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et Our Mobile App

Take your business learning on the go!

Download on the App StoreGet it on Google Play

마키마를 통해 바라본 만화 체인소맨 1부와 인문학적 해석

라이너의 컬쳐쇼크42:02

Transcription

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컬처 쇼크에서 만화 이야기를 하는 건 처음인데요. 제가 이야기를 하는 거는 뒤에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오늘은 체인소맨의 1부 만화일부입니다. 네, 만화일부 전체에 대한 이야기를 어, 마키마를 통해서 분석하는 시간으로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체인소맨의 전체 이야기를 가르는 것은 마키마의 존재라고 할 수 있죠. 이 이 일부가 마키마로 인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고 한다면 이부는 마키마의 부제로 인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기 때문에 어 마키마는 체인소맨의 전체를 아우르는 유일 무의한 빌런이고요. 그리고 굉장히 독특한 빌런이고 또한 체인소맨 인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아주 주요 인물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일단 마키마는 굉장히 아름다운 외형을 지니고 있고요. 이 이 작품에서 아마 나오는 역회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외형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고 지위도 굉장히 독특하죠. 주인공의 상사에 해당하는 그래서 항상 주인공이 이렇게 어 여러모로 의지하게 되고 또 복종하게 되는 그러면서도 동경하게 되는 그런 위치에 있는 것이 마키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게다가 이 주인공인 덴지를 심적으로 지배하는 그런 포지션에 있기도 하고요. 이런 여러 가지 마키마의 역할과 포지션을 생각하다가 마지막에 이제 턴일하는 그런 것까지 보면 정말 마키마의 캐릭터는 소년만화에서 흔치 않은 역대급 캐릭터다 요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키마를 중심으로 해석하면 음 바라볼 수 있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에 오늘은 제가 뭐 프로이트 얘기는 늘 하니까 오늘은 이제 니콜로 마키아밸리네 마케아밸리 이야기랑 이제 해겔 철학 요런 부분에 또다시 좀 인문학적인 요소로 마키마를 바라보는 이야기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자, 일단은 이 작가가 가진 성향에 대한 어떤 제 생각 그리고 리뷰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제 생각을 조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일단은 이게 많은 분들이 오해를 하고 계신데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나의 의도는 이렇다라고 밝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만화의 작가도 마찬가지고 혹은 뭐 영화도 마찬가지고 감독이 이제 내 의도는 이렇다 이렇게 밝히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 요렇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작가의 의도는 존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작가가 이렇게 만들려고 했다. 이런 것들을 의도한 것이다라고 하면 아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구나라고 존중할 수 있지만 그걸로 인해서 해석의 답이 내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 부분을 잘 생각하셔야 되는데 작가의 의도는 절대적이지 않아요. 작가의 의도는 어느 정도로 바라봐야 되냐면 어 많은 해석자들이 내리는 어떤 해석에 참고할 만한 자료 정도 참고할 만한 의견 정도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작가가 말하는 자신의 의도는 의견에 지나지 않는다. 요 정도로 평가할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면 이걸 좀 바꿔서 굳이 제가 포스트 모더니즘 얘기를 하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좀 이해하기 쉽게 바꿔서 말씀드리면 우리가 성령파리 소녀의 재림 같은 작품을 보자고요. 성냥파리 소녀의 재림에 대해서 감독님이 하신 말씀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리고 감독의 의도가 굉장히 깊이 있고 그리고 매우 수준 높은 아주 고차원적인 사상을 집어넣은 작품이라고 감독님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의도가 그렇다고요. 그리고 이 작품은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한 그런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었다고 말씀하고 있어요. 그리고 굉장히 불교적인 진리를 담고 있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작가가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 의도를 존중해 버리면 우리는 그 어떤 작품도 불평할 수가 없습니다. 작가가 나의 의도는 이 작품 안에 우주 만물의 진리를 집어넣는 것이다라고 한다면 아 여기에는 만물의 진리가 담겨 있나요? 이렇게 말할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어떤 의도였다라고 한다면 그 의도가 그렇구나라고 바라보면 되지 그 의도를 어떤 절대적인 기준으로 바라볼 수는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만들었구나라고 보면 되는 것이다. 요렇게 말씀드리면 좀 편할 것 같아요.

또한 작가는 이 작품이 작가의 손에서 떠나는 순간에 그것에 대한 해석에 대한 거는 독자들이 갖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독자들이 해석하면 된다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보통 그렇고요. 그래서 어 작가가 밝히는 의도는 그 의도를 존중하되 그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치부해서는 곤란합니다. 그래서 작가가 저는 이런 의도가 아니었습니다.라고 얘기를 하더라도 그 말을 믿을 수 없는 거죠. 이거는 왜냐면 무의식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작가는 작가가 작품을 만들 때 자기가 생각하고 의도한 것만이 담길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이 작가가 있는 무의식이라는게 존재하거든요. 그니까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자한은 알지 못하지만 무의식이 갖고 있는 것이 작품에 담기기 마련이에요. 그리고 그 작품에는 시대가 반영됩니다. 그래서 작가가 하는 표현뿐만 아니라 작가의 무의식과 작가가 말하고 있는 시대와 이런 것들이 반영이 되면서 작품은 작가가 의도한 것보다 더 크고 많은 것을 지니게 돼요. 그렇기 때문에 독자는 어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해석하게 된다. 그리고 그 해석에서 작가가 이런 의도로 썼다라고 하는 것은 참고할 만한 자료일 뿐이다라는 거. 그거를 계속해서 설명을 드립니다.

