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cription
양자역학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누가 뭐래도 양자역학의 마스코트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입니다. 이 책은 물리학과에서 양자역학을 가르치는 교재로 가장 많이 쓰이는, 개인적으로 느끼기엔 학부 양자역학 교재로는 거의 국정교과서급으로 많이 쓰이는 교재입니다. 그리고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이 양자역학 교과서의 표지 모델이죠. 앞면에는 살아있는 고양이가 있고, 뒷면에는 죽어있는 고양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양자역학 교과서 앞뒷면 표지에 살아있는 고양이와 죽어 있는 고양이의 중첩 상태를 그려놓은 거죠. 이렇게 양자역학 교과서 표지에까지 침투한 걸 보면,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게 그만큼 양자역학의 핵심을 함축적으로 잘 담고 있다는 뜻일까요?
양자역학에서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 책에서 그것을 어느 정도 비중으로 다루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물리학과 학생들이 무려 1년 동안 배워도 다 못 볼 정도로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이 교재에 그 고양이 이야기는 책이 거의 끝나갈 때쯤 딱 한 페이지 나오는 게 답니다. 12장 4절, 슈뢰딩거의 고양이. 딱 여기에서 여기까지, 딱 이만큼이 양자역학 교과서 전체를 통틀어서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입니다. 물론 그것이 교과서에 들어갈 만큼 중요한 내용인 건 맞지만, 이 분량을 가지고 보자면 이게 양자역학의 핵심이라고 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번 영상에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그 양자역학의 핵심, 즉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양자역학의 핵심 개념입니다. 양자역학이라는 자연 법칙의 핵심 개념은 무엇인가? 여기에 답하려면 그것이 어떤 자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법칙인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자연 법칙은 어떤 자연 현상을 관찰하고 설명하는 그 과정 속에서 도출된 결과이기 때문이죠. 먼저 비교적 익숙한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F=ma로 대표되는 뉴턴의 운동 법칙은 어떤 자연 현상을 기술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나요?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현상, 달이 지구를 돌고 지구가 태양을 도는 현상. 이렇게 거시적인 물체가 어떤 힘을 받아서 운동하는 현상을 기술하는 것이 바로 뉴턴의 운동 법칙입니다.
그럼 양자역학은요? 양자역학을 대표하는 법칙과 수식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떤 자연 현상을 기술하기 위해 만들어졌나요? 여기에 대한 답은 아마 양자역학을 처음 만든 사람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보다 더 정확할 순 없겠죠. 양자역학을 만든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보어 원자 모형으로 유명한 닐스 보어입니다. 그리고 그의 제자이자 동료라 할 수 있는 하이젠베르크 또한 불확정성 원리를 유도하는 등 양자역학을 만든 대표 인물이죠. 그리고 우리는 하이젠베르크가 직접 쓴 『부분과 전체』라는 책을 통해 어떤 다른 사람의 입을 거칠 필요 없이 그들이 양자역학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누었던 생생한 대화를 직접 들어볼 수 있습니다.
