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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31] 김양재 목사 - 불신결혼(느13:23-31)

우리들교회55:47

Transcription

미국의 주관지 타임이 특집 기사로 로맨스에 과학을 다루었습니다. 쉬운 여섯 가지 설문을 통해 사진을 보여주고 제목을 붙이게 한 다음 협상과 건축과 탐험과 연출과 용으로 사람들을 분류하고 각자에게 맞는 타입으로 소개해 주는 중매 산업을 다룬 것입니다. 심리 테스트와 비슷한 질문을 통해 그 사람의 테스토테론, 옥시토신 분비 정도를 알아볼 수 있게 하여 첫 소개팅 자리에서 그들의 화학 물질이 서로 반응하도록 도와준다고 합니다.

이 중매 성공 비결은 서로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할 수 있는 사람끼리 만나게 해 주는 데 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중매는 과학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평생을 같이 할 배우자를 찾는 중매가 과학일까요? 데이터와 화학 반응으로 좋은 상대를 만난다 하고 행복한 결혼 생활이 보장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침대는 과학일지 모르지만 중매는 과학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중매하려고 하나님의 열심으로 권했습니다. 결혼에 필요한 것은 과학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우리의 자녀와 배우자를 그리스도께 중매하는 중매자가 되어서 믿음의 결혼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오늘은 이제 모든 것의 완결판, 11조와 안식일을 지나서 이제 모든 것의 완결판인 불신 결혼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불신 결혼의 배후에는 악과 음란이 있습니다. 23절입니다. 그때에 내가 또 본즉 유다 사람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을 맞아 아내로 삼았는데, 그때에는 느헤미야가 바사에 가 있는 동안 11조와 안식일이 무너진 그때입니다. 이럴 때는 보는 이럴 때를 보는 사람이 여전히 느헤미야밖에 없습니다. 대제사장 엘리야십과 유다 귀인들이 불신 결혼을 시키고도 아무 관심이 없는데 느헤미야가 또 그 심각성을 보았습니다. 유다 사람이 아스돗, 암몬, 모압 여인을 아내로 삼았다고 합니다. 암몬과 모압은 가나안 길, 천국 길을 방해했던 조상의 원수입니다. 아스돗은 5장에서 성벽 중수를 극렬하게 방해했던 족속입니다. 결혼을 하는데 조상의 원수, 내 원수, 가족의 원수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내 육신의 종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만족시켜 준다면 다른 것 다 제쳐 놓고 결혼을 합니다.

왜 이렇게 됐습니까? 11조 관리하는 방을 도비아에게 내어 준 것을 악하다고 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은 것도 악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27절에 불신 결혼은 그중에서도 가장 악한 것입니다. 11조, 안식일 지키지 않은 결론이 불신 결혼으로 갑니다. 예수님이 이 세대의 특징이 악하고 음란한 것이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물질이 우상이라서 온갖 방법으로 공부하고 정말 성공을 향해서 가다가 돈 벌 돈 벌었는데 우리가 돈이 우상인데 어떻게 돈이 아까워서 11조를 드리겠습니까? 안식일도 경제 활동을 하느라고 돈 벌겠다고 못 지킵니다. 그렇게 돈을 벌다가 하나님께 드리기가 어렵죠. 자동적으로 그 돈 가지고 음란으로 가게 됩니다. 음란이 인생의 목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솔로몬도 돈이 생기니 음란으로 갔습니다. 믿음 없이 돈 많은 집 치고 편안한 집이 드옵니다.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은 두 번 이혼을 하고 남선 편력이 있기로 유명한 모델과 대통령이 되고 난 직후에 세 번째 결혼을 했습니다. 그 모델의 누이 전 세계 잡지에 실렸어도 전혀 굴하지 않고 결혼했습니다. 그 여자도 이혼 전력이 있습니다. 사르코지의 두 번째 부인도 자신이 주례를 맡았던 결혼식의 신부였는데, 사르코지가 그 부인을 빼앗아 두 번째 결혼을 하고 그리고 나서 이제 또 세 번째 결혼까지 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일국의 대통령을 지냈습니다. 프랑스가 가톨릭 국가로 믿는 나라입니다. 대통령이 되기까지 파리 대학을 하고 얼마나 질주를 하면서 그 자리까지 왔겠습니까? 이렇게 왔지만 이 최고의 지도자조차도 백성들에게 보여줄 윤리와 도덕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 죄의식 없이 최고의 음란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남자들이 이 사르코지를 다 부러워한다는 거 아닙니까? 여러분 어떠세요? 가슴에 손을 얹고 한번 나눠 보세요. 사르코지가 부러운가 안 부러운가? 오늘 나눔에서 그걸 다뤄 보세요.

이 세대야말로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는 시대입니다. 서로 손해가 다를 수 있어도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모든 것의 배우에는 결국 돈이 있습니다. 물질 없이 어떻게 여자를 데려올 수 있겠습니까? 권세, 지위를 가지고 돈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이방 여자를 취하는 것입니다. 나눠 보십시오. 나와 자녀의 배우자를 선택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무엇입니까? 안 믿는 이성 친구와 교제하는 것을 느헤미야처럼 심각하게 보고 있습니까? 합리화할 이유가 얼마든지 있어도 결국에는 돈을 좋아하는 나의 악과 음란 때문에 불신 결혼을 시키고 싶고 하고 싶다는 것을 인정합니까?

