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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대 명예교수가 암 치료하면서 무조건 버렸던 '이것' (정현채 교수 1부)

지식한상 17:29

Transcription

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대학교 이과대학의 명예 교수로 있는 정현체입니다.

저는 우연한 계기로 2007년부터 죽음에 대한 강의를 하기 시작했는데, 올해로 19년째 800회가 넘는 죽음 강의를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제가 2018년에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할 필요가 없는가라는 죽음에 관련된 책을 낸 적이 있고, 요번에는 지난 달에 죽음 삶의 끝에서 하는 질문 그리고 부제로 너무 이른 죽음 남겨진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주로 자살 문제 관련해서 책을 낸 적이 있습니다.

암환자 하면은 이제 병원에서 종양 내과를 주로 간다고 생각을 하는데, 실상은 또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게 암환자, 특히 말기 환자 같은 경우에도 증상이 특정한 암을 가리키는 증상이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막연히 속이 더부룩하다든가 소화가 안 된다. 속이 그냥 답답하다. 이 정도의 증상으로 왔는데 검사를 보면은 위나 장의 암이라든가 또 암이 여러 장기에 퍼져서 거의 말기암인 상태로 보게 된 경우가 많죠.

암환자 경우에 암 진단을 받게 되면 되게 이제 두 가지죠. 후회와 원망이 많습니다. 후회는 내가 뭘 잘못해서 암에 걸렸나 보다. 젊었을 때 술을 좀 덜 마실 걸. 뭐 이런 등등에 후회하는 경우가 많고, 두 번째는 이제 원망이죠. 왜 하필이면 내가 뭘 잘못했길래. 두 가지가 공통적으로 후회와 원망이 많이 표출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암환자의 경우에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건 아니고 암 진단 받으면 정신 없이 어떻게든 살아야 되니까 그 치료에만 집착하는 그런 경우도 많은데, 지금 얘기한 대로 인간관계를 둘러보게 되는 경우라든가 이제 그런 경우도 이제 종종 자주 보게 되게 됩니다.

한 둘이 아니고 여러 짓인데 제가 기억난 게 10여년 전에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할 경우에 그 68세 남자분이었는데, 이분은 65세 정년 퇴임하고 잘 지냈는데 이분이 68세 됐을 때 내 속이 좀 더부룩하다고 해서 왔어요. 제가 이제 소화기 질환을 담당을 하고 있으니까 위내시경 검사만 해 달라고 요청을 했는데, 비교적 고령인 나이인 한 가지 검사만은 이제 병을 놓칠 수가 있어서 위내시경 검사와 복부 초음파 검사를 같이 했더니 내시경 검사는 이상이 없었어요.

환자분이 해 달라는 대로 내시경 검사 하나만 했으면은 이상이 없다고 그냥 귀가했을지도 모르는데, 복부 초음파 검사에서 이제 최장의 혹덩어리 종기가 발견돼서 최장암 진단 아래 외과로 옮겨져서 개복 수술을 하게 되는데, 개복을 했을 때 이 복막이 이미 다 주변에 퍼져서 완치를 위한 수술이 불가능했던 사례죠.

