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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교수】 노후에 절대 자랑하면 안 되는 '이 것' I 나이가 들수록 침묵하라 I 혀를 감추고 입을 닫아야 하는 이유 | 행복한 노후

삶의 지혜1:23:55

Transcription

여러분, 나이가 들수록 말이 줄어드는 사람을 저는 신뢰하게 됩니다. 그 사람은 단지 조용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말해야 하고 무엇을 끝까지 지켜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젊을 때 솔직함이 미덕이라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인생을 오래 살면 살수록 솔직함은 언제나 미덕이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됩니다. 어떤 말은 관계를 따뜻하게 만들지만 어떤 말은 관계를 영원히 시켜버립니다. 더 무서운 것은 그 말이 아기로 나온 것이 아니라 무심 나온 말이라는 점입니다. 노후에는 무심고 흘린 한마디가 몇 년을 괴롭힙니다.

젊을 때는 실수해도 다시 싸울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실수는 시간이 아니라 평판으로 돌아옵니다. 평판은 곧 관계의 질을 바꾸고 관계의 질은 결국 내 삶의 안전을 바꿉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한 가지를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죽을 때까지 숨겨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비급함이 아니라 품격과 평온을 지키는 지혜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속을 드러내고 싶어 합니다. 인정받고 싶고 이해받고 싶고 때로는 위로받고 싶지요. 그런데 문제는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드러낼 대상입니다. 누구에게 어떤 속를 보이는가 이것이 인생의 결과를 갈라습니다. 특히 노후에는 인간관계가 좁아지는만큼 한 사람의 영향력이 커집니다. 젊을 때는 인간관계가 넓어서 한 사람과 틀어져도 다른 길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그 한 사람이 곧 생활이고 그 한 사람이 곧 모임이고 그 한 사람이 곧 내 마음에 기상희 그러니 말 한마디가 더 무겁습니다.

노의 지혜는 말을 잘하는 능력이 아니라 말을 지키는 능력입니다. 침묵은 무능이 아니라 통제입니다. 혀를 감추고 입을 닿는다는 것은 감정을 억누르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 인생을 남의 입에 맡기지 말라는 뜻입니다.

첫째로 반드시 숨겨야 할 것은 자신의 약점과 실수입니다. 여기서 많은 분들이 오해합니다. 약점을 드러내면 인간적이지 않습니까? 실수를 인정하면 더 정직해 보이지 않습니까? 물론 상황에 따라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노후의 인간관계에서 약점은 쉽게 무기가 됩니다. 사람의 마음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상대의 약점을 알게 되면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마음속에 서열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서열은 관계가 흔들리는 순간 아주 잔인한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누군가가 내 실수를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내 마음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그 불안이 쌓이면 인간관계는 자연스럽게 눈치로 변합니다. 눈치로 유지되는 관계는 오래 못 갑니다. 약점은 스스로 고쳐야 할 과제입니다. 타인에게 꺼내 놓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과제가 아니라 흠집이 됩니다. 흠집은 남이 평가합니다. 평가받기 시작하면 나는 내 삶의 중심을 잃습니다.

둘째로 반드시 숨겨야 할 것은 타인의 비밀입니다. 이것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인격의 문제입니다. 누군가 내게 마음을 열어 말한 비밀은 그 사람의 가장 연약한 부분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 비밀을 입에 올리는 순간 우리는 단지 남을 배신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품격을 무너뜨립니다. 노후의 가장 필요한 자산은 돈만이 아닙니다. 신뢰입니다. 신뢰가 있어야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여야 삶이 외롭지 않습니다. 그런데 타인의 비밀을 가볍게 다루는 순간 사람들은 내 곁에서 서서히 멀어집니다. 겉으로는 웃어도 마음은 다습니다. 저는 사람을 많이 만나며 한 가지를 자주 봅니다. 비밀을 잘 지키는 사람에게는 결국 사람이 남습니다. 비밀을 쉽게 말하는 사람에게는 결국 이야기거리만 남습니다. 노는 이야기거리가 아니라 사람이 필요합니다.

셋째로 반드시 숨겨야 할 것은 과거의 실수와 상처를 되풀이해서 꺼내는 습관입니다.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과거를 반복해서 꺼내는 것은 다릅니다. 과거를 꺼낸다는 것은 흔히 두 가지 목적을 가집니다. 하나는 나를 이해해 달라는 호소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달라는 인정 욕구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늘 바쁘고 사람은 생각보다 남의 과거를 오래 품어 주지 못합니다. 처음에는 들어줍니다. 두 번째도 들어줍니다. 하지만 세 번째부터는 피로가 생깁니다. 피로가 쌓이면 사람은 마음속에서 거리를 둡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과거를 자주 꺼낼수록 나는 현재를 놓칩니다. 노후의 시간은 현재가 더 소중합니다. 지금이 순간에 평온을 지켜야 하는데 과거의 실수와 상처를 꺼내는 순간 마음은 다시 그때로 돌아갑니다. 상처는 치유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치유는 반복적 재연이 아니라 조용한 정리에서 옵니다.

넷째로 반드시 숨겨야 할 것은 선행을 자랑하고 드러내려는 마음입니다. 이 대목에서 많은 분들이 가장 크게 흔들립니다. 좋은 일을 했는데 왜 말하면 안 됩니까? 그런데 여러분, 좋은 일을 했다는 말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 말이 내 안에 무엇을 키우는가입니다. 선행을 자랑하는 순간 선행은 순수한 행동이 아니라 이미지 관리가 됩니다. 이미지는 비교를 낳고 비교는 경쟁을 낳고 경쟁은 결국 관계를 거치게 만듭니다. 노후에 필요한 것은 경쟁이 아니라 평온입니다. 또 하나 선행을 자랑하면 상대의 마음에 부담이 생길 수 있습니다. 상대는 나는 저만큼 못했는데라는 위축을 느끼거나 저 사람은 왜 저걸 말하지라는 의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선행은 조용할수록 아름답습니다. 말이 없을수록 깊습니다. 아무도 몰라도 내가 아는 선행이 내 마음을 더 단단하게 만듭니다.

반드시 숨겨야 할 것은 가족에게서 받은 실망과 상처를 함부로밖에 흘리는 습관입니다. 가족 문제는 아주 미묘합니다. 밖에서 보면 사소해 보이지만 안에서는 인생 전체를 흔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가족에게 받은 상처를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내 가족의 약점을 타인에게 공개하는 사람이 됩니다. 더 큰 문제는 그 말이 결국 가족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말은 벽이 없습니다. 특히 가까운 지역 사회, 모임, 친척 관계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한번 퍼진 말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가족에게 상처받았다는 말은 듣는 사람에게 그 집은 문제가 있구나라는 프레임을 심어줍니다. 프레임은 나를 따라다닙니다. 가정의 문제를 완벽히 숨기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누구에게 어디까지가 중요합니다. 노후에는 상담할 사람을 고르는 능력이 곧 삶을 지키는 능력입니다.

반드시 숨겨야 할 것은 경제적 상황의 구체적인 정보입니다. 돈 이야기는 늘 관계를 변질시킵니다. 내가 돈이 많다고 말하면 어떤 사람은 부러움으로 가까이 옵니다. 어떤 사람은 기대감으로 가까이 옵니다. 어떤 사람은 이용하려고 가까이 옵니다. 반대로 돈이 없다고 말하면 어떤 사람은 동정으로 가까이 오고 어떤 사람은 무시로 멀어집니다. 어느 쪽이든 관계는 나가 아니라 돈의 그림자 위에서 움직입니다. 노회는 관계가 단순해야 합니다. 단순해야 오래 갑니다. 돈 이야기가 들어오는 순간 관계는 복잡해집니다. 그 복잡함이 결국 내 마음을 소모시킵니다. 경제적 상황은 내 삶의 사적인 영역입니다. 지켜야 합니다. 추는 것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관리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께 순결라는 말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 본뜻은 따로 있습니다. 숨김은 냉혹함이 아니라 성숙입니다.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묻어둘지 분별하는 능력은 나이가 들수록 더 중요한 지혜가 됩니다. 말은 사람을 잊기도 하지만 사람을 끊기도 합니다. 침묵은 때로 가장 강력한 방패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오늘부터라도 한 가지를 연습해 보십시오. 말하고 싶은 순간에 한 번만 멈추십시오. 이 말이 나를 살릴까 아니면 나를 흔들까?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인생은 달라집니다.