두 번째는 그래서 그 불신 결혼의 결과로 문제아가 생깁니다. 오늘 집사님도 간증해 주셨지만 24절입니다. 그들의 자녀가 아스돗 방언을 절반쯤은 하여도 유다 방언은 못 하니 그 하는 말이 각 족속의 방언이므로 아스돗 방언이 블레셋 말인데 유다 말을 못 하는 게 왜 심각합니까? 유다 말이 하나님 말씀을 듣는 통로인데 그것을 못 하니까 예배를 드릴 수도 성경을 읽을 수도 없습니다. 엄마가 블레셋 방언을 하고 유모와 여종이 모두 블레셋 말을 하니까 아이들이 유다 말을 절반쯤마다 다 이제 못 하게 됩니다. 유대 사회는 모계 사회이고 엄마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 때문에 아내가 중요하고 여자가 참 중요합니다. 유대인은 여자가 유대인이면 유대인으로 치고 남자가 유대인이면 유대인으로 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과의 결혼으로 포로로 잡혀가고 여러 징계를 받았는데도 돌아와서도 여전히 이방 문화의 세뇌가 되어서 이방 사람들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무너지고 국가가 사라질 수 있는 심각한 상황입니다. 몇 대째 믿음을 지켜오다가 안 믿는 여자가 집에 들어왔어요. 근데 온 가족의 믿음이 사라질 수가 있습니다. 26절, 7절입니다. 또 이르기를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이 일로 범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는 많은 나라 중에 비길 왕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삼아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셨으나 이방 여인이 그를 범죄케 하였나니 너희가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아 이 모든 큰 악을 행하여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을 우리가 어찌 용납하겠느냐?

느헤미야가 가장 처참한 불신 결혼의 예로 솔로몬의 이야기를 합니다. 솔로몬은 지혜의 왕으로 그 지혜를 누구도 따라할 자가 없었습니다. 다윗과 밧세바의 불륜으로 손가락질을 받으며 태어났어도 다윗의 아들들 중에서 왕위를 계승한 정말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를 맛본 사람입니다. 3천 개의 금원을 짓고 성전을 완성하고 일천 번제를 드리고 그렇게 대단한 솔로몬이 하나님을 배반할 것이라고 누가 생각을 했겠습니까? 그런데 그 일이 현실로 일어난 것은 이방 여인, 불신 여인을 취했기 때문입니다. 이방 여인이 그로 범죄했다고 했습니다. 각국의 뭐 공주들 다 데려왔어요. 세상적으로 모든 최고의 학벌을 가졌겠지요. 열왕기상 11장을 읽어 보시면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말할 수 없는 죄와 돈과 능력을 주시고 무역으로 세계 강국을 이루게 하셨어요. 그러니까 11조 신앙, 안식일 신앙, 성전을 짓고 예배를 열심히 드리던 이 솔로몬이 달라졌습니다. 솔로몬이 여자에게 미쳐서 여호와를 떠났어요. 하나님이 두 번이나 눈에 보이게 나타나셔서 진노하시고 가진 말씀으로 돌이키라고 하셔도 솔로몬이 권력과 돈이 생기니까 뭐 사르코지가 육합니까? 사르코지는 세 번, 네 번이지만 솔로몬은 천 번이잖아요. 천 번. 말씀이 안 들립니다.

심지어 예루살렘 앞산에 이방신을 위한 산당까지 지어서 여자들에게 바쳤습니다. 솔로몬이 이러면서 아들 르호보암에게는 잠언을 썼습니다. 자기는 아버지 하나님 말씀을 안 들으면서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듣는다고 썼습니다. 웃기지 않아요? 음부와 유명은 만족함이 없고 음녀의 호림에 넘어가지 말라고 보수 같은 잠언을 썼어도 아들 르호보암에게 보여준 삶은 천 명의 여자를 바꿔느린 것입니다. 여기서 어떻게 문제가 안 나오겠습니까? 어린 나이에 못 볼 꼴을 보고 자란 사람이 르호보암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천 명의 여자와 하루도 안 빠지고 잔다고 해도 여자 한 명이 솔로몬을 만날 차례를 기다리려면 3년 더 넘게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니까 차례가 안 돌아오는 여자들은 외로움에 한이 되어서 자기가 섬기던 밀곰신, 무슨 뭐 아스타로신 이런 것들을 섬기면서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거예요. 온유월 여자의 한이 서리빨이 맺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르호보암에게 선한 것이 있었겠습니까? 은쟁반에 옷구슬 같은 기가 막힌 말을 아버지가 해도 아버지의 삶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에 결국 나라를 지키지 못했고 하나님 여호와께서 경고하신 대로 열 지파를 잃어버리고 남북이 갈라지고 후에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게 된 모든 원인이 솔로몬에게 있었습니다. 이방 여인을 취한 것이 범죄 중의 범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적용해 보세요. 문제 자녀의 방황이 불신 결혼의 결론인 것을 깨닫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 말로는 믿음을 강조하면서 세상의 가치관을 온몸으로 보여 주면서 자녀의 불신 결혼을 조장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 번째, 그러므로 불신 결혼은 막아야 합니다. 느헤미야가 어떻게 막았는지 보겠습니다. 솔로몬 왕도 대제사장 엘리야십도 불신 결혼의 예외가 없는 모습을 오늘 우리가 이제 보았습니다. 25절입니다. 에이 에이 불신 결혼에 대해서 내가 그들을 책망하고 저주하며 그들 중 몇 사람을 때리고 그들의 머리털을 뽑고 이르되 너희는 너희 딸들을 그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 아들들아 너희를 위하여 그들의 딸을 데려오지 아니하겠다고 하나님을 가르쳐 맹세하라.

