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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부처님은 왜 사라졌나?

너진똑 NJT BOOK31:24

Transcription

이번 편은 2편입니다. 2편만 보셔도 괜찮지만, 정말 흥미롭고 좋은 내용이기 때문에 1편까지 다 보셔도 후회가 없으실 겁니다.

2편은 원래,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더 명쾌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내용을 완전히 새로 썼습니다. 저는 최치원을 애써 ‘살려놓고 다시 죽이는’ 찝찝한 마음이지만요. 수수께끼를 전하기보다는… 일단, 보는 사람들 납득부터 시켜야겠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상을 시작하기에 앞서 경고를 드리겠습니다. 우선, 지금부터 하는 모든 얘기는 저의 해석에 불과합니다. 그렇기에, 반드시 걸러 들으셔야 합니다. 믿을지 말지, 어느 정도 믿을지. 판단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하지만, 저는 설명과 증명을 함께 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부득이하게도, 제가 도달한 결론을 확신을 담아 두괄식으로 빠르게 표현하려 합니다. 이 점,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먼저, 제가 소개 드릴 최치원의 글. “지증대사 비석 글”은요. 한자로 읽으면 한 문장이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서 완전히 정반대로 읽힙니다. 어느 정도냐? 정치적 맥락으로 보냐, 사회적 맥락으로 보냐.. 하는 개개인의 해석 차이 정도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현대로 치면,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는 정도의 양극단으로 나뉘어서 읽히며 스토리도, 교훈도, 완전히 정반대로 읽히게 됩니다. 한쪽 해석을 확신하는 사람은 정반대의 해석을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들 만큼 극단적으로 나뉩니다.

양극의 해석에는 모두 양극의 인물들이 매혹될 만한 미끼가 서로의 입맛에 맞게 나열되어 있으며 어디에서 출발하든 열심히 읽고, 생각하고, 행동하기를 반복하면 출발지는 달라도, 그 끝에는 ‘진리’라고 불러도 아깝지 않을 정도의 깨달음이 있지요. 그 깨달음을 각각 알게 되면 비로소. 양극의 해석으로는 보이지 않던 내용. 즉, 이를 하나로 아우르는 3번째 해석이 보입니다. 이 3번째 해석에서는, 이전에는 이해가 가지 않고 버려야만 했던 모든 문장들이 온전히 사용됩니다. 물론, 당연히… 개개인에 따라서는 해석이 칼로 자른 것처럼 딱 딱 나뉘진 않습니다. 이 또한, 설명을 위한 설명임을 이해해 주셨으면합니다.

그다음, 우선 이 2줄을 먼저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1. “원효대사 해골물”

2.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1번 : 인간은 정말로,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며.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그건 아니지…" 아니라고요? 네, 아니기도 합니다. 방금 제 말은 전달에 한계가 있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세상만사 대체로 이런 경향이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좋은 글’도요. 개개인이 얼마나 믿고 신뢰하느냐에 따라 아주 쉽게 “쓰레기 같은 글”로 변합니다. 때에 따라선, 객관적으로 “쓰레기 같은 글”을 두고, 개개인은 ‘좋은 글’이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글도,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쓰레기라고 생각하면 쓰레기로 보일 가능성이 급격히 높아지고. 좋다고 생각하면 좋게 보일 가능성이 급격히 높아집니다. 세상 모든 가치 판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자기 자신입니다. 즉, 스스로의 마음입니다.

그다음 2번, 아무리 좋은 글을 읽고, 좋은 영상을 본다고 할지언정 잠깐 짬을 내는 정도로는…. 인간은 절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지름길은 있습니다.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세상에 쉽고 빠른 길은 없습니다. 절대로 없습니다. 귀찮고, 싫은 마음이 들더라도… ‘올바른 지름길’에 시간과 수고를 더 해야만 인간은 비로소, 바르게 변할 수 있습니다.