근데 문제는 이분의 가족들이 절대 비밀로 해 달라. 그러니까 본인이 말기이고 얼마 안 남았다는 걸 절대 비밀로 해 달라고 의료진에게 신신당부를 하는 바람에 의료진은 한 마디도 얘기할 수가 없는 거죠. 그러니까 계속 거짓말을 하게 되고 수술도 잘 됐다고 그런 거짓말을 하게 되고, 환자는 매일매일 나빠져 갔죠. 수술도 잘 됐다고 또 거짓말을 했으니까 내가 퇴원하고 할 일이 많은데 이렇게 몸이 자꾸 나빠지나 하다가 수술 받은 지 한 달째 되는 날 양쪽 폐로 암 전이가 확산하게 일어나면서 사흘 뒤 의식을 잃고 세상을 떠나는 그런 사례가 기억이 나는데, 이게 안타까운 일이죠. 한 달 정도면 중요한 사건을 마무리할 수 있는 자기 나름대로 가족들한테 인계도 하고 그런 걸 못 하고 그냥 세상을 허망하게 떠났으니까 굉장히 안타까운 사례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걸 보면서 우리나라가 조금 더 죽음 문화가 좀 성숙해져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고, 가장 문제는 아파서 입원하기 전까지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단 한 분도 자기의 죽음이라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인 거죠. 내가 큰 병에 걸렸을 때 어떻게 할 건가? 나는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건가? 이런 걸 좀 생각을 하고 살아가야 되는데,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겁니다. 재수 없고 끔찍하다고 생각하고 그만큼 죽음에 대해서 외면하고 부정하고 또 혐오하고 이런 자세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걸 하나도 못 하고 있다가 어느 날 덜컥하고서 말기암 진단을 받게 되면은 그런 상태로 그냥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은 아주 힘들어지는 거죠. 환자, 본인, 가족들, 의료진 3자가 얘기도 못 꺼내고 아주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그래서 죽음 문화라고 하는 거는 이제 평소에 건강할 때 이런 죽음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언젠가 우리 모두가 다 죽음을 맞이하게 되니까 닥쳐 왔을 때 어떻게 할 건지 이런 거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보는 거죠. 그런 걸 통해서 결국 우리나라 죽음 문화가 이제 성숙해지고 개선되는 거라고 봅니다.

특히 가족들하고 얘기를 나누는 게 중요하고, 특히 나이 많은 부모님들이 자식들한테 얘기를 해 줘야 돼요. 얘기를 안 하면 자식들이 얘기를 꺼낼 수가 없는 거죠. 연세해 드신 부모님한테 죽음 얘기를 꺼내면 불효하는 거 같고 그래서 얘기를 못 꺼냈는데, 정말로 필요한 얘기를 해야지. 정말로 예를 들어서 유언장을 쓴다든가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 작성을 해야 된다든가 이런 얘기를 평소 건강할 때 해 놓지 않으면은 나중에 암 진단 받았을 때는 정말 꺼내기가 어렵게 됩니다. 암 진단받은 환자한테 유언장이 있게면 나보고 지금 죽으란 얘기냐 이런 격한 반응이 들어오니까 정말로 필요한 얘기를 꺼내지 못하게 되는 거죠.

저는 조금 당황했는데, 왜냐하면 저는 아무래도 급성 심장 질환으로 가게 될 거다. 이렇게 생각을 했던 게 부모님 두 분이 한 분은 급성 심근경색으로 또 다른 한 분은 대동맥 박리라는 둘 다 급성 심장 질환으로 증상 나타나고 4월 달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저도 아마 그런 길을 갈게 될 거다. 또 제 네 살 위에 형님 한 분도 바로 어머니와 같은 급성 대동맥 박리로 이제 응급 수술을 받아서 대동맥이 상 인조 혈관으로 대치되어 있는 상태인데, 부부라는 게 뭐 혈연 관계가 없는 상태니까 부모 양쪽이 다 급성 심장 질환이라면은 이제 자식의 경우에 굉장히 가능성이 높아지죠. 그런 심근경색이나 대동맥 박리 그런 이제 심장 질환으로 가게 될 거다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갑자기 암 진단을 받게 되니까 그때 당황했었죠.

제가 이제 암 진단받고 나서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한 게 아니라 죽음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 이제 11년째 됐을 때 이제 암 진단을 제가 받은 거거든요. 보통 아까 얘기드렸죠. 암 진단 받을 경우에 원망이라든가 후회 같은 거를 많이 하게 되는데, 뭐 그런 건 없었어요. 왜냐하면 후회도 별로 하지 않은 게 제 나름대로 건강에 대해서 거의 이제 혈압이 높기 때문에 혈압에 대한 조절도 20년 가까이 해 왔고 콜레스테롤 혈증이 높기 때문에 콜레스테롤 높은 것도 약물 치료를 해 왔고 일주일에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수영을 했어요. 아침 출근 전에 누적 수영 거리가 한 3,500km 10년에 걸쳐서 그렇게 됐고 또 담배도 피우지 않았고 2년마다 건강 검진을 했고 그래서 건강을 소홀히 한 건 없는데 암 진단을 받게 됐으니까 그런 후회 같은 건 없었고 오히려 좀 생소하실지 모르지만 죽음에 대해서 공부하다 보면은 자기가 태어나기 전에 미리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이게 내가 태어나기 전에 세운 계획의 일부일 수 있겠다. 뭐 이런 생각을 하게 됐죠.

