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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 창세기 46장 26절로 27절 말씀 대합니다.
야곱과 함께 애굽에 들어간 자는 야곱의 며느리들 외에 66명이니 이는 다 야곱의 몸에서 태어난 자이며 애굽에서 요셉이 낳은 아들은 두 명이니 야곱의 집사람으로 애굽에 이른 자가 모두 70명이었더라.
본문 26절에 보면, 그 야곱과 함께 애굽에 들어간 자가 어 그 66이라고 말하면서 여기 애굽에 들어간 자라고 할 때 이 자가 어 네페시입니다. 어 그러니까 네페시가 생명이죠. 그러니까 야곱에 들어간 명수, 뭐 그다음에 머릿수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니라 우리 번역에서는 들어간 자라고 돼 있지만 언어 그대로 보면 어 예순 여섯 개의 네페시가 들어갔다 이렇게 됩니다.
네페시예요. 그래서 네페시가 성경에 어떻게 쓰여지냐면요. 우리가 민수기 1장에 가보면 그 인구 조사하잖아요. 그때 제 전쟁에 그 소집되는 인구들, 그다음에 뭐 세금을 부과할 때 필요하는 그 인구, 뭐 노동력 이럴 때는 그 성경에서 히브리 단어가 뭐냐면 굴고래시예요. 어 그러니까 이 네페시는 다른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생물학적 그런 그 어 생명 어 이런 게 아니라 네페시가 뜻하는 것은 그 이게 그 존재론적 생명이에요. 전 인격. 그래서 어 영과 육이 막 분리되거나 그런 게 아니라 어 이렇게 겉사람과 속사람이 따로 있지 않고 이게 하나인 전 인격적인 생명에 언약적 생명입니다. 쉽게 말하면 생물학적 생명이 아니라 언약적 생명.
어 레위기 17장을 한번 우리 같이가 볼까요? 여기 11절에 보면 육체의 생명은 요게 이제 이게 네페시예요. 여기 11절에 네페시라는 단어가 세 번 나와요.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이는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네페시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네페시가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그니까 이 11절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은 이 네페시 이 생명이요 속죄와 지금 연결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생명이 생명을에 대신하여 그 속죄한다. 여기 보면 피가 아 죄를 속하느니라. 이 피가 생명에 있다. 그렇죠? 피가 생명에 있고 바로 이 피가 아 죄를 속한다. 그러니까 지금 이 네페시와 속죄가 아 이렇게 연결되어 있구나. 이 이 이것을에 잘 놓치지 마세요.
그래서 어 그 사실은 이 네페시가 아 이게 나타날 때 어떤 때 나타나냐면 우리 출애굽기 12장 4절에 가보면 그 어린양의 그 피로 어 문설주에 발려줄 때 그 어린양의 피 안에 들어오는 요때 쓰여지는 그 생명이 이 네페시예요. 그니까 그니까 유월절 명부죠. 하늘 생명책 명부를 설명할 때에 네페시 언약적 생명을 얘기할 때 네페시 이렇게 됩니다.
히브리서 9장도 볼까요? 어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어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죄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음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22절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서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어 죄인의에 그 네페시가 이 희생제물의에 네페시로 말미암아 속죄가 벌어지는 그 이게 그 짐승의 피로 이렇게 그 죄인들의 구약 내내 율법에서 짐승의 피로 어 이렇게 그 대속하는 속죄하는 일을 계속 하나님이 반복시켰잖아요. 그 뭘 가르쳐 주는 거자 함인 거죠? 너희의 생명 단순한 생물학적 생명이 아니라 너희 생명은 언약적 생명이다. 그런데 이 언약적 생명은 너희의 죄로 말미암아 너희가 피흘리며 죽어야 되는데 하나님께서 바로 염소와 황소를 통하여 가르쳐 주는 거죠. 이 이 염소와 황소의 피로도 너희가 잠시 정결케 되지만 이제 그리스도의 피로 영원히 너희의 피를 그 죄인의 네페시 그 너희의 죽을 생명을 영원히 살려내겠다. 희생제물의 네페시죠.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살아나는 네페시 이걸 설명하는 거예요. 이게 속죄의 원리입니다. 속죄의 원리는 교환이에요. 교환. 그래서 우리 만화 구원론에서도 보면 칭의를 위대한 교환 이렇게 설명하죠. 위대한 교환. 어떤 교환이에요? 죄인의 네페시가 희생제물의 네페시로 말미암아 속죄함을 받는 거예요.