자, 방금 설명에 모두가 나름대로 공감하셨을 겁니다. 이 2가지를 이유로 최치원은 “두 가지 갈래로 나뉘었다가 하나로 합쳐지는 방식” 을 택했습니다. 최치원의 글을 읽는 사람들은요. 각자의 마음에 따라, 욕심에 따라. 같은 글을 전혀 다르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시간과 수고를 더 해서, 스스로 성장하면 비로소 다른 내용을 볼 수 있었지요. 다만, 노력 없이 자신의 이해에 머무르고자 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반대로도 해석된다” 고 글자를 말해준다 한들. 그 사람이 머리로는 이해한다 해도. 그 사람의 인생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겁니다. 답안지를 들춰본다고, 성적이 오르는 게 아닌 것처럼요. 인간은 쉽게, 아니.. 쉬운 방법만 써서는 절대로 변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는 “돌에 적힌 글을 여러 가지 해석으로 읽는 법” 을 머리로만, 지식으로만 아는 사람이 될 뿐입니다.

자, 누군가는 “이 또한 개인적인 해석일 뿐이다” 라고 지적할 수 있으며, 이는 매우 합리적인 비판입니다. 그렇기에 해석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나름대로 말해보겠습니다. 우선, 어떤 맥락으로 읽든. 최치원이 쓰는 글… 정말 최소한이라도 제가 언급한 “지증대사 탑비문” 에는 앞서 전한 교훈. ‘사람은 보고 싶은 대로 본다’ ‘네 마음을 먼저 의심하라’ ‘둥지를 틀지 말고, 옮겨 다녀라’ 등 일관된 메시지가 한자 5,000자 안에서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최치원은 독자가 엉뚱한 망상에 빠지지 않도록 해석이 나뉘는 지점마다 강력한 힌트를 치밀하게 심어두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최치원의 힌트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등등입니다. 이런 방식은 처음에는 알아채기 어렵지만요. 한번 의식하기 시작하면, 글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발견됩니다. 마치, 독자에게 ‘다시 생각하라’ 고 경고하는 것처럼요.

만약, 이것이 최치원의 의도였다고 가정하면요. 글 속의 수많은 모순들이 단번에 해결됩니다. 모든 증거가 하나의 결론을 뒷받침하고 시대적 상황과도 정확히 맞아떨어지죠. 또한, 최치원은 실제로 인간을 변화시킬 힘이 있는… 깊은 글을 썼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반대로, 최치원의 의도가 아니었다고 가정하면요. 우리는 꽤 당혹스러운 결론에 도달합니다. 천 년 동안 ‘文의 신’ 으로 추앙받은 사람이 스스로 8년에 걸쳐 퇴고를 거듭했다는 글…. 이 사실은 잘못된 인용, 틀린 한자, 편협한 시각으로 가득 찬 졸작이었다는 뜻이 되니까요. 즉, 우리 조상들은 천 년 동안 실체 없는 허상을 성인으로 떠받들며 속아왔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느 쪽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어떻게 보던 간에 전자가 훨씬 설득력이 높고, 의미도 있으며. 실제로 모든 인간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만한 힘이 담겨있다는 점에서…. 전자의 결론이 훨씬 타당하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최치원의 글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둘로 나누었는가? “구체적으로”, 어떤 깨달음이 담겨져있는가? … 를 확실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징검다리가 정말 정말 많이 필요합니다. 기존 스크립트에서는, 구구절절 설명을 했었지만 지금은 모두 생략하고, 부록으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모든 내용을 전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논리가 생략될 수밖에 없다는 점. 다시 한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진 않으셔도 됩니다. 모두가 이해할 수 있게끔, 1편부터 빌드업을 해놨으니까요.