느헤미야는 그들을 책망하고 저주하고 때리고 머리털을 뽑았습니다. 여기서 불신 결혼을 막을 사람은 느헤미야 한 사람밖에 없는 것을 봅니다. 유다 귀인과 지도자들은 물론 이거 대제사장까지 삼발락과 도비아, 도비아 같은 원수와 혼인과 동맹을 혼인으로 동맹을 맺고 가서 잘 살면 되지. 불신 결혼이 무슨 상관이야. 믿게 하면 그만이지. 하고 있으니까 지금 목숨을 걸고 막고 있습니다. 거기에 말할 수 없는 영혼의 고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고통으로 이 땅에서 주님을 만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면은 영원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책망하다라는 동사는 11절에서 11조 문제로 민장을 꾸짖을 때와 17절에서 안식일을 안 지킨 유다 귀인들을 꾸짖을 때 사용한 것과 같은 동사로 이 불신 결혼을 책망합니다. 그러니까 11조, 안식일, 불신 결혼이 각각 사는 달라도 영적으로는 다 똑같은 종류의 죄악이라는 것입니다. 몸의 털을 뽑는 것은 심한 모욕인데 이 동시대의 또 선지자 우리 에스라 제사장 에스라는 에스라 9장 3절에서 불신 결혼을 막기 위해서 자기 수염을 막 뜯었습니다. 머리털을 지금 뽑고 수염을 뜯고 유다 공동체 정체성이 무너지는 일이기 때문에 심한 모욕으로 경고를 합니다. 이방 여인을 무시해서가 아닙니다. 문자적으로 민족적 혈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믿음과 불신의 문제입니다. 믿음의 모델로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신과 불신을 보여 주시는 것이지 모압과 암몬과 아스돗을 무시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불신 결혼을 막아야 할 지도자들이 이방인과 통혼했습니다. 이것이 심각한 일입니다. 교회에 수천 명, 수만 명의 사람이 모인다고 해도 이 불신 결혼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으면 100년 후 교회의 미래는 없습니다. 불신 결혼으로 태어난 자녀들이 유다 말을 못 쓰고 성경을 못 읽게 되었듯이 교회도 무너지게 됩니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의 믿음의 결혼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신 결혼을 막기 위해 어떤 조롱과 모욕을 줘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결혼 전에 조롱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불신 결혼을 한 후에 겪을 고통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어떤 모욕을 주더라도 결혼 전에 막아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모욕을 주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27절, 8절입니다. 너희가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아 이 모든 큰 악을 행하여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을 우리가 어찌 용납하겠느냐? 대제사장 엘리야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 하나가 호론 사람 삼발랏의 사위가 되었으므로 내가 쫓아내어 나를 떠나게 하였느니라. 결혼한 대제사장의 증손자를 쫓아내고 자리를 빼앗았습니다. 11조 문제에서 대제사장 엘리야십을 꾸짖지 않았죠. 민장들을 꾸짖던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른 불신 결혼만큼은 두고 볼 수 없어 이 제사장을 쫓아냈습니다. 왜냐하면 11조는 돌이킬 기회가 있지요. 불신 결혼은 하고 나면 돌이킬 기회가 없잖아요. 가장 중요한 것이 불신 결혼이란 것은 그만큼 불신 결혼에 구원의 문제가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지혜고 타이밍이고 그것은 사랑입니다. 늘 구원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성경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이야기하면 대제사장이 깨닫고 돌아와야 하는데 느헤미야의 권면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고 끊지 않았기 때문에 쫓아냈습니다. 이것을 문자 그대로 적용해서 안 믿는 배우자를 집에서 쫓아내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결혼 전에는 불신 결혼을 하지 말라는 뜻이고 이미 결혼을 했다면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나의 이방 가치관을 쫓아내라는 뜻입니다. 느헤미야가 쫓아냈다고 해도 제사장으로서 회개하며 안 떠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 직분을 버리고 떠났어요. 왜 그랬을까요? 직분과 비교가 안 되는 장인 삼발랏의 돈과 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이 증손자 제사장이 므낫세인데 삼발랏이 그를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과 똑같은 성전을 그리심산에 세워줬다고 합니다. 그래서 므낫세가 그리심산 성전의 제사장이 됐습니다. 예루살렘 성전하고 똑같은 성전을 지어 줄 재력이 있으니까 그 제사장 직분을 던지고 삼발랏에게 간 것입니다. 이렇게 돈이 많으면 누구의 말도 안 들립니다. 아유 느헤미야가 웬 느헤미야, 아유 별 꼴 다 봤네 이러면서 느헤미야를 전혀 존경하지 않습니다. 뭘 말라 비틀어진 느헤미야? 이래서 나한테 말할 사람이 그 누구야?

그래서 이제 30절에 보면 내가 이와 같이 그들에게 이방 사람을 떠나게 하여 그들을 깨끗하게 하고 또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을 세워 각각 자기의 일을 맞게 하고 믿음 되신 권세를 택한 제사장은 떠나야 합니다. 그가 떠나야 이스라엘 공동체가 살아납니다. 가론 유다가 예수님을 팔 목적으로 떠날 때 요한복음 13장 31절은 예수님이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다고 하셨어요. 유다가 떠났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영광을 받았다고 하는 거예요. 명예와 권력과 좋은 성품을 가지고 있어도 깨끗하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도저히 하나님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 불신과 의심으로 공동체를 흔드는 사람은 떠나게 둘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29절, 31절에 내 하나님이여 그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더럽히고 제사장의 직분과 레위 사람에 대한 언약을 어겼사오니 그들을 기억하옵소서. 또 정한 계 안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지금 이제 11조, 안식일, 불신 결혼할 때마다 나를 기억해 달라고 하나님 나를 기억해 달라고 그들을 기억해 달라고 합니다. 느헤미야는 29절에서는 죄를 범한 그들을 기억해 달라 그러고 31절에서는 내가 백성들에게 가르쳤다. 11조를 드리도록 가르쳤다. 그러니까 나를 기억하사 복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사람을 두려워하면 불신 결혼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급을 최고의 상급으로 여기지 않으면 불신 결혼하지 말라는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대제사장 엘리야십도 느헤미야의 말을 안 들었는데 누가 이 말을 듣겠습니까? 불신 결혼을 막는 것이 너무나 외롭고 힘든 길이기에 하나님께 기억해 달라고 계속해서 간구합니다. 여러분 11조 하라는 소리보다 불신 결혼하지 말라는 소리가 훨씬 어려운 얘기입니다. 여러분들이 막상 그 입장에 닥치면 모든 걸 갖췄는데 하지 말라고 하면 떠납니다. 저절로 교회를 떠납니다.

