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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첫 번째는 이분들은 억울함이 별로 없어요. 피해 의식과 억울함이 잘 없어요. 그것을 분석하는 눈으로 이렇게 들어가서 대화하다 보면 몇 가지의 특징을 볼 수 있는 거 같은데, 첫 번째가 자율성의 척도가 아주 높다는 거거든요. 우리가 살다 보면 원하는 것들이 있잖아요. 가정 생활이나 조직 생활에서도 원하는 게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이제 소망이나 바람이나 욕구라고 얘기하잖아요. 근데 이런 것들이 뭔지를 아주 명확하게 알고 있다는 거예요.
두 번째는 이것을 성취해 나가고 이루어 나가야 되는데, 그것에 대한 책임을 본인이 지고 있어요. 내가 예를 들어 배움이라는 게 나한테 되게 중요한데, "네가 나한테 뭘 해 줘야 내가 배우지"라는 생각이 아니라, "내가 이 배움을 위해서 뭐를 할 수 있을까?" 작더라도 자기 스스로 책임을 가지고 있다라는 점. 그러니까 이들에게는 불평불만이나 억울함이 별로 없어요. 일단 이게 첫 번째 특징이었던 거 같고.
두 번째는 아담 그랜트라는 학자가 있잖아요. 기버에 대한 연구를 하는데, 가만히 봤더니 내 자신이 없는 셀프리스한 기버들이 있고 아주 똑똑한 스마트 기버가 있더라는 거예요. 셀프리스 기버는 우리가 욕구 차원에서 제가 이걸 한번 풀어보면, 내가 원하는 게 있지만 무시하는 거예요. 그러나 저 사람이 원하는 건 주고자 하는 거예요. 내 자신이 없는 기버잖아요. 그니까 이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았다는 거죠.
근데 스마트 기버는 뭐냐면, 내 자신에 대해서 첫 번째로 내가 뭘 원하는지를 아주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동시에 내 친구인 네가 뭘 원하는지도 내가 관심을 아주 많이 갖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연대 의식은 우리가 되게 이제 연대감 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이라고만 생각하지만, 반대로 내가 도움을 얼마만큼 줄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한 거거든요. "도와주세요"라고 할 때 마지못해 "네" 하는 건 셀프리스 기버들이 하는 행동이라면, 이 스마트 기버는 내가 물을 마시고 싶어서 물을 뜨러 나가는데, 내 친구의 물잔이 비어 있으면 "도와줄까요?"를 먼저 하는 거예요. "나 물 마실 건데 너 목말라 보이는데 물 떠 줄까?"라고 하면 내 친구는 어떤 느낌을 받을까요? "나를 항상 살펴주는 사람." 연대감이 생기는 거예요. 자율성도 높고, 연대감도 높고.
그다음에 세 번째는 대화 기술이 조금 달라요. 그러다 보니까 마음에 이렇게 뭔가 걸려 있는 게 없으니까 대화를 할 때 남의 얘기를 자기 생각으로 걸러내질 않아요. 친구가 "어 나 오늘 마트 가 가지고 꼬막 비빔밥을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어." 이렇게 얘기하면 자기 걸음이 없다는 건 뭐 "혼자 맛있는 거 먹었다고 자랑하는 거야." 이런 걸음이 없다는 거예요. 있는 그대로 듣게 돼요. "어 꼬막 비빔밥 먹었어? 맛있었어." 이게 반영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인정이 돼요. 두 번째가 인정이거든요. "야 야, 너 좋았겠다. 야, 맛있었겠다." 인정과 공감이 자연스러운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사람이랑 대화하면 기분이 어때요? 너무 좋잖아요.
내 욕구에 대한 의식이 분명하고 이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방법을 내 자신에게서 먼저 찾았다는 거. 더불어 연대감이 아주 중요하다는 걸 알고 타인에게 도움을 받을 때도 기쁘게 받지만, 내가 늘 저 사람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에 대한 의식도 항상 열려 있었다는 거. 그러다 보니 대화를 나누고 관계를 맺을 때 잘 반영해 주고 공감이 되니까 이런 사람들하고는 우리가 늘 같이 있고 싶고 매력 있는 사람이 되는 거죠.