보어와 하이젠베르크가 처음 만났던 날은 이 영상을 만들고 있는 2022년으로부터 정확히 100년 전, 1922년 어느 초여름날이었는데요. 당시 하이젠베르크를 처음 만난 보어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 질문의 근본적인 출발점은 원자의 안정성이야. 고전역학의 관점에서 보면 원자와 물질이 안정적으로 존재한다는 자체가 기적적인 일이지. 뉴턴 법칙에 의하면 그건 명백히 불가능해. 그리고 이런 사실이 내가 원자에 대한 연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 나를 가장 불편하게 했던 점이야.” 원자의 안정성. 이것이 그것을 직접 만든 사람이 말했던 양자역학의 출발점입니다. 뉴턴 법칙이 사과와 행성과 태양과 같은 거시적인 물체의 움직임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면, 양자역학은 그 물체들을 이루는 원자나 분자의 존재 자체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거죠. 원자는 고전역학, 그러니까 20세기 초반 당시에 알려진 물리 법칙으로 보면 그 존재 자체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보어는 그 모순과 문제들을 굉장히 불편하게 느꼈죠. 문제를 이해해야 비로소 답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번 영상의 첫 번째 목표는 보어를 괴롭혔던 문제, 그리고 그 속에서 보어가 왜 불편해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음악]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전자가 주어진 힘의 수직한 방향으로 적절한 속도를 가진다면, 지구와 전자는 정확히 같은 수식과 정확히 같은 물리적 조건 하에 있으므로 그것들이 정확히 같은 형태로 운동하게 된다는 건 당연한 결과인 것 같습니다. 수소 원자가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건 마치 지구가 태양 주변을 안정적으로 도는 것과 같은 현상일까요? 그런데 이 설명에는 치명적인 오류가 하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설명이 전기적으로 중성인 행성계에 대해선 맞지만,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전기적 성질을 띄는 원자에 대해선 완전히 틀렸다는 겁니다. 맥스웰의 전자기 법칙에 의하면 전기력을 나타내는 이 식은 양성자와 전자가 지금 보시는 것처럼 서로에 대해 정지해 있을 때만 성립합니다. 이 둘 사이에 상대적인 움직임이 있을 땐 전자기 복사라는 현상이 일어나고, 그것은 수학적으로 이렇게 표현됩니다. (식) 식이 정말 복잡하죠. 하지만 이 수식 자체는 처음 보셨을지 몰라도 그것이 의미하는 물리적 현상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것입니다. 그건 분명 여러분이 지금 이 순간에도 경험하고 있는 물리 현상입니다. 와이파이, 블루투스, LTE, 라디오. 이런 무선 통신 기술은 전자의 움직임을 통해 발생하는 이 전자기 복사 현상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거죠. 그런데 이런 현상을 지속시키기 위해선 에너지를 계속 공급해 줘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전자기 복사는 에너지를 소모하는 현상입니다. 그리고 전자기 복사가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이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전자가 원자핵 주변을 도는 운동은 근본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즉, 별도의 에너지 공급이 없다면 전자는 전자기 복사로 에너지를 잃으며 원자핵으로 빨려 들어가게 될 것이고, 그 말인즉슨 결국 양전하와 음전하가 만나 전기적으로 중성인 중성자만 남게 된단 말인 거죠. 이런 식으로 수소 원자가 붕괴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해 보면 그것은 약 1000억분의 1초. 그러니까 고전역학적으로 볼 때 수소 원자는 전자기 복사를 통해 에너지를 방출하며 중성자로 즉각 붕괴돼야 한다는 겁니다. 수소 원자는 입자 두 개로 구성된, 존재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원자이고, 방금 설명드린 데서 거의 추가적으로 고려해야 할 물리적 요인은 없습니다. 고전 물리론에 의하면 수소 원자는 존재해서 안 되는 물질인 것이죠. 하지만 그것은 주기율표에서 가장 첫 번째 자리하고 있는 원소이자 우주에서 가장 흔한 물질입니다.