솔로몬 후에도 성경에는 많은 불신 결혼의 예가 기록되 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유다 왕의 계보에서 성군인 여호사밧 왕이 있었습니다. 역대하 21장에 보면 이 여호사밧이 성군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아들 여호람을 북 이스라엘의 아합과 이세벨의 딸과 아이 불신 결혼을 시켰어요. 아합이 우상을 섬기는 악한 왕이었지만 상하궁을 지을 정도로 정치를 잘하고 재물과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왕이 우상을 섬기는 아합과 이세벨의 딸을 며느리로 맞았습니다. 이게 있을 성군인 여호사밧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은 아합의 북 이스라엘이 요셉의 후손이고 강성한 왕가의 딸이니까 얼마든지 합리화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역대하 11장, 역대 22장에 보면은 사돈 관계가 된 나합의 안에 이세벨은 레위의 딸로 바알의 딸이고 바알을 섬긴 왕의 딸이에요. 자, 세상적으로 보면 아버지도 왕, 남편도 왕, 아들도 왕입니다. 딸 아달랴도 유다로 시집갔지만은 엄마 그대로 닮아서 아버지도 왕, 시아버지도 왕, 남편도 왕, 아들도 왕이었어요. 그야말로 로열 패밀리 중에 로열 패밀리였어요. 그럼에도 권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만족을 못 하고 아들 아하시야가 죽었는데 손자들을 자기 손으로 다 죽이고 왕의 씨를 진멸하고 스스로 여왕이 됐어요. 여자가 권력이 없는 게 아니에요. 보니까 무섭게 공부하고 무섭게 성공했을 때 이런 결과가 나옵니다. 결국 열왕기상 21장에 하나님께서 이들을 다스리셔서 아합과 이세벨을 나봇의 포도원에서 개들이 그 피를 핥은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하셨고 역대하 23장에서는 아달랴도 왕궁에서 쫓겨나 백성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근데 아달랴로 인해서 유다 왕의 계보가 끊어질 뻔했어요. 그것은 불신 결혼으로 인해 예수님의 계보가 끊어질 뻔한 아주 엄청난 위기가 온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장에 예수님의 계보에서 유다 왕들이 언급될 때 놀랍게도 아달랴의 아들 왕 사대는 모두 빠져 있었어요. 아달랴뿐만 아니라 그 아들 왕들도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보여 준 거죠. 이월 성신을 섬기고 포악을 떨던 므낫세도 예수님의 계보 올라갔어요. 자식을 우상의 제물로 불태워 바친 아하스 왕도 올라갔어요. 그런데 보이지 않는데 명맥은 이어갔지만 그래도 아하시야, 아달랴, 요아스, 아마샤 이 네 명은 예수님의 계보에서 빠진 거예요. 유다 왕의 계보에 올라갔는데 그 계보에 빠진 거예요. 예수님의 계보를 위협하는 불신 결혼은 도덕적인 죄와는 비교가 안 되는 무서운 죄입니다. 불신 결혼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를 보여 주는 것이 이 아달랴의 족보입니다.

여호사밧이 자기 아들을 불신 결혼, 여호람 불신 결혼시켰지만 여호람은 자기 딸 여호사베앗을 대제사장 여호야다와 결혼시켰습니다. 왕족이 대제사장과 결혼하는 것이 참 힘든 일인데 이렇게 믿음의 결혼을 시켜서 그 여호사베앗이 아하시야의 아들이자 자기 조카인 요아스를 그 어머니 아달랴가 다 손자들을 죽이는 가운데 성전에 숨겨서 살려냈습니다. 이 믿음의 결혼 덕분에 예수님 족보가 살아났습니다.

자, 그래서 이제 이런 같은 얘기가 여호수아에도 또 있는 거예요. 지금 느헤미야에도 있고 열왕기에도 있고 여호수아에도 23장 6절, 8절, 11절 보면은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하기를 친근히 하기를 오늘까지 행한 것 같이 하라. 너희가 만일 돌아서서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을 가까이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서로 왕래하면 계속 확실히 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더이되며 너희의 옆구리의 채찍이 되며 너희의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마침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하리라. 여호와께서.