이런 사람들 꽤 많아요. 우리가 함께 일하는 공동체에서도 되게 매력적인 사람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은 그 질문하는 태도가 되게 좋은 거 같아요. "두려움 없는 조직"이라는 책이 있거든요. 근데 여기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이런 거예요. 심리적 안정감이 얼마나 중요한가? 이 심리적 안정감이 그럼 뭐냐라고 할 때, 내가 다 알지 않다라는 거를 인정하면서도 저 사람의 의견에도 내가 열려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태도. 그러니까 이런 안정감을 느낀 사람들은 내 아이디어나 의견을 내는 것을 넘어서서, 내가 약간의 실수를 했을 때도 그걸 빨리 바로잡기 위해서 의견을 개진할 수 있었다라는 거거든요.
함께 일하는 공간에서 매력이 있다라는 건 내가 원하는 게 뭔지를 정확하게 알고 저 사람과 내가 연대해야 된다라는 그 필요성을 정확하게 인식하면서, 그럼 우리가 함께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해서 질문하는 태도.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선생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런 방식으로 접근해서 "당신의 욕구가 있습니다. 저는 그걸 인정합니다. 저에게도 중요한 게 있습니다. 그걸 좀 인정해 주실 수 있나요? 그럼 우리 서로를 위해서 뭘 할 수 있을까요?"라는 태도. 그니까 성취는 어떻게 보면 기술 영량적인 부분이지만 관계는 태도에 관련된 부분이잖아요. 그래서 이런 질문하는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고, 그건 우리가 충분히 학습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이걸 어떻게 훈련할 수 있는가? 내 생각이 옳다라는 생각은 우선 내려놔야 돼요. 우리의 문제 해결의 능력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라는 걸 믿어 봐야 돼요. 저는 비폭력 대화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어요. 제가 이 "조용한 회복"에서 특히 1파트가 있는데요. 1파트의 대부분은 비폭력 대화를 개발했던 마샬 젠버그 선생님의 큰 정신 안에서 쓰여진 글이에요. 제가 이걸 왜 쓸 수 있냐면, 조직 생활을 얼마 해보지 않았지만 저는 조직은 너무 많이 다녀봤어요. 그래서 수많은 임직원 분들의 고민을 들었고 그분들의 갈등을 돕기 위해서 애써 왔거든요. 제가 확신하게 된 게 하나 있어요. 마샬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냐면, 인간의 언어에 있어서 욕구가 그 대화의 중심이 될 때 우리는 타인을 비난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가능한지를 경험하게 된다. 되게 멋있는 말이잖아요. 저는 그걸 많이 봤어요. 남을 비난하지 않으면서 내가 원하는 말을 할 수 있다라는 거.
같이 일을 해야 되는 일터에서 중심의 언어가 돼야 되는가? 이게 첫 번째고요. 두 번째는 그렇다면 이 욕구 충족을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다양화되어 있는가예요. 내 지금 마음이 지루하단 말이에요. 그러면 나의 욕구는 자극, 재미, 발견 뭐 요런 거잖아요. 그럼 내가 이제 욕구는 찾았단 말이에요. 그런데 반드시 네가 나와 집에서 영화를 보면서 이 욕구를 충족해 줘야 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인간의 갈등이 심해지겠어요.
마샬 선생님은 우리가 일을 할 때 자신에게 중요한 욕구라는 것이 있는데, 그리고 공동의 욕구도 있죠. 그게 조직의 목표가 될 것이고. 그런데 그 조직의 목표를 향해 갈 때는 개개인은 또 다 다른 욕구를 가지고 있잖아요. 이런 개인의 욕구를 다룰 때 그 충족 여부에 대한 다양성을 고려해 보라 그래요. 예를 들어 아까 그 재미로 다시 해 보면, 난 재밌었으면 좋겠어. 그러면 이것을 욕구로 풀어낼 수 있는 대상이 다양해져야 돼요. 첫 번째는 그 상대일 수 있고요. 두 번째는 나일 수도 있어요. 나는 산책할 거야. 나는 영화를 하나 봐야겠어. 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도 찾아보는 거예요. 세 번째는 제 3자도 생각해 보는 거예요. 너는 일이 바빠 보이니까 내가 다른 친구랑 영화 보고 와도 돼. 해서 제 3자를 내 이 욕구의 대상으로 한번 생각해 보는 거야. 네 번째는 공동체도 될 수 있어요. 우리 그럼 지금은 좀 어려운 거 같으니까 각자 할 일 끝나고 저녁에 우리 다 모이자. 이게 대상의 다양성이죠.
