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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큰 일을 앞둔 자식에게 전하는 부모의 마음. 힘내라는 말이 너무 가볍게 느껴졌고, 잘해라는 말은 혹시 짐이 될까 싶었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손끝으로 내 어깨를 한번 토닥였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애써 왔는지 알고 있다. 밤 늦게까지 불켜진 방 안에서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과 싸우던 너를. 오늘 너는 세상으로 나아간다. 내가 대신 걸어줄 수 없는 길. 그 길의 문턱에서 나는 다만 조용히 기도했다. 부디 이 길 위에서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를. 결과보다 그 순간의 진심이 너에게 자부심이 되기를 바랐다.
삶은 소유가 아니라 순간순간에 있습니다. 법정 스님은 말씀하셨다.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에 있습니다. 그 말을 자주 되뇌곤 했다. 자식을 키우며 깨달았다. 우리는 자식을 키우는 게 아니라 그와 함께 잠시 머무는 시간을 선물받는 거라는 것을. 그 시간이 얼마나 더 덥는지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너의 손이 내 손보다 작던 시절이 있었다. 학교 가는 버스에 올라타기 전 "다녀오겠습니다" 하던 그 목소리가 어느새 "갔다 올게"로 바뀌고, 이젠 그 말마저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저 내 방 문틈으로 세어나오는 불빛을 보며 "오늘도 잘 있구나" 안도하던 나날들. 그게 내 하루의 전부였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모든 것은 순간순간 흘러가며 그 흐름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래서일까? 지금의 너를 바라보며 나는 문득 두려워졌다. 이 순간마저도 언젠가 사라질 거라는 사실이. 그 두려움이 바로 사랑의 또 다른 얼굴임을 이제 알 것 같았다. 사랑은 붙잡는 게 아니라 그가 자기 길을 갈 수 있도록 놓아주는 일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놓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오늘 아침 너를 문 앞에서 보냈다. 돌아서는 내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 순간 법정 스님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삶은 소유가 아니라 순간순간에 있습니다. 나는 그 한 문장을 붙잡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래, 지금 이 순간도 내 인생의 한 순간으로 온전히 살아 있는 것이구나. 너를 품에 두었던 시간도, 이제 너를 세상에 보내는 이 아침도 모두 나에게 주어진 살아 있음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눈물이 천천히 흘렀다. 슬퍼서가 아니라 사랑이 흘러간 자리에 남은 고마움 때문이었다.
법정 스님은 귀한 말씀을 남기셨다. 모든 인연은 한 때이며, 한 때에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 불안도 두려움도 모두 삶의 일부다. 마음속에서 스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스님, 왜 이렇게 마음이 불안한 걸까요?" "무엇이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나요?" "결과를 알 수 없다는 게 두렵습니다. 혹시 아이가 힘들면 어쩌나, 실패하면 어쩌나 그런 생각이 자꾸 듭니다."
스님은 잠시 눈을 감고 그리고 조용히 웃으셨다. "두렵다는 건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왜 두려움이 되는 걸까요?" "그건 사랑을 소유로 착각하기 때문이지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스님의 말이 가슴 깊이 내려앉았다. 자식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습니다. 그러니 결과를 걱정하지 말고, 부모가 할 수 있는 만큼의 기도를 다하면 됩니다. 그 나머지는 세상과 인연이 맡을 일이지요.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문득 떠올렸다. 아이 손을 처음 잡았던 날. 그 잡고 따뜻한 손끝이 내 손을 꼭 잡던 순간에. 그때도 불안했었다. 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내가 부모로서 부족하지는 않을까?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모든 불안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놓지 않았다. 두려움은 결국 사랑이 지나간 자리였고, 그 사랑이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이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두려움은 무지를 밑바탕으로 한다. 있는 그대로를 보면 두려움은 사라진다. 그 말씀처럼 나는 깨달았다. 내가 두려운 건 미래가 아니라, 내가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믿지 못해서였다. 오늘 나는 너를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너를 믿기로 했다. 불안은 내려놓고, 그 자리에 기도를 올려놓기로 했다. 잘되길 바라기보다 내가 평안하길 바란다. 그 한 문장을 마음에 새기며 촛불을 하나 켰다. 불빛이 잔잔히 흔들렸다. 그 빛이 내 마음 같았다. 불안과 사랑. 그 둘은 결국 같은 뿌리에서 자란 것이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불안했고, 믿기로 했기에 비로소 평안해졌다. 사랑은 걱정이 아니라 이해이며, 불안은 내려놓을 때 비로소 기도로 바뀐다.
