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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3.15 오늘 우리에게 십자가는 무엇인가 고전1:18-31.mp4

웨이코 한인 교회 Korean Church of Waco 31:04

Transcription

오늘 저희들이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신약성경 고린도전서 1장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부터 3절까지 말씀을 함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부터 3절까지 말씀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지혜 있는 자가 어디에 있느뇨. 선비가 어디에 있느뇨. 이 세대 변사가 어디에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 보시기에는 이 세상의 지혜가 미련하니.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미련한 전도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이 미련한 것이 세상의 미련한 것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이 약한 것이 세상의 약한 것보다 강하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과 있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참 지혜와 능력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가 함께 경배합니다. 영원하신 그 말씀께 우리가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이 우리 가운데 들어와 하나님의 능력이 되고 하나님의 지혜가 되는 것을 경험하게 해주십시오. 낮은 곳까지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추한 명까지 들어오셔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일으키고 눈먼 자를 보게 하고 갇힌 자를 자유케 하시는 그 은혜가 오늘 이 교회 21주년을 맞은 이 교회에도 있게 해 주십시오. 저희가 다 주님의 말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하는 자와 듣는 자가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있게 해 주시고 주 말씀이 우리 심령에 깊이 새겨져서 새 생명이 태어나는 거룩한 예배의 시간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음악]

주일학교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겠어요. 제가 몇 가지 주일학교를 생각하면 제 어렸을 때 다니던 주일학교를 생각하면 잊혀지지 않는 몇 가지의 장면들이 있습니다. 몇 가지의 말씀들도 있어요. 근데 그중에 저희 예전에는 주일학교에서 지금도 그렇지만 뭐 크리스마스 때 부활주일 때 이런 때 뭐 연극 많이 하지 않습니까. 근데 어느 제가 아주 어렸을 텐데 저희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크리스마스 때 연극을 한번 했었습니다. 근데 그 연극이 뭐였냐 하면은 어떤 사람 집에 천사가 나타나서 매일 예수님께서 네 집에 오시니까 잘 맞을 준비해라 뭐 이렇게 얘기하고 천사가 떠나게 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하루 종일 집안을 다 소재한 다음에 이제 예수님이 언제 오시나 그러고 이제 기다리는 거예요. 우리 선생님들이 다 올라가서 연극을 하는데 얼마나 웃긴지.

이 사람 이제 막 기다리고 있는데 그 사과장수 아줌마가 나타났어요. 그래갖고 그때 대학 대학생이었던 어떤 선생님이 사과장수 아줌마를 머리에 이고서는 그 집에 와서는 사과 하나만 사세요 그러고 이제 얘기하는 거. 그러니 아 오늘 중요한 사람 오기로 했단 말이에요. 저리 가요. 그러고서는 사과장수 아줌마를 빨리 가라고 합니다. 아 그러고 났더니 이번에는 또 거한 사람이 나타났어요. 그래서 그 우리 선생 중에 한 분이 이렇게 수염을 붙이고 남루한 옷을 입고 거지로 나타나서는 그 집에 들어가서 한푼 주시오 뭐 이렇게 얘기하니까 아 오늘 중요한 손님 오시기 했단 말이야. 냄새 빨리 나가요. 그러고서는 밀어칩니다. 그러고서는 뭐 고아도 나타났다가 과부도 나타났다가 뭐 병든 사람도 나타났다가. 그러고 다 지나가고 저녁이 되는데 예수님이 오시지 않아요. 그래서 오신다고 하고서 오시지 않나 그러고서는 그날이 이제 지나가고 자야겠다 그러고 자는데 꿈속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러셔서 아니 내가 오늘 너네 집에 수없이 찾아가는데 한번도 나를 맞아들이지 않더라. 이제 그러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니 예수님이 언제 우리 집에 오셨습니까 그랬더니 그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 내가 사과장수도 갔었고 내가 과부로도 갔었고 내가 고아로도 갔었고 내가 병든 사람으로 왔었는데 한 번도 나한테 문을 열어 주지를 않더라. 이렇게 얘기하시는 것이었는데 제가 그 연극이 지금 제 나이가 40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생각이나요. 그리고 그 연극을 생각하면 제가 마음속에 그 웃기다는 생각이 아니고 예전에 웃겼었는데 생각이 드는게 아니고 어 이거 혹시 내 삶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가 그런 생각이 문득문득 들 때가 있습니다.