그리고 다음 이야기에서는 이 숨김의 지혜가 인간관계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특히 말이 많은 사람을 왜 경계해야 하는지 더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말을 잘하는 사람을 능력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말이 유창하면 똑똑해 보이고 말이 많으면 친절해 보이며 말이 화려하면 믿음직해 보입니다. 그런데 노년으로 갈수록 저는 정반대로 생각하게 됩니다. 말이 많은 사람이 반드시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말이 많다는 것은 통제의 구멍이 있다는 신호일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노후의 인간관계에서 가장 위험한 구멍은 내 삶의 사적인 부분이 밖으로 세어나가는 구멍입니다. 젊을 때야 조금 세어도 다시 수습할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세어나간 말은 더 큰 파장을 만들고 그 파장을 감당할 체력과 마음의 여유는 줄어듭니다. 그래서 저는 말합니다. 그 후에는 누구와 가까이 하느냐보다 누구에게 내 말을 허락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앞에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숨겨야 할 것 중 몇 가지를 짚었습니다. 이번에는 그 숨김의 지혜를 실제로 지키게 해주는 또 하나의 관점, 바로 말이 많은 사람을 경계하는 이유를 아주 현실적으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들 중 대화가 늘 과잉으로 흐르고 핵심이 없이 말이 넘치고 듣기보다 말하기가 더 빠른 사람이 있지요. 처음에는 활발하다. 부침성이 좋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상하게 피곤해집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의 말은 대부분 정보가 아니라 흐름이기 때문입니다. 흐름은 사람을 끌고 갑니다. 끌려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 이야기를 더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내 경계선이 무너집니다.

첫째, 말이 많은 사람은 진실을 흐리게 만들 가능성이 큽니다. 말이 많다는 것은 정보의 양이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핵심을 감추기 위한 연막일 때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불리한 부분을 숨기기 위해 말을 더 많이 합니다. 중요한 질문을 받았을 때 단답으로 대답하지 않고 갑자기 이야기를 크게 벌리는 사람을 떠올려 보십시오. 이야기의 양이 늘어날수록 진실은 희미해집니다. 그래서 말이 많은 사람과 대화할 때는 재미에 끌려가면 안 됩니다. 반드시 핵심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들의 말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더 단단하게 "그래서 결론이 무엇입니까?"를 물어야 합니다. 노후에는 대화의 품질이 곧 삶의 품질입니다. 진실이 힘해지는 대화는 내 마음의 에너지를 빼앗습니다.

둘째, 말이 많은 사람은 신뢰를 잃기 쉽습니다. 말이 많으면 실수가 늘어납니다. 실수는 꼭 거짓말이 아니더라도 과장과 모순으로 나타납니다. 오늘 말한 것과 내일 말한 것이 다르고 처음에는 큰 소리 치다가 나중에는 말을 바꾸고 내가 다 알아라고 하다가 막상 책임질 때는 빠집니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 우리는 그 사람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됩니다. 사람은 말이 아니라 일관성으로 신뢰를 얻습니다. 후에 우리가 가까이 해야 하는 사람은 말이 적어도 약속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말이 많고 약속이 가벼운 사람은 가까이 할수록 내 마음이 흔들립니다. 신뢰는 노후의 안전망입니다. 안전망이 흔들리면 삶 전체가 불안해집니다.

셋째, 말이 많은 사람은 상대를 조종하려는 의도를 품고 있을 수 있습니다. 조정은 큰 의모가 아닙니다. 일상에서 흔히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계속 말로 밀어붙여서 상대가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사람, 질문을 던진 뒤 스스로 답을 정해놓고 그 답으로 상대를 몰아가는 사람, 감정적인 표현을 과도하게 사용해 상대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사람. 이런 방식들은 모두 말로 이루어집니다. 말이 많은 사람은 상대의 심리를 흔들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관계를 끌고 가려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노후에는 인간관계가 좁아지기 때문에 한 사람의 조종이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이 많고 요구가 많은 사람, 늘 부탁이 잡고 늘 네가 해 줘야 한다는 분위기를 만드는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들의 말은 친절을 가장한 방향일 수 있습니다.

넷째, 말이 많은 사람은 비밀을 지키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이것은 단순히 인격의 문제가 아니라 습관의 문제입니다. 입이 가벼운 사람은 악해서가 아니라 말을 멈추는 능력이 약한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내게 한 말을 내일 다른 사람에게 옮기는 습관, 남의 사생활을 이야기거리로 만드는 습관, 비밀을 들으면 그 비밀로 친밀감을 얻으려는 습관. 이런 사람은 결국 내 이야기까지 다루게 됩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비밀은 상대가 알고 있는 비밀이 아닙니다. 상대가 떠들고 다니는 비밀입니다. 내 사정이 남의 입에서 돌아다니기 시작하면 나는 관계를 통제할 수 없게 됩니다. 노후에는 통제력을 잃는 순간 불안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중요한 정보는 말이 적고 신중한 사람에게만 그것도 꼭 필요한만큼만 나누어야 합니다.

다섯째, 말이 많은 사람은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합니다. 말이 많으면 평가도 많아집니다. 평가가 많으면 상처도 많아집니다. 대화 중에 무심고 던진 한마디가 상대를 긁습니다. "그건 당신이 잘못했잖아." "요즘 그런 것도 몰라." "나는 그렇게 안 해." 이런 말들이 쌓이면 관계는 금이 갑니다. 특히 노후에는 사소한 갈등이 오래 갑니다. 몸도 마음도 예전만큼 빨리 회복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이 많은 사람은 관계의 공기를 거칠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 말이 좀 직설적이지만 나쁜 의도는 없어"라고 넘어가면 안 됩니다. 의도보다 중요한 것은 영향입니다. 노후에는 영향이 좋은 관계를 선택해야 합니다.

여섯째, 말이 많은 사람은 관계를 피상적으로 만들 위험이 큽니다. 대화가 깊어지려면 듣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말이 많은 사람은 듣는 시간을 앗습니다. 그들은 상대의 속도를 기다리지 못합니다. 상대의 마음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의 말로 공백을 채웁니다. 그 공백을 채우는 순간 관계는 얕아집니다. 깊은 관계는 말이 많은 곳에서 생기지 않습니다. 깊은 관계는 조용히 들어주는 공간에서 생깁니다. 그래서 노후에는 말이 많고 늘 시끄러운 관계보다 말이 적어도 마음이 편한 관계가 훨씬 같이 있습니다.

일곱째, 말이 많은 사람은 책임을 회피하기도 합니다.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은 되게 말이 많습니다. 변명이 많고 해명이 길고 상황 설명이 과도합니다. 말이 길어질수록 책임은 흐려집니다. 갈등 상황에서 "내가 왜 그랬는지 들어"라고 시작해 "끝내는 너도 잘못했잖아"로 마무리하는 사람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은 말로 상황을 뒤집으려 합니다. 이런 관계에 오래 노출되면 나도 모르게 내 감각이 흐려집니다. "내가 예민한가? 내가 잘못한 건가?" 스스로를 의심하게 됩니다. 노후에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관계는 건강을 갉아먹습니다.

여덟째, 말이 많은 사람은 결국 내 에너지를 소모시킵니다. 말이 많은 관계는 듣는 쪽의 필요를 빠르게 쌓습니다. 불필요한 정보, 과장된 감정, 끝없는 뒷 이야기, 반복되는 불평. 이런 대화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지치게 합니다. 노후에는 에너지를 아껴야 합니다. 몸에 에너지도 줄지만 마음의 에너지는 더 빨리 바닥납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께 권합니다. 말이 많은 사람을 무조건 끊어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거리 조절을 하십시오. 가까이 할수록 내 마음이 소모되는 관계는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결국 핵심은 이것입니다. 말이 많은 사람을 경계하라는 것은 말 그 자체를 미워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말속에 숨어 있는 의도와 패턴을 분별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상대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 경계선을 지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 앞에서 내가 말을 더 하게 된다면 그 관계는 이미 나의 경계선을 흔들고 있는 것입니다. 노후에는 경계선이 곧 평온입니다. 경계선이 무너지면 평온이 무너집니다.

그래서 여러분 오늘부터라도 한 가지를 실천해 보십시오. 말이 많은 사람을 만나면 내 이야기를 줄이십시오. 반응을 늦추십시오. 질문을 받았을 때 바로 대답하지 말고 한번 생각하십시오. "이 말은 꼭 해야 하는가? 지금 이 사람에게 줄 정보인가?" 이 작은 멈춤이 여러분을 지켜줍니다.