오늘 본문은 첫 아담에 묶였던 부정한 네페시가요.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죠.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묶여서 정결한 네페시가 되는 이야기예요. 오늘 본문 26절 다시 보세요. 야곱과 함께 애굽에 들어간 자는 야곱의 며느리들 외에 66명이니 이는 다 야곱의 몸에서 태어난 자다. 여기 66이 뜻하는 이 의미는에 첫 사람 아담의 허리에서 태어난 모든 인류가 지닌에 그 부정과 죄성을 말할 때 66입니다.
에 확인해 볼게요. 레위기 12장에 가보세요. [한숨] [헉 소리] 그 여인은 아직도 33일을 지내야 산혈이 깨끗하리니 정결하게 되는 기한이 차기 전에는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 것이며 여자를 낳으면 그는 두 일 동안 부정하리니 월경할 때와 같을 것이며 산혈이 깨끗하게 됨은 66일을 지내야 하리라. 이 66일이 뜻하는 바가 이런 거죠. 어, 여인이 이렇게 그 산혈 피를 흘려서 어 있는 것으로 말미암아 이제 그 성소 어 문턱에 못 갑니다. 에 근처에도 못 가요. 어느 때까지? 66일 동안은. 이게 율법의 상태예요. 그리고 이게 법적 기간이에요. 그러니까 부정한 자가 어이 어떤 존재로서 묶여 있는가? 이 이 율법의 기한을 통하여서 이 여인의 부정한 상태를 통하여 설명하는 거예요. 그니까 66의 상태는 하나님 앞에 부정한 자요. 이 문제로 해결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 그 기간이 66을 뜻하는 겁니다. 그니까 우리가 아담의 예본성에 갇혀서 스스로 절대로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에 들어갈 수 없는에 부정한 상태. 이게 지금 66을 말하는 거예요. 오늘 그 아담 안에서 태어난 모든 인류의에 그런 절망의 모습이 이 66에 담겨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 안에서 그 무엇으로도 인간의 노력과 행위와 열심과 그 어떤 것으로도 이 66의 무덤을 깨뜨릴 수가 없습니다. 부정이기 때문에 그 부정이에 정하고 있는 게 66의 기간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66의 무덤에서 첫 사람 아담 안에서 태어난 모두는 이 66의 무덤에 있는 거예요.
그래서 6, 26절 다시 보세요. 야곱과 함께 애굽에 들어간 자는 야곱의 며느리들 외에 66명입니다. 어떤 상태인가? 이 이 무덤의 상태요. 어 절망의 상태예요. 그런데 이는 다 야곱의 몸에서 태어난 자래요. 네. 이 [콧방귀] 야곱의 몸에서 이것이 말하고 있는 바는 아담 안에서예요. 아담 안에서. 아담 안에서 태어난 66개 네페시죠.
그런데 보세요. 중요한 것은 그런데 27절로 넘어가는 순간 거대한 대반전이 벌어져요. 보세요. 27절 보세요. 애굽에서 요셉이 낳은 아들은 두 명이니 야곱의 집사람으로 애굽에 이른 자가 모두 70명이었더라. 여러분 계산해 보세요. 분명히 앞에 66이에요. 26절이. 그런데 27절에 보니까 70이 되죠. 그러면 몇 명이 더해져야 되는 거예요? 네 명이 더해져야 되죠. 근데 27절에서 나타나는 거 보세요. 요셉 그리고 요셉의 두 아들 숫자적으로 셋밖에 안 돼요. 여기에서 애굽에 있는 요셉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바로 이 요셉이에 참 요셉 애굽에 있는 요셉이 바로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거죠. 이 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두 아들 에브라임과 무나세가 들어가고요. 그리고 여기에 야곱 자신이 들어가요. 26절에서는 야곱의 몸에서 태어난 자로 해서 야곱이 빠져요. 그리고 27절에 야곱이 들어가 있습니다.