다음에 두 번째로요. 이 작가의 성향에 대해서 말씀드릴 수밖에 없는데 체인수맨의 작가님은 어 제가 다른 작품들도 보았지만 이분은 굉장히 많은 영화에서 영향을 받았어요. 그리고 어 영화에 대한 오마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기도 하고요. 영화적인 연출을 사용하기도 하고요. 영화의 내용을 착용하기도 합니다. 어 그런 부분에서 어 마찬가지로 이제 영화를 평론하는 것을 업으로 갖고 있는 저 같은 사람이 볼 때는 굉장히 익숙하고 반가운 부분들이 많죠. 또 제가 볼 때는 이 작가가 인문학적 소향이 있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체인수매는 굉장히 삼만하고 뭔가 막나가는 거 같지만 그 안에서 어떤 깊이를 느낄 수 있거든요. 마찬가지로 작가가 어떤 인문학적인 요소를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지 할지라도 어 그 부분이 반영되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무의식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요. 또이 작가가 작품을 만드는 걸 보면 플롯에 대한 관심이 많고 그리고 안티플롯을 좀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부분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데 특히 파워가 운전을 해보겠다고 한 다음에 이제 사고를으로써 일이 무산된다든지 이런 식의 어떤 안티플로적인 요소들이 굉장히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다소 산만하고 기괴해 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탄탄한 바닥에 있는 것처럼 그렇게 느껴져요. 그게 작가가 있는 플롯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들 그리고 이제 입문학적인 기반, 영화에서 온 어떤 연출적 기반 이런 것들이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이 훌륭해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주술 회전 같은 작품이랑은 많이 다른 그런 작품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러면 이제 계급적인 부분에서 어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합시다. 저는 덴지가 브라쿠민에 가까운 존재라고 생각해요. 브라쿠민이 이제 일본 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그런 의미 같은 걸 생각을 해 봐야 될 텐데 일본은 사실상의 어떤 계급 사회처럼 보일 정도로 좀 그런 부분들이 심각하긴 하거든요. 근데 조금 더 나아가서 저는 이 현대 일본 사회에서의 불구이라기보다는 댄지는 저는 아직 개몽되지 않은 그런 전근대적인 민중처럼 보이기도 해요. 왜 왜 그러냐면 전근대적 사회의 민중을 대표하는 그런 인물로서 덴지가 제시된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는데이 이야기가 덴 성장기인데 덴지가 처음 시작된 거를 생각을 해 보면 덴지는 현대 사회에 살고 있지만 학교에도 가지 못한 인물 그러니까 현대 사회에서 버림받은 인물로 그려져요. 마땅히 받아야 할 근대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인물인 거죠.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 전 근대적이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고요. 따라서 이 작품은 덴제의 성장 즉 어떤 전 근대적 문명에 있었던 민중의 성장이면서 더 나아가서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로 가면서 문명 붕괴에 대한 이야기 근대적 사상이 태동하고 그것이 붕괴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라고도 볼 수 있다라는게 이제 제 생각입니다. 요거를 좀 자세하게 설명을 해 보도록 할게요.

만화일보에 알려진 거에 의하면 포치타는 이제 체인소의 악마입니다. 뭐 이것도 확실치는 않은데 어쨌든 덴지는 굉장히 소심인적인 전 근대적인 일차원적인 욕망을 가진 이물 매일매일 하루 벌어서 먹고 살면 된다. 그것도 어 하루 벌어서 먹고 사는게 얘가 돈을 막 모아서 저축을 하고 어떤 금융 상품을 거래를 한다든지 부동산을 산다든지 이런 식의 미래를 생각하는게 아니라 그냥 그날 먹으면 된다고요. 그날 빵 한 조각만 있으면 포치타랑 행복할 수 있다. 포치타는 끌어앉고 그냥 따뜻하게 어 빵만 먹으면 되는 전 근대적 욕망 이걸 가지고 있는 인물이에요. 교육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포치타는 이제 덴지와 계약을 하면서 나는 너의 욕망을 알고 싶어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포치타가 그 욕망을 알고 싶다라고 하는 거는 어떻게 보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욕망에 대한 것이다라고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즉 욕망은 곧 인간이다.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이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 거 같고요. 어,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약간 프로이트적으로 얘기를 한다면 이제 덴지가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동력은 리비도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거 같고요. 덴지에게는 그 어떤 리비도 어떤 원초화적인 이드가 강하고 대신 초자의 존재가 무척 힘이해진 것으로 볼 수 있어요. 원래부터 덴지에게 초자가 없었느냐, 슈퍼해고가 없었느냐, 어떤 도덕적인 규범 어 사회 규범적인 양심 이런 것들이 없었느냐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실제로 덴지가 파워랑 같이 훈련받을 때 보면 얘네들은 악마랑 계약했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가져야 되는 어떤 도덕적인 규범 의식이나 이런 것들이 거의 제거된 상태로 보이거든요. 그니까 포치타와 계약함으로써 초자의 영역이 매우 약해진 그런 인물들이라고 보면 될 거 같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되게 니체적인 것이기도 하죠. 시면을 들여다볼 때는 그 시면도 나를 들여다볼 것을 생각해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괴물에 맞서기 위해서는 괴물이 되어야 한다. 요런 부분에서도 좀 가볍게 짚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 이야기는 마키마를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이 저 옳다고 보기 때문에 어 좀비랑 싸우다가 마침내 마키마를 만납니다. 그리고 관계를 맺죠. 어 이 관계가 지배 피지배 관계다라고 전에도 말씀을 드렸는데 이 마키마는 어떤 지배 시스템 그 자체로 보입니다. 시스템 그 자체라고 볼 수 있겠고 약간 마크스적으로 얘기를 한다면이 생산 관계에 있어서 자본가라든지 혹은 생산 수단을 독점하고 있는 존재요 정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여기에서 이제 마키마를 바라보도록 하자고요. 이 마키마의 정체는 지배 악마입니다. 일부의 최종보스죠. 지배이자 시스템 그 자체 여기에서 마키마의 정체가 지배의 악마임을 안다고 할지라도 지배의 악마로서 가지고 있는 어떤 목적 의식이나 욕망을 말하기에 앞서서 이 마키마는 지정학적인 의미로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지금의 마키마는 저는 현대 일본을 의미한다고 생각해요. 즉 마키마라고 하는 존재는 현대 일본을 지배하고 있는 그림자 정도라고 보면 될 거 같습니다. 일본을 실질적으로 이렇게 행정을 집행하고 지배하고 있다 혹은 운영하고 있다라고 볼 수 있는 거는 일본의 내각 총리 대신과 그 내각 총리 대신을 지지하고 있는 집권 여당의 존재잖아요. 그리고 표면적으로는 구강의 존재가 있죠. 천왕의 존재가 있는데 그 뒤에 실질적인 지배를 하고 있는 것은 배후의 지배자인 마키마다 요렇게 보면은 될 거 같습니다. 그래서 현대 일본이라고 하는 거 그리고 여기에서 현대 일본이라고 하는 거는 이제 2차 세계 대전을 겪지 않았고 그리고 소련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의 흔대 일본이다. 요거를 좀 어 진지하게 바라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봐요.