두 번째는 수단의 다양성이 있어요. 이 재미가 반드시 영화만 있는가? 그건 또 아니거든요. 함께 우리가 김밥을 말아서 소풍을 갈 수도 있는 것이고, 영화를 볼 수도 있는 것이고, 굉장히 다양한 방법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수단의 다양화가 있다는 거예요. 이게 굉장히 중요해. 하고 싶은 말을 다 아는 사람들은요. 자기가 원하는 그 오로지 하나의 수단을 강요하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될 때까지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게 얼마나 다양한 대상에게 열릴 수 있는 가능성인가. 그리고 내가 이 욕구를 충족하게 해서 얼마나 다양한 방법을 생각할 수 있는가에 관련된 사고의 유연성을 말하는 거죠.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는 능력. 이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은 능력이라고 생각돼요. 오히려 유일하게 그 사람만이 내 욕구를 채워 줄 수 있다라고 믿을 때, 그건 마샬 선생님의 말이거든요. 그때 인간의 갈등은 굉장히 심각해진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강요하게 되고 그래서 인간의 관계가 굉장히 힘들어진다고 얘기해요.
그리고 하나를 추가하자면, 물론 특별한 관계에서 너무 깊은 애착을 나누는 사랑하는 대상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유독 그 사람과 하고 싶은 일도 있겠죠. 근데 그 말을 우리가 어떻게 전달하는지에 대해서도 마샬 선생님은 얘기해요. 그 사람은 비난하지 않으면서도 당신이 원하는 것을 부드럽게 그러나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 그에게도 중요한 게 있겠죠. 그러면 그에게도 중요한 이야기를 한번 들어 봐야 되겠죠. 그 사람은 나한테도 소중한 사람이니까. 그래서 그 사람이 중요한 것들과 내가 중요한 것들을 수면으로 올려놓고 우리가 서로를 위해 뭘 해 줄 수 있을까를 논의해 보는 것도 되게 아름다운 대화 방법 같아요. 그리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고.
그는 제일 핵심적인 거는 자기 고난의 원인을 타인에게 두는 아주 특별한 능력이 있으세요. 제가 한 조직에 컨설팅을 갔을 때였어요. 이 회사가 승승장구했었거든요. 개발하는 제품마다 굉장히 성공적이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몇 해를 보냈고 그 이후에 나오는 것마다 조금씩 조금씩 그 성과가 좋지가 않은 거예요. 그러니까 회사가 잘될 때는 쏙된 말로 이제 숫자가 아주 올라갈 때는 그냥 대부분의 문제들이 다 중요치 않아지는 거죠. 왜? 결과가 좋았으니까. 그런데 이제 숫자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하니까 이유를 찾아야 되잖아요. 그랬더니 사람들이 이제는 그 이유를 다 사람에게 두는 거예요. 그 사람을 리더십이 안 좋아서, 그 사람이 안 되는 이야기를 너무 주장해서, 그 사람 너무 고집을 부려서 뭐 이런 식으로 사람에게 원인을 두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 조직은 아무래도 더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겠죠. 왜냐면 그 팀이 갈라지고 분열이 생기기 시작하니까.
개개인으로 돌아와도 다르지 않았어요. 이 사람들의 특징은 첫 번째가 "내가 지금 힘든 건 모든 너 때문이야. 네가 그때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만큼 괴롭지 않았을 거야." 그러니까 지금 이 문제에 있어서 문제는 누구야? 너야.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나는 여기에 책임이 없어. 이 생각이 강렬할수록 이 사람들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존중받을 수가 없는 거죠. 터널 시야라 그래서 내가 지금 보고자 하는 것만 보는 거예요. 이게 첫 번째 가장 큰 특징이고요. 그러다 보니까 이분들한테는 사회적인 낙인들이 붙어요. 우리가 이걸 조직에서 적 이미지를 나누는 시간으로 갖게 되는데, 제가 "조용한 회복"에서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적 이미지들이 얼마나 우리의 삶과 관계를 힘들게 하는가에 대해 쓴 게 있어요. 예를 들어 조직에서는 어떤 사람이 싫습니까? 이렇게 물어보거든요. 제가 말하는 사람 아마 다 싫어하실걸요. 첫 번째 폭력적인 언행을 하는 사람 싫어요. 두 번째 자기 중심적인 사람 싫어요. 세 번째 타인을 비하하고 뒷담마하는 사람 싫어요. 네 번째 우리가 모두 합의한 규칙을 지키지 않고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 싫어요. 좋아하는 사람 있을까요? 없죠. 근데 여기 보편적 특징이 있어요. 내 고통의 원인을 다 타인에게 두고 있다는 거예요. 나는 옳고 나는 무결하고 나는 잘못이 없어요. 이 모든 원인은 다 저 사람 때문이에요. 나는 재수가 없었고 내가 저 사람을 만난 게 나의 가장 큰 실수라면 실수예요라는 생각이 굉장히 강할수록 그런 사람들은 함께하는 공동체 안에서는 설 자리가 없고 이런 사회적인 딱지를 많이 얻게 될 가능성이 있죠.