어떻게 이 아담 안에서 태어난 저와 여러분이 이 부정하고 율법에 갇히고 그 무엇으로도 어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안 돼요. 66의 기한이 차야만 나올 수 있어요. 성소에 들어갈 수 있어요. 근데 우리가 어떻게 어이 정결함을 얻고 거룩한 성소에 구원을 받게 되는 모습이 되는가? 그 말씀을 오늘 이렇게 설명하는 겁니다. 아담 안에서 너희는 안 된다. 죽었던 그 언약적 생명이었다. 네페시이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는 다시 언약적 생명으로 살아난 구원의 총수에 다시 들어오게 되는 그런 것이라는 것을 언약적 복음으로 설명하는 겁니다.
어 언약계를 통해서 언약적 복음이 잘 나타나요. 언약계에 세 개의 기물이 들어가 있죠. 뭐 뭐가 들어가 있죠? 예, 그 십계명의 돌판이 들어갑니다. 물론 이 돌판은 깨진 돌판 아니에요. 그러나 이 돌판이 뜻하고 있는 건 뭐죠? 십계명 돌판이 왜 깨졌어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인하여 깨졌죠. 그리고 다시 하나님이 이 돌판을 증거물로 남겨 놓으신 거예요. 다시 돌판을 해서 뭐예요? 인간의 그 불순종에 대한 증거입니다. 그리고 만나 항아리가 있죠. 만나는 광야 내내 이 만나를 하찮게 하찮은 음식이라고 말하면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짜증했던 그 탐욕의 증거예요. 인간의 죄성의 폭로죠. 마지막 아론의 쌍난 지팡이 예. 아론 너만 모세만 리더냐 했던 그 이스라엘 백성들 인간의 그런에 그 반역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도전이 거역에 대한 증거. 이 세 가지의 기물을 언약계에 두신 것은 바로 너희가 66과 같은 부정한 자요. 너희는 율법에서 너희는 마땅히 죽어야 할 자들이라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우리의 죄에 대한 폭로예요. 이 증거물이 그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셨어요? 이것을 언약계 뚜껑이 덮고 있죠. 그리고 1년에 한 번 대제사장이 이 지성소로 들어가서 여기에 그 법계 뚜껑, 언약계 뚜껑 위에 있는 그룹 날개 위에다가 피를 바릅니다. 그리고 그 피를 바른 피는 반드시 뚜껑으로 흘러내리게끔 해서 그래서 뚜껑을 적시도록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이에요? 바로 인간의 죄성을 인간의 이 66과 같은 이 더러움을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그것을 다 온전케 하시고 정결케 하셔서 율법이 요구하는 66일의 정결함을 단번에 완성시키셨다라는 하나님의 약속이죠. 틀림없는 일입니다. 이것을 보여 주시는 거예요. 하나님의 선포는 이겁니다. 마지막 아담 안에 우리는 묶긴 자들이에요. 첫 사람 아담 안에서 태어났던 자들은 다 온 인류였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이 성령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나게 한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그리스도라 고백한 우리는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묶긴 자들이라고요. 이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포는 아들아 딸아 너는 더 이상 아담의 부정한 66에 갇힌 자가 아니다. 내 아들 예수의 피로 정결케 되어 내 성소로 입성하는 완벽한 70의 내 백성이다. 하나님의 선포예요.
아담의 몸에서 60 지금 야곱의 몸에서 태어난 자 66명입니다. 근데 27절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두 아들과 야곱 자신이 거기에 들어가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이런 놀라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결정하신 원리예요. 이 하나님의에 놀라우신에 하나님의 법적 은혜와 언약적 사랑을 찬양합니다. >> 아멘.