그래서 마키마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그리고 이러한 지정학적 입장에서 바라보면 총의 악마에 대한 것도 좀 다르게 보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마키마는 총의 악마를 지배하려고 하잖아요. 그리고 실제로 지배하는데 성공합니다. 작중에서. 그리고 총의 악마에 대한 것도 많이 속이고 있었고 어쨌든 총의 악마가 존재하고 총의 악마를 각 국가가 차지하려고 하고 특히나 마키마가 그걸 지배하려고 한다라고 하는 거는 이른바 해계모니 싸움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이제 미국과의 군사적인 경쟁 그리고 해계모니 경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많은이 지정학적인 위치, 현대 일본이라고 하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세계와 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데 어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나오는게 미국과 소련이에요. 어 미국과 소련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냉전 시대를 생각할 수 있는데이 냉전 시대 일본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도 굉장히 독특한 것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예전에 아키아바라 같은 데서 그런 얘기도 있잖아요. 아키아바라가 전자 기기가 굉장히 크게 발전한 곳이었는데 지금처럼 어떤 오타구의 성지가 아니라 그때 아키아바라에서 소련 스파이랑 미국 스파이가 서로 만나기도 했다. 막 이런 얘기가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일본이 가지고 있는 어떤 지정학적인 위치 어 지정학적인 의미런 것들을 좀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 유산 냉전 시대를 그리고 있는 작품임은 분명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근데 재밌는 건 현실과는 다르게 만화에서는 미국과 일본이 해계모니 싸움을 할 수 있다라는 건데 그 이유는 핵변기의 악마가 없기 때문인 것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 2차 세계 대전마 태평양 전쟁 때 일본이 미국에게이 핵무기를 맞고 1억 총혹세를 얘기를 했지만 어쨌든 핵무기를 두 방 맞고 어 무조건 항복을 했잖아요. 이 무조건 항복을 하고 나서 일본이 미국에게 보이는 어떤 구력적인 굴종적인 태도 이런 것들을 취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핵변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또이 총의 개념이 중요한데 총이 의미하는 거는 미국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래요. 이 미국이라고 하는 나라를 우리가 생각을 해 보면 미국이 말하고자 하는 자유, 우리가 미국을 자유의 나라고 얘기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국이 그렇게 많은 총기 사고를 겪으면서도 미국은 총기를 포기하거나 총기를 없애려고 한다거나 그런 것들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든요. 왜 그런가 생각을 해 보면 미국이라는 나라의 등장 그리고 미국이 가지고 있는 어떤 자유의 가치 이런 것들을 생각을 했을 때 총기는 미국인들에게 없어서 안 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자유와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어떤 자위권 이런 것들이 총을 통해서 실현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거든요. 그리고 실제로 미국은 총을 가지고서 자유를 얻어내고 독립을 얻어낸 나라이기도 합니다. 그 총 자체는 미국을 상징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대통령이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총의 악마 계약할 때 미국인 전체의 수명, 미국인 전체를 대가로 총과 계약을 해서 일본의 집에 대항하려고 하죠. 이런 부분에서 묘하게 세계관이 뒤틀린듯한 느낌을 주면서도 아 총회악마가 의미하는 것은 미국이 가지고 있는 폭력의 총합 그리고 미국이 가지고 있는 자유의 의미 이거를 묘사하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할 수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어 마키마와 미국의 투쟁에는 미국 다운 자유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제 어 미국 대통령이 자유의 수호자로서 나는 참을 수 없다라는 말을 한 것이기도 하고요. 어, 그리고 2부에서 이제 전쟁의 악마도 미국을 볼모로 삼는데 그거는 좀 뒤에서 얘기하면 될 거 같고 소련과의 투쟁은 뭐 후에 얘기하겠지만 앞에서도 이제 레제의 이야기로 설명을 드린 바가 있죠.