저번 편의 설명을 이어가 보겠습니다. 제가 저번 애니메이션으로 보여드렸던 “지증대사 비석 글” 에는요. 총 12가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12이야기는 또 절반으로 나뉩니다. “기이한” 이야기 6가지와, “올바른” 이야기 6가지로 나뉘죠. 지난번 저는 의도적으로 “기이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는데요. 기억나시죠? 그래요. “기이한” 이야기는 겉으로 보면 마치… 기이한 도술, 신비한 기적을 얘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요. 실제로는 그 안에, 삶에서 실천해야 할 행동 지침과 지혜가 함께 담겨져 있구나~ 라는 걸 확인 했었습니다. 그래요. 다시 한번 확인해 볼까요? 이렇게 각각의 행동 지침과 함께…. 교훈과 의도를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 파트는 그냥 넘어가셔도 괜찮고 화면을 멈춰서 직접 확인하셔도 좋습니다.

네, 보신 분들은 아시겠죠. ‘겉모습에 속지 않아야 한다’ 는 최치원의 반복되는 경고를 받아들이고 나면요. “기적” 과 “신비” 라는 겉모습 뒤에 숨겨둔 ‘지혜’ 를 확실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지혜는요. 뭐니 뭐니 해도 윗 “풍” 입니다. 윗 “풍” 이 뭐였죠?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모두를 위해 부는 불완전한 바람! 그게 바로 윗 풍이었습니다. 마지막, 여섯 번째 “기이한” 이야기에서는 윗 풍의 필요성과 역할을 확실히 보여주는데요. 이 또한, 직접 확인해 보시지요.

“진리는 어디에도 담기지 않는다” 며 제자를 받지 않고, 속세를 피하기만 하는 지증대사에게 한 나무꾼 늙은이가 길을 막아서며 말했다. 나무꾼 : 먼저 깨달은 자가, 뒤에 깨달을 자를 일깨워 주는 법인데 어찌 (윗 풍으로) 불완전함을 드러내는 일을 피하기만 하십니까?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나무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에, 대사는 부끄러워하며 깨달아 찾아오는 제자들을 막지 않았다.

“기이한” 이야기 6가지를 다 읽고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라면요. 그다음에 이어서 오는 “올바른” 이야기 6가지에서도 자연스럽게 비슷한 방식으로, 비슷한 교훈을 찾을 겁니다. 자, 올바른 이야기 6가지를 짧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방식은 “기이한”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글은 꼼꼼히 안 읽으셔도 됩니다. 하나씩 훑어만 보시죠. 첫 번째 이야기에서 사람들은… 현명한 선택의 중요성을 배웁니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 사람들은…. 윗 풍과 은혜의 중요성을 배웁니다. 세 번째에서는 타인을 위해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교훈을…. 네! 아무튼… 큰 흐름은 비슷하지요?

그런데, “올바른”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강조되는 하이라이트는요. 뭐니 뭐니 해도, 5번째 이야기입니다. 지난 영상에서도 소개 드렸던 ‘달이 뜬 연못에서의 대화’ 죠. 여기엔, 윗 풍의 진리가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현명한 사람이 윗 풍을 열심히 불어서~ 굳이 모두가 힘들게 마음 수련을 하지 않아도… 굳이 힘들게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아도… 연못에 달이 그대로 비춰진다면, 사람들 발아래에도 달이 뜬다면, 그만큼 아름다운 세상이 있겠습니까? 즉, 현명한 사람이 대중들에게 이래라저래라. 딱딱 정답만 알려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온 백성이 진리를 실천하는 세상만큼 이상적인 세상은 없겠지요. 자, 이건… 본문에서도 나오는 것처럼 부처님의 ‘염화미소’ 일화에도 똑같이 담긴 진리입니다. 먼 옛날~ 부처님에게 ‘모두를 위한, 가장 중요한 진리’ 를 알려달라고 묻자. 부처님은 말없이, 하늘에서 받은 연꽃을 들어 수많은 사람에게 보여주었다고 하죠. 이를 깨달은 한 제자만이 홀로, 미소를 지었다… ...는 “이야기” 입니다. 이 “이야기” 에도 마찬가지죠. 윗 “풍” 이 중생을 위해 해야 하는 역할. 윗 “풍” 의 아름다움이 분명하게 담겨있습니다.