말하자면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대한 왕의 모습, 우리가 기대한 아주 거룩한 모습, 위험 있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셨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던 얘기예요. 하나님이 이 세상에 기대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그래서 이 세상이 그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얘기예요. 하나님인데 하나님인지를 모르고 알아보지 못했어요.

우리 교회는 지금 십자가가 없어요. 그런데 여러분이 교회에 있는 수많은 교회 가보면 교회 하나씩 다들 시작하는 그 정면에 다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십자가가 세기에 이 바울이 이 초대 교회 편지 쓸 때 우리는 세상의 지혜를 전하는 것도 아니고 능력을 전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그렇게 얘기하죠. 근데 그 십자가라는 것이 우리는 지금 목걸이로도 이렇게 달고 다니고 또 뭐 여러 가지 장식품으로도 그렇게 사용하지만 여러분 사실 1세기에 로마 제국 안에서 십자가라는 것은 치욕의 상징이었습니다. 주로 로마 제국의 권위에 반항하는 반란군들, 죄수들 이런 사람들을 공개적으로 나무에다가 못 박아 갖고 죽이고 사람들로 하여금 보아라 로마 제국의 그 권위에 도전하면 이렇게 된다고 말로써 보여주는 아주 끔찍한 벌이었습니다. 그런데 1세기에 이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이 믿는 세상의 구주인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엄청난 수치요, 상징이고 십자가는 연약함의 상징이고 십자가는 죽음의 상징이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가 이 세상에 지혜롭다고 얘기하는 것은 그런 마치 예수 믿지 말라고 얘기하는거나 다름없는 얘기죠.

오늘 여러분이 본문에서 바울이 이렇게 얘기하기를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그게 22절이죠.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구한다. 이 세상의 구원에 대해서 그리스 사람들은 헬라 그 헬라 철학자들 그리스 사람들은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래서 필로소피아 그러면은 지혜를 사랑한다는 뜻이잖아요. 필로스 아고 지혜라는 말은 소피아고. 무릇 사람이 지혜로워야 된다. 지혜를 가져야 된다 이렇게 얘기했죠. 반면에 유대인들은 전혀 다른 답을 내렸습니다.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 메시아가 와야 된다. 그런데 그 메시아는 이 세상에 오셔서 이 로마의 권세들을 다 하나님의 적들을 다 완전히 무너뜨리고 찌르고 이 땅을 새롭게 창조 건설하실 것이다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이 보여주는 그 표적을 구했어요. 당신이 메시아라는 표적을 우리에게 보여다. 그 기적을 보여다. 이렇게 얘기했다고. 그 능력의 상징을 보여 달라 그것입니다. 그래서 헬라인은 지혜를, 유대인은 표적을 줬죠.

지혜와 표적을 구하고 있는 사람들한테 바울은 우리는 지혜와 표적이 아닌 십자가를 전한다.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십자가라는 게 뭡니까 여러분? 가장 무력함의 상징입니다. 거기에는 어떠한 힘도 없습니다. 그냥 당하는 바로 그 물건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이다. 그러면 헬라인은 당장에 우습게 볼 수밖에 없습니다. 되냐 어떻게 이 세상을 구하실까 하게 십자가에서 죽을 수가 있냐. 그거는 이렇게 얘기하는 것 이거는 지혜로서는 도저히 이건 어리석은 짓이라는 얘기입니다. 유대인이 볼 때는 그것은 꺼려지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 메시아가 십자가를 지시는 메시아로 온다면 우리한테는 구원의 왕국은 인정 없다. 우리는 아무 힘도 없다. 그래서 그런 메시아는 우리는 싫다. 꺼려진다. 그 얘기입니다.

그런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의 구원을 지혜가 충만한 사람, 능력이 충만한 사람 이렇게 얘기하지 않고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사도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18절 말씀 보시죠.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의 증거된 말씀이 지금 멸망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십자가라는 게 천하에 미련하게 보이고 거리끼는 것으로 보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그 십자가를 보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볼 수 있는 눈이 된다. 그것입니다.

아 그래서 제가 얘기하는 거예요. 지금 주일학교 때 봤던 그 연극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라고요. 혹시 혹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 가운데 오셨는데 혹시 나도 눈이 멀어서 그 지혜의 왕이시고 그 능력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보같이 내가 못 알아보는 것은 아닌가. 그것입니다.