그러면 이제 좀 나아가서 마키마라고 하는 인모를 조금 더 자세하게 분석을 해 보자고요. 저는 마키마는 마키아밸리에 져서 뭐 군주론이라든지 로마서 농고에서 나왔던 어떤 마키아밸리즘으로 해석이 가능한 캐릭터다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마키마라는 이름도 혹시 마키아 밸리를 염도해 뒀나라는 의심을 했을 정도로 어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다만 이제 마키아 밸리를 얘기하면 이제 많은 분들이 마키아 밸리에 대해서 좀 오해하거나 혹 마키아밸리는 굉장히 오독이 많은 인물이다라고 얘기를 많이 하죠. 군주론을 읽어 보신 많은 분들이 로마서 농고의 내용을 이제 간과하고 마키아벨리가 어떤 독재적인 지도자, 전재군주 이런 것들을 굉장히 옹호하는 약간 어 파시즘이 여기서 나온 거 아닙니까? 막 이렇게 얘기를 한다거나 혹은 어 마키아 밸리가 말하는 군주는 마키아 밸리는 정말 철열의 군주를 원한다. 그런 철열의 군주가 지배하는 세상이 옳은 세상이다라고 주장했다라는 잘못된 그런 오독을 하시는 분들이 많은 거 같아요. 마케어 밸리는 제가 볼 때는 명백한 공화주의자입니다. 어쨌든 그런 관점에서 군주론을 좀 몇 가지 인용하도록 할게요. 실제로 뭐 군주로는 정치학적으로 봤을 때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책이지만 실제로 읽었을 때는 별 내용은 없는 그런 책이기도 하기 때문에 어 마키아밸리가 말하는 군주라고 하는 거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자신의 영량 그리고 수단을 잘 활용해야 됩니다. 역량이라고 얘기를 했는데 그냥 영량이라 표현을 할게요. 이걸 뭐 탁월함 뭐 이렇게도 얘기를 하거든요. 비루트라고 하는 건데 어쨌든 역량을 가지고 있어야 되고 수단을 활용해야 되는데 이 수단이라고 하는 거는 여기에선 군사적인 능력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어 군조는 항상 군사력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마키아마의 모습이 그니까 마키아밸리가 얘기하는 그런 수단을 가진 지배자라고 생각하는데 왜 그러냐면 군사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키마는 정보를 동원하는 능력이 있고 그리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군사력이 있죠. 그 안에는 특이 사과도 포함되는 거죠. 그리고 이제 반면에 마키마가 지닌 영량 탁월함 비루트 요거는 지배 악마로서의 능력일 것이다. 요렇게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마키아밸류로 마키마를 해석해야겠다라고 생각한 이유는 뭐냐면 마키마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장면에서 어 이것 봐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해요. 예를 들어서 아키를 배신하는 장면 그러니까 아키를 배신하고 나랑 계약하자라고 하는 장면에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잖아요. 그때 강제로 지배하는 장면이 나왔어요. 그게 이제 악마로서의 본색을 드러내는 건데이 부분에서도 마키아 밸리가 언급하는 바와 같다라는 생각을 좀 했어요. 어떤 거냐면 이 자신에게 충실한 부하를 배신하고 자신에게 충실한 부활를 없애 버린다라고 하는 측면에서 굉장히 마키아밸리가 말하는 체살례 보르자라는 인물이 있거든요. 체사레 보르자의 사례를 말하는 거 같았어요. 그러니까 체사르 보르자를 얘기하면서 자신의 부하를 죽이고 배신하는 부분에서 아주 훌륭한 군주의 자지를 갖췄다라고 얘기를 하거든요. 아 물론 이제 마키아 밸리가 말하는 자신의 부활를 배신해야 된다. 자신의 부활를 죽여야 된다라고 말하는 부분은 어떻게 보면 인기를 얻기 위한 수단이기도 해요. 그러니까 자기가 점령한 작은 도시를 어 그 작은 도시에 대한 어떤 지배 이거를 부하에게 맡기고 그리고 그 부하가 아주 엄격한 정치를 해서 거기를 안정화시키는데 그 엄격한 정치를 하다 보면은 반드시 그 엄격함에 대해서 반발하는 그거에 대한 증오라든지 경멸이 생기거든요. 그거를 이제 어 최사를 모르자 같은 인물이 나와서 없애 버림으로써 어떤 호감을 얻는 요런 부분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부활를 배신해도 된다라는 굉장히 독특한 마키아밸리다운 주장을 했었던 것인데 민중의 지탄을 받는 자를 죽이는 것이죠. 어 그런데 그거랑 바로 닿진 않지만 은근히 닿는 부분이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이제 부하들을 하나씩 하나씩 죽이고 그들을 완벽하게 세뇌하고 그들의 능력을 자신이 쓰는 부분에서 이거는 어 마키와 밸리가 주장한 훌륭한 군주의 자질에 대해서 은유적으로 받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석할 만한 여지가 있다라는 것이고요.