다음 부분에서는 노후에 특히 집착하면 인생이 무너지는 것들. 과거, 돈, 건강, 자녀, 체면 왜 그것들이 마음을 병들게 하는지 더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여러분, 노후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부족함이 아니라 집착입니다. 부족하면 채우면 됩니다. 배우면 되고 조정하면 되고 도움을 받으면 됩니다. 그런데 집착은 다릅니다. 집착은 채워도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채울수록 더 불안해집니다. 왜냐하면 집착은 대상이 아니라 마음의 습관이기 때문입니다. 노후에 어떤 것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삶의 균형이 무너지고 관계가 흔들리고 결국 내 마음에 평온이 사라집니다. 저는 나이가 들수록 무엇을 더 얻을까가 아니라 무엇을 내려놓을까가 인생을 결정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노후는 더 많이 쌓는 시간이 아니라 더 가볍게 정리하는 시간입니다.

첫째, 과거에 대한 집착입니다. 노년이 되면 과거가 자꾸 떠오릅니다. 그때 내가 잘 나갔던 시절, 그때 내가 억울했던 일, 그때 내가 놓친 기회, 그때 누군가 내게 한 말. 과거를 떠올리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문제는 과거가 회상이 아니라 거처가 되는 순간입니다. 과거 속에 살기 시작하면 현재가 멈춥니다. 현재가 멈추면 삶은 줄어듭니다. 사람들은 종종 나이가 들면 시간이 빨리 간다고 말합니다. 저는 그것이 단지 시간이 빠른 것이 아니라 현재를 제대로 살지 못해서 그렇게 느끼는 경우도 많다고 봅니다. 과거에 집착하면 지금이 순간에 작은 기쁨을 놓칩니다. 오늘 아침에 햇빛, 따뜻한 차 한잔, 손주의 목소리, 산책길의 바람 같은 것들 말입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다시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과거를 붙잡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현재가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현재가 불안하니 과거로 도망가고 과거로 도망가니 현재를 더 놓치고 그러니 더 불안해집니다. 이것이 악순환입니다. 노후에는 과거를 교훈으로 삼되 그것을 반복 재생하는 습관을 끊어야 합니다. 후에는 반성이 되면 힘이 되지만 반복되면 독이 됩니다.

둘째 돈에 대한 지나친 집착입니다. 돈은 중요합니다. 돈이 없으면 현실이 거칠러집니다. 저는 돈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돈이 삶의 중심이 되는 순간 삶은 상막해집니다. 돈은 도구인데 목적이 되어버리면 사람의 얼굴이 바뀝니다. 표정이 굳어지고 마음이 좁아지고 관계가 계산이 됩니다. "이 사람이 나에게 도움이 되나? 저 모임은 득이 되나?"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인간 관계는 더 이상 마음의 교류가 아니라 거래가 됩니다. 거래는 오래 못 갑니다. 또 하나 돈에 집착하면 두려움이 커집니다. 가진 돈이 많아도 두렵습니다. 이를까 봐 두렵고 남이 알까 봐 두렵고 자녀가 기대할까 봐 두렵습니다. 가진 돈이 적으면 더 두렵지요. 돈이 줄어드는 것 자체보다 돈이 줄어든다는 상상이 더 사람을 괴롭힙니다. 그래서 노후의 돈 문제는 숫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마음의 태도 문제입니다. 나는 부족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다루지 못하면 돈이 많아도 불행합니다. 반대로 나는 지금 필요한 만큼은 있다는 기준을 세우면 돈이 많지 않아도 평온해집니다. 돈을 사랑하되 돈이 내 삶에 도리를 넘어서는 순간을 경계해야 합니다.

셋째, 건강에 대한 과도한 집착입니다. 노년에는 건강이 최고의 관심사가 됩니다. 당연합니다. 그런데 건강을 관리하는 것과 집착하는 것은 다릅니다. 관리는 삶을 안정시키지만 집착은 삶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집착은 모든 신호를 위협으로 해석하게 합니다. 작은 통증도 큰 병으로 확대해서 생각하고 기사 하나를 보면 불안해서 잠을 못 자고 누가 그약이 좋다 하면 바로 흔들립니다. 그렇게 되면은 몸을 살리려다가 마음을 먼저 병들게 합니다. 건강은 몸과 마음이 함께 만드는 균형입니다. 마음이 늘 불안하면 면역도 약해지고 수면도 깨지고 결국 몸도 약해집니다. 건강을 위해 할 일은 명확합니다. 규칙적인 생활, 무리하지 않는 운동, 균형잡힌 식사, 전기 검진,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태도입니다. 그런데 집착은 미래의 불행을 끌어당깁니다. 아직 오지 않은 병을 미리 겪는 셈이지요. 노후의 건강은 완벽이 아니라 지속입니다. 지속을 위해서는 마음이 먼저 가벼워야 합니다.

넷째, 자녀에 대한 집착입니다. 이 부분은 특히 어렵습니다. 부모 마음은 자녀를 향합니다. 걱정도 되고 도와주고 싶고 간섭도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노후에 자녀에 집착하면 두 가지가 무너집니다. 하나는 자녀의 삶이고 다른 하나는 부모 자신의 삶입니다. 자녀는 자녀의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부모가 계속 관여하면 자녀는 숨이 막힙니다. 그리고 부모는 자녀의 반응에 따라 하루의 기분이 좌우됩니다. 연락이 왜 없지? 왜 내 말을 안 듣지? 왜 저렇게 사는 거지?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내 마음은 자녀의 삶에 매여버립니다. 매인 마음은 자유를 잃습니다. 노후에 필요한 것은 자유입니다. 내 삶을 내 손에 다시 돌려놓는 것입니다. 자녀를 사랑하되 자녀를 통해 내 외로움을 해결하려 하지 마십시오. 외로움은 자녀가 채워주지 못합니다. 자녀는 자기 삶이 바쁘고 그 바쁨은 죄가 아닙니다. 부모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합니다. 자녀가 무너지지 않도록 뒤에서 지지하되 앞에서 끌고 가지 않는 것입니다. 한 걸음 물러나면 관계가 편해집니다. 편해지면 오히려 사랑이 오래 갑니다.

다섯째 명예와 체면에 대한 집착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자존심이 세집니다. 내가 누군데라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강해질수록 사람들은 내 곁에서 조심하게 됩니다. 조심한다는 것은 존중이 아니라 거리입니다. 체면을 지키려다 보면 실수를 인정하지 못하고 사과를 못하고 양보를 못합니다. 결국 관계가 딱딱해집니다. 특히 가족 관계에서 체면은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자녀에게 부모 말이 맞다를 강요하면 자녀는 침묵합니다. 침묵은 평화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단절일 때가 많습니다. 체면을 내려놓는 것이 구력이 아닙니다. 오히려 체면을 내려놓는 사람이 진짜 강한 사람입니다. 품격은 고개를 높이는 데서 나오지 않습니다. 마음을 낮추는 데서 나옵니다.

여섯째,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노후의 외로움을 두려워하면 사람을 필요로 만나게 됩니다. 필요로 만나면 관계가 왜곡됩니다. 억지로 모임을 나가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원치 않는 관계를 붙잡습니다. 그렇게 해서 외로움을 피하려다 오히려 더 큰 고립을 부릅니다. 왜냐하면 억지 관계는 에너지를 빼앗고 에너지가 바닥나면 사람을 더 피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외로움은 피해야 할 적이 아니라 다루어야 할 감정입니다. 조용한 취미 하나, 몸을 움직이는 습관 하나, 마음을 정리하는 글쓰기나 산책 이런 것들이 외로움을 고여로 바꿉니다. 고혈를 견디는 사람이 노후를 이깁니다. 고혈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관계에 매달립니다.

일곱째, 물건에 대한 집착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버리기 어렵습니다. 언젠가 쓸지도 몰라. 이건 추억이야라는 말로 집을 채웁니다. 그러나 물건이 쌓이면 공간이 줄고 공간이 줄면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물건을 정리한다는 것은 단지 집을 치우는 일이 아닙니다. 마음의 무게를 덜어내는 일입니다. 노후에는 가진 것이 아니라 가벼움이 행복을 줍니다. 집이 단순해지면 마음도 단순해집니다. 단순해지면 고민도 줄어듭니다.