우리가 덫이나 올무는 먹이로 위장되 있어서 처음에는 그 정체를 모릅니다. 나의 불신 결혼이 또 이방 세력이 어떠한 악영향을 끼칠지 모르기에 하나도 해로운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번 덫에 걸리면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결국 사냥꾼에 의해서 생명을 잃게 됩니다. 그것은 공포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채찍과 찌르는 가시가 됩니다. 실제적인 고통이 수반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가나안 땅에 거한다고 해도 아무리 좋은 교회를 다니고 겉으로 멋있는 이방의 돈과 미모와 모든 것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것이 수반되지 않으면 멸망의 땅입니다. 영적인 아름다운 땅을 멸시했기 때문에 육적인 아름다운 땅에서도 멸절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혼인이라는 것은 육체의 결합일뿐 아니라 영적인 연합이기에 불신 결혼은 심각한 배교 행위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멸절하리라 망하리라 하십니다. 믿지 않는 자와 결혼을 하지 말라는 것이 꼭 고난과 핍박 때문에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과 핍박이 오기도 하지만 영원한 생명으로 나가는 구원을 이루는데 결정적으로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느헤미야하고 마찬가지로 마지막 유언을 하면서 멸절하고 망하고 하면서 진노의 말을 훨씬 더 많이 했습니다. 이렇게 강조에 강조를 해도 여호수아 시대 이후 사람들은 가나안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면서 불신 결혼을 했습니다. 우리가 불신자와 결혼을 해서 그럭저럭 살고 믿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잘 사는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망하는 인생입니다. 제가 이 불신 결혼을 교회를 다닌다고 신결혼이고 안 다닌다고 불신 결혼 어 아닙니다. 정말 우리는 이 신앙 고백이 좀 있어야 되는 것 같아요. 모든 문제의 원인은 불신 결혼이고 이방인과의 결혼이 수많은 이방 우상을 집으로 가져오게 합니다. 안 믿는 사람은 공부가 우상이고 명예가 우상이고 외모가 우상이고 학력이 우상이어서 다들 그 우상을 섬기기에 너무 바쁜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숨기 직전에 이방 나라 이름을 부르지도 말라 가지도 말라 섬기지도 말라 절하지도 말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친근히 해라 하면서 해야 될 것 하지 말아야 될 것을 다 이론적으로 그냥 교훈을 하는데 딱 한 가지 구체적으로 적용 실례를 이야기한 그 한 가지가 바로 불신 결혼인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수아의 마지막 유언입니다. 네가 부모가 되어서 마지막 숨지기 전에 해야 될 말은 불신 결혼하지 말라. 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저 이것이 참 성경의 가장 큰 주제예요. 우리가 골로새서도 총체적인 악이 불신 결혼이라고 했어요. 우리가 정말 창세기에도 이 어디서나 제 불신 결혼 그냥 끝도 없이 제가 얘기를 합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주제가 불신 결혼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유언으로까지 말하는 여호수아의 마음을 아시겠습니까? 제가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여호수아서 이렇게 나와 있는데도 김 목사만 저렇게 불신 결혼을 반대하더라. 이러시겠습니까? 김 목사가 아니라 느헤미야, 여호수아가 마지막 죽으면서 이야기하는 이 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올무가 되고 덫이 되고 채찍이 되고 가시가 되어서 너무 힘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했던 사역도 바로 신결혼 사역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의 배필을 구하기 위해 종 엘리서를 보내면서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고 했습니다. 세상이 바뀌었다고 해도 자녀의 결혼에서 부모의 역할은 절대적입니다. 결혼을 오로지 자녀의 선택에만 맡기고 아유 지들끼리 좋으면 됐지 뭐. 그럼 안 됩니다. 자녀가 믿음의 결정을 하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또한 자녀가 믿음의 결혼을 소원하도록 삶으로 본을 보여 줄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믿는 사람들끼리 결혼해서 교회를 아주 형식적으로 다니는 이 부부들이 너무나 많아요. 삶으로 전혀 부모들이 본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기복이 쫙 깔려 있기 때문에 이건 너무 중요한 일입니다. 불신 결혼은 완전히 부모의 책임입니다. 부모는 온몸으로 세상을 좋아하면서 오직 립서비스로만 믿음을 들먹이고 너는 믿음의 결혼을 해라. 그러면 그게 먹히겠습니까?

어떤 부모님은 잘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 형제와 오랫동안 사랑을 키운 딸의 결혼을 몇 년간 반대합니다. 속으로는 남자예요. 직업이 못 마땅하면서 이렇게 겉으로는 이렇게 협박을 합니다. 내가 기도해 보니까 너희들이 결혼하면 하나님이 친다 그러더라. 도대체 치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를 다니는데 이렇게 기복 신앙에 젖어 있는 것이 말이 됩니까? 우리들 교회라고 없겠습니까? 이제 다음에는 그걸 한번 또 알려 드리겠어요. 결혼 시키라고 제가 협박을 좀 해야 되겠습니다.

느헤미야 1장부터 7장까지 성벽 증수가 끝나고 8장부터 13장까지 힘든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느헤미야가 책임자를 배치하고 언약을 갱신하고 도장을 찍고 개혁을 주도했지만 느헤미야가 바사로 돌아가자마자 대제사장 엘리야십이 도비아와 연락을 하고 11조 방을 내줬습니다. 11조가 무너지고 경제적인 이유로 안식일을 범하고 대제사장의 증손자까지 이방 여인과 결혼시켜서 모국어를 잃었습니다. 감격스러운 성벽 낙성식을 거행하고 모든 일이 해피 엔딩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종합 선물 세트처럼 문제가 터집니다. 성경이 진실한 기록이기 때문에 이런 힘든 말씀도 다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11조 하고 안식일 지키면 문제가 안 생깁니까? 병이 안 걸립니까? 다 똑같이 생깁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의 감격 속에서 평생 살다가면 좋겠지만 죽을 때까지 수많은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이것이 있어야 될 일인 거예요. 문제를 만나는 거예요. 이상한 일로 여기시면 안 되는 거예요. 11조를 놓고 이상한 일로 여기시면 그게 기복적으로 헌금을 했다는 뜻입니다. 때마다 하나님에 대한 그 신앙 고백이 우리를 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 고백이 있는 자녀를 키워내야 되고 신앙 고백이 있는 자녀들끼리 결혼을 시켜야 합니다. 그게 신결혼이에요. 그래서 말씀을 듣기를 싫어하는 거예요.