뿐만 뿐만 아니라 오늘 본문에는요. 또 하나의 놀라우신 하나님의 그 구원 계획이 담겨져 있어요. 이 70에 담긴 하나님의 열방에 대한 구원 계획이에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이렇게 폐쇄적인 구원 아닙니다. 우리는 개혁 신앙 안에다 보니까 굉장히 폐쇄적이에요. 하나님의 주권 선택. 그래서 굉장히 그 좁아요. 마치 그 유대인들만 혈통적으로 선민처럼 탁 개혁 신앙, 개혁주의 교회만 구원받은 것처럼 이렇게 굉장히 폐쇄적이에요. 그렇지 않다라는 것을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만나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요. 온 열방의 구원입니다. 세계 선교적 구원입니다.
오늘 본문 아니 오늘 창세기 46장 그 본문 안에 있는 내용인데요. 15절 한번 가보세요. 여기 15절 보면 이들은 레아가 바다말 아람에서 야곱에게 난 자손들이라. 그 딸 디나를 합하여 남자와 여자가 33명이라. 요 그 디나가 이 33명 속에 계수가 됩니다. 아이 딸 딸이죠. 이 이 딸 디나는 어 굉장히 그 그이 수치스러운 그 이게 그 모욕을 당하죠. 어 [콧방귀] 더군다나 그 유대 사회에서 여인은 어 이게 명수에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 근데 하나님의에 명부 하나님의 구원 족보에 이 디나가 33명 그 레아를 통해서 낳은 그 언약의 백성들의 수에 이 디나가 들어가요. 또 20절도 보면 애굽 땅에서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아스낫은에 그 이방 여인입니다. 이방 여인. 그리고 이방 여인의 핏줄로 나오는 요셉에게서 낳은 무나세와 에브라임 두 아들이죠. 예. 이게 그 하나님의 70명의 디나가 들어가고 이방 여인의 핏줄에서 나온 그리고 가나 그 가나안 땅에 한 번도 들어가 본 적도 없는 에브라임과 문나세가 오히려 어 야곱의 12 아들의 직계 자손 집계 아들에 들어가 버려요.
베드로전서 3장 20절도 가볼까요?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몇 명이래요? 여덟입니다. 왜 하필 여덟일까? 어 7은에 그 창조의 숫자고 그죠? 완전의 숫자고 이에 그 이 7에서 7일에 이 창조를 지나서요. 어 8 그러면 우리가 잘 알죠. 이게 그 제이 셋 이거 창조에 딱 또 다른 시작이에요. 그래서 이걸 새 창조라고 말하고 예수님께서 어 부활을 말씀하실 때 그 8일 응 그래서 이 새 창조입니다. 팔이 뜻하는 발은 예 여기 그 어 20절에 나오는 베드로전서 3장 20절에 나오는 여기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 여덟 명이라 할 때 이 명이요 어 그 푸시케인데요. 헬라어로 푸시케예요. 그런데 이 푸시케가 히브리로 그대로 말하면 네페시예요. 그러니까 아 히브리 네페시 이 언약적 생명이죠. 언약적 생명이 헬라어로 어 표현될 때는 푸시케라고요. 같은 의미예요. 그러니까 아이 여덟 명뿐이다라는 이 여덟 명이 단순히 그냥 여덟 사람이야. 어 이게 아니라이 여덟이 생물학적 여덟이 아니라 언약적 여덟이에요. 그래서 이 지금 이 노아 방주로 들어가서 나오면서 인류가 다시 새 창조가 벌어지죠. 이 이 새 창조의 족보가 노아의 족보가 창세기 10장인데요. 창세기 10장 32절 보세요. 이게 10장 마지막 32절인데 이들은 그니까 샘함 거기에서 나온 이 여덟 명에게서 나온 샘함. 이들은 그 백성들의 족보에 따르면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요.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그 땅의 백성들이 나뉘었더라. 그 땅의 백성들이 나뉘었는데 오늘도 집에 가서 한번 쉬세요. 이 창세기 10장을 다 짚어서 짚어서 다 쉬어보면 70개의 민족입니다. 그러니까 샘함 야베스를 통하여서 족속들이 나라가 70개의 민족으로 하나님은 창세기 10장에 남겨 놓으신 거예요. 우연인 거 같아요. 하나님께서 온 열방의에 족속과 나라들을에 이 방주에서 나온 그 여덟을 통하여서 70을 이루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선교적 청사신이 청사 청사진이죠. 에 에 방주의 여덟 명이 온 세계 열방에 70이 되는 이 언약적 하나님의 약속이라고요.