얼마 전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이 전해준 용골자리 성운의 모습처럼, 별들이 탄생하고 있는 성운의 구성 성분도 대부분이 수소와 헬륨 원자입니다. 이 속의 물질들이 중력에 의해 뭉쳐지면 별이 탄생하게 되는데요, 우리의 태양 또한 그런 식으로 탄생했죠. 따라서 태양의 주 구성 성분은 수소와 헬륨입니다. 원소의 개수로 따졌을 때 수소가 90%, 헬륨이 9% 정도이니 태양은 가히 수소의 덩어리라 할 만한 천체인 것이죠. 이론 물리학자였던 보어에게 이론적으로 절대 존재할 수 없는 태양이 매일같이 자신의 머리 위를 지나간다는 사실은 그에게 엄청난 고통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고통과 불편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죠. 만약 수소 원자가 정말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도는 이런 형태로 생겼다면 우리는 여기서 끝없이 나오는 전자기 복사의 에너지를 무한동력 삼아 더 이상 에너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이것은 에너지 보존 법칙을 위배하는, 명백히 잘못된 원자 모형인 것이죠. 하지만 보어는 이런 원자 모형을 고수하는 대신 전자기 법칙을 가볍게 무시해 버렸습니다. 보어가 살던 당시의 전자기 법칙과 오늘날의 전자기 법칙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보어는 너무나 억지스럽게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을 무시해 버린 것이죠. 하지만 정말 놀라운 것은 그런 원자 모형이 어떤 다른 자연 현상들을 굉장히 잘 설명한다는 사실입니다. 물리 법칙을 위배하든 말든 수소 원자가 이런 형태로 생겼다고 한번 가정해 보죠. 이것이 말해주는 한 가지 사실은 수소 원자 속 공간 대부분이 텅텅 비어 있다는 겁니다. 사실 이 그림은 시각적 이해를 돕기 위해 원자핵을 아주 크게 그려 놓은 겁니다. 보다 사실적으로 그리자면 원자핵은 전자궤도보다 10만 배 정도 작아져야 합니다. 실제와 맞게 그리려면 원자핵은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원자핵이 전자궤도보다 10만 배 작다는 말은 전자궤도가 서울 월드컵 경기장 크기라면 원자핵은 그 가운데 놓인 모래 한 알 정도라는 말인데요. 그러니까 오른쪽에 보이는 원자핵은 설명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크게 그려놓은 것이죠. 그리고 만약 이렇게 수소 원자가 텅텅 비어 있다면, 그것은 수소의 덩어리라 했던 태양 또한 그만큼이나 텅텅 비어 있다는 걸 뜻합니다. 태양은 약 10의 57승 개 수소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태양이 수십억 년 동안 안정적으로 존재해왔다는 사실은 이 수소 원자들이 앞서 말씀드린 전자기 복사를 통해 즉각 붕괴하진 않는다는 걸 말해줍니다. 하지만 어떤 다른 물리적인 과정을 통해 태양을 구성하는 모든 수소 원자 속에 전자가 각자의 핵 속으로 다 떨어지는 일이 생긴다면 어떨까요? 그런 일이 생긴다면 원자 속에 빈 공간은 다 사라지고 결과적으로 10의 57승 개의 중성자들만 남는단 말이고, 중성자들은 중력을 통해 서로 뭉칠 수 있기 때문에 그것들은 한데 모여 하나의 중성자 덩어리를 만들 겁니다. 결과적으로 남는 것은 태양의 모든 질량을 다 담고 있지만 크기는 10만 배 가량 줄어든 중성자 덩어리란 말이죠. 만약 이런 크기와 질량을 가진 중성자 덩어리가 실제로 관측된다면 그것은 원자 속이 텅텅 비어 있다는 것에 대한 하나의 실험적 증거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중성자별이라는 천체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 이것은 허블 망원경이 1997년에 촬영한 사진입니다. 바로 이 별. 천문학자들은 여러 분석을 통해 이것이 태양에서 400광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중성자별이라는 것을 밝혔습니다. 또한 그것의 질량은 태양 질량의 90% 정도이지만 그것의 지름은 불과 10km 정도밖에 안 된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죠. 그러니까 이 별은 서울시청과 잠실종합운동장 사이에 들어갈 만큼 작습니다. 이 정도 크기가 태양 지름의 10만분의 1 정도죠. 이 정도만 돼도 지구 밖에서 보면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크기입니다. 하지만 그 작은 천체의 질량은 지구 전체 질량의 30만 배 정도. 그러니까 이 정도로 작은 천체가 태양만큼이나 무겁다는 말입니다. 태양의 모든 질량을 다 담고 있으면서도 10만 배 정도 작은 중성자별의 존재는 원자핵이 전자궤도보다 10만 배 정도 작다는 보어 원자 모형으로 설명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자연 현상입니다.