특히 이제 마키마의 모습에서 그런 부분들이 나오는데 마키아밸리는 이런 군주가 되려는 자, 지배자는 민중으로부터 경멸받아서는 안 된다라고 얘기를 해요. 그러니까 경멸이나 증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민중으로부터는 사랑받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사랑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지배자는 그걸 위해서 늘 위험이 있어야 되고 침착해 보이거나 지적으로 보이거나 품미가 있어야 돼요. 그래서 자신을 치장하는데 어느 정도의 돈을 써도 된다. 이런 식으로 마키아밸린이 얘기를 하거든요. 근데 이게 마키마가 가지고 있는 외적인 모습이랑 굉장히 비슷한 거예요. 그니까 마키마가 가지고 있는 어떤 외적인 아름다움이라든지 항상 정갈한 정장 차림으로 있다든지 품이 있는 태도로 보인다든지 어 굉장히 교양 있고 지성 있어 보이는 취미들을 가지고 있다든지 영화를 본다거나 책을 읽는다거나 하는 부분들 이런 부분들은 마키아 밸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지도자의 모습이랑 가까워 보여요. 그리고 덴지로 하여금 덴지가 경멸하면 안 되잖아요. 마키마를 덴지가 사랑할 수 있어야 되잖아요. 그러한 외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는 인물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키막 되게 예쁘죠. 아주 예쁜 외형을 가지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 부분도 어 작가가 생각하는 어떤 이상적인 지도자의 모습을 그려내는데 동원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자, 그러면 여기서 덴지를 대하는 마키마의 태도를 생각을 해 보자고요. 마키마와 덴지가 만나는 순간이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덴지는 중세민중이라고 봐야 되는데 근데 마키마는 덴지를 만나는 순간부터 덴지를 끌어앉고 그때부터 저는 풍치타와 덴지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했다는 의심이 들어요. 그러니까 항상 어 덴지를 자신의 영향 아래 두려고 했고 자주 만졌고 귀를 기울여서 심장 소리를 듣기도 하고 처음 만났을 때도 끌어안았죠. 그리고는 그를 지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던 것이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뒤에서도 나오는 방법이지만 덴지를 지배하기 위해서 마키마가 한 방법은 많은 것을 주는 거. 정확히는 덴지의 욕망을 끌어올리는 거. 에스컬레이 한다고 제가 설명을 들었는데 덴지가 가지고 있는 1차원적인 욕망을 좀 더 높은 차원의 욕망으로 계속해서 끌어올리는 방법을 사용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부분이 저는 굉장히 소름 끼치고 놀라웠습니다. 왜냐면 빵 한 조각에 만족하는 우매한 민족은요. 절대로 지도자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니까 지도자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그의 욕망을 자극해야 되고 그에게 욕망을 알게 만들어야 돼요. 따라서 댕지로 하여금 욕망을 품게 만들고 그 욕망을 계속해서 끌어올리도록 만들고 그 욕망을 실현해 주는 실현자로서 자기 자신 마키마를 선택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게 바로 마키마의 계약이다. 그리고 마키마에게는 바로 이것이 개와 인간의 관계 즉 지배 피집의 관계다라고 볼 수가 있다라는 것이죠.

마키마는 덴즈를 순식간에 사로잡아요. 덴의 욕망을 분명하게 만들어 주는데 이거는 정말 무시무시한 일입니다. 이 시스템이 세상을 지배하는 방식이 뭐냐? 민중의 욕망을 이용한다는 거거든요. 이게 사실은 공산주의가 실패한 이유이기도 하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을 개개인의 욕망을 무시했다라는 거. 자본주의는 그거를 굉장히 무서운 방식으로 욕망을 이용해요. 그게 바로 마키마의 행동, 마키마의 모습으로 대변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덴지로 하여금 빵이 아니라 고기를 욕망하게 만들고요. 더 나아가서는 정말 저는 스테이크를 왕창 먹고 싶어요라는 그런 어떤 구체적인 욕망을 토해내게 만들잖아요. 그리고 그건 모두 마키마가 만든 세계에서 마키마가 만든 룰대로 복종하기만 하면 주어지는 보상이에요. 그러니까 자본주인은 이런 식으로 인간을 욕망의 노예로 부리는 것이죠. 욕망을 만들어 내고 그거에 따른 보상을 던져 주면서 길들려가는 요런 것인데 이거를 마키마를 통해서 아주 잘 표현했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덴지의 욕망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마키마가 행한 행동들을 보면 굉장히 소름끼치고 무섭거든요. 가만히 이 작품을 돌이켜 보면 마키마는 덴지에게 욕망을 하나씩 가르쳐 주고 있어요. 예를 들어서 작중에서 표현된 거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되겠죠. 덴지에게 일자리를 주고 맛있는 걸 주고 친구를 만들어주고 막 이렇게 했다. 이런 거는 뭐 넘어가도 되는데 덴지가 마키마한테 고백을 해요. 여자 가슴을 만졌는데 내 생각처럼 좋지 않았다. 그러니까 덴지가 가지고 있는 욕망 중에서 가장 큰 거는 여성을 향한 성적 욕망인데 프로이트가 말한 리비도의 시련인데 근데 여성의 가슴을 만진다는 그런 아주 굉장히 구체적이고 상징적인 그런 유사성행위를 했는데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라는 얘기를 해요.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덴지는 자신의 욕망이 뭔지도 구체화할 수 없는 그리고 내 욕망을 이룬 거 같은데 왜 나는 좋지 않지라고 생각하는 자기가 누군지 모르는 상태의 사람이에요. 그런 덴에게 막히는 방법을 알려 줘요. 어떻게 하냐? 마치 개처럼 덴의 손을 물죠. 그리고 타핵을 묻입니다. 이 부분은 이제 왕가이 감독의 타락 천사에서 나온 부분 같다. 이 부분에 오마주다.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겠지만 제 타락 천사에서는 무는 행위가 가지고 있는 어떤 그 생경함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무는 행위 자체가 잘 없는 일이고 독특한 경험이고 그리고 물렸을 때의 감각, 통증 이런 것이 있기 때문에 자신을 각인시키려고 한다라는 거죠. 그래서 어 타락 천사를 본 사람들은 자신의 연인을 한 번씩 물어보곤 하죠. 그런데 여기에서는 그거를 굉장히 섹슈얼한 이미지로 만들었어요. 그리고 마치 개가 하는 것 같은 방식으로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굉장히 섹시하면서 개처럼 보이죠. 마치 개가 개에게 무는 법, 하는 법 이런 걸 가르쳐 주듯이 한단 말이에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신의 가슴을 만지게 유도합니다. 그죠? 제가 항상 마키마가 말하는 자본주의적인 자유, 마키마가 말하는 통제의 자유란 뭐냐면 통제된 것 그리고 유도된 것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데 반면에 이제 레자의 자유는 허락된 것 요렇게 비교를 했는데 어쨌든 그것과는 다르게 이제 자신의 가슴을 만지게 하는 거 이게 댄지로 하여금 성적 욕망이 무엇인지를 학습하게 만들었다는게 커요. 그리고 그 대상을 자기로 확정하는 거예요. 네가 가지고 있는 욕망은 옳다. 성적 욕망이라 건 기분 좋은 것이다. 너는 단지 그 방법을 몰랐을 뿐이다. 방법을 가르쳐 줘요. 그리고 그 방법을 향하는 대상은 자기 자신인 거죠. 이게 철저한 댄지에 대한 어떤 지배 논리, 지배의 방법론, 수단 이런 것들을 동원하는 거죠. 그래서 마찬가지입니다. 첫 키스가 토맛이었다라고 하는 댄지한테 사탕을 물려 주잖아요. 그리고 첫 간접 키스는 이런 맛이다라고함으로써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위치를 계속해서 덴지에게 각인시키는 그런 장면 그리고 성적 접촉의 달콤함을 계속해서 학습시키려고 하는 그런 부분들이 저는 좋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마키마는 굉장히 무시무시할 정도의 인물이고 이게 바로 어떤 자본주의적인 지배 체계를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이러한 학습, 욕망에 대한 학습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자본주의적인 지배 체기를 완성하면서 동시에이 불평등한 관계 몇기의 전형적인 부분이에요. 그러니까 마키마는 개를 대하듯이 덴지를 대하거든요. 그리고 이건 통해요. 방법론이 좋았기 때문에 덴지는 결국에는 마지막에는 마키마 씨 저는 마키마 씨의 개가 되고 싶어요라고 얘기를 하거든요. 그 얘기는 뭐예요? 아까 말씀드린 통제된 자유 시스템이 주는 자유 안에서 그 행복 안에서 살고 싶다라는 뜻이죠.