저는 진짜 한 주일도 안 빠지고 교회 오면 눈물이 납니다. 여러분들의 나눔을 읽고 아직도 너무나 믿음이 없는 그분들을 생각하면 그냥 뭘 할 때마다 그 나눔들이 생각이 납니다. 인간이 최고로 무서워하는 높이가 11m라고 해요. 공수부대 훈련 시에 그 11m 높이에서 한번 뛰어내리고 나면 그 더 높은 곳에서 얼마든지 뛰어내린다고 합니다. 근데 그 11m에서 못 뛰어내린다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그 최초의 11조가 바로 그 11m래요. 너무너무 못한다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나눔을 보니까 11조 결사 반대, 내 돈이 아까운데 왜 교회다 돈을 갖다 내냐? 이렇게 전혀 이제 믿음의 초보요. 신앙 고백이 안 된 분도 계세요. 전 김동호 목사님이 그 최초의 11조가 11m라고 하는 얘기를 들었어요. 근데 그 최초의 11조가 너무 아깝고 또 무서워서 안 하고 그래서 안식일을 안 지키고 불신 결혼으로 가면 인생의 많은 문제들 앞에서 곧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최초의 11조를 지키는 사람이라면 주일의 돈벌이 욕심으로 안식일을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어떤 분은 그랬어요. 이제 우리들 교회 와서 처음으로 신앙생활 시작하고 정말 열심히 주일 예배를 다니는데 자기가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된다. 한 주일에 두 번씩 그래도 안 오는 날 주일 설교를 막 두세 번씩 듣고 자기 10분의 1조도 하고 하는데 그 안식일을 안 지켜서 그치만 목사님이 안식일의 주인이 예수님이라 이래서 너무나 위로를 얻었다고 제가 그런 분 안식일을 안 안 지킨다 그러는 건 아닙니다. 안식일을 안 지키면서 안 믿는 사람과 연애하기는 너무 힘든 거지. 불신 결혼 위험도 줄어들 것입니다. 그래서 11조와 주일 성수 훈련을 철저하게 시키는 것이 불신 결혼을 막는 지름길입니다. 안 믿어진다고 세례를 안 받고 11조를 안 하고 주일 성수를 안 하면 당연히 이 자녀들은 불신 결혼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11조와 안식일을 목숨처럼 지키는 사람이 안 믿는 배우자와 살 생각이 들겠습니까? 제가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해서 교회의 재정을 위해서 여러분들 보고 11조를 하라고 합니까? 저는 11조 설교는 거의 하는 적이 없는 거 같아요. 본문이 나올 때는 하는데 죽자고 한 거는 불신 결혼 얘기는 죽자고 했습니다. 근데 성경대로 있었기 때문에 제가 느헤미야 할 때 이게 영원히 나와서 했었어요. 성경의 본문의 설교가 나올 때는 제가 하지만은 성경대로 이렇게 안식일을 지키게 하고 11조를 비교적하게 하고 그리고 정말 불신 결혼을 하지 않게 했더니 교회가 부흥이 되었어요. 상상치도 못하게 폐허된 예루살렘 성전을 회복시킨 능력의 지도자 느헤미야가 마지막에 막 그냥 정말 피를 토하는 11조, 안식일, 불신 결혼 설교로 마무리를 합니다. 이것을 잔소리가 아닌 축복의 메시지로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느헤미야처럼 저도 말씀에 의거해서 11조, 안식일, 불신 결혼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잘하게 하는 데는 절대적으로 오늘 지도자가 중요한 걸 봤어요. 느헤미야가 사라지니까 아무도 안 해요. 그까 이 노릇을 어떻하면 좋은가 그 생각이 막 듭니다.

제 11조 설교를 듣고 거부감이 분명히 드는 분들이 있는 걸 압니다. 그러나 11조가 날마다 재물이냐 하나님이냐 이걸 선택하는 거예요. 이렇게 날마다 선택하는 훈련을 했으면은 불신 결혼 앞에서 어마어마한 부요가 있고 외모가 있고 권력이 있다고 그래도 11조 훈련 해 본 사람은 그거를 안 할 수가 있어. 그런데 여러분들은 평소에 11조 아깝다고. 11조 설교는 기분이 나빠도 불신 결혼 설교는 하나도 기분이 안 나빠요. 눈앞에 보이는 것만 아까워서. 11조 설교 듣고도 떠나도 불신 결혼하지 말라는 거는 그때는 안 떠나도 막상 할 때가 되면 떠납니다. 정말 기분 나빠합니다.

대제사장 엘리야십도 불신 결혼을 했는데 이걸 누가 얘기하겠습니까? 나 아다시피 제가 이렇게 힘든 메시지를 날마다 전하는 것은 여러분을 정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문자적으로도 말라기 3장 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온전한 11조를 여기 성경적으로 온전한 11조가 나옵니다. 온전한 11조를 참고히 드려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것이 없도록 붙지 아니하나 보라. 저 이 구절을 오늘 처음 읽었습니다. 12년 만에. 저는 이거 복받으라고 지금 이 구절을 그렇게 인용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입니다. 자신이 있으시니까 시험하여 보라고 하셨는데 여러분도 내가 죽은 뒤에라도 시험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번에 우리가 11조 나눔을 했어요. 그랬더니 11조 간증들이 참 많더라고요. 그런데 또 안 하는 분들도 꽤 많더라고요. 저는 또 그 지경일지는 몰랐어요. 그런데 안 하는 분들도 솔직하게 안 한다고 나누어 주셔서 그게 그렇게 감사해요. 아주 참 배짱이 든든하세요. 전부 다 안 한다고 쫙 얘기하니까. 그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11조를 하나 안 하나 이렇게 물어보는 교회도 아마 없을 것 같아요. 어떻게 그렇게 프라이빗한 얘기를 막 물어보세요 여러분들을 위해서. 그래서 정말 여러분들을 저는 우리들 교회를 하나님이 이렇게 지켜 주신 것은 그 정말 11조를 한 그 신앙 고백이 있는 분들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100% 조하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해요. 온통 그 신앙 고백이 있다면 소도 잡고 말도 잡고 여기는 정말 100% 정말 그 교회는 진짜다 그런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결혼을 한 사람들이 모일 때 튼튼한 가정과 교회와 튼튼한 나라가 세워질 것입니다. 그래서 지나고 보니까 기적이 일어났어요. 우리들 교회가 창립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청년부에 2천 명이 넘는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청년들이 신결혼에 대한 인식이 확고하기 때문입니다. 청년들이 나와서 매주 예배 때마다 간증을 합니다. 나는 우울증이고 스펙이 없고 혼자 낙태했고 혼전 순결 못 지켰고 아이까지 나왔다고. 그러니까 시집 안 가도 안 안 간 청년들이 이렇게 얘기를 하니까 혼사길 막힌다고 걱정했지만 간증으로 믿음의 공동체에서 검증이 되었기 때문에 간증한 청년들이 결혼도 잘되고 잘 사는 걸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너무나도 치열하게 신결혼을 했기 때문에 지금 아다시피 32만 쌍이 결혼을 하고 12만 쌍이 이혼하는 시대예요. 거의 40%에 가까운 결혼이 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2천 명이 넘는 우리 교회 청년부 아이들이 다 이렇게 문제가 많은데 단 한 커플도 이혼 안 했다는 것은 정말 불신 결혼을 아는 최고로 우리들 교회를 축복하신 것은 아무도 이혼을 안 했다는 것입니다. 신결혼을 했기 때문에 이혼을 안 했어요. 그 말씀으로 그니까 이 아이들이 정말 안식일을 지키고 이 11조를 했기 때문에 이 신결혼에 대한 것이 너무나도 확고하기 때문입니다.