우리 개혁 신앙을 하면서 어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이런 거예요. 어 하나님이 한 생명도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한 생명을 하나님은 이 세상이라는 이 불신적 사회로부터 하나님이 에클레시아 부르세요. 어디로? 당신의 몸된 가시적인 교회지만 몸된 교회로 이 외형적인 이 교회 안으로 자기 백성들이 무형적인 하늘 백성들을 하나님이 이 바깥에서 찾아서 그의 심령을 이끌어서 이곳에다 갖다 놓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깨달아 가도록 도우셔요. 하나님이 아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 누가 하나님의 주권과 선택을 입었는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춰 놓으셨어요. 마지막 죽을 때까지도 우리는 열심히 그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왜요? 우리는 모르니까. 알미니안 복음주의 계열의 어떤 이들보다 우리는 열심히 선교적 마인드를 가지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한 사람이 올왔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그를 이곳에 갖다 놓으셨다라는 그 하나님의 열망, 하나님의 구원의 기쁨 속에서 기뻐하며 반가워하며 안아주며 그래야 돼. 그리고 절대 등록하라고 바로 등록 용지 내면 안 돼요. 등록은 다른 문제예요. 뜨겁게 안아 주고 환영해 주고 왜요? 에 정말 우리 교회가 건강한 교회요 바른 교회라면 하나님이 그 바깥에 있는 한 생명을 여기에 이 발권으로 옮겼을 때 얼마나 그 귀한 생명입니까? 근데 몰라. 나몰라라는 뜻. 뭐지가 좋으면 다음 주에 또 오겠지. 예. 뭐 오든지 말든지. 그리고 등록이 돼야 우리 식구지. 그럼 안 돼요. 등록되기 전까지 사랑하고 안아주고 품어 주고 그리고 그가 정말 우리와 같은 한 신앙 고백을 하고 있는지 당회가 점검하고 새가족 공부를 통해서 다시 확인하고 여러분. >> [콧방귀] >>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복음이 차별화 되고 우월화 되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품으세요. 하나님이 우리가 건강한 생명 있는 교회에 이곳에 생명을 붙여 줬을 때 우리가 어떻게 그를 대야 되는지 이 하나님의 마음을 오늘 말씀 속에서 만나 보시길 바랍니다.
또한 우리 마태복음 15장이 신약에 와서도 이 하나님의 이 거대한 열방을 향한 발걸음은 계속 이렇게 전진돼요. 마태복음 15장 보시면 자 봅시다. 34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무리에게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자는 여자와 어린이 외에 4천명이었더라. 아 우리가 성경을 읽다 보면 어 [콧방귀] 뭐 그 오병이어 사건이 있었는데 뭐 또 무슨 또 이렇게 그 칠병이어 이게 무슨 뭐가 이렇게 다르지? 왜 이렇게 뭐 그냥 5병까지는 오케이 알겠어. 근데 이 칠병이어는 뭐야? 예. 이 이 칠병이어는 일단 대가볼리 지경에서 있었던 일이에요. 그러니까 대가볼리는요. 그 유대 땅 바깥이에요. 이방 땅이에요. 이방 땅 이게 핵심이에요. 이방 땅에서 7. 예. 그 떡 일곱 개로 말미암아 먹이죠. 거기에 여자와 어린아이들까지 다 먹죠. 그리고 남은 것이 몇 광주리예요? 일곱 광주리죠. 여쭤 볼게요. 어 5병이는 12 바군이 남죠. 7병이어는 일곱 광주리가 남아요. 어떤 게 많이 남은 걸까요? 바구니가 커요? 광주리가 커요? [웃음] >> 예. 잘 모르겠으면 사도행전에 가면 사도 바울이 탈출할 때 그 성벽에서 광주리 타고 내려와요. 아, 일단 광주리가 사람이 타는 거구나. 커요. 그러니까 5병이어 사건을 통해서 남은 양보다 이 7병이어 사건을 통하여 남은 양이 훨씬 커요. 많아요. 그고 10. 그니까 이방 땅에 충족되어지는 10이 곱해지죠. 7 일곱 개와 10이 곱해져서 사실은 70이 되는 거예요.