하지만 여기에서 마키마 인생 최대의 실수가 나오게 됩니다. 이 개와 인간의 관계가 불평등하다고 사람들이 얘기를 하잖아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마키마가 덴지에게 민중에게 주려고 하는 자유와 행복은 인간이 걔에게 제공하는 것과 매우 유사해요. 우리가 강아지를 키울 때 강아지에게 먹을 것도 주고 물도 주고 그리고 걔가 똥을 싸면 치워 주고 이런 걸 다 하잖아요. 그러면서 어떤 위험이 다가오면 그 위험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고 그를 지키려고 하죠. 그런게 이제 개와 인간의 관계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근데 문제는 뭐냐면 이건 불평등한 관계가 아니라는 거예요. 개를 키워 보신 분들은 다 아실 텐데 인간은 개뿐만 아니라 어떤 반려동물과 함께 하든 시간에 결국에는 보상을 받게 돼요. 개가 돌려주는 사랑이 있단 말이에요. 반려동물이 나에게 주는 사랑이 있다고요. 그러니까 둘의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아요. 나만 반려동물을 사랑하는게 아니라 반려동물도 나를 사랑해. 그래서 결국 거기에서 나는 보상을 받았다고 느끼게 돼요. 근데 마은 그 부분을 오해하는 거예요. 사랑이라고 하는 건 일방적으로 받을 수도 없고 일방적으로 주기만 할 수도 없는 것이다라는 것을 모른 거죠. 이건 상호적인 거거든요. 그니까 어떤 상호 관계에 대한 것을 마키마는 크게 오해했죠. 그 부분입니다.