가능하면 이제 무리되는 일을 좀 하지 말자. 그러니까 뭐 며칠 밤을 꼬박 세우면서 일을 한다든가 뭐 그런 건 몸에 무리가 되는 거니까 그런 건 이제 피하려고 노력을 하죠. 그리고 또 미루지 말자. 연락할 사람 있으면 바로 연락을 하고 어떻게 될지 모르거든요. 자칫 미루다가 이번 생에서 만나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날 가능성도 있으니까 미루지 말고 하고 좋은 거 있으면 바로 쓴다. 저 같은 경우는 와인을 좋아하는데 옛날 같으면 이제 좋은 와인은 좀 아껴 두느라고 먹지 않고 남겨 두었던 거를 암 진단받고 나서는 좋은 와인부터 먼저 빨리빨리 마시는 거죠.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런 게 아마 삶의 변화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특별히 뭐 바뀐 건 없는 것 같아요. 식습관도 그렇고 이제 진단을 제가 받은 게 63세 때 받았으니까 식습관보다도 아마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생각을 하죠. 40년 동안 진료 현장에 있으면서 이제 진료를 하면서 받은 스트레스 대표적인 게 화장실을 못 가는 그런 거죠. 화장실 가게 되면은 환자의 대기가 길어지니까 그런 것 때문에 아마 그거 많이 유일한 원인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그런 스트레스가 암 발생했을 것이다. 이제 그렇게 생각을 하는 거죠.

아무래도 뭐 손때 묻은 거 이런 거겠죠. 근데 뭐 그런 것도 너무 미련 두지 말고 과감하게 버리고 제일 버리기 어려운 게 이제 앨범이에요. 가족 앨범. 아이들 어렸을 때 태어났을 때부터 찍은 사진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그래서 저는 이제 그거를 스캐너에 스캔해서 파일로 만들고 사진들은 다 많이 버리고 아직 다 끝내지 못했는데 그런 걸 이제 하고 있죠. 상당 부분 했지만은 앞으로도 이제 끝날 때까지 이제 그런 걸 다 하고 치워 주고 가야지 뒤에 남는 사람들이 고생을 더합니다. 그런 걸 다 남겨 놓고 가면 다른 사람들이 고생하기 때문에.

대학에 있었으니까 연구실을 정리하는 게 큰 일이었죠. 연구실을 정리했는데 사실은 저는 뭐 그때 처음 한 건 아니고 이미 암 진단이 한 7, 8년 전부터 정리를 해 왔어요. 그래서 뭘 정리했냐면은 여러 가지 그 자료들. 외국 유명한 대학이나 병원 같은데 보면은 예를 들어서 한 150년 200년 전에 교수가 했던 사적인 메모라든가 이런 것도 다 보관이 되어 있다 그래요. 그런 걸 보관하는 게 굉장히 쉬운 일이 아닌데 그래서 저는 일단 암 진단 받은 시점 기준으로 해서 7, 8년 전부터 강의했던 자료, 발표했던 것들. 요즘에는 다 뭐 이런 발표도 다 파워포인트를 하지만 옛날에는 환등기 슬라이드를 썼거든요. 거기다가 이제 사연을 다 써야 되니까 몇 년 몇 월 며칠 어느 학회에서 했던 발표 이런 것들을 다 정리를 해서 제가 서울대학교 병원에는 의학 박물관, 그 뒤로 이름이 의학 역사 문화원으로 바뀌었는데 거기다 보냈죠. 한 70회 넘게 그거를 보냈는데 그래서 그것만 그냥 보내면 안 되고 그 사연을 다 적어 놔야 됩니다. 여기 어떤 사연이 있든지 또 몇 년 몇 월 며칠 어느 학생들에게 했던 뭐 강의 자료라든가 이런 거를 해 왔는데 이제 마지막은 제가 이제 수술을 받는 그런 경황이어서 이제 아내가 그걸 다 했죠. 연구하고 교육 또 진료를 맡았었으니까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쳤던 그런 내용, 또 학회에 가서 발표했던 내용 그런 것들이 많이 떠오르고 그랬었죠.