적용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머리털을 뽑고 때리고 책망하는 느헤미야의 사랑으로 불신 결혼을 막고 있습니까? 엄마는 말이 안 통해 아빠는 광신자예요. 이런 말이 듣기 싫어서 교양 있게 방관합니까? 결혼을 앞두고 갑자기 막는다고 막아지겠습니까? 자녀의 불신 결혼을 막기 위해 지금부터 11조와 안식일 신앙을 지키며 믿음의 결혼으로 인한 축복의 본을 여러분들이 보여 보이셔야지 자녀들이 불신 결혼으로는 안 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하나도 안 섬기면서 자녀들이 신결혼하겠습니까? 모든 여러분들의 신앙은 자녀들에게 그대로 전수가 될 줄을 믿습니다. 참으로 우리들 교회에 그렇게 온전한 11조를 하는 성도들 때문에 여러분들이 복을 지금 받으신 거예요. 하나님이 그들의 신앙 고백을 지금 무시하지 않으시고 우리들 교회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들도 그 대열에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공동체 고백입니다. 아버지 쪽으로 4대, 어머니 쪽으로 3대에 신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저는 불신 가정에는 절대로 시집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 건축 지분을 대며 장로 직분을 생명같이 여기신 아버지는 목사님과 갈등하며 결국은 오해한 누명을 쓰고 우리는 우리 가족은 그 교회에서 쫓겨났습니다. 돈 앞에 무너진 엘리야십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아버지 열심과 상처로 인해 삼발랏 성전을 지어 준 것처럼 교회 건물 구입에 뒷바라지를 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영적으로 침체된 상태에서 인류대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던 저도 믿지 않는 다른 것 하나 빼고는 믿지 않는다는 것만 믿지 않는다는 거 하나만 빼고는 외모, 성격, 학벌이 다 좋은 남자와 교제했습니다. 그의 부모님이 이혼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믿으면 절대 이혼하지 않는다는 한 마디를 전했더니 그의 온 가족이 교회 나와 등록했습니다. 이세벨이 자신의 힘으로 남편도 왕, 딸도 왕, 사위도 왕으로 세운 것처럼 이 일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지 않고 내 힘으로 구원시켰다면서 결혼을 진행했습니다. 내 힘으로 전도할 수 있다고 확신에 차서 불신 결혼을 했습니다.

악하고 음란하게 살기 위해서 불신 결혼을 한다고 하는데 결혼을 하고 나니 이 불신 결혼을 한 자매가 남편이 괴롭혀서가 아니라 남편이 우상이 되어서 이게 지옥에 일투족을 이 여자가 감시하는 거예요. 저희 집착으로 남편은 주일만 교회 나오고 구원의 기쁨은 누리지 못한 채 복음을 일삼으며 인생이 허무하여 죽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불신 결혼을 해서 남편이 괴롭히는 게 아니고 여자가 남편을 괴롭히는 것도 똑같이 불신 결혼의 결론인 거예요. 집착하는 게 얼마나 무서운 줄 압니까? 저는 그런 남편을 이해하지 못했고 남편의 마음은 점점 문을 닫아갔습니다. 외로움 속에 막내들이 대학 갈 날을 손꼽으며 이혼을 결심했습니다. 솔로몬이 지혜의 잠언을 남겼어도 삶으로 본을 보이지 않아서 르호보암 때 망한 것처럼 아들 역시 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불신 교제를 또 시작했습니다. 아들의 여자 친구의 아버지가 딸의 공부를 방해하지 말라며 수물을 주는 사건이 왔고 아들은 새벽 2시에 베란다에서 떨어져 죽으려고 했습니다. 남편과 나의 힘든 관계를 보며 자랐기에 아들의 불신 교제와 자살 시도는 제 삶의 결론이었습니다. 불신 결혼은 불신자니까 불신 결혼을 하는 거예요. 교회 교회 다닌다고 신결혼이겠습니까? 저는 그래서 11조 신앙이 필요한 거예요. 교회를 왔다 갔다 하면서 여기를 무슨 어디 강좌 강의 듣듯이 왔네. 그게 아닌 거예요. 믿음의 가정에서 자란 제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불신 결혼을 하고 병적인 화를 내며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이혼하려고 했습니다. 아달랴 한 사람 때문에 예수님의 계보가 위협을 받은 것처럼 저로 인해서 가족의 구원이 멀어지고 제가 가족을 고통 속으로 몰아가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하나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심어 주며 불신 결혼을 막기는커녕 아스돗 방언으로 키우며 세상 학벌과 성공에 치중하던 저의 모습을 깊이 회개합니다.