사실 중성자별이 처음 발견된 건 양자역학이 완성되고도 훨씬 이후의 일입니다. 보어는 그것의 존재를 알지 못했죠. 하지만 그런 면에서 보어의 원자 모형은 당시에는 알지도 못했던 천문 현상을 정확히 예측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보어의 원자 모형은 그 당시 알려진 어떤 다른 자연 현상들도 기가 막히게 설명해 냈는데요. 그 과정에서 보어는 전자기 복사를 무시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불편한 가정들을 도입해야만 했습니다. 예를 들어 전자는 불연속적인 특정 궤도만을 돌 수 있으며, 또한 전자는 그 궤도 사이를 순간 이동한다는 가정도 있었죠. 순간 이동이라니! 아마 이런 걸 처음 들으시는 분들은 이건 과학이 아니라 거의 공상과학소설 정도로 느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당시 과학자들이 느낀 어려움이요, 불편함이었습니다. 원자의 세계는 기존의 물리 법칙, 기존의 경험, 기존의 상식으로는 너무나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였던 것이고, 보어를 비롯한 당시 과학자들은 그렇게 설명할 길이 없어 보이는 원자를 생각하며 말할 수 없는 불편함과 당황스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과학 법칙은 자연 현상, 있는 그대로의 자연 현상, 그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원자와 물질이 가지는 매우 중요한 한 가지 성질은 그것이 어느 면으로 보나 매우 안정적이라는 겁니다. 원자와 물질의 안정성. 우리는 보어가 오랜 고민했던 이 화두, 즉 자연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그 놀라운 안정성과 패턴을 유심히 관찰하며 따라가 보려 합니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그 이면의 숨겨져 있던 놀라운 자연의 법칙을 깨닫게 될 겁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자연에 존재하는 원자 중 가장 간단한 수소 원자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수소 원자는 물론 그것이 물리적으로 명백히 잘못된 설명이긴 해도, 그래도 전자기 복사 하나만 무시하면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도는 것처럼 전자는 원자핵 주변을 돈다는 식의 설명이라도 시도해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입자의 개수를 한두 개만 더 늘려 보면 원자와 물질의 안정성이라는 것은 단순히 전자기 복사를 고려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닌 훨씬 더 복잡하고 심오한 문제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연에 있는 수소 원자는 혼자인 것보단 다른 뭔가와 결합해 있는 걸 훨씬 더 좋아합니다. 예를 들어 그것은 혼자 있기보단 다른 수소 원자와 결합해서 에너지적으로 더 안정적인 수소 분자를 이루려 하는데요. 실제 우리가 수소 기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이 수소 분자가 여러 개 모여 기체 상태로 존재하는 걸 말합니다. 그리고 이건 그것을 보어 원자 모형식으로 그린 거죠. 이렇게 두 개의 전자를 원궤도가 겹치는 곳에 그려 넣는 건 수소 분자를 그리는 매우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이런 식의 구조가 수소 분자의 어떤 특별한 안정성을 주는 걸까요? 한번 직접 확인해 보죠. 앞서 전자기 복사는 그냥 무시하기로 했으니까 그건 여기서도 마찬가지라고 해 보겠습니다. 전자기 복사를 무시한다는 건 이 입자들이 마치 행성계처럼 서로 거리 제곱의 반비례하는 힘만 주고받으며 운동한단 말인데요. 여러분께 이 수식을 이해하길 바라는 건 전혀 아닙니다. 대신 우리에겐 컴퓨터가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바로 시뮬레이션 해볼 수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이 입자들은 안정적인 궤도를 이루지 않습니다. 이것들은 수소 분자가 아니라, 대신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서로 짝을 이루며 두 개의 수소 원자로 다시 분리되어 버리죠. 이런 결과는 초기 조건을 바꿔가며 다양하게 시도해 봐도 변하지 않는 결과입니다. 고전역학적으로 볼 때 원자나 분자는 근본적으로 불안정합니다. 고전역학에 의하면 수소 원자는 전자기 복사를 내며 즉각 붕괴해야 하고, 설사 전자기 복사를 무시하더라도 그것은 가장 간단한 분자인 수소 분자의 안정성조차 설명할 수 없는 것이죠. 하지만 실제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들은 이렇게 불안정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원자와 물질에 대한 어떤 이론적 모순을 살펴봤다면, 지금부터는 실제 자연에서 그것들이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살펴볼 텐데요. 가장 친근한 예로, 여기 [음악]