여덟째, 완벽함에 대한 집착입니다. 집을 늘 완벽하게 정리해야 하고 사람들에게 늘 완벽하게 보이고 말도 늘 흠없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삶은 긴장으로 굳어버립니다. 완벽함은 목표가 아니라 착각일 때가 많습니다. 완벽을 추구할수록 불만족은 커지고 불만족이 커질수록 감사는 사라집니다. 노후의 행복은 완벽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충분함에서 나옵니다. 오늘 하루가 무사하면 충분한 것입니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누군가와 따뜻한 인사를 나눴다면 충분한 것입니다.

아홉째 비교에 대한 집착입니다. 누군가는 자녀가 잘됐고 누군가는 집이 크고 누군가는 건강해 보입니다. 비교는 끝이 없습니다. 비교하는 순간 내 삶의 기준을 남에게 넘겨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은 늘 부족합니다. 부족함은 끝없이 생깁니다. 노후에는 내 삶의 기준을 내 손에 되돌려야 합니다. 나는 나의 속도로 살겠다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열제, 미움과 원한에 대한 집착입니다. 오래 살면 상처가 생깁니다. 누군가 내게 못되게 했고 누군가 나를 배신했고 누군가 나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원한을 붙잡고 있으면 그 원한은 상대를 벌라는 것이 아니라 나를 벌합니다. 내 마음을 뜨겁게 만들고 내 잠을 깨우고 내 얼굴을 굳게 만듭니다. 용서는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정리입니다. 노아야 내가 삽니다.

결국 여러분 노후에 집착하면 인생이 망가진다는 말은 과장이 아닙니다. 집착은 내 마음을 좁히고 마음이 좁아지면 관계가 거칠러지고 관계가 거칠러지면 생활이 불안해집니다.

다음 부분에서는 이 집착에 뿌리인 감정, 특히 분노와 불안을 똑똑한 사람들은 어떻게 다루는지 그리고 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과 거리를 두어야 하는지 아주 현실적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여러분, 노후의 사람을 가장 많이 망치는 감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저는 분노라고 생각합니다. 돈이 부족해도 관계가 줄어도 몸이 예전 같지 않아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 삶은 유지됩니다. 그런데 분노가 습관이 되면 삶이 무너집니다. 분노는 한번 터지고 끝나는 감정이 아닙니다. 분노는 마음의 근육을 굳게 만들고 굳어진 마음은 작은 자극에도 더 쉽게 복발합니다. 그래서 노년의 분노는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니라 생활 전체의 문제입니다. 분노는 건강을 망치고 분노는 관계를 끊고 분노는 결신을 고립시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분노를내는 사람은 보통 내가 옳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더 위험합니다. 옳다고 믿는 분노는 멈추지 않습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똑똑한 사람, 정말 삶을 깊게 산 사람들은 화가 나도 쉽게 화를 내지 않습니다. 그들은 감정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감정을 정확히 알기 때문에 감정에 끌려가지 않습니다. 여러분, 감정은 파도와 같습니다. 파도를 막으려고 하면 더 세게 치지요. 그런데 파도를 파도로 바라보면 결국 지나갑니다. 똑똑한 사람들은 화가 올라오는 순간 그 파도를 바로 이름붙입니다. "아, 지금 내가 화가 나는구나." 이 한 마디가 감정을 다스리는 첫걸음입니다. 우리는 보통 화가 나면 "저 사람이 잘못했다"로 바로 뛰어갑니다. 하지만 똑똑한 사람들은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로 먼저 돌아옵니다. 외부를 공격하기 전에 내부를 관찰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로 똑똑한 사람들은 감정을 인지하고 인정합니다. 억누르지 않습니다. 부정하지 않습니다. 나는 화가 안 났어라고 스스로를 속이지 않습니다. 대신 담담하게 인정합니다. 인정은 굴복이 아닙니다. 인정은 통제의 시작입니다. 내 감정을 인정하는 순간 감정과 나는 분리됩니다. 분노가 나가 아니라 내 안에 잠시 머무는 것이 됩니다. 이 분리가 되어야 우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선택이 없는 사람은 늘 반사적으로 폭발합니다. 선택이 있는 사람은 멈출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똑똑한 사람들은 즉각적인 반응을 미룹니다. 화가 났을 때 가장 위험한 것은 속도입니다. 감정은 늘 빠르고 이성은 늘 느립니다. 그래서 화가 나는 순간 말이 먼저 나가면 대부분 후회합니다. 노후에는 그 후회가 더 큽니다. 관계를 다시 회복할 시간이 적기 때문입니다. 똑똑한 사람들은 화가 올라오면 말을 늦춥니다. 심을 하고 물한잔을 마시고 잠시 자리를 피합니다. 어떤 사람은 "제가 지금은 답을 못 드리겠습니다. 조금 생각하고 말씀드릴게요"라고 말합니다. 이 한마디가 관계를 살립니다. 화가 난 상태에서의 대답은 대게 칼입니다. 칼은 상대를지만 결국 내 손도 다치게 합니다.

세 번째로 똑똑한 사람들은 화의 원인을 분석합니다. "왜 내가 이렇게 화가 나지?" 이 질문은 매우 강력합니다. 화는 대부분 하나의 사건에서 오지 않습니다. 화는 쌓인 것에서 옵니다. 피로, 외로움, 무시당했다는 느낌, 내 기대가 깨졌다는 느낌. 특히 노후에는 내가 존중받지 못한다는 감각이 분노로 바뀌기 쉽습니다. 자녀가 내 말을 무시한다고 느끼면 화가 납니다. 배우자가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느끼면 화가 납니다. 하지만 그 분노의 뿌리를 보면 사실은 인정 욕구와 외로움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인을 알면 우리는 해결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 상대를 공격하는 대신 내 상태를 조정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로 똑똑한 사람들은 상대의 입장을 고려합니다. 이것은 상대를 이해하라는 도덕적 설교가 아닙니다. 아주 현실적인 기술입니다.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면 내 분노의 온도가 내려갑니다. 예를 들어 자녀가 차갑게 말했을 때 "저 아이가 나를 무시한다"라고 생각하면 분노가 올라갑니다. 그러나 "저 아이도 요즘 힘들 수 있다. 지금은 여유가 없을 수 있다"라고 생각하면 분노는 잠시 멈춥니다. 물론 상대가 늘 옳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내 마음을 지키는 방식입니다. 노후에 중요한 것은 늘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내 건강을 지키는 것입니다. 화를 내서 이겨봤자 남는 것은 피로와 후회일 때가 많습니다.

다섯 번째로 똑똑한 사람들은 건설적인 소통을 선택합니다. 화가 났을 때 많은 사람들은 상대를 공격합니다. "너는 항상 그래." "네가 문제야." "왜 그렇게 못하니?" 이런 말은 상대를 방어하게 만들고 방어는 곧 전쟁을 부릅니다. 반대로 똑똑한 사람들은 상황과 감정을 분리합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 내가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 부분은 나에게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공격이 아니라 설명입니다. 상대를 낮추지 않고 나를 지키는 말입니다. 이런 말은 관계를 깨지 않으면서도 경계를 세우게 합니다. 노후에는 이 경계가 매우 중요합니다. 경계가 없는 친절은 결국 분노로 바뀝니다. 쌓이고 쌓이다가 폭발하기 때문입니다.

여섯 번째로 똑똑한 사람들은 시간을 줍니다. 감정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특히 노년의 감정은 젊을 때보다 더 깊습니다. 그만큼 가라앉는데도 시간이 걸립니다. 똑똑한 사람들은 화가 커질수록 더 천천히 움직입니다. 산책을 하거나 방을 정리하거나 잠깐 밖에 공기를 마십니다. 몸을 움직이면 감정의 에너지가 분산됩니다. 감정은 머리에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몸에서 함께 일어납니다. 그래서 몸을 움직이면 감정도 움직입니다. 반대로 앉아서 계속 생각하면 감정은 더 커집니다. 노후에 감정이 커질 때 생각으로 해결하려 하지 마십시오. 행동으로 분산시키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일곱 번째로 똑똑한 사람들은 말할 순간을 고릅니다. 모든 진실을 즉시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말은 그 순간에 말하면 불이 되고 하루가 지나면 대화가 됩니다. 노후의 갈등은 적절한 순간을 모르는 데서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가 피곤할 때, 화가 났을 때, 바쁠 때, 그런 때에 중요한 이야기를 꺼내면 갈등은 커집니다. 그래서 똑똑한 사람들은 타이밍을 잡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 차분할 때 이야기합시다." 이 한마디는 이성의 승리입니다. 이성의 승리는 관계의 승리입니다.