운동은 제가 수영을 10년 이상 했고 누적 수영 거리가 3,500km쯤 됐으니까 그래서 뭐 운동이 부족한 거라고 생각을 하지 않는데, 제가 이제 지금은 서울을 떠나서 제주에 살고 있는데 제주에 와서는 수영보다 이제 곶자왈 숲을 걷는 걸 하죠. 하루에 한번 한 시간 이상은 곶자왈 걷기를 하고 그런 걸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극심한 고통을 느꼈을 텐데, 제가 방광암 진단을 받고 워낙은 처음부터 수술이 예정됐던 건 아니고 처음에 이제 국소 치료, 암도 아마 초기일 거로 예상을 하고 방광에 이제 BCG라는 약물을 넣고 방광 점막 전체를 일종에 태우는 거죠. 그런 치료를 받고 그걸로 완치했었는데 이제 그게 여섯 번이나 했는데도 거의 효과가 없고 뒤에 이제 조직 검사를 해 봤더니 생각했던 거보다 암이 근육으로 많이 침범이 돼서 그렇게 되면 방광암 2기가 되는 거죠. 그래서 이제 그때 치료는 방광을 다 드러내고 그 옆에 붙어 있는 전립선 같은 걸 드러내는데, 위나 대장암하고 다른 점은 위암이나 대장암 경우에는 그 암은 부위만 잘라내고 붙이면 되는데 이건 그게 아니고 방광을 드러내면 또 방광 역할을 해야 되는 뭐가 있어야 되는데 그게 없기 때문에 소장을 잘라서 한 60cm를 방광처럼 만들어서 인공 방광을 하는 거죠. 모든 방광암이 다 하는 건 아니고 그 수술법은 한 40년 정도 됐는데 그 전에는 그냥 비닐백을 이렇게 차고 다녔습니다. 소변 주머니를. 지금도 뭐 그런 걸 차고 다니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아닌 것만 해도 굉장히 큰 다행으로 여기고 있죠.

물건 중에서 이제 오래된 거, 오래된 것도 거의 새거나 다름없고 안 쓰고 이런 것들이 있어요. 아마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일 텐데 새 거는 정말 어디 밖에 내놓거나 누구한테 선물하는 게 좋겠고 좀 오래되고 낡은 거 이런 건 빨리 버리고 저걸 해 놔야 되죠. 넥타이를 소위 명품 이런 것들 이제 선물 받은 것도 많고 진료받던 환자분한테 선물 받은 것도 있는데 그런 것들도 다 과감하게 많이 내놨어요. 거기서 인기 품목으로 잘 팔렸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정리하면서 느끼는 그런 즐거움 그런 거가 되겠죠. 퇴임하면서는 했던 이제 술병들 위스키 같은 거를 이제 잘 갖고 있어야 되는 게 무슨 모임이 있을 때는 꼭 술 공출하기 때문에 술 한 병 갖고 와라 이런 것들이 많았어. 거기에 대비해서 술을 갖고 왔는데 그런 것들 다 남을 주거나 저거 했죠. 그런 것들이 이제 기억이 나네요.