지금부터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제가, 최치원의 글을 어떻게 읽었는지를 밝히겠습니다. 저는 처음… ‘겉모습에 속지 않아야 한다’ 는 최치원의 경고를 교훈 삼아서. “기이한 이야기 6가지” 에 숨겨둔 보물을 찾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때… “기적” 이라는 겉모습, “신비” 라는 틀에 담아낸 ‘풍’ 의 자상함과 아름다움을 깨달았죠. 저는, 깨달음을 전해준 지증대사에게 크게 감화되었습니다. 당연히, 저는 이후에 진행되는 “올바른 이야기 6가지”에서도 똑같이 숨겨진 교훈을 읽어내려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자, 앞서 얻은 깨달음이 더욱 구체화되었습니다. 이는 “연못에 뜬 달” 파트에서 피크를 찍었죠. 저는 혼자 이 내용을 곱씹으면서.... “진리라고 말해도 아깝지 않다! 엄청난 깨달음이다!” … 라고,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날. 저는 다시 한번, 지증대사 비석 글을 읽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겉모습에 속지 않아야 한다’ 는 최치원의 경고를 교훈 삼아서. “올바른 이야기 6가지”에 숨겨둔 보물을 찾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때 비로소… “진리” 와 “올바름” 이라는 겉모습과 틀에 담긴 ‘풍’ 의 신랄함과 강인함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엊그제만 해도 ‘진리’ 라고 확신했던 것이 저의 확신이 견고해지는 그 순간부터 이미 썩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요. 저는, 엊그제의 저를 부정하게 됐습니다. 그러자, 이전에는 분명히 보이지 않던 이상한 구절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죠.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올바른” 이야기의 숨겨진 내용. 그 일부분만 따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지증대사는 검은 금색 불상으로, 어두운 저승길을 이끌게 했다”

자, 어떤가요? 여러분도 뭔가 좀 이상하지요. 금색인데 검은색이라니… 모순적인 표현입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어두운 저승길” 이란 키워드죠. 어두운 저승길…..? 확실히, 뭔가 좀 이상합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지증대사는 길이 아무리 험해도… 말이나 소의 힘을 빌리지 않았다! 말이나 소에 타지 않고, 자기 두 발로 걸었다! 는 내용이 나오는데요. 바로 뒤에 곧바로… 지증대사가 ‘인간이 메는’ 가마에 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후에는 ‘어쩔 수 없이’ 가마를 타고 다녔다 는 내용으로 이야기가 끝이 나죠. 어... 확실히 이상하죠? 읽어보면 더 이상합니다.

좋습니다. 지금부턴 쐐기를 박아봅시다. “올바른” 이야기 첫 번째는요. 공주님이 지증대사에게 땅과 절을 기부하고! 기부받은 지증대사가, 기뻐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요. 공주님은 분명히 이때.. 지증대사에게 ‘원학’ 의 주인이 되어달라고 말합니다. "지역 이름이겠죠. 그게 어때서?" 아뇨. 원학 (원숭이와 학) 은 해당 지역의 이름이 아닙니다. ‘원학의 주인’ 은요. 속세와 멀어져서,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선비! … 라는 의미의 관용어입니다. 즉, 현대말로 바꾸자면요. 공주님은 이때 분명히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십시오’ 라고 한 거예요. 그런데, 지증대사는 어떻게 반응했나요? 자기가 “물질적 주인” 이 된 것 마냥 크게 기뻐하면서 절과 계곡의 “이름”에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죠. 이것만으로는 억지라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합니다.

