한테 내 뜻을 알려주마 그러고 경륜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것이 23절 맨 끝에 있는 이 말씀이죠. 태중에 두 아이가 있는데 두 민족이 될 것이고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게 될 것이다. 야곱이 에서를 다스리고 에서가 야곱을 섬기게 될 것이다. 그것입니다. 내가 택한 자는 야곱이다. 그런 얘기입니다. 그것은 기대하지 않은 일입니다. 하나님 제가 그런 거를 원한 게 아니고 제 뱃속을 좀 어떻게 평안케 해 달라고요. 근데 하나님께서는 거기에는 별 관심이 없으신 것 같으세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한테 믿음 주실 때 그저 자기 중심적인 그런 신앙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 믿음이 자라기를 원하세요. 근데 여러분 믿음이 자랄 때 본질적인 요소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거예요. 당장 다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리브가도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이게 도대체 무슨 말씀인가 했을 거예요. 그러나 마음속에는 간직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쉬워져요. 여러분, 그런 경험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 생판 모르는 어떤 곳을 찾아가는 거예요. 가는데 어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냐? 그 목적지에 딱 도착해 보니까 뭐야 이거 15분밖에 안 걸렸네. 그 나중에 다시 그 도로를 오는데 이번에는 훨씬 더 쉽게 생각돼요. 뭐 그렇게 시간이 긴 거 같지도 않고. 왜 그렇습니까?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있고 큰 그림이 이제 그려지기 때문이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가려고 하면 막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계산하고 여기가 맞나 저기가 맞나 두리번거리고 막 분주해지고 하다 보니까 이게 시간이 너무너무 오래 걸리는 거 같은 거예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바로 그런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으면 내 삶이 어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런 곳을 갈 때에도 머릿속에 지도가 있는 거하고 비슷한 거예요. 그래서 어 이거 성경에서 본 상황 같다. 이거 예전에 우리 아버지가 경험했던 상황 같다. 우리 아브라함이 경험했던 상황 같다. 여기서 너무 마음 왔다 갔다 하지 말고 내가 하나님 앞에 잠잠하게 무릎 꿇고 지금 나아갈 때가 보다. 그래서 훨씬 더 쉽게 이 길을 지나갈 수가 있어요. 그게 믿음의 성장이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면 고난도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고 그래서 그 고난이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이 고난을 통해서 뭔가 하실 일이 있다. 그래서 지나갈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그것 그것이 너무 좌절스럽지 않게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다. 그 고난을 지나갈 수가 있는 것이죠. 리브가가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그냥 기도하면은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신다. 그 믿음에서 그치지 않고 내 뜻을 이해해라. 그리고 나와 함께 일하자 하는 믿음으로 주님께서 끌어당기고 계시는 것이죠. 그것도 고난을 통해서 왔습니다. 왜 내 아이가 싸우고 있는가?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나아가서 물었어요. 하나님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의 응답을 주신 것이 아니고 내 뜻을 알려주고 그 뜻을 알려 주셨습니다. 리브가가 살 수 있게 만드신 것이죠. 리브가는 이 계시의 말씀을 받고 아이 녀석들이 복중해서 싸우고 앞으로도 싸우겠구나 그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야곱하고 에서가 막 싸울 때 야곱이 엉뚱한 짓 할 때 버틸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뜻이 있다.

이 이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의 길이 세상의 길과는 굉장히 다르다는 것이 나타납니다. 주님은 오늘 이 말씀 끝에 야곱이 한 이 일들을 아주 상징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야곱이 에서에게 장자권을 뺏어가는 장면이죠. 그것만 봐도 도대체 왜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택하셨는가 하는 그런 질문이 생깁니다. 그렇죠, 여러분? 하나님이 좀 좋은 사람을 택하셔서 이스라엘의 시조로 삼으시지 왜 이런 사기꾼 같은 사람을 택하셨는가? 아, 그것은 그가 부서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들 중에 다섯 아이가 있는데 그중에 한 아이가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면 여러분이 다섯 아이한테 사랑을 똑같이 보여 주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죠. 다섯 아이 중에 한 아이가 장애를 갖고 태어나면 부모의 이 에너지의 한 80% 90%는 그 아이한테 가게 돼 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그래도 자기 앞길 잘 챙기면서 살아가겠지만 이 아이는 내가 없이는 이 세상에서 제대로 살지 못하겠구나 하는 그런 걱정, 그런 두려움 그리고 애잔한 마음 때문에 그 아이한테 사랑을 쏟아붓게 돼 있는 것이죠. 하나님이 야곱을 선택하셨을 때도 똑같습니다. 내가 없이는 이 녀석이 세상에서 진짜 엉망진창 짓 하면서 사기꾼으로 살다가 망하겠구나. 그래서 선택하는 거예요.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을 때 우리가 뭐가 잘라서 택한 것이 아니고 내가 없으면 이 녀석 헤매고 엉망돼서 인생 종치겠구나. 그것을 하나님께서 보시기 때문에 부서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낫고 미천한 자를 이 세상에 존귀하고 잘난 사람들보다 더 관심 있게 보시고 사랑을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이죠. 