잘되면 고맙고, 뜻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 오늘도 내 생각으로 하루가 시작됐다. 바람이 차가워질수록 내가 세상 속에서 얼마나 애쓰고 있을까 하는 마음이 더 깊어진다. 나는 내가 잘되길 바란다. 하지만 그보다 더 바라는 게 있다. 내가 다치지 않기를. 결과가 어떻든 그 길 위에서 마음을 잃지 않기를.
법정 스님은 말씀하셨다. 꽃이 피는 데는 각자의 철이 있다. 그 말은 언제나 위로였다.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려 애쓸 필요 없다는 뜻이니까. 나는 내 인생도 그러하다고 믿는다. 지금은 아직 봉일지라도, 언젠가 내 시간에 맞춰 피어날 거라 믿는다. 조급하지 않아도 괜찮다. 천천히 내 계절이 올 때까지 걸어가면 된다.
젊은 날의 내가 떠올랐다. 한때 나도 가슴을 조이고 결과에 울고, 세상에 나고된 듯 마음이 무너졌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내 곁엔 아버지가 계셨다. 나는 울면서 말했다. "다 실패했어요. 이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버지는 한참을 듣고 계시더니 조용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고했다. 그걸로 됐다." 그 말 한마디가 나를 살렸다. 결과가 아니라 내 노력을 알아주는 단 한 사람. 그 존재가 세상에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때의 기억이 오늘 너를 떠올리게 했다. 나는 이제 아버지의 자리에서 있고, 너는 나의 옛모습처럼 그 길 위에서 있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내가 잘되면 고맙고, 뜻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 시간에 내가 있었고, 그 순간 최선을 다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결과를 바라지 말고 행위를 다하라. 행위가 곧 길이며, 그 길이 곧 깨달음이다. 그 말씀처럼 나는 이제 결과보다 과정을 믿기로 했다. 내가 쏟아낸 노력, 그 속에 이미 열매가 들어 있다는 걸 믿는다. 이제는 어떤 성적표나 결과도 너를 판단할 수 없다는 걸 안다. 그건 그저 한 시절의 숫자일 뿐이다. 진짜 값진 것은 내가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디고 어떤 마음으로 이겨냈는가 하는 것이다. 너는 이미 내게 가장 큰 선물이다. 그동안의 시간, 그 웃음, 그 노력, 그 모든 게 나를 부모로 만들어 주었으니까. 그러니 오늘은 이 한마디만 전하고 싶다. 수고했다. 그걸로 됐다.
잘되면 고맙고, 뜻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 이 말 속에는 내 모든 사랑이 들어 있다. 너는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다. 이제 결과가 아니라 그동안의 내 마음을 안아주렴. 그게 진짜 어른이 되는 첫걸음이다. 부모는 단지 그 길을 믿고 지켜볼 뿐이다.
요즘은 내 얼굴을 자주 볼 수 없다. 함께 밥을 먹던 날보다 문득 내 생각이 스쳐가는 날이 더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마음을 다잡는다. 이제는 내가 나설 자리가 아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손끝이 허공을 향해 자꾸 닿는다. 부모의 마음은 참 이상하다. 손을 놓으려 하면 자꾸 잡고 싶고, 믿으려 하면 또 걱정이 앞선다. 그 모순 속에서 하루를 살아간다.