다시 돌아와서, 올바른 이야기 3번을 보시죠. 이 이야기는, 지증대사가 공주님의 기부를 보고 감탄하며 “왕의 딸을 본받아서, 나도 내 재산을 기부하겠다.” 고 하는 장면입니다. 글을 처음 읽을 때는 이상한 점을 찾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기부를 했다는데, 뭐 잘못이야 있겠습니까? 하지만, 날짜를 뜯어 보면 수상한 점이 보입니다. 이야기에서는 공주님의 기부와, 지증대사의 기부가 연달아서 서술되기 때문에~! 공주님이 기부를 하고 난 뒤에 곧바로 지증대사도 기부를 한 것처럼 “보입니다” 글의 날짜 표기도 미묘~하게, 서술 트릭처럼 보이는데요. 지증대사가 공주님 뒤에 곧바로 기부를 한 것처럼 착각할 수 있게끔,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확실하게 보이죠. 실제 타임라인은 이렇습니다. 그래요. 공주님과 지증대사의 기부 사이에는 무려…. 12년이라는 시간 텀이 있습니다. (!) 또한 지증대사는 땅의 기부를 결심하고 얼마 뒤에 사망을 하게 되죠. 물론... 그럴 수는 있지만요. 뭔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니, 생각하면 할수록…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의문은 증폭됩니다.

우선, 지증대사가 기부한 재산은요. 밭 500결과 장원 12곳이랍니다. 지금 우리에겐 “결” 과 “장원”이라는 표현이 생소하다 보니 굉장히 작게 느껴지시지요? 그러나 신라 말기, 밭 500 “결”의 실제 면적은요. 최~소 60만 평에서 최대 300만 평 이상입니다. 이는, 여의도가 2개, 3개가 들어가는 넓이고요. 축구장을 1,000개도 지을 수 있는 수준이죠. 그런데, 이건 밭만 얘기한 거죠. “장원”은 무엇이냐? 단순히 농장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장원은요. 한 지역의 노비, 농민, 경제, 군사력을 모두 포함한.. 즉, 중세 유럽의 “영지” 와 유사한 개념입니다. 그렇다면 장원 12개와 밭 500결은 어느 정도냐? 신라의 최상위 권력자만이 가질 수 있는 재산입니다. (왕건, 궁예처럼) 독립적인 세력을 구축해 나갈 만큼 막강한 권력입니다. 이는, 공주님이나 가질 법한 강력한 힘이고… 지금으로 치면…. 재벌 총수 수준의 재력이지요. 그렇습니다. 여기서 지증대사는 생전, 부처를 따르는 사람이라고는 상상도 못 할 만큼…! 종교인의 재산이라기에는 꺼림칙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재산을 자기 명의로 소유하고 있었다! … 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재산을 포기한 건 대단한 거 아닌가요?" 맞습니다. 하지만.. 지증대사의 “재산 남길 친척도 없으니” “길가는 나그네에게 넘길 바에” 같은 표현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지증대사는요. 자신이 죽을 때를 대비해서!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다짐한 겁니다. 연도를 봐도 확실하죠? 네, 지증대사는 정말로.. 생전 자기가 누릴 거 다 누리고 난 뒤에서야 기부를 했습니다. 그래도… 기부했으니 잘한 거죠.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공주님과 지증대사의 기부 대상과 목표가 데칼코마니처럼 대조된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네, 공주님은 분명히 ‘떠돌이 수행승들을 위해’ 장원을 기부하겠다고 밝혔지만요. 바로 뒤에서 지증대사는…. “길가는 나그네에게 줄 바에” “내 제자들에게 주겠다.” 라고 말하고 있네요..? 뿐만 아닙니다. 지증대사는 이어서, 기부의 진짜 목적을 밝히죠. 맞습니다. 쉽게 정리하자면… 대충 이렇습니다. 한 문단 안에서 이렇게 나뉘는 거죠.

자, 여러분. 공주님이라는 아주 독특한 지위와 상황을 고려하면요. 첫 번째 이야기와 세 번째 이야기의 공주님은 같은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게, 논리적이고 타당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첫 번째 이야기에서 ‘정신적 주인’이 되어달라는 공주님의 요구를 지증대사가 왜곡하는 듯한 묘사를, 확인했었죠? 그렇다면 여러분. 잘… 생각해보십시다. 상황의 유니크함, 규모의 막대함, 짧은 시간 텀. 미묘한 문장들과, 여러 정황들을 살펴봤을 때… 우리는 가장 논리적이고 타당한 진실을 직관적으로 유추할 수 있습니다. 정말 어쩌면 말이죠…. 공주님의 기부를 지증대사가 독식해 놓고 공주님의 공적을 가로챈 것….. …..아닐까요?