바울이 하는 얘기는 아주 기본적으로 이렇습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그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지 못한다면 여러분이 그 십자가를 볼 때 그것은 나에게는 어리석은 것이고 그것은 나에게 미련한 것이라고 생각된다면 여러분은 지금 멸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 그 얘기예요. 여러분이 그 십자가를 볼 때 거기서 하나님의 지혜를 보게 되고 여러분이 그 십자가를 볼 때 거기서 하나님의 능력을 발견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 부르심 받은 사람입니다. 그 얘기예요.

그래서 오늘 저희들이 21년이 되는 이 기념 주일에 우리에게 묻는 거예요. 우리에게 십자가는 무엇인가라고 묻는 거예요. 우리는 그 십자가를 보면서 무엇을 보고 있는가. 우리는 그 십자가에서 정말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발견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 십자가는 우리한테 그냥 장식을 지나지 않는가. 그 얘기예요. 혹은 우리가 여기다 십자가를 걸어놓고 아침마다 기도하면서도 그 십자가가 상징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의 것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십자가는 이 세상의 지혜와 이 세상의 능력을 거부하고 있는데 우리는 혹시 그 십자가 앞에서 이 세상의 지혜를 달라고 하고 이 세상의 능력을 달라고 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것을 우리 자신한테 묻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 세상의 모든 가치를 전복시킵니다. 우리는 그렇잖아요. 세상은 구원과 안전과 행복을 위해서 여러 가지 소스에서 그것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한번 가보세요. 얼마나 많은 좋은 책들이 나와 있습니까. 시간을 효율하게 사용하는 방법, 시간을 와이드하게 할 것입니다. 뭐 그 수많은 책으로 그 독서가 하나라는 가득 차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 우리는 우리 삶에 있는 불안정, 우리 삶에 있는 두려움들을 없애려고 여러 가지 능력을 구합니다. 그 비즈니스는 안 되지. 그러고 사실은 더 많이 벌어야 돼. 돈 많이 벌어야지. 나중에 혹시 병이라도 걸리면 이거를 뭐 어떻게 파이낸셜 감당할 거 아니냐. 그래서 돈을 많이 벌어 놓으려고 합니다. 또는 아 이게 몸이 산이지. 몸이 건강해야 돼. 그래서 우리 자녀들도 아주 어려서부터 이 체육관에 가갖고 이 근육을 들고. 아 뭐 못생긴 것도 괜찮고 또 공부 못하는 것도 괜찮은데 못 망가지면 끝이야. 그러고서는 뭐 이걸 합니다. 그렇죠.

근데 여러분 아무리 많이 배워도 아무리 지혜가 충해도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건강이 많아도 그 지식과 지혜가 우리를 구원하지 않습니다. 그 지식과 지혜가 이 세상의 악과 불의를 막지 못합니다. 그게 문제잖아요. 돈이 만금이 있지만 자녀가 악한 것을 막을 수가 없어요. 내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처해야 되는지 속속들 한다. 내가 인간관계에 대해서 내가 하고 있다. 하지만 자기 마음속에 이 악한 디어를 방법이 없어요.

그런데 십자가는 우리한테 네가 지혜를 구하려고 하지 말고 네가 차라리 미련해져라. 이렇게 얘기해요. 네가 능력을 구하지 말고 네가 차라리 약한 대로 나가라. 이렇게 얘기해요. 그리고 그게 바로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능력이다. 이렇게 얘기해요. 예수님께서 저렇게 비참하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 실패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 중에 두 명이 자기 고향인 엠마오로 이렇게 내려가고 있었어요. 근데 그 길가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는데 그 예수 그리스도를 못 알아봤죠. 그리고서는 한참 얘기를 하는데 이 사람들이 뭐라고 하냐면은 아 우리는 우리 선생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죠. 이렇게 얘기해요. 예수님께서 구원하실 줄 알았는데 실패했어요. 하는 말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제자들이 다 실패했다고 한 그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일어난 다음에 이 제자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이 뭐였습니까? 이 부활을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승리하셨다 것을 확증하는 이 부활을 증거하기 시작했어요. 그 부활이 뭐를 의미합니까 여러분? 네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철저하게 낮아지는 자리에 가도 네가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길 가운데 철저하게 미련한 자가 되어도 너는 망하지 않는다. 내가 너를 다시 일으킬 거야. 하는 하나님의 약속이죠.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부활을 믿지 못하면 바울이 말한 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에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못하면 우리가 뭐 하러 이 땅에서 십자가를 져요. 우리가 뭐 하러 여기서 더져요. 우리가 뭐 하러 여기서 그 고생을 하겠어요. 하지만 아이 길이 진짜 지혜로운 길이구나. 이 길이 진짜 하나님의 능력이 있는 길이구나. 하고 우리가 그 길로 갈 수 있는 것이죠.