이번에 "조용한 회복"이라는 책을 쓰셨는데, 이렇게 직장 생활 혹은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이 우리가 좀 조용히 나의 마음을 회복하면서 살아가는 방법이 있을까요?
>> 우리가 언제 사람이 무너지는 그럼 화가 나면 어떤 마음이 들어요? 공격하고 싶잖아요. 공격을 하려고 가만히 봤더니 나보다 힘이 세요. 그러면 이 공격 욕구가 확 꺾이고 그다음에 어떻게 해요? 도망가야 되잖아요. 도망가려고 그랬더니 문도 다 닫혀 있어요. 이런 순간이 너무 많은 거 같아요. 제가 이제 중재를 하다 보면 이 내면 중제가 어려워요. 예를 들어 내 마음 안에 이러고 싶은 마음이 있고 이러고 싶은 마음 양극단의 마음이 있거든요. 짜장면도 먹고 싶고 짬뽕도 먹고 싶어요. 이 다양한 목소리가 많을수록 이 내면을 통합한다라는게 이게 굉장히 어려운 중제거든요. 그런데 이 내가 어떤 조직 생활을 할 때 어떻게 하면 내 자신을 잘 중재하면서 여기에 내가 융합되고 내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함께할 수 있을까?
저는 집단 효능감의 힘을 한번 믿어 보자. 집단 효능감은 나 혼자 할 수 있는 능력은 자율성의 능력이잖아요. 집단의 효능감은 연대 의식이 되게 중요한데, 조직의 일은 하물며 가정의 일도 혼자 해내기 어려워요. 함께할 때 그 일의 강도도 훨씬 가벼워지고 기뻐요. 중요한 건 기쁘다는 거예요. 이게 함께 하는 기쁨이 있어요. 대화도 하게 되고 관계도 맺게 되고. 그래서 인간이 가장 힘들 때는 이 조직에서 이 공간에서 내가 이 일을 나 혼자 다 해내야 된다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이때 집단의 효능감이라 함은 "도와주세요"라는 말도 많이 해 보고요. "제가 도와드릴까요?"라는 말도 해 보는 거예요. "덕분에 잘해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라는 말도 해 보는 거예요. "수고하셨어요"라는 말 대신 "어 우리가 함께해서 이만큼 했던 거 같아요. 우리 다음에도 같이 해 봐요"라고 한번 해 보는 거예요.
이 집단의 효능감을 믿게 될 때 우리의 말이 그 단어가 굉장히 훨씬 더 풍요로워질 수 있거든요. 이거를 우리가 한번 좀 믿어 볼 수 있다면 우리가 어차피 매일 해야 되는 일인데 그 일이 조금은 기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이 내면에서 많은 갈등들이 오고 가는데 아까 그 내면의 중제가 가장 어렵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이 목소리들을 통합하는 것도 연대감이에요. "아, 너 짜장면도 먹고 싶구나. 짬뽕도 먹고 싶구나. 그런데 너 스파게티도 먹고 싶구나. 자, 그럼 우리가 우선순위를 정해 보자. 여기서 가장 물리적으로 가까운 데가 어디니? 아, 파스타집이구나. 그럼 이번에는 파스타를 먹고 짬뽕 짜장면 너 내일 먹어도 괜찮겠니?" 물어보는 거예요. 이게 다 함께하는 능력이에요. 그래서 내 안에도 여러 가지의 자아의 목소리들이 있는데 이것을 내가 함께 조율할 수 있는가? 내 조직에도 내가 혼자 일하는게 아니라 여러 명이 같이 일하고 있는데 내가 이 집단의 효능감을 함께할 때 더 잘될 수 있다라는 믿음을 내가 가지고 있는가? 물론 지금까지 내가 조직일을 해오면서 때로는 그 연대감이 무너지고 상처받아서 그 희망을 많이 다소 상실했다 하더라도, 그 마지막 꺼가는 그 불씨에 다시 불을 지히는 심정으로 그래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이고 내가 함께 할 때 더 기쁠 수 있는 것을 좀 회복하려는 노력은 저는 조직 생활할 때 굉장히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해요.
오늘의 심리학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