좋습니다! 증거의 극히 일부분만 보셨지만… 어떤 느낌으로 글이 쓰여졌는지 감이 오시죠? 맞습니다. 대놓고 밝힐게요. 지증대사의 “기이한 이야기 6가지”에는 “기이함” 속에 ‘올바름’이 섬세하게 숨겨져 있고. 지증대사의 “올바른 이야기 6가지”에는 “올바름” 속에 ‘기이함’이 섬세하게 숨겨져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부턴 내용이 쬐끔 복잡합니다. 쉬운 설명을 했지만, 논리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여기서부터는 여러분이 직접 영상을 끊고! 앞선 내용을 반복해서 보시거나, 생각을 충분히 하신 뒤에 이어서 봐주셨으면 합니다. 잠깐, 영상을 멈출 시간을 드릴게요.

…환기가 되셨나요? 좋습니다. 앞 내용을 깊게 생각하신 분들은 아마도 이런 질문도 함께 떠올리셨을 거예요. "근데, 지증대사가 사실은 나쁜 놈이니까… 걔가 말한 진리도, 가짜라는 얘기겠구나?" …같은 질문이요. 이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지증대사가 처음 전한 진리는, 진리가 아니었냐? …..아뇨! 진리가 맞습니다. 먼저 나오는 “기이한 이야기” 에서 숨겨진 ‘올바름’ 을 발견한 사람들은요. 오히려!!! 처음엔 “올바른” 이야기에 숨겨진 내용을 발견하지 않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왜냐? 그래야만 온전히 완성되는 깨달음이 있으니까요. (숨겨진 내용을 발견하지 않았을 때 얻는) 이 깨달음은 정말로, 진리라고 불릴 만한 깨달음입니다.

하지만, 최치원은 더 나아가서 ‘진리’ 의 속성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지요. 진리는요. 액체와 같습니다. 만약, 누군가에게 마실 것을 주고 싶을 때.. 음료를 담을 그릇이나 병이 없으면 줄줄 새서 온전히 전달하기 힘들 겁니다. 하지만, 액체는 어디에 담아 두느냐에 따라 그 겉모습이 천차만별 바뀌겠죠? 이때, 마실 것을 전해 받기만 하는 사람은요. 흔히 액체의 겉모습에 속아서 “진리가 새처럼 생겼다.” “진리가 꽃처럼 생겼다.” 같은 잘못된 판단을 내리곤 합니다. 심지어는 아예, 시간이 오래오래 지나서 액체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나면 “아~ 진리는 꽃처럼 생긴 병을 의미하는구나” 같은 왜곡된 판단을 내리기도 하죠. 즉, 진리가 아니라… 진리를 담는 그릇(형식)만을 숭배하게 되는 겁니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이람….?" 지금부터는 핀포인트 예시로 딱 짚어서 말해볼게요. 최치원은, 지증대사 이야기를 쓰면서 인간들이 앞선 실수, 그릇을 진리로 착각하는 일을 반복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글을 썼습니다. 그는 (1) 표현되는 진리의 한계. 와 (2) ‘진리’ 의 유통기한. 을 염두해서 글을 썼죠. 1번은 조금 어려운 말이죠. 평소처럼, “글자의 한계”로 바꾸겠습니다. 괜찮죠? 말과 글로 전하는 “진리”의 한계. 1번의 이야기는요. 지난 영상에서, 윗 풍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바 있습니다. 자, 만약! 윗 풍을 부는 사람이 100% 현명하다면….! 그렇다면 반드시, 윗 풍은 “의도된 불완전함” 입니다. 윗 풍을 부는 사람은 반드시!!! 표현의 한계, 전달의 한계를 알고 난 뒤에…. 그 한계 안에, 진리를 담으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는, 아랫 풍에게 찔리는 것까지가 의도된 1 SET입니다. “의도된 불완전함” 은 지적을 당해야만 완성이 되니까요. 그래요. 아랫 “풍” 과 윗 “풍” 은 합쳐져야 비로소 온전한 ‘풍’ 입니다. 이건, 진리를 완성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윗 풍을 부는 사람은, 찔려도 크게 아프지 않습니다. 아랫 풍으로 찌르는 사람도, 찌를수록 해상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크게 과격해지지 않습니다. 이 과정은 마치 순풍(선풍)~ 부드러운 바람이 부는 것과 같죠. 방금 내용은, 1편에서도 설명했던 내용입니다.