뭘 소유하겠다는 생각은 이제 점점 줄어들어서 요새는 그냥 아이쇼핑을 주로 하죠. 눈으로 보고 제가 굳이 소유할 필요도 없는 것 같고 눈으로 보고 즐기면 되겠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뭐 견해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죽음을 생각하지 않아서 그럴 거예요. 자기가 언제 한 달 뒤에 죽을지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면은 물건에 대한 집착을 가질 수가 없겠죠. 언제 갈지 모르는데 그 물건을 싸 놓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정리가 한 번에 끝나는 게 아니고 계속 해야 되는 것 같아요. 계속 쌓이기 때문에 그냥 놔두면은 나중에 가족들이 정리해야 되니까 민폐를 끼치는 거니까 살아 있을 때 그걸 정리를 해야죠. 한 달 뒤에 갈지 모른다 이런 생각으로 정리를 해 나가야지 정리가 되죠. 그렇지 않으면 계속 쌓이게 되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든다고 하더라도 누구나 다 죽음에 대해서 초연해지고 그런 거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아는 어떤 80대 지인 한 분은 그런 자기 속내를 드러내는데 나이가 고령이 돼서 이제 죽음이 자꾸 다가오는데 굉장히 두려울 거 아니에요. 심이 두려운데 어디다 내색은 못 하고 그냥 태연한 척하면 지낸다. 이런 속내를 얘기를 해 주는데 아마 비슷한 것 같아요. 그분만 그런 게 아닐 것 같고 어디다 물어볼 수도 없고 죽음이 뭔지 그렇기 때문에 아마 냉가슴앓듯 그렇게 많은 분들이 지내는 게 아닌가. 그런 게 좀 벗어나서 죽음을 직시하고 좀 이게 뭔지 죽음이란 무엇인지 이런 거에 대해 좀 공부하고 찾아보고 이런 자세가 좀 이제 중요하다고 보는 거죠.

사람마다 다를 것 같아요. 그거는 인간관계를 어떻게 정리할 건지는. 평소에 가족들하고 죽음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눈 경우라면 그런 게 훨씬 더 수월하겠지만 전혀 얘기도 안 하고 주제를 회피하고 진행하면 오히려 정리하기가 상당히 힘들겠죠.

암이란 큰 병이 걸리고 그렇게 되니까 또 앞으로 남아 있는 수명이 얼마나 될지 모른다 이런 생각이 들면은 가족과의 관계 이런 거에 좀 더 신경 쓰게 되고 어떤 일이나 업무 뭘 해야 된다는 강박 속에서 뭐 하든 거 이런 건 아무래도 해태했죠. 자연스럽게 그때 돌아가도 비슷하게 할 것 같아요.

퇴직할 날이 한 2년쯤 남았었는데 그니까 2년 일찍 명예 퇴직을 한 건데 그 이유가 우선 하나는 암이 생긴 원인이 계속된 스트레스 수십년에 걸친 스트레스가 관여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 아래도 있고 두 번째는 계속 남아 있을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은 제가 뭐 병가를 얻거나 휴가를 하거나 하면서 제가 해야 될 일을 다른 사람들이 하게 되니까 이제 민폐를 끼치게 된다. 이런 생각 때문에 결국 한 건데 다시 돌아가도 비슷하게 하겠죠.

비율은 뭐 암의 기수에 따라 다르니까 암의 초기나 뭐 1기 정도 되면 수술이나 이런 걸로 거의 완치가 될 것이고 많이 진행된 3기 4기 말기암 되면은 거의 말기암 같은 경우는 이미 다 여러 장기로 퍼진 거니까 그때는 거의 뭐 완치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거고 그때 생각을 달려야 되는 것이겠죠. 저 같은 경우에도 방광암 2기였으니까 2기라면 5년 생존율이 60%쯤 됩니다. 5년 생존율이라고 하는 거는 5년 지났을 때 얼마나 살아 있는가? 5년 생존 60%라고 하는 거는 처음 진단받을 때 100명이 있었다면은 5년 지났을 때 60명은 살아 있고 40명은 죽었다. 그런 얘기니까 저는 이제 7년이 지났는데 아직 살아 있으니까 60%에 들어간 거죠.