그것이 하나님의 길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변덕을 부리시는 것이 아닌가? 왜 형한테 축복을 주시지 않고 둘째한테 축복을 주시는가 이렇게 생각하시겠지만 하나님이 언제나 이 순서를 바꾸시는 것은 아니죠. 하나님이 순서를 바꾸실 때는 찾아가 하나님 없이는 너무 부서진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세상의 길과 하나님의 길이 근본적으로 다른 지점이죠. 바로 그 하나님의 마음 때문에 우리한테도 소망이 있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이유는 우리가 부서진 인생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야곱과 같이 하나님 없이는 사기나 치면서 다른 사람의 발목이나 잡으면서 사는 사람들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또는 우리가 너무 교만해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살이 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별히 택하시는 것입니다. 그것도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에 창세 전부터 택하셨다. 그렇게 에베소서에서 말씀하십니다. 그게 하나님의 작정이에요. 내 새끼 한 녀석 장애를 갖고 태어났는데 내가 이 녀석 잘 돌봐서 사람 만들고 그리고 자기 앞길 잘 가도록 했어야지. 그래서 주님께서는 창세 전에 여러분들을 향해서 작정하신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여기 앉아 계신 거예요. 그 작정하신 마음을 알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세상에 잘난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세상에 가장 미천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죠. 그 마음을 이해하니까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는 우리도 똑같이 교육 잘 받은 사람 아 또 잘 비헤비어하는 사람 또는 성격이 좋은 사람 그 사람들을 훨씬 더 좋아했지만 예수 믿고 나서는 그게 완전히 뒤집히지는 않을지라도 돈이 없는 사람 그냥 만나면은 나한테 요구만 많이 생기는 사람 또는 내가 도와줘도 끝이 없는 것 같이 보이는 사람 그 사람을 향해서도 긍휼한 마음을 품게 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마음이죠.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이 그 마음이기 때문이죠. 그것이 야곱 안에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품은 한 분이 그 부서지고 소망 없는 사람들에게 오셨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는 여러분이 고통 가운데 계실 때 또는 여러분이 믿음 없이 고통을 통과하고 있을 때 여러분을 위해서 수십년간 기도하신 여러분의 친신랑이십니다. 그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셔서 자기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심으로 여러분이 인생에서 만나는 여러 가지 스트레스와 고난들을 훨씬 더 담대하게 뚫고 나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뜻을 여러분에게 계시하신 분이시죠. 그리고 그분은 우리가 미천하고 하나님의 뜻에 거역한 부서진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를 그 죄의 권세로부터 그 부서짐의 과정으로부터 이끌어내신 분이시죠. 그 예수께서 야곱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거예요. 내가 너희를 향해서 작정한 마음이 있다. 그거는요. 여러분이 불순종한다고 해서 또는 여러분이 발버둥친다고 해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작정하셨기 때문에 내가 너를 내 자녀로 만들고 내 백성으로 만들고 내 제사장과 같은 사람으로 만들겠다고 작정하셨기 때문에 그 작정은 변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일이 그것을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그게 이 야곱 안에서 나타났어요. 오늘 이 야곱을 보고 계시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도 그렇게 작정하심을 작정하셨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작정이 없었으면 여기 앉아 있을 수가 없는 거예요. 하시라. 누군가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도록 그 믿음의 사건을 보여 주셨고 여러분에게 여러 가지 고난과 어려움들을 통해서 자기의 한계를 보고 하나님을 찾게끔 하셨고 우리가 진짜 우리 자신밖에 모를 때 하나님께서 우리 눈을 열어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를 알게 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동역자 만드신 것 아니십니까? 그 하나님이 오늘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 하나님을 믿으시고 그 하나님의 작정을 귀한 것으로 여러분이 아멘으로 받으시고 그 하나님이 여러분을 인도하시는 것을 세밀하게 분별하시면서 그에게 나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이 낫고 미천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부어 주시다니 너무나도 감사하고 또한 그 은총의 경배드립니다. 주님, 저희들은 참으로 어둡고 앞길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주님이 창세전부터 우리를 택하시고 작정하여 주심을 알고 감사드립니다. 야곱과 같이 부서진 인생이지만 주님께서 들어오셔서 회복시켜 주시고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 요긴한 사람들로 그리고 하나님 손에 귀한 도구로 사용되기를 소원하오니 우리 인생을 붙드시고 다듬어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주의 뜻을 쫓아서 행하고자 하는 주 백성들 가운데에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주의 모든 가정들 위에 이제와 영원토록 함께 계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