누가복음 10장도 가보면 이 성경에 이렇게 70이 어떻게 나오느냐면 그 후에 주께서 따로 70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그러니까 12제자인데요. 12제자 외에 이 70제자를 지금 세우는 겁니다. 그리고 이들을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흩어 보내요. 어 17절 70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가를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예. 그 이 70인의 그 제자들을 통하여서 하는 그이 사건이 뜻하는 이게 뜻하는 말은요. 바로 이 그이 흩어졌던 70개의 열방 예 이방이 족속 이방 땅들을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그들을 다시 하늘 생명책에 등록시킨다는 언약의 성취예요. 이 일을 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 그니까 70제자를 통하여서 하나님이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지를 보시라고요. 우리가 힘써 어 힘써 파송되어 우리가 각 삶의 자리에서 믿음으로 살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증거해 내야 되는 이유는 우리를 통하여 나 하나를 구원하시고 나 하나를 천국 드리시는 하나님의 열망만이 아니라 우리를 파송하여 결국은 새 창조로 여덟 명을 살려내서 그들을 통하여 70의 열방을 살리려 렸던 하나님의 우주적인 구원 플랜 속에 우리를 쓰시는 거라고요. 여기에 우리가 사용되어지는 것이고 이게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구원받을 자는 구원받겠지. 어떻게 되든지간에 될 자는 되고 안 될 자는 안 되겠지. 나를 하나님이 어떻게 살려냈는지를 보세요. 나를 나 같은 자를 [콧방귀] 저를 전도하신 그 지금 네덜란드에가 계신 선교사님은요. 저 하나를 전도하기 위해서 아무것도 몰랐던 저를 전도하기 위해서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먹어야 되는 그 모든 그 엠소든 뭐든 와 가지고 제가 먹어야 할 막걸리를 이분이 다 마셨어요. 그리고 시골에에 찾아와서 어 한 5일 5일 같아요. 5일 동안 그 바쁜 농본기에에 소리 없이 일을 하고 그리고서 마지막에 저희 할아버님한테 우리 내성이 교회 수련회 있는데 데리고 가도 되겠냐고. 어 그렇게 저를 전도했어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저는 우리 안에 이 하나님께서 어 오늘 그 딸 디나 에브라임 문화세 [콧방귀] 이들을 70의 그 족보 안에 그들을 참여시키고 불러드리는 하나님의 열방에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마음을 가지십시오. 개혁교라고 해서 막 폐쇄적으로 우리만 그렇게 신앙해서는 안 된다고요. 그러나 아무나 그건 아니에요. 우리는 반드시 누구나 들어올 수 있어요. 그러나 아무나 우리 안에 하나되지 않아요. 하나님이 한 영혼을 붙였을 때 그에게 하나님의 열방을 향한 구원의 하나님의 열망을 보시면서 나를 살리신 하나님이 저 또한 나처럼 살려내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에베소서 2장 말씀 볼게요. 표준 세 번역번으로 제가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난날에 육신으로는 이방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사실이잖아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사람이라고 뽐내는 이른바 할례자들에게 여러분은 무할례자들이라고 불리며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그때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었고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제외되어서 약속의 언약과 무관한 외인으로서 세상에서 아무 소망이 없이 하나님도 없이 살았습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분의 피로 하나님께 가까워졌습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졌다는 말은 하나님과 화해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과 아버지 하나님 부르면 하나님이 귀를 좀 열고 계시고 그리고 우리는 그 하나님 앞에 그 어떤 말도 다 할 수 있습니다. 