법정 스님은 말씀하셨다. 믿는다는 것은 간섭하지 않는 것이다. 그 한 문장이 내게 오래 남았다. 사랑한다고, 걱정된다고 말하면서도 결국은 그 마음으로 아이를 조이곤 했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어느 날이었다. 밤 늦게까지 연락이 없어 걱정이 몰려왔다. 전화기를 들었다가 결국 다시 내려놓았다. 괜찮을 거야.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을 건네며 텅 빈 거실에 앉아 있었다. 그때 문득 떠올랐다. 내 부모도 그랬겠지. 내가 집에 들어오지 않던 그 밤들. 그들도 이렇게 불켜진 거실에서 나를 기다렸겠지. 그 생각이 밀려오자 괜히 눈물이 났다. 부모가 된다는 건 그 기다림을 물려받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모든 인연은 스스로의 힘으로 피어난다. 부모는 다만 그 꽃이 자라도록 햇살이 되어 주는 존재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나는 조금은 편해졌다. 그래, 나는 이제 내가 가는 길을 막을 수도, 대신 걸을 수도 없다. 다만 그 길 끝에서 너를 믿어 주는 사람이 되면 된다. 잘되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고, 그 모든 과정을 통틀어 너는 지금 내 인생을 배우는 중이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걸 바라보며 또 하나의 인생을 배우고 있다.
요즘은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이제는 무엇을 해 주느냐보다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사랑의 모양인 것 같다고. 내가 내게 줄 수 있는 건 끝없는 조언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라. 나는 여전히 내 편이다. 다만 예전처럼 앞에서 있는 대신, 이제는 내 뒤에서 걸음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법정 스님은 말씀하셨다. 사랑은 간섭이 아니라 기다림이며, 기다림은 믿음으로 완성된다. 놓아주는 사랑, 믿음으로 남는 마음. 나는 마음속에서 스님께 말을 걸었다. "스님,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란 어디까지가 옳은 걸까요?" 그 물음에 스님은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부모의 사랑에는 옳고 그름이 없습니다. 다만 집착이 사랑을 가리기도 하지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걱정이 자꾸 앞서고, 이젠 다 큰 아이인데도 여전히 어리게만 보입니다."
스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셨다. "아이의 길을 대신 걸을 수 없습니다. 다만 그 길을 비추는 등불이 될 수는 있지요." 그 말을 듣자 마음속에 잔잔한 울림이 퍼졌다. 등불이요. 스님이 말씀하셨다. 그렇습니다. 바람이 불면 잠시 흔들릴 수는 있어도 꺼지지 않는 불빛. 그 불빛이 바로 믿음입니다. 자식은 그 불빛을 따라 자기 길을 찾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조언이 아니라 침묵의 믿음이라는 것을.
그날 이후로 나는 걱정이 밀려올 때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예야. 잘하려 하지 말고 진심으로 해라. 너는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다. 결과가 아니라 내 마음이 중요하다. 조급해 하지 마라. 모든 꽃은 제 철에 핀다." 그리고 마지막엔 꼭 이렇게 덧붙인다. "나는 늘 내 편이다. 언제든 지치면 돌아와라. 이 집은 언제나 내가 쉴 자리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함은 연민이요. 그 연민이 번뇌로 바뀌지 않게 하라. 이제 나는 조금 알 것 같다. 사랑은 붙잡는게 아니라 그의 길을 지켜보며 기도하는 일이라는 것을. 불안할수록 더 많이 믿고, 걱정될수록 더 깊이 이해하는 것. 그게 부모의 마지막 공부이자 평화였다. 우리가 자식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말은 "너는 이미 잘하고 있다. 결과보다 내 마음을 사랑한다. 나는 언제나 내 편이다. 넘어져도 괜찮다. 내가 살아가는 그 자체가 선물이다."
법정 스님은 말씀하셨다. 부모는 자식을 가르치는 존재가 아니라, 그가 자기 빛으로 설 수 있도록 믿음으로 기다려 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도한다. 내가 가는 그 길 끝에서 세상이 너를 다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부디 삶의 모든 순간마다 내가 빛나기를. 그 빛이 내 사랑에서 이어진 거라면, 이제 나는 더 바랄게 없다. 오늘도 부모의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세상이 그 길을 걷는 모든 이들을 따뜻하게 품어 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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