여덟 번째, 똑똑한 사람들은 자기 성찰을 합니다. 화가 났을 때 우리는 상대의 잘못만 봅니다. 그러나 똑똑한 사람들은 "내 기대가 과했나? 내가 너무 예민한가? 내가 지금 피곤해서 더 크게 느끼나?"를 함께 봅니다. 이 성찰이 비굴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숙입니다. 성찰이 있는 사람은 반복하지 않습니다. 성찰이 없는 사람은 같은 분노를 계속 반복합니다. 반복되는 분노는 결국 인생을 갉아먹습니다.

아홉 번째로 똑똑한 사람들은 용서를 선택하거나 흘려보냅니다. 용서가 항상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관계는 거리를 둬야 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마음속에서 계속 씹어삼키는 원한은 내려놓아야 합니다. 원하는 상대에게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원하는 나를 태웁니다. 잠을 깨우고 심장을 빠르게 하고 혈압을 올립니다. 용서는 상대를 위한 도덕이 아니라 내 건강을 위한 위생입니다.

열 번째로 똑똑한 사람들은 분노의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돌립니다. 화는 에너지입니다. 그 에너지를 사람에게 던지면 관계가 깨집니다. 그러나 운동으로 건강이 되고 정리로 쓰면 공간이 되고 공부로 쓰면 지혜가 됩니다. 같은 에너지라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노후에는 이 전한 능력이 삶을 살립니다.

결국 여러분 화를 다스리는 능력은 참는 기술이 아니라 선택하는 기술입니다. 그리고 이 기술이 없는 사람과 가까이하면 내 삶도 함께 흔들립니다.

다음 부분에서는 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을 멀리 해야 하는지, 어떤 특징이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거리를 잡아야 하는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노후의 인간 관계에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기준이 하나 있습니다. 그 사람을 만나고 나면 내 마음이 편해지는가 아니면 어지러워지는가? 젊을 때는 관계를 넓히는 것이 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참고 맞추고 웃고 견딥니다. 그런데 나이가 될수록 우리는 깨닫습니다. 관계는 인맥이 아니라 환경이라는 것을요. 사람은 환경에 물듭니다. 감정이 불안정한 사람 곁에 오래 있으면 나도 불안정해집니다. 감정이 거친 사람 곁에 오래 있으면 나도 거칠러집니다. 그래서 노후에는 사람을 선택하는 일이 곧 내 삶의 기온을 조절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시간이 갈수록 나를 소진시킨다는 사실입니다.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왜 위험한지 단순히 성격이 나쁘다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그들은 종종 능력이 있고 말도 잘하고 때로는 정이 많아 보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패턴입니다. 감정이 통제되지 않는 사람은 특정 상황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노후에는 평온이 곧 건강이고 건강이 곧 전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을 왜 멀리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거리를 잡아야 하는지 아주 현실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관계의 독도를 뿌립니다. 그들은 작은 일에도 감정의 온도가 급격히 올라갑니다. 목소리가 높아지고 표정이 굳고 말이 거칠러집니다. 그 옆에 있는 사람은 늘 긴장하게 됩니다. 오늘은 또 무슨 일로 터질까? 이렇게 살면 마음이 편할 수가 없습니다. 노후의 가장 해로운 습관은 집 밖에서도 집 안에서도 긴장하는 것입니다. 긴장은 근육을 굳게 만들고 수면을 깨고 소화를 망치고 혈압을 올립니다. 결국 그 사람의 감정이 내 몸을 때립니다. 이런 관계는 정으로 유지되는 것 같아도 결국 병이 됩니다.

둘째,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갈등을 확대시키는 습관이 있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은 갈등을 해결하려 합니다. 그런데 감정이 통제되지 않는 사람은 갈등을 표출하려 합니다. 갈등의 목적이 문제 해결이 아니라 감정 배출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은 문제도 큰 싸움이 됩니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 늦은 답장 하나가 전쟁이 됩니다. 그리고 그 전쟁이 끝나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마음의 상처만 남습니다. 노후에는 상처가 오래 갑니다. 젊을 때는 상처가 생겨도 할 일이 많아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노년에는 상처를 곱씹을 시간이 많습니다. 그래서 감정 폭발형 관계는 더 치명적입니다.

셋째,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을 지치게 만듭니다. 그들은 자신의 감정이 중심입니다. 기분이 좋으면 친절하고 기분이 나쁘면 차갑습니다. 일관성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 곁에 있으면 상대는 늘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오늘은 기분이 어떤가를 먼저 살피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정서적 노동입니다. 노후에는 정서적 노동을 줄여야 합니다. 그런데 감정이 불안정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하루가 통째로 정서적 노동이 됩니다. 웃어주고 달래주고 맞춰주고 눈치 보고 결국 내 인생이 남의 감정 관리로 흐릅니다.

넷째,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신뢰를 무너뜨립니다. 신뢰는 예측 가능성에서 나옵니다. "이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도 이 정도 손을 지키는구나." 그런데 감정이 폭발하는 사람은 손을 지키지 못합니다. 오늘은 괜찮다가도 내일은 폭발합니다. 상황에 따라 말이 달라지고 뒤끝이 길고 사과가 없거나 사과가 진심이 아닙니다. 그러니 상대는 불안을 느낍니다. 불안한 관계는 오래 못 갑니다. 그리고 불안한 관계를 붙잡고 있으면 내 마음은 늘 준비 태세가 됩니다. 준비 태세는 에너지를 빨아먹습니다.

다섯째,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종종 감정을 무기롭습니다. 이건 아주 흔합니다. 화를 내서 상대를 움직이게 만들고 울음으로 상대를 죄책감에 묻고 삐으로 상대를 조종합니다. 겉으로는 내가 상처받아서 그래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상대의 행동을 바꾸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관계는 평등하지 않습니다. 한쪽이 감정으로 밀어붙이면 다른 쪽은 늘 저줍니다. 저주는 사람이 착해서가 아니라 피곤해서 저줍니다. 그런데 피곤해서 저주는 관계는 결국 폭발합니다. 후에 이런 관계를 오래 유지하면 내가 나를 잃습니다.

여섯째,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자기 성장에 걸림돌이 됩니다. 노후라고 해서 성장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노후는 가장 깊은 성장이 가능한 시기입니다. 삶을 돌아보고 관계를 정리하고 가치관을 세우고 나다운 속도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감정 폭발 관계에 묶기면 그 모든 에너지가 수습에 들어갑니다. 수습하느라 내 삶을 못 삽니다. 나를 위한 독서, 산책, 운동, 취미, 사람다운 쉼 이런 것들이 사라집니다. 결국 노후가 내 인생이 아니라 남의 감정 뒤치거리가 됩니다.

일곱째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주변 분위기를 망칩니다. 가족 모임이든 친구 모임이든 그 한 사람이 분위기를 바꿉니다. 모두가 편하게 웃다가도 그 사람의 한마디로 공기가 얼어붙습니다. 노후에는 이런 분위기 변화가 더 고통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좋은 시간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줄어든 좋은 시간을 감정 폭발로 망치는 관계는 결국 사람들을 흩어지게 만듭니다. 흩어지면 남는 것은 고립입니다.

여덟째,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후회를 반복합니다. 폭발하고 관계를 망치고 미안해하고 다시 폭발합니다. 이 반복이 관계를 갉아먹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미안해하는 순간에도 내가 왜 화가 났는지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반복은 멈추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배우지 않는 후에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감정 폭발형 관계는 언젠가 나아지겠지라는 기대만으로 버티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런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세 가지 원칙을 권합니다. 첫째, 설명하려 들지 말고 선을 정하십시오. 감정이 통제되지 않는 사람에게 긴 설명은 불을 더 키울 때가 많습니다. 짧게 말하십시오. "그 말은 듣기 어렵습니다. 지금은 대화를 멈추겠습니다." 이런 방식이면 다음에 이야기하겠습니다. 둘째, 반응을 늦추십시오. 그들은 즉각적인 반응을 원합니다. 즉각 반응하면 그들의 감정 파도에 휩쓸립니다. 셋째, 접촉 빈도를 조절하십시오. 무조건 끊어내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내 평온이 무너질 정도라면 거리를 둬야 합니다. 노후에는 좋은 사람을 더 찾는 것보다 나를 망치는 관계를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을 멀리하라는 말은 차갑게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내 삶을 지키라는 말입니다. 노후는 남을 교육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남을 고치겠다고 덤다가 내가 먼저 지칩니다. 우리는 타인의 감정을 책임질 수 없습니다. 책임져야 하는 것은 내 마음의 평온입니다.