그런데, 2번. 진리의 부패부터는 복잡해집니다. 멀리서 보면, 똑같아 보입니다. 윗 풍은 불고, 아랫 풍은 찌르죠. 그런데,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요? 음… 네, 자세히 보면 느낌이 다릅니다. 아랫 풍으로 찌르는 사람의 눈은, 사뭇 진지해졌고…. 윗 풍을 부는 사람의 눈은, 독선과 아집으로 흐려져 있습니다. 느낌이 오시나요? 그렇습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진리’ 를 100% 깨달은 사람이라도… 아니…! 오히려, 깨달았던 사람일수록 변질되기 쉽습니다. “높은 경지에 올랐다” 는 사실에 취하고, 사람들의 인정과 물질적인 성취에 취하는 일은, 깨달음을 아주 빠르게 부패시키니까요. 인간은, 늘 변화합니다. 쓰레기 같은 인간부터~ ‘성인” 이라 불리는 인간까지. 인간은, 늘 변화합니다. 다만, 변화가 위로 향할 때는 느리지만요. 변화가 아래를 향할 때는 터무니 없이 빠르게 추락하죠. 네, 인간의 깨달음은 고정되지 않습니다. 어떤 깨달음이든, 빠르게 추락합니다.

그러면 그냥 “부패하지 말라” 고 말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뭐 하러 이렇게 복잡하게 쓴 거죠? 네, 좋은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드릴 수 있는 답변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 하나는 바로… ‘진리’ 의 부패가 단순히 스스로 변해서 생기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니, 오히려.. 스스로 변하지 않아서 생기는 경우가 훨씬 더 많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진리’ 가 고정되어 있으면요. 둘러싼 맥락이 바뀔 때마다, ‘진리’ 도 함께 바뀝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충격적인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 땅 한반도에는요. 500년 넘게 “계집”이라는 단어가 존재했습니다. 우리는 “계집 녀” 라는 한자를 보며 과거에는 마음 수련을 많이 한 사람들도 여성 비하를 했겠구나~ 생각합니다. 이 단어가 좋은 느낌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계는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계+집은 집에 ‘계신 분’이라는 뜻이며, 그 자체로 ‘주체 높임’ 말과의 결합이었습니다. 국가 프로젝트에서도 주도적으로 쓰였던 ‘계집’이란 단어는 500년 전에도, 400년 전에도 300년, 200년… 아니.. 1880년, 아니.. 1897년까지만 해도 명백히 계집은 주체 높임말의 표현이었죠. 그러나, 고작 20년도 안 돼서…. 의미가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어떤가요? 단순하게 들리지만… 파고들면 아주 소름 끼치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제대로 다뤄보겠습니다.