치료할 걸 다 하고 이제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공동점은 제일 중요한 게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인 것 같아요. 말로 하긴 쉽지만은 실제로 그게 쉽지는 않은데 오히려 암 걸렸다는 거를 불행한 걸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어떻게 보면 뭐 나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왜냐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망 1위가 암이거든요. 그니까 누구나 암 진단 받았다 혹은 뭐 말기암 이러면 남의 일 갖고 강 건너 불 구경 하듯 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거는 그렇지가 않고 우리 모두가 다 나중에 이제 수명이 다해서 죽을 때가 되면 암으로 죽게 될 경우가 확률적으로 제일 높은 거죠. 사망 1위가 암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제 그런 암에 걸렸을 때 그런 걸 좀 어떻게 보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저 같은 경우에도 여러 가지 긍정적인 면이 있어요. 제가 이제 올해 19년째 800회가 넘는 이제 죽음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는데 오히려 암 환자가 되고 나서는 청중들하고 소통하기가 더 훨씬 수월해진 거죠. 암 환자가 아니었다면 아마 제가 강의를 하면은 별로 이렇게 아파 보이지 않은 사람이 암 환자의 힘든 걸 알겠나 이런 생각을 하는 청중일지 모르는데 이제 제가 암 환자이기 때문에 그런 걸 먼저 얘기하면은 청중 중에 암 환자 같은 경우는 훨씬 더 소통하기가 어렵지 않고 더 쉬워지는 거죠. 그런 게 오히려 또 장점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제일 나쁜 거는 한번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스트레스가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하긴 하지만 이제 과도한 스트레스가 그런 이제 암을 유발하는 걸로 이제 작용을 할 수가 있는 거죠.

특별히 선호하는 그런 건 없는데 제가 이제 좋아하는 건 와인을 좋아하죠. 와인. 2018년에 암 진단받았을 때 제 후배 교수 하나가 와인을 비롯해서 술이 방광암에 영향을 주는가 그래서 전 세계 논문을 다 뒤져봤더니 그런 게 하나도 없다고 안심했다는 그런 얘기를 전해 들었는데 물론 이제 술이 다 뭐 좋다 그런 얘기는 전혀 아니고 제 경우에는 적당량의 와인 또 이런 것들이 오히려 건강에 더 나쁘지 않았다. 그런 얘기를 할 수가 있는 거죠.

암도 이제 어느 기수별로 초기나 일기 뭐 이런 경우가 있을 거고 4기 지나서 말기암 이런 경우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뭐 일괄적으로 얘기를 할 수는 없겠지만 저도 암 환자이고 암 환자분에게 할 수 있는 거는 현대 의학이 추구하는 그런 공인된 치료를 받으라는 걸 이제 권하고 싶어요. 여러 가지 입증 안 된 민간요법. 제가 오래 전에 본 이제 해외 학술 중에 하나는 이건 우리나라 예는 아니고 대만 타이베이의 53세 남자인데 음식물이 자꾸 막히니까 뭐했냐면 대만의 민간요법이라 그래요. 생쥐를 먹는 거야. 날로. 그니까 생쥐가 뭘 파고 두는 습성이 있으니까 막힌 걸 뚫어 줄 거다 해서 생쥐를 35마리 먹었을 때 이제 걸려 가지고 완전히 막히니까 응급실에 가서 사진을 찍었더니 쥐의 그 꼬리하고 이런 게 그대로 박혀 있는 진단은 이제 식도암이었는데 식도암을 그렇게 키운 거죠. 민간요법 의지하다가 일찍 감치 제대로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았으면은 치료가 잘되고 뭐 경우 완치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입증 안 된 그런 민간 요법만 의지하다가 그런 일도 다 하고 있는 거죠. 건 극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실제로 주변에도 그런 게 많이 있어요.

저는 따로 암을 치료하기 위해서 특별히 뭘 어떤 음식을 뭐 하고 그런 건 없고 공인된 치료. 저는 이제 방광 2기 진단을 받고 그 치료가 이제 방광을 다 드러내고 또 주변에 붙어 있는 전립선 이런 걸 다 드러내고 또 인공 방광을 설치하고 이런 게 치료였기 때문에 그거 하고 그 전에 두 번에 이제 항암 치료를 받았죠. 그 뒤로는 뭐 따로 치료를 받은 게 없고 특별한 음식을 제가 골라서 먹은 것도 없고 정기적으로 1년에 한번 병원 가서 검진을 받고 하는 게 벌써 이제 7년이 지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