다음 부분에서는 평온한 노후를 위해 지금 당장 그만둬야 하는 것들을 습관, 생각, 관계의 측면에서 더 구체적인 체크리스트처럼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평온한 노후는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지지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노후를 시간이 많아지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다릅니다. 노후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줄어드는 시기가 될 수 있습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으면 작은 일에도 피곤해지고 피곤하면 감정이 예민해지고 예민해지면 관계가 거칠어집니다. 그러니 노후의 평온은 환경이 아니라 습관이 만듭니다. 무엇을 더해야 평온해지는가를 묻기 전에 무엇을 지금 당장 그만둬야 평온해지는가를 먼저 봐야 합니다. 저는 오늘 그 그만둬야 할 것들을 현실적인 생활 언어로 단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평온은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작은 중단에서 시작됩니다.

첫째, 과거를 붙잡고는 습관을 그만두십시오. 후에는 마음을 망가뜨립니다. 특히 반복되는 후에는 현재를 죽입니다. "그때 내가 그렇게만 하지 않았더라면, 그 사람을 믿지 않았더라면, 그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 문장을 하루에 몇 번씩 되내면 현재는 점점 얇아집니다. 여러분, 과거는 교훈이 될 때만 가치가 있습니다. 반복 재생되는 과거는 교훈이 아니라 독입니다. 그만두셔야 합니다. 대신 이렇게 바꾸십시오. "그때에 나는 최선을 다했다. 그 일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지금의 나는 다르게 할 수 있다." 과거를 해석하는 문장을 바꾸면 현재의 숨이 트입니다.

둘째 과도한 소비와 물질 집착을 그만두십시오. 노후의

불안이 어디에서 오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많은 경우 쓸데없는 지출과 쓸데없는 소유에서 온다고 답합니다. 사람은 물건을 소유하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물건이 사람을 소유합니다. 관리해야 하고 지켜야 하고 비교해야 하고 정리해야 합니다. 그러다 마음이 지칩니다. 필요한 것만 남기십시오. 단순해지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그리고 돈을 쓸 때 한 가지 기준을 세우십시오. 이 소비가 내 평온을 늘리는가 아니면 불안을 늘리는가? 평온을 늘리지 못하는 소비는 결국 후회로 돌아옵니다.

셋째, 타인과 비교하는 습관을 그만두십시오. 비교는 노를 가장 빨리 늙게 만듭니다. 누군가는 자녀가 성공했고 누군가는 집이 넓고 누군가는 건강해 보입니다. 그런데 그 비교의 끝은 어디니까? 끝이 없습니다. 비교는 내 삶의 기준을 남에게 넘겨 주는 행위입니다. 기준을 넘겨 주면 마음이 늘 부족합니다. 부족하면 조급해지고 조급하면 관계가 거칠어집니다. 결국 평온이 사라집니다. 비교되신 기준을 되찾으십시오. 나는 내 속도로 살겠다. 이 문장이 노후의 근육입니다.

넷째, 건강을 관리가 아니라 공포로 대하는 태도를 그만두십시오. 병원은 필요합니다. 검진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매일 건강 정보를 검색하고 작은 통증에도 최악을 상상하고 누가 무슨 약이 좋다 하면 바로 흔들리는 삶은 건강을 지키는 삶이 아닙니다. 그것은 불안을 키우는 삶입니다. 건강은 균형에서 옵니다. 규칙적인 수면, 무리하지 않는 운동, 적당한 식사, 그리고 마음의 안정. 이 이네 가지가 핵심입니다. 공포로 건강을 대하면 마음이 먼저 병이 됩니다. 마음이 병들면 몸도 흔들립니다. 그러니 건강을 의식하되 집착하지 마십시오.

다섯째, 감정적으로 소모되는 인간관계를 정리하지 못하는 습관을 그만두십시오. 노후에는 관계가 줄어드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줄어드는 것을 실패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관계가 줄어드는 대신 관계의 질이 좋아져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인연이니까 오래 봤으니까라는 이유로 자신을 해치는 관계를 붙잡습니다. 그 관계를 만나고 나면 기운이 빠지고 집에 오면 한숨이 나오고 며칠 동안 마음이 어지럽다면 그것은 이미 내 삶의 평온을 갉아먹는 관계입니다. 정리해야 합니다. 정리라고 해서 싸우라는 뜻이 아닙니다. 거리 조절입니다. 빈도를 줄이고 깊이를 줄이고 기대를 줄이는 것입니다. 노후의 인간관계는 의리가 아니라 건강의 문제입니다.

여섯째,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욕심을 그만두십시오. 특히 자녀의 삶을 통제하려는 욕심이 그렇습니다. 자녀는 내 인생의 연장이 아닙니다. 자녀는 자녀의 인생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조언과 지지뿐입니다. 그런데 조언이 간섭이 되는 순간 관계는 딱딱해집니다. 통제하려 하면 상대는 숨습니다. 숨으면 단절이 됩니다. 노후에 가장 아픈 것은 단절입니다. 그러니 한 발 물러나십시오. 네가 선택해라. 나는 응원한다. 이 태도가 자녀와 부모 모두를 살립니다. 통제를 내려놓는 것이 무책임이 아닙니다. 오히려 관계를 지키는 책임입니다.

일곱째, 쓸데없는 걱정을 그만두십시오. 걱정은 생각처럼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걱정은 아직 오지 않은 일을 미리 겪는 것입니다. 혹시 아프면 어떡하지? 돈이 모자라면 어떡하지? 자녀가 힘들어지면 어떡하지? 물론 대비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걱정은 대비가 아닙니다. 걱정은 에너지 낭비입니다. 대비는 계획으로 하고 걱정은 멈추십시오.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하나 정하고 그것을 하십시오. 그게 대비입니다. 걱정은 오늘을 망치고 결국 내일도 망칩니다.

여덟째, 내 기준을 타인에게 강하는 태도를 그만두십시오. 나이가 들수록 경험이 쌓이니 내 방식이 옳아 보입니다. 그런데 오음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타인에게 억지로 적용하면 관계는 갈라집니다. 특히 가족과 가까운 친구 사이에서 강요는 큰 상처가 됩니다. 내가 살아보니 이게 맞아라는 말이 상대에게는 내 인생은 틀렸어로 들릴 수 있습니다. 후에는 말의 무게가 더 큽니다. 그러니 말의 결을 부드럽게 하십시오. 조언은 하되 선택은 상대에게 남겨 두십시오.

아홉째, 불필요한 자존심을 그만두십시오. 자존심은 때로 나를 지키지만 때로는 나를 고립시킵니다. 사과할 수 있는데 사과하지 못하고 먼저 연락할 수 있는데 못하고 한 발 물러날 수 있는데 못합니다. 그 결과 관계가 멀어집니다. 여러분 노후에 가장 갑진 것은이기는 것이 아니라 남는 것입니다. 사람이 남아야 합니다. 마음이 남아야 합니다. 자존심으로 관계를 끊으면 나중에 남는 것은 후회일 때가 많습니다.

열째, 자기 비난을 그만두십시오. 나는 왜이 모양일까? 나는 왜 이렇게 밖에 못 살았을까? 이 이 말은 인생의 남은 시간을 갉아먹습니다. 노후의 평온은 자기 수용에서 시작됩니다. 부족함이 있어도 괜찮습니다. 실수가 있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의 태도입니다. 나를 미워하면 세상도 미워집니다. 나를 받아들이면 세상도 조금 부드러워집니다.

11째. 완벽주의를 그만두십시오. 집도 인간 관계도 내 몸도 완벽할 수 없습니다. 완벽을 목표로 삼는 순간 만족이 사라집니다. 만족이 사라지면 감사가 사라집니다. 감사가 사라지면 평온도 사라집니다. 노후에는 충분함을 배우셔야 합니다. 오늘 하루가 무사하면 충분한 것입니다.