그러니까 이 문제가 나오기 전까지 다들 회개를 안 하네요. 아까 집사님도 그렇고 이 문제가 나와 막 자살한다 그러고 이러기 전까지는 아 정말 찌르고 가시가 되고 그러네요. 자녀의 고난 앞에서 저의 죄를 회개하며 이제라도 말씀으로 양육하고 세상 가치관을 끊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아들딸이 청년부의 목자로 섬기며 양육을 받았습니다. 실수를 한 솔로몬의 솔로몬과 여호사밧 또 마태복음 족보에 올려 주신 주님이 저와 우리 가정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의 계보에 올려 주시기를 원합니다. 교양이 아닌 정말 진심으로 11조와 안식일 신앙의 본을 보이며 불신 결혼을 막는 믿음의 부모가 되기를 원합니다. 할렐루야.

오늘 불신 결혼이 왜 중요한지 아셨습니까? 얼마나 정말 기가 막히면 수염을 뽑고 머리털을 때리고 저주하며 책망하며 때리겠습니까? 어떻게 목사님은 11조를 안 한 엘리야십을 그렇게 두둔을 할 수가 있는가? 두둔한 게 아니고 그때마다 지도자를 내리면은 다 지도자가 다 없어지고 지도자를 단두대에 올리면 이 공동체는 어디로 흘러가겠습니까? 그런 느헤미야도 그렇게 엘리야십을 보호했지만 이 불신 결혼 앞에서는 저주하고 책망하고 때려 떼잖아요. 머리털을 뽑아 떼잖아요. 얼마나 이게 우리의 영혼이 막아지기 때문에 하늘나라 아무도 못 가기 때문에 그는 그동안에 12년 동안 제가 얼마나 불신 결혼 설교를 했는지 여러분들이 아실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불신 결혼을 하지 않기 위해서 불신 결혼의 배우는 악과 음란입니다. 이제 총체적인 악이 불신 결혼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문제아가 따라온다고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믿음의 가치관으로 준비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불신 결혼은 구원의 계보를 위협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명감을 가지고 막아야 합니다. 머리털을 뽑고 때리고 책망하는 느헤미야처럼 불신 결혼은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보여 줄 것이 11조, 안식일 신앙을 목숨처럼 지키면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그거밖에 길이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세상은 들리고 사람들은 변하여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사랑을 영원히 변하지 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아멘. 오직 믿음으로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믿음으로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믿음 흔들리고 믿음 흔들리고 사람들 주를 떠나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나라는 주님의 나라는 영원히 쇠하지 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아멘.

고백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믿음으로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의인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아멘.

오직 의인은 오직 의인을 믿음 한 번 더 고백하겠습니다. 오직 의인은 오직 의인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오직 이름 오직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불신 결혼과 이혼을 앞둔 가족이 있으십니까? 음란에 처한 가족이 있다면 저들을 기억하시고 나를 기억해 달라고 기도하십시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어떤 죄악 가운데에서도 구하시는 것을 믿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각자 집안과 목장과 교회에서 거룩한 지도자가 되어 잘서 있으면 하나님이 오늘 선한 일을 기억하신다고 하십니다.

이제 참으로 우리가 자녀들의 불신 결혼을 맡기 위해서 내가 하나님과의 신앙 고백이 있고 주님을 사랑하는 거를 그냥 보이기 위해서 11조 신앙과 안식일 신앙이 회복될 수 있도록 자녀들에게 해줄 유일한 신앙의 모범인 걸 알고 그렇게 내가 결단하고 살게 해 달라고 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저는 11조 신앙이 무엇인지를 또 안식일 신앙이 무엇인지를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통해서 보았습니다. 11조가 아니고 10조 신앙이 무엇인지를 보았습니다. 그때는 그것을 무시했지만 제가 그 신앙을 갖기 위해서 이제 저도 이기고 이기고 세상에서 되니 그때는 11조 신앙이 없었습니다. 믿고 나니 보여준 어머니 삶으로 가르쳐 준 것만 생각이 나서 이제 그 신앙을 따라가는데 그래도 제가 가장 감사한 것은 우리 아이들이 과연 신결혼을 할 것인가 그신 늘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속지 않으시기 때문에 늘 자신이 없었고 기적같이 신결혼을 했습니다. 이것은 제 인생에 가장 감사이고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 11조를 쌓아서 하나님께서 나의 창고에 놓으면은 정말 싸울 것이 없도록 복을 주지 않나 시험하여 보라고 했는데 그 복이 세상적으로 잘되고 모든 것이 영광받는 이제 그거가 돼서가 아니라 그냥 보여줄 것이 없고 날마다 우리 자녀들도 아프고 여전히 힘든 일이 많이 있지만은 는 그래도 우리가 말씀 안에서 같이 나누고 오뚜기처럼 또 제자리에 돌아오고 이것이 하나님 앞에 너무 감사하고 고통 속에서 더욱더 성숙해져 가는 정말 그것을 알게 되니 이것이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11조 신앙을 통해서 하나님 자체가 상급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가 알고 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 주님을 사랑합니다. 사랑한다고 정말 이렇게 고백할 수가 있어서 감사합니다.

여러분들 가운데서 정말 아직도 이런 신앙 고백이 없어서 제가 너무 애통합니다. 주님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저를 기억하셔서 우리의 모든 성도들이 조항을 회복할 수 있도록 신앙 고백이 있을 수 있도록 주님 은혜 위에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우리의 자녀들이 불신 결혼으로 가지 않도록 현재의 고난은 잠깐이라고 했는데 잠깐인이 현재 속에서 말씀으로 해석받고 갈 수 있도록 어떤 환경 가운데에서도 지옥을 경험하지 않으며 천국을 누릴 수 있는이 자녀들이 될 수 있도록 주님 정말 신교론으로 가는 것이 그렇게 아버지 하나님 신구리처럼 오아시스가 아닌 거 알지만은 우리가 그래도 신앙 고백으로 같이 갈 때에 말할 수 없는 천국을 누리 는 공동체가 되며 가정이 될 것을 믿습니다.이 축복을 우리 다 같이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꼭 그렇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모든 신앙이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Yea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