관계가 정상화됐고 회복되었단 얘기죠. 참 요셉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이방 땅에서 겉돌던 저와 여러분 우리를 딸 디나와 같고 이방인의 핏줄이 섞여서 어 외면받았던 그런 그 보잘 것 없는 그냥 하나의 에브라임과 문나세 같았던 잊혀진 아무 그렇던 우리를 기억하시고 70의 언약 안으로 밀어넣으셔서 하나님의 하늘 생명책 유월절 명부에 우리를 깊이 놓고 그곳에 남기시고 우리를 책임지시는 하나님 하나님과 아무 상관도 없이 내 잘람과 또 나의 똑똑함과 나의 그런 이성으로만 살아가던 우리를 하나님이 무슨 이유로 도대체 왜 나에게 이렇게 은혜를 베푸셨는가? 나 하나만의 이기적인 구원에 머물지 마시고 하나님의 열방을 향한 구원 계획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꼭 만나 보시고 이 하나님의 마음을 품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46장 26절 27절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제가 읽을게요. 오늘 말씀을 잘 기억을 하시면서 들어 보십시오. 야곱과 함께 애굽에 들어간 자는 야곱의 며느리들 외에 66명이니 이는 다 야곱의 몸에서 태어난 자이며 여기선 야곱이 빠져요. 27절. 애굽에서 요셉이 낳은 아들은 두 명이니 야곱의 집사람으로 애굽에 이른 자가 모두 70명이었더라. 여기에 야곱이 들어갑니다. 66. 부정이고 무덤이었던 그 그런 아담 안에 있었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70이 되겠죠. 아담 안에서의 죽어야 할 네페시가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 부활과 새 창조와 새 생명의 네페시로 살아난 존재가 교회인 저와 여러분이에요.
오늘 하나님의 선포입니다. 성도란 한마디로 성도란에 언약 백성이에요. 언약의 생명체죠. 언약의 생명체예요. 과거 나의 삶에 어떠했던 절망과 무덤이고 여전히 나는 율법 속에서 들여다 보면 율법의 관점에서 보면 나는 66의 상태처럼 보일지라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언약의 생명체, 언약의 네페시로 살리움을 받은 자예요. 하나님 앞에 이미 정결한 자입니다. 66이 끝난 자예요. 그래서 정죄와 절망이 끝난 자예요. 거기서 나온 자예요. 이제 우리는 흩어진 70의 열방을 향한 복음의 제자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나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이 우리 교회의 지체들에게 이 복음의 기쁨을 심어 주고 예수를 지금 어 궁금해하고 예수를 아직 모르는 이들에게 와 저가 알고 있는 예수를 나도 믿고 싶다라는 마음을 던지는 전도자라고요. 이런 남은 시간을 살라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늘도 건강을 허락하신 것이고 물질을 맡기시는 것이고 시간을 주시는 거예요. 이유 없이 우리를 살리시는게 아닙니다. 이런 복된 은혜를 여러분 잘 기억하시며 하나님의 마음을 여러분도 같이 품고 이 남은 시간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저는 이에 리폼 티알로지이 개혁 신학 그리고 개혁 복음만이 참 복음인 것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이 개혁이 개혁 신앙에서 말하는 교리 안에서 정말 참된 구원이 있다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한숨] 개혁 교회가 갖고 있는 탁월함과 놀라움은 바른 말씀 해석이고 바른 믿음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이 바른 말씀을 가지고 폐쇄적인 신앙 그리고 어 화석화된 교리로만 붙들고 있는 신앙을 하는 것은 정말 하나님의 구원의 열망과 일치가 안 됩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에 바른 복음을 가지고 바른 삶을 살아내고 바른 삶 속에서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한 그 수많은 백성들을 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도하는 이런 사명자의 삶을 여러분의 생애 속간 살아가셔야 합니다.