자의 시선을 의식하는 태도를 그만두십시오. 사람들의 평가에 묶기면 내 삶은 남의 눈으로 살게 됩니다. 그런데 남의 눈은 변덕스럽습니다. 오늘 칭찬하다가 내일 비난합니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이 흔들리면 평온은 멀어집니다. 노후에는 남의 눈보다 내 마음을 기준으로 사십시오. 내가 편하면 된다. 이것이 노후의 자유입니다.

여러분, 평온한 노후는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입니다. 습관을 빼고 집착을 빼고 걱정을 빼고 소모되는 관계를 빼는 것입니다. 그러면 비로소 남는 것이 있습니다. 고요함, 감사, 건강한 관계 그리고 나 자신입니다.

나음 부분에서는이 빼기를 실제 인간 관계에서 특히 치명적으로 만드는 것, 즉 노후에 하면 안 되는 자랑. 왜 자랑이 관계를 망치고 내 품격을 깎는지 구체적인 유형으로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노후에 사람을 가장 빨리 외롭게 만드는 행동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저는 자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랑을 하면 순간적으로는 기분이 올라갑니다. 내가 아직 괜찮다는 느낌을 얻습니다. 그런데 그다음부터 삶이 조용히 무너집니다. 사람들은 겉으로는 웃어줍니다. 아, 그러셨군요. 정말 대단하시네요. 말합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거리를 둡니다. 자랑은 상대의 마음에 비교를 심고 비교는 곧 피로를 낳습니다. 피로가 쌓이면 사람은 떠납니다. 노후에는 떠난 사람을 다시 부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자랑은 젊을 때보다 노후에 훨씬 더 위험합니다. 자랑은 내 품격을 깎을뿐 아니라 내 곁에 사람을 줄입니다. 결국 자랑은 내가 잘 살고 있다는 증명이 아니라 내가 불안하다는 신호가 되기도 합니다.

저는 나이가 들수록 한 가지 질문을 자주 합니다. 나는 지금 누구에게 무엇을 증명하려고 하는가? 노후의 자랑은 대게 증명 욕구에서 나옵니다. 인정받고 싶고 무시당하고 싶지 않고 내 존재가 사라지는 것 같아 불안하니까요. 그러나 여러분 존재는 말로 증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존재는 태도로 드러납니다. 품격은 자랑으로 생기지 않습니다. 품격은 절제에서 생깁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나이 먹고도 이런 자랑을 하는 사람과는 가까이 하지 말아라라는 말을 단순한 비난이 아니라 내 평원을 지키는 현실적인 기준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 자신도 모르게 하고 있는 자랑을 점검하게 해드리겠습니다.

첫째, 과거의 성공만 반복해서 자랑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젊을 때는 마리아로 시작하는 대화가 자주 나오지요. 물론 과거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경험은 자산입니다. 하지만 과거의 성공을 반복해서 꺼내는 사람은 현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가 불안하니 과거로 권위를 세웁니다. 그런데 듣는 사람은 어떤 마음이 듭니까? 처음에는 흥미롭습니다. 두 번째는 예의로 들어줍니다. 세 번째부터는 피곤합니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사람은 지금이 없구나. 노후의 대화는 지금이 있어야 따뜻합니다. 과거만 있으면 관계는 박물관처럼 차가워집니다. 과거의 영광을 말로 붙잡는 순간 현재의 삶은 더 쪼그라듭니다.

둘째, 재산과 물질을 과시하는 자랑입니다. 집, 차, 시계, 명품, 여행, 투자, 수익 이런 이야기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흔듭니다. 누군가는 부러워합니다. 누군가는 위축됩니다. 누군가는 질투합니다. 누군가는 저 사람 결국 돈 얘기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관계는 변질됩니다. 물질 자랑이 무서운 이유는 상대가 나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수치로 보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저 사람은 저 정도 있구나라는 계산이 시작됩니다. 계산이 시작되면 관계는 평등을 잃습니다. 여우의 평등을 잃은 관계는 곧 부담입니다. 부담이 되면 멀어집니다. 그래서 돈이든 물질이든 말로 드러낼수록 관계는 불편해집니다.

셋째, 자녀의 성취를 자랑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아들은 어디 다닌다. 우리 딸은 얼마 번다. 손주는 뭐가 된다. 이런 말은 부모의 기쁨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과도해지면 자녀를 트로피로 만드는 순간이 됩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비교가 됩니다. 우리 집은 왜 이럴까라는 마음이 올라오지요. 또 어떤 경우에는 자녀 입장에서도 부담이 됩니다. 부모가 자녀의 삶을 자랑으로 쓰면 자녀는 실패할 자유를 잃습니다. 부모가 자랑하는만큼 자녀는 더 무거워집니다. 그리고 관계는 자연스럽게 멀어집니다. 노후의 가족 관계를 지키고 싶다면 자녀의 성취는 조용히 기뻐하십시오. 말로 과시할수록 복이 세기도 합니다. 저는 이것을 단지 미신이 아니라 인간 심리의 현실이라고 봅니다. 과신은 반작용을 낳습니다.

넷째, 인맥과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자랑입니다. 내가 누구랑 친하다. 내가 어디에서 뭐했다. 내가 아는 사람이 그쪽에 있다. 이런 말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랑은 관계를 얕게 만듭니다. 진짜 관계는 서로의 마음을 만나는 것이지 이름표를 교환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맥 자랑이 잦아지면 대화는 사람이 아니라 간판이 됩니다. 그 순간부터 상대는 내 앞에서 편해지지 않습니다. 편하지 않으면 마음이 열리지 않습니다.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관계는 오래 못 갑니다.

다섯째, 외모와 젊음을 과시하는 자랑입니다. 나는 아직 젊어 보여. 나는 관리 잘해. 나는 늙지 않아. 이런 말이 반복되면 그 속에는 두려움이 숨어 있을 때가 많습니다. 늙는 것이 두렵고 사라지는 것이 두려우니 젊음을 말로 붙잡습니다. 그런데 외모자랑은 상대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특히 나이와 건강의 민감한 시기에는 이런 자랑이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진짜 젊음은 얼굴이 아니라 태도에서 나옵니다. 남을 편하게 하는 사람이습니다. 남을 불편하게 만드는 자랑은 결기 자신을 더 외롭게 만듭니다.

고난과 역경을 자랑처럼 말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이렇게 힘들게 살아왔어. 나는 고생을 다해봤어. 물론 고난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반복되고 과장되면 대화는 결국 나 힘든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한 장이 됩니다. 듣는 사람은 감정적으로 부담을 느낍니다. 위로해야 하고 맞장야 하고 죄책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은 피합니다. 고난은 자랑이 아니라 정리되어야 할 기억입니다. 고난을 계속 꺼내는 사람은 자신도 고난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일곱째, 타인의 단점으로 자신을 높이는 자랑입니다. 쟤는 절에서 안 돼. 저집은 망했다. 요즘 젊은 것들은 이런 말을 하면서 결국 나는 괜찮다를 보여주려는 사람입니다. 이런 자랑은 가장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언젠가 내 단점도 같은 방식으로 말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타인을 낮추는 말은 결국 관계의 신뢰를 깨뜨립니다. 그리고 신뢰가 깨진 관계는 불안만 남습니다.

여덟째, 지식과 경험을 과시하며 대화를 지배하는 자랑입니다. 내가 다 알아. 내 말이 맞아. 너는 몰라서 그래. 이런 태도는 상대를 작게 만듭니다. 사람은 작아지면 마음을 닫습니다. 마음을 닫으면 관계는 끝입니다. 노후의 대화는 설교가 아니라 교류여야 합니다. 교류가 없는 대화는 외롭습니다.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은 결기 말만 듣게 됩니다. 그것이 고립입니다.

아홉째 거칠례를 과시하는 자랑입니다. 겉으로는 품격 있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마음의 깊이가 얕은 경우가 있습니다. 좋은 말, 멋진 표현, 체면 그런데 결정적 순간에 배려가 없고 책임이 없고 진심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과 가까이 하면 관계는 늘 허전합니다. 허전한 관계는 마음을 더 외롭게 합니다. 거칠래 자랑은 결국 내 마음의 공어를 더 드러내는 결과가 되기 쉽습니다.

열째 나이를 무기로 삼는 자랑입니다. 내가 너보다 오래 살았어. 내가 어른이야. 젊은 사람은 조용히 해. 이런 말로 권위를 세우는 사람은 관계의 조화를 깨뜨립니다. 나이는 자랑이 아니라 책임입니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더 많이 참고 많이 배려하고 더 많이 품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나이를 무기로 삼는 순간 사람들은 저 사람은 나이를 먹었는데도 미성숙하구나라고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멀어집니다.