그래서 마키마가 병사의 발라드를 보면서 운 것은 병사의 발라드가이 소련이라고 하는 체제 안에서 나왔던 작품이기는 하지만 휴머니즘을 지향해서 그 휴머니즘 때문에 울었다기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어떤 대등한 관계에 대한 어떤 하나의 모습이기 때문에 울었다라고 저는 생각을 하거든요. 근데 어쨌든 마케마는 대등원 관계를 희망했어요. 그리고 지옥의 히어로인 체인소맨을 동경했어요. 글을 가지고 싶어 했습니다. 근데 여기에서 이미 마키마는 뒤틀려 있죠. 왜냐면 체인소매는 자신의 이상을 이루어줄 존재 그거를 지배하길 원해요. 무슨 얘기냐? 마키마는 어떤 존재냐면 사랑이 뭔지 모르면서 일방적으로 체인소맨이 자기를 사랑해 주길 원했어요. 그리고 평등을 모르면서 평등을 동경했어요. 대등한 관계를. 그니까 요즘 현대 정치가들이 그렇잖아요. 평등이 뭔지도 모르면서 평등에 대해서 얘기하. 그런 것처럼 마키마는 그런 어떤 실패한 정치가 같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키마의 실패인데요. 이 마키마가 실패한 것은 이 마키아 밸리가 군주론의 제 19장에서 얘기했던 군주의 실패와 이어집니다. 그 마케아벨리가 뭐라고 얘기했냐면 그 19장의 얘기가 뭐냐면 민중으로부터 여자를 빼앗서서는 안 된다고 얘기했어요. 제가 무슨 이렇게 마키아 밸리의 말을 인용해서 제 입맛대로 해석해서 말씀드리는게 아니라 정말로 마키아 밸리가 뭐라고 했냐면 여자를 빼앗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 여자는 빼앗서 안 된다. 물론 이제 그때 당시에 여자라고 하는 거는 이제 어떤 그때 당시의 어떤 명예 이런 걸로 치환해야 되겠지만 그렇게 해석해야 되겠지만 어쨌든 마키아밸리와 비슷한 이름을 지닌 마키마는 그 부분에서 실수를 했어요. 여자를 빼앗서 안 됐어요. 근데 마키마는 빼앗았죠. 이 이 마키아밸리가 체살의 보로자를 평가할 때 뭐라고 했냐면 잘했는데 한 번에 선택해서 실수했다고 얘기해요. 그 한 번의 실수로 실패했다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마키마에게는 그 부분이 여자예요. 마키마는 그 전에는 레제를 죽였습니다. 레제를 죽이는 장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이 묵시록의 백기사 그러니까 우리가 묵시록의 백기사가 이제 역병의 악마 혹은 집의 악마죠. 어, 쥐 같은 걸 몰고 다니고 마키마가 이제 쥐들을 부리고 그리고 작은 동물들을 부리는 것도 묵시록의 백기사에서 나오는 건데 이건 작품에서 다 설명되는 거기 때문에 굳이 얘기 안 해도 되겠지만 마치 풀메탈 재켓에서 나온 것처럼 어 죽은 시골만이 좋은 시골지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죽은 배트공만이 좋은 베트공이고 죽은 공산주의자가 좋은 공산주의자죠. 근데 그런 건데 레제를 죽였는데 단지 그걸 댄지에게 들키지 않았죠. 그래서 그냥 넘어갔을 뿐이에요. 이미 여자를 빼앗은 전적이 있다는 거죠. 하지만 마키마가 실수하는 순간이 어디니까? 바로 덴지가 나는 마키마 씨의 개가 되고 싶어요라고 고백하는 순간 아, 다 이뤘다라고 하는 그 순간에 마키마는 덴지의 여자를 죽입니다. 파워죠. 파워가 케이크를 들고 나타나는 순간 마키마가 빵하고 쏴서 죽이죠. 그 장면이 막히말 실수입니다. 그 군주가 해선 안 되는 유일한 것. 여자를 뺏어서 안 된다라는 거를 막기만에 했어요. 덴지로부터 여자를 빼앗았죠. 그리고 그거는 덴지에게 여자로서 다가간 것도 실수였다고 생각해요. 마키마가 여자로서 다가갔기 때문에 덴지의 이런 어떤 동경의 대상이 될 수 있었지만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 그 사랑의 대상으로 유일해지기 위해서 다른 여자를 빼앗는 순간 덴의 여자를 빼앗는 순간에 덴지는 마키마를 경멸하게 되죠. 마키마는 그동안 많은 여자들을 빼앗았어요. 레제뿐만 아니라 그전에 파워도 댄지와 관계가 깊어지려 그러면 빼앗으려고 해요. 자기가 데려가거든요. 그런 부분들인데 어쨌든 덴지의 경멸. 덴지가 민중이라고 생각한다면 민중으로부터 경멸받은 지도자는 파멸한다는 것이 마키아밸리의 결론입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마키마는 파멸하게 되죠.

마키마가 동경했던 체인소맨은 마키마의 상상 속에만 있는 존재였을 뿐이고 마키마는 마지막에 댄지였을 것이라고 오인한 체인수맨에게 폭을 퍼붙죠. 마키마는 역시 체인소맨을 동경했을 뿐이고 동경은 이해로부터 가장 먼 감정이다. 제가 자꾸 쿠보시의 만화에서 나온 대사를게 되는데 아무튼 뭐 그렇습니다. 이때 마키마가 얘기치 못한 공격을 했죠. 덴지가. 그리고 덴지는 마키마를 삼키게 됩니다. 마키마는 죽고요. 덴지의 욕망이 마키마를 삼켰다. 덴지를 민중이라고 생각한다면 민중의 에스컬레이한 욕망이 낡은 시스템을 삼켜 버렸다. 민중의 뜻에서서 어긋난 민중의 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지배 논리의 허점이 드러나자 민중이 삼켰다라고 할 수 있어요. 이건 혁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혁명적이다라고 생각을 하고요. 지배자에게 대항한 민중이 지배자를 뜯어먹는 모습. 이게 어떻게 보면 혁명의 하나의 은유일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이런 혁명이 남기는 것은 혼란일 수밖에 없죠. 역대 모든 혁명은 혼란을 낳았습니다. 프랑스 대혁명은 로베스피에르를 낳았고요. 우리나라의 419 혁명은 박정의 군사발란을 낳았죠. 그리고 체인소맨에서 일어난 마키마에 대한 지배의 악마를 향한 덴지의 혁명은 2부에 박살라 버린 현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부는 박살이 났죠. 그러니까 이게 뭐냐면 작품적으로 완전히 박살 났다고 보이 어렵고 저는 2부에도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부가 박살난 이유는 저는 마키마의 존재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아까 얘기한 것처럼 약간 근 현대적인 마키아벨리즘이나 이런 걸로 생각한다면 마키마는 어떤 사람이냐? 나키마는 저는 곧 시대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해결이 얘기한 시대 정신이요. 어, 제가 그 철학시사회라는 책을 썼을 때 제일 힘들게 쓴 부분이 해결 부분이기도 했는데 전 해결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무튼 너무 어렵기 때문에 시대 정신에 대해서 좀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이 시대 정신이라는게 뭐냐? 시대 정신은 반드시 한 시대가 끝날 때에 찾아오는 것인데 그리고이 세상이 어떻게 나가야 될 나아가야 될지에 대한 어떤 미래를 제시하고 그걸 이끌어가는 존재 그게 바로 시대 정신이거든요. 그러니까 마키마는 어떻게 보면 나폴레온 같은 존재다라고 볼 수 있다라는 거예요. 왜냐면 마키마가 시대 정신인 이유는 마키마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어요. 그리고 한 시대가 끝날 때 나타난 존재예요. 이 마키마가 시대 정신으로서 제시한 것은 무엇이냐? 모든 부정한 것이 없는 세상이죠. 모든 부정한 것이 뭐가 없느냐? 죽음이 없는 세상, 병이 없는 세상, 노아가 없는 세상. 이런 세상이에요. 인간에게 있어서 부정적인 것들이 사라져 버린 세상. 그리고 마키마가 지배하는 세상. 이게 마키마에 의한 새로운 세상입니다. 그리고 그걸 이끌 시대 정신이 바로 마키마였던 거예요.