제가 우리 장로님들께 그랬어요. 장로님들 전도하시라고 그랬더니 하시는 말씀이 아는 사람이 없대요. 다 자기 주인은 예수만 믿고 다 교회 다녀서 아는 사람이 없대. 일견 맞는 말 같아요. 우리 장로님들이 누굴 알겠어요? 그렇다고 세상에 가서 막 그 세상 불신자들과 어울릴 수도 없고. 그런데 좀 우리 장로님들이 예. 좀 기도하면서 마켓을 가든 아니면 저처럼 이발수 저기 미용실에 가서 어 저 우리 전도했잖아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우리 그래서 정말 우리 성도들이에 이 그 하나님의 그 구원의 은혜를 받고 복음을 힘써 전하는 그런 하나님의 마음과 합 하나가 된 그래서 살아가는 그런 참된 백성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그 뒤엘 무디 자서전을 보면요. 그런 얘기가 있어요. 이게 하나님의 심판태 앞에 쭉 심판받고자 줄들이 쭉서 있는데요. 음. 그 하나님의 심판이 벌어집니다. 근데 한 여성이 자기는 복음을 듣지 못했다고 그렇게 얘기해요. 근데 심판관이 그러죠. 어, 너 저기 무디 몰라. 무디. 에, 무디가 바로 네 뒤에 있는데. 무디도 그 뒤에 쥐들에 있었거든요. 그랬더니 아 저 사람 내가 이웃집에서 만났는데 저 사람 나한테 예수 믿으라 소리 안 했다고. 거기서 무디가 꿈에 이게 꿈이에요. 잠에서 번쩍 깨 가지고 복음을 힘써 전하는 그런 저도 그 자서전 읽고 내가 그냥 하루에 몇 명을 반드시 복음 전하고 어 전하리라. 이게 장로님이 됐는데 목사인데 장로인데 하나님 옆에 갔을 때 단 한 명도 전도하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도하지 못하고 나 하나 잘 예수 믿고 천고 같습니다. 부끄러운 겁니다. 예. 전하세요. 그가 아 그가 구원받을지 여부는 우리 결정 아니에요. 그러나 우리는 힘써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그에게에 우리가 만난 십자가의 은혜를 증거해 주고 그래서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그 사람이 우리 장로님들이나 우리 성도님들이 전한 예수를 기억하고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구원 가운데로 이끌어내실 겁니다. 예. 반드시 전도하시고 하나님 앞에 쓰시기를 권합니다.
오늘 말씀 생각하면서 오늘에 우리가 무엇을 돌이켜 회개해야 할지 또 믿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말씀 가운데 우리 기도하는 시간 갖겠습니다. 하나님 첫 사람 아담 안에서 필망해야 할 우리를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놀랍고 복된 이 언약의 복음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저희가 부여받았습니다. 하나님 나 하나 이제 예수님 믿게 되었으니까 나 하나 천국 들어오자는 그런 얄팍한 우리의 복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범 우주적인 구원의 열망을 품고 계시는 그래서 나를 살려내신 하나님이 저도 살려내기 원하시는 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바른 복음을 붙들고 있는 저희 교회가 힘써 하나님이 이끄신 영혼을 온 마음으로 다하여 사랑하고 또한 흩어져서 70인 제자와 같이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해내는 하나님의 귀한 복음의 전도자들이 되도록 은혜 나려 주시옵소서. 하나님 그리하여 우리가 만난 이 뜨거운 이 십자가의 복음이 우리의 삶과 전 인격을 통하여서 내 자신에게도 증거되고 이웃에게도 증거되고 하나님께도 영광이 되는 남은 시간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