자, 이런 해괴망측한 일은요. 단순히 단어 몇 개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기억하십시오. 인간은, 반드시!!! 맥락 위에서만 존재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각자의 맥락 위에서만 존재합니다. 실제 외부 세상에 있는 게 변하지 않더라도요. 맥락이 다르면. 똑같은 것도 완전히 다르게 비춰집니다. 좋습니다. 더 이해하기 쉽게끔 다른 예시도 들어볼게요. 만약, 40년 전의 한 유명 작가가 ‘글은, 손으로 직접 쓰는 게 가장 좋다’ 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가정합시다. 아마, 글짓기라는 주제에서는 수 천 년 동안 진리였다고 해도 무방하죠. 글을 쓸 때는 말로 뱉거나, 생각으로만 정리하기보다 직접 써 내려가면서 수정하는 것이 가장 좋으니까요. 그런데, 어떤가요? ‘글은, 손으로 직접 쓰는 게 가장 좋다’ 이 말은 진리인가요? 아니죠. 수 천 년 동안 변하지 않았던 진리가 지금은 고장 났습니다. "키보드는요?" "글은 손으로 쓰는 게 가장 좋아!!" 컴퓨터라는 새로운 맥락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진리가 아닙니다. 별 효용도 없는 꼰대 같은 고집일 뿐이지요. 어때요. 신기하지 않습니까? 진리는 한 글자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진리를 전하는 사람도 “뚝심” 있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변화하는 맥락 위에서 맥락과 함께 변화하지 않는다는 얘기는 곧.. 스스로 퇴화하겠다는 의미와 완전히 같습니다. 쉽게 비유하자면~ 세상은 원래 러닝머신 같은 겁니다. 움직이는 러닝머신 위에서 가만히 서 있겠다는 건 뒤로 후퇴한다는 의미와 같겠죠.

그래요. 이와 완전히 같습니다. 비석 위에 쓰인 최치원의 진리는 본래 “변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엄청나게 변하는 맥락 위에서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모든 것은 세상에 표현되는 순간,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진리조차도, 신조차도, 유통기한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글의 신은 “변할 수” 를 함께 남겼습니다. 즉, 스스로를 파괴하고 재탄생할 수 있는 변화의 씨앗을 남겼습니다. 의도적으로요. 최치원을 악당으로 여길 수 있도록… 자신의 “진리” 에 대놓고 도전할 수 있도록… 변할 수를, 아주 많이 남겼죠. 시대가 바뀌어도, 누군가는 반드시 구름 뒤에 숨은 최치원을 향해 지증대사도 그렇고, 이걸 좋다고 쓴 최치원도 정신 나간 놈이네? … 라고 손가락질할 수 있도록요. 그 과정에서, 언젠가는 반드시 구름 속에 숨겨진 이를 찾을 수 있도록요.

자! 핵심만 최대한 짧게 압축했기 때문에 이해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아무리 좋은 깨달음이라도 쉽게 얻은 것은 그만큼 쉽게 사라집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최치원 편은, 다시 되감아 보는 만큼 좋은 내용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또한 저는요. “최치원” 만큼이나 이 모든 내용을 뒷받침하는 최고의 증거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저는 최치원의 글을 두고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가 합쳐지며 깨달음을 준다’ 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한 줄 설명부터 판타지스럽지 않나요? 이런 일을 완벽히 해낸 천재들은 당연히도. 인류 역사를 다 뒤져야, 겨우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제가 아는 한, 이런 일을 해낸 이들은 역사 속에서 ‘성인” 으로 추앙받아 왔지요. 최치원 역시, 마땅히 그럴만한 존재였고 실제로도 최치원은 한반도의 자부심으로 대접받아 왔습니다…….. 100년 전까지는요. 하지만, 2025년 이 영상을 보는 대한민국 사람들은 다행히도 제 말에 공감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최치원이 문묘에 배향된 이유를 들 때 “고려의 정치적 수단” 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시대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최치원’ 은 완전히 잊혀졌습니다. ‘풍’ 의 의미도 완전히 변했습니다.

아니… 다르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마지막 엔딩만큼은, 수수께끼처럼 말해보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컴컴한 어둠 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지금 이 땅은 어리석고 탐욕스러운 “풍” 과, 경멸과 조롱의 “풍” 이 방향을 잃고 뒤섞여 서로 뜬구름만 잡고 물어뜯기만을 반복할 뿐이지요. 그러나, 걱정 마십시오. 한반도에는 천 년 전부터 꾸준히 썰물과 밀물을 반복하며 바다는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 말인즉슨, 이렇게 어두운 밤에도 계속… 한반도에 달은 떴다는 말이죠. 구름에 가려 달이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가 직접 바람을 일으켜, 구름을 몰아냅시다. 파도가 일렁일 만큼…. 강한 바람으로! (부록 있습니다. 고정 댓글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