21절에 보면은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이 세상은 자기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은 이 세상은 하나님을 생각할 때 아 내가 지혜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지혜를 갖고 계신 분. 이렇게 생각해요. 내가 돈을 뭐 1억 정도 갖고 있으면 하나님은 한 2천억 정도 갖고 계신 분. 이렇게 생각한다고요. 내가 힘을 이 정도 갖고 있으면 하나님은 이거 완벽하게 갖고 계신 분. 그래서 항상 우리가 갖고 있는 것에 궁극적으로 이거를 무한대로 익스텐드 한 그 어떤 것을 하나님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는 아주 그 큰 능력을 가지신 분, 엄청난 지혜를 가지신 분 이렇게 생각한다고요.

그런데 막상 나타난 분은 누구였냐 하면은 아무것도 없는 목수의 아들이었어요. 힘도 없고 지혜도 별로 없어 보이는 어떤 한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 사람이 바로 이 세상의 주였어요. 그 예수 그리스도는 논리를 통해서 알 수 있는 분이 아니에요. 여러분 우리는 다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예수를 믿기 전까지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신 분이다 했는데 각상 나타난 분은 목수의 아들이었던 거예. 마치 오늘 밤에 예수님께서 오시는데 왕이 행하는 것을 기대하는 사람처럼 이 세상은 하나님이라고 생각할 때 자기가 생각한 부한 사람, 자기가 생각한 힘 많은 사람, 그거를 무한대로 증폭시킨 어떤 대상을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고요. 그렇게 해서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어요. 이해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누군가 이분이 예수 그리스도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렇게 가르쳐 줘야 되는 거예요. 이분이 바로 그분이다.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알려져야 되는 거예요. 그 사명을 위해서 이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 수 있었으면 이 교회는 필요 없어요. 자기가 생각해 보면 하나님을 찾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는 하나님을 찾을 수가 없게 되어 있어요. 누군가는 그 연극에서 그 집주인한테 뒤로 가서 사실은 사과장수가 예수님이 그러고 알려줘야 되는 거예요. 그때서야 어 예수님이 그래서 집안으로 드리게 되는 거예요. 이 사람은 눈이 가리워져서 알 수가 없는 것이죠.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진짜 그 예수 그리스도 우리 눈에는 모이 같고 우리 눈에는 능력이 없어 보이는 그 예수가 이 세상의 주라는 것을 하기 전에 제가 먼저 질문하는 거예요. 우리는 그 십자가의 능력을 보고 있는가. 우리는 그 십자가가 정말로 지혜, 하나님의 지혜라는 것을 정말로 아는가. 그걸 알지 못한다면 그 십자가에서 그 능력을 우리가 보지 못한다면 그거 어떻게 예수를 세상에 증거하라고 증거할 수 있겠냐.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다 그 십자가의 길 위에 세우십니다. 1973년도에 여러분 부룬디라는 나라에 아 두 종족이 서로를 죽이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후투족과 투치족이 두 종족 간에 엄청난 내전이 생겼습니다. 1973년에 자카리 쿠라는 신부가 그 나라에 있는 한 신학교에서 교장으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4년 동안 학생들을 돌보면서 그 신학생들을 돌보면서 그 학생들 가운데는 종족에서 온 학생들이 섞여 있었죠. 그 학생들에게 우리는 다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는 종족이란 게 없다. 우리 가운데는 그런 차별이나 이런 것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하나되게 하셨다고.