여기에서 우리는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아니, 그런 세상이 나쁜 거야. 그 인간에게 노아가 없어지면 그게 나빠요. 차라리 민중이 협력해서 덴지가 협력해서 마키마가 지배 악마로서 체인수맨을 지배하고 마키마의 명령대로 이미 마키마는 총의 악마도 부릴 수 있고 그 당시에 마키마가 가지고 있는 힘은 엄청나게 강력한 것이었기 때문에 굳이 지옥에 있는 근원적 공포의 존재들은 가지고 올 필요가 없겠죠. 대신 자신이 처리할 수 있는 부정적인 존재들을 처리해 버린다면 이 세상에서 모두이 암의 악마 이런 거 있을 거 아니에요. 그 마키마가 체인소맨의 능력을 이용해서 암을 없애 버릴 수도 있는 거죠. 총을 없앨 수도 있고이 세상에서 전쟁을 없앨 수도 있고 모든 것을 없앨 수 있습니다. 그러면 더 좋은 세상이 오는게 아니야라고 좀 물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평가는 서로서로 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마키마에 의한 지배가 무너졌습니다. 혁명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면 혼란이 찾아온다고 말씀드렸죠. 이부가 혼란스러운 것은 필연이에요. 혼란이 찾아오는 건 필연적인 거예요. 그래서 이부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물입니다. 왜냐면 이 세상을 지배했던 지배자였던 마키마, 시대 정신이었던 마키마를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덴지는 마키마에 의한 행복을 부정했어요. 시스템에 의한 통제된 자유, 유도된 자유가 한계가 있음을 보여줬어요. 그리고 민중은 민중일 수밖에 없다는 그런 어떤 자기 실현을 해낸 것이기도 해요. 다만 그로 인해 일어난 결과는 혼돈이라는 거죠. 포스트 아포칼립스. 멸망 이후의 세상을 그릴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분은 세상이 급격하게 파괴되고 멸망하는 것을 그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마키마의 부제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분은 자기 실현을 했어요. 그때 덴지는 물었어요. 마키마 씨가 만드는 그 세상에 재미없는 영화도 있나요라고 물어봤죠. 마키마는 재미없는 영화는 없어져야 된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때 이제 덴제는 그 통제된 자유 마키마가 결정하고 생각하는 행복한 세상의 한계를 맛봤어요. 왜냐면 재미없는 영화를 부정하는 것은 댄지를 비롯한 만약에 재미없는 존재들을 모조리 부정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존재를 부정당하지 않기 위해서 자기 실현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만 이분은 이제부터는 어 이미 에스컬레이한 욕망을 가지고 있는 덴지와 그리고 그런 댄지를 바라보는 주변인들과 멸망해 가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부가 그토록 혼란스럽고 이부가 그토록 포스트 아포칼립스로 갈 수밖에 없다. 장르가 파괴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 모든 것이 마키마라는 인물 때문이죠. 그리고 마키마의 캐릭터를 너무 잘 만들어서요. 2부의 빌런들이 마키마의 카리스마를 따라올 수가 없습니다. 그니까 마키마를 너무 잘 만들었어요. 자신의 생명의 영원성을 위해서 일본 국민의 생명과 계약을 맺는 그런 부분들이라든지 어 치밀하게 자신의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모습들 이런 부분들을 너무 잘 만들었기 때문에 2부에서 빌런을 어떻게 만들더라도 마키마를 넘어서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 모든 상황을 사실상 마키마를 죽인 덴지의 행동 때문에 벌어진 상황이라는 것이 마키마의 존재를 훨씬 더 높게 만들어요. 그래서 체인소맨은 1부는 정말 뛰어난 작품이었지만 2부에서 이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필연이다라는 말씀을 드리고 아무튼 저는 이부도 재밌게 보고 있기 때문에 2부까지 완결이 되면은 또 리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얼마 전에 체인수맨 극장판 레자편이 나와서 이 일부 만화에 대해서도 좀 얘기를 해 달라는 분들이 있어서 제가 이렇게 리뷰를 만들어 봤습니다. 근데 제가 컬처에서 만화원는 처음입니다라고 말씀드린 것처럼 사실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한해서만 이야기를 하고 있거든요. 라이너의 컬처 슈크는 이제 주로 영화와 책 이야기를 하는 곳이기 때문에 이제부터 만화 얘기는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다른 채널이 하나 있는데요. 라이너 TV라는 채널인데 거기를 라이너의 서브 컬처로 바꾸려고 해요. 어, 채널명을요 서브 컬처로 바꿔서 거기서는 주로 만화와 게임 이야기를 위주로 하는 말 그대로 서버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하니까요. 앞으로 만화의 궁금하시면 찾아오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라이너의 체인오맨 일부 리뷰 마키마를 통해서 바라보는 체인소맨 분석 편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 시청해 주셔서 감사하고요. 저는 다음 영상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다음 영상은 당연히 영화입니다. 많이 사랑해 주시고요. 고맙습니다. 여러분 구독하기, 좋아요도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