여러분, 자랑은 결국 관계의 공기를 바꿉니다. 자랑이 많은 자리에서는 마음이 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노후에는 자랑하는 사람과 거리를 두는 것이 지혜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어느 순간 자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자랑이 나오는 순간 내 마음 어딘가가 불안하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그 불안을 남을 통해 해결하려 하지 마십시오. 나를 통해 해결해야 합니다. 침묵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품격입니다. 절제는 손해가 아니라 보호입니다.

다음 부분에서는 그렇다면 반대로 나이가 들어도 늘 존중받고 사랑받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인지 품격이 실제 생활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그리고 우리가 내일부터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작은 행동들을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두 가지 길 앞에 서게 됩니다. 하나는 점점 더 예민해지고 점점 더 까다로워지고 점점 더 고립되는 길입니다. 다른 하나는 점점 더 부드러워지고 점점 더 단단해지고 점점 더 따뜻해지는 길입니다. 같은 세월을 지나도 결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재능이나 운이 아니라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태도는 겉으로 멋있어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삶을 편안하게 만들기 위한 기술입니다. 결국 존중받는 노후는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일상을 어떻게 다루느냐에서 시작됩니다.

많은 분들이 말합니다. 나이 들면 사람들에게서 자연히 존중을 받지 않나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이는 존중의 자동 지급이 아닙니다. 나이는 검증의 시간입니다. 세월이 쌓이면 사람들은 내 말을 더 조심히 듣기도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내 태도를 더 엄격하게 봅니다. 왜냐면 나이가 들수록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이 주변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도 늘 사랑받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특별히 말을 잘하거나 돈이 많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아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품격입니다.

첫째, 존중받는 사람은 먼저 타인을 존중합니다. 이들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권위를우지 않습니다. 어른이니까 들어라가 아니라 네 생각은 어떠니라고 묻습니다. 상대가 젊든 경력이 적든 자신과 다르든 한 인간으로 대합니다. 존중은 상대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그대로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그리고이 태도는 결국 돌아옵니다. 사람은 존중받는 곳에 머물고 싶어 합니다. 존중이 있는 곳에서는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입니다.

둘째, 존중받는 사람은 말과 행동이 일치합니다. 약속을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작은 약속도 지킵니다. 언제 밥 한번 먹자 같은 말도 쉽게 던지지 않습니다. 대신 할 수 있는만큼만 말하고 말한 것은 지킵니다. 노후에는이 일관성이 신뢰를 만듭니다. 신뢰는 결국 사람을 남깁니다. 말만 많고 행동이 없는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사람을 잊습니다. 반대로 말이 많지 않아도 행동이 단단한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사람이 모입니다.

셋째, 존중받는 사람은 겸손합니다.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은 나는 아직 배울 것이 있다는 마음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배움을 멈추는 순간 사람이 굳어집니다. 굳어진 사람은 관계에서 마찰를 만듭니다. 반대로 배우는 사람은 부드럽습니다. 부드러운 사람은 충돌을 줄입니다. 충돌이 줄어들면 평온이 옵니다. 결국 겸손은 노후의 평온을 지키는 기술입니다.

넷째, 존중받는 사람은 공감 능력이 뛰어납니다. 공감이란 네가 맞다가 아닙니다. 공감은 네가 그렇게 느끼는 이유를 알겠다입니다. 이 차이가 큽니다. 공감이 있는 대화에서는 상대가 방어하지 않습니다. 방어하지 않으면 관계는 깊어집니다. 노후의 관계가 깊어지면 외로움은 줄어듭니다. 외로움이 줄어들면 분노도 줄어듭니다. 공감은 단지 좋은 성품이 아니라 노후의 안정입니다.

다섯째, 존중받는 사람은 갈등을 평화롭게 다룹니다. 갈등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갈등이 생겼을 때 태도입니다. 존중받는 사람은 목소리를 올리지 않습니다. 상대를 공격하지 않습니다. 대신 사실을 분명히 하고 경계를 우고 감정을 정리합니다. 너는 왜 늘 그래가 아니라이 부분은 나는 어렵다라고 말합니다. 공격이 아니라 표현입니다. 공격은 관계를 무너뜨리고 표현은 관계를 지킵니다. 누후에는이 차이가 생존입니다.

여섯째, 존중받는 사람은 자기 원칙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원칙은 남을 누르는 원칙이 아니라 자신을 다잡는 원칙입니다. 들을 들어 나는 뒷말을 하지 않는다. 나는 남의 약점을 꺼내지 않는다. 나는 감정이 격해지면 잠깐 멈춘다. 같은 원칙입니다. 이런 원칙이 있는 사람은 안정적입니다. 안정적인 사람 곁에 있으면 마음이 편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떠나지 않습니다.

일곱째, 존중받는 사람은 절제된 삶을 삽니다. 절제는 빈곤이 아닙니다. 절제는 과잉을 줄이는 선택입니다. 과잉이 줄어들면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자랑을 줄이고 비교를 줄이고 욕심을 줄이고 말의 양을 줄입니다. 그 대신 감사와 고요를 늘립니다. 노후의 품격은 화려함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절제에서 나옵니다.

여덟째 존중받는 사람은 책임감이 있습니다. 실수했을 때 변명하지 않습니다. 핑계를 길게 늘어놓지 않습니다. 내가 그 부분은 잘못했다라고 말합니다. 이 한마디는 관계를 살립니다. 노후에 책임감이 있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줍니다. 안정감은 사랑의 바탕입니다. 사랑은 감정 같지만 사실은 안정감 위해서 오래 갑니다.

아홉째 존중받는 사람은 주변을 밝게 만듭니다. 그렇다고 늘 웃기라는 뜻이 아닙니다. 불평과 부정의 언어를 줄인다는 뜻입니다. 너후에는 불평이 습관이 되기 쉽습니다. 몸이 불편하고 세상이 빨리 변하고 젊은 세대가 낯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평이 많아지면 사람들은 피합니다. 반대로 조용히 괜찮다, 고맙다. 수고했다를 말하는 사람 곁에는 사람이 남습니다. 이 작은 말들이 관계를 살립니다.

열제. 존중받는 사람은 타인의 시간을 존중합니다. 약속 시간, 연락 시간, 말의 길이까지도 배려합니다. 노후에는 시간이 많다는 착각이 오히려 타인의 시간을 가볍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존중받는 사람은 다릅니다. 상대의 일정과 리듬을 존중합니다. 그래서 상대가 부담을 느끼지 않습니다. 부담이 없으면 관계는 오래 갑니다.

여러분, 여기까지 들으면 결국 한 문장으로 정리됩니다. 존중받는 사람은 남을 편하게 만든다. 남을 편하게 만든다는 것은 결국 내가 내 욕심과 감정과 불안을 잘 다룬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앞에서 우리가 이야기한 숨겨야 할 것, 말이 많은 사람, 집착, 분노, 감정, 폭발형, 관계, 그만둬야 할 습관, 자랑이 모든 주제는 하나로 연결됩니다. 노후의 평온은 기술입니다. 그리고 그 기술의 핵심은 절제와 분별입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오늘부터 당장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실천을 드리겠습니다. 거창하지 않습니다. 첫째, 말하기 전에 한번 멈추고 스스로에게 물으십시오. 이 말이 꼭 필요한가? 둘째, 누군가의 이야기를들을 때 답을 주려 하지 말고 먼저 그랬군요라고 공감하십시오. 셋째, 하루에 한 번은 누군가에게 고맙습니다를 먼저 말하십시오. 넷째, 비교가 올라올 때 나는 나의 속도라고 속으로 한 번만 되십시오. 다섯째, 자랑하고 싶어질 때 그 자랑을 말대신 행동으로 바꾸십시오. 조용히 돕고 조용히 정리하고 조용히 나를 돌보십시오. 이 이 다섯 가지가 쌓이면 노후는 달라집니다. 사람들은 여러분 곁에 있을 때 편해집니다. 그리고 그 편안함이 곧 존중이 되고 사랑이 되고 결국 여러분의 평온이 됩니다. 오늘 이야기의 결론은 단순합니다. 노후에는 많이 깊이입니다. 말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자랑이 아니라 절제입니다. 그리고 그 절제 속에서 여러분의 품격은 조용히 빛나게 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