1977년 그가 이 학교를 섬긴 지 4년쯤 되던 해 아침 일찍 군이 이 신학교를 습격했습니다. 그리고서는 남학생들이 사로 들어가서 총뿌리를 딱 들이대고 이 중에서 후투족은 다 나와라. 그리고 투치족 학생들만 남아라.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무슨 얘기죠? 후투족은 다 나와서 내 뒤로 가서 살고 투치족은 총으로 다 죽이겠다. 그 얘기죠. 그래서 기회를 줬습니다. 빨리 갈라지고. 그리고 후투족은 다 뒤로 오라고. 근데 그 학생들이 그것을 거부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이 우리한테는 후투족도 없고 투치족도 없다. 그래서 그 학생들이 몇 번의 기회를 쓰는데 그것을 거부합니다. 그리고 화가 난 그 투치족 반군들이 그 40명의 학생들을 그 자리에서 다 총으로 쏴 죽입니다. 학생들이 다 죽고 나서 아 그 자카리 신부가 황급하게 달려와서 그 중에 이제 숨이 넘어가는 학생을 부축해서 그 마지막 말을 듣는데 그 학생이 신부님한테 미소를 지으면서 신부님 우리가 이겼습니다. 그 사람들은 우리 보고 나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무지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군대를 장악하고 있는 이 악한 마음속에 깊이 틀리지 않은 원한들 뭘로 뭘로 처리할 수 있습니까? 이 세상의 교육으로 그거 처리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돈을 그날에 많이 쏟아 부어도 그거 악한 마음 고쳐지지 않습니다. 무엇이 치유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비극적이지만 가장 미련한 방법 손을 들이는데 거기다 대고 소리 지르지 않고 저희들은 그냥 가만히 있을게 하는 그런 미련한 사람들이 어딨어요? 그렇게 무력한 사람들이 어딨어요? 총이라도 들고 가 갖고는 이 당군 놈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런게 아니야. 그게 맞지 뭐 그래야 되는 거 아니에요. 하지만 이는 방법 그냥 무능한 방법인 십자가의 길을 이 어린 학생들이 걸었어요. 그 죽었어요. 거기서 바보같이 다 죽었어요. 그근데 그 학생들이 죽었기 때문에 그 뒤에 평화가 올 수 있는 거예요. 자기가 한 일이 무엇인지 이후에는 알게 되는 것이죠.

우리가 정말 잘못했구나. 그리스도는 이 세상을 힘으로 다스리신다. 아니 여러분들을 억지로 막 삶의 코너로 몰아가고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과 이렇게 위협하시는 분이 아니세요. 그분은 우리의 죄를 스스로 지시고 바보같이 죽으신 분이십니다. 여러분 교회 다니시다 보면 바보가 되실 때가 분명히 있어요. 예수를 믿기 때문에 억울한 그 일을 당하는 때가 생긴다고요. 당신이 바보야. 그 멍청한 일을 당하고 있때 차라리 그냥 가서 한번 소리 빡 질러 버려. 이렇게 생각될 때가 있으시잖아요. 하지만 주님이 우리를 십자가의 길로 부르셨기 때문에 그래 내가 미련해지자. 그래 내가 여기서 내 권리를 포기하자. 그래 여기서 내가 컨트롤 내려놓자. 하고서는 오히려 연약한 자리로 가서 밟힐 때 내가 호구냐. 그렇게 밝힐 때 그렇게 섬길 때에 십자가 질 때 거기에 비로써 이 세상이 절대 할 수 없었던 평화가 구원이 능력이 거리 임하는 것이죠.

세상과 전혀 다른 가치를 오늘 우리 교회는 가지고 있는가. 아 내가 죽는 자리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자리구나. 내가 바보스러워서 막 지혜를 써 갖고는 누구랑 싸워서 내가 그 논쟁에서 이기고 내가 다 설득해 버리고 이런 자리가 아니라 내가 지고 내가 감당하고 그리고 내가 끌어 앉는 자리. 그 자리가 진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나타난 자리라는 것을 우리는 확신하고 있는가. 거기에 이 교회의 미래가 달려 있어요.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바로 그거예요. 오늘 우리에게 십자가는 무엇인가. 여전히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인 이 십자가. 그 전혀 다른 길 가운데로 여러분 나오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 때 우리가 마음을 드리고 인생을 드린다고 하면서도 혹 세상이 수고하는 지혜, 세상이 추구하는 능력을 구하고 있지 않았었는지 봅니다. 주님 우리 마음 가운데에 잘못된 그런 지혜와 능력에 대한 추구가 있었다면 주님 오늘 예수를 새롭게 보고 그 십자가를 새롭게 붙들고 그분의 상처한 손과 발을 붙들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 길을 따를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십시오. 주님 저희들이 두려울 때에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할 때에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이 그 능력과 지혜를 확정해 주신 것을 기억할 수 있는 믿음 허락해 주십시오.

아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