그런데 과연 실제 물 분자가 항상 이런 식의 구조를 가지는 게 맞을까요? 물론 물 분자는 웬만한 현미경으로는 어림도 없을 만큼 너무나 작기 때문에 제가 지금 여기에 있는 물 분자를 하나하나 여러분께 직접 보여드릴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물 분자가 항상 이런 식으로 표현되는 어떤 동일한 구조로 존재한다는 걸 이미 경험을 통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물 분자의 이런 구조 때문에 나타나는 성질에는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이 와인잔 속에 있는 물이나 여러분 집에서 마시는 물, 한강에서 떠온 물, 아마존에서 떠온 물, 아니면 30년 전 물이나 3억 년 전 물이나, 기타 조건만 같다면 순수한 물은 그 언제 어디서라도 섭씨 0도에서 얼고 100도에서 끓습니다. 물은 어는 과정에서 부피는 커지고 밀도는 낮아지기 때문에 얼음은 항상 물 위에 뜨죠. 또한 그것은 설탕과 소금은 잘 녹이지만 기름과는 섞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물의 성질은 언제 어디서나 같고, 바로 그런 현상이 물 분자의 구조가 언제 어디서나 같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물 분자의 구조는 심지어 수없이 해체되고 재조합되는 화학 반응 속에서도 결코 변하는 일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공기 중에 내뱉은 이산화탄소와 물 분자는 식물의 광합성 재료로 쓰입니다. 그 광합성의 결과로 만들어진 포도당과 산소는 우리 몸에서 복잡한 화학 과정을 통해 에너지를 만들며 다시 이산화탄소와 물 분자로 분해되죠. 이런 과정이 수억 년에 걸쳐 셀 수 없이 많이 일어나도 물 분자의 화학적 성질은 결코 변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 안정성은 물 분자뿐만 아니라 화학 반응에 참여하는 다른 모든 분자들도 마찬가지죠. 즉, 원자 자체와 그 원자들이 모여 만드는 모든 물질들은 언제 어디서나 같은 구조, 같은 성질, 같은 패턴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양자역학 이전의 법칙들은 이런 안정성과 규칙성을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물 분자 하나의 존재 자체도 설명할 수가 없었던 것이죠. 보어가 말한 원자와 물질의 안정성이라는 것은 그저 수소 원자 하나가 존재하냐 마냐를 따지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비롯한 원자로 이루어진 모든 물질과 물체와 천체와 생명과 그 모든 것에 대한 훨씬 더 심오하고 근본적인 자연 현상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우리는 수소 원자로 다시 돌아와야만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다룰 수 있는 것 중 가장 쉬운 문제라서 그런 것도 있고, 또 어떤 자연 법칙을 찾기 위해선 보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데이터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지금부터 실제 수소 원자를 통해 그 데이터를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유리관 속엔 수소 기체가 들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수소 기체가 들어있단 말은 이 속에 수소 분자가 기체 상태로 가득 들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어떤 전기적인 자극을 가하면 그 에너지를 받은 수소 분자들이 원자 상태로 분리됩니다. 그리고 그 전기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가해주면 수소 원자들은 그 전기 에너지를 흡수하고 방출하면서 빛을 내게 됩니다. 이렇게요. [음악]
사실 저는 이 장비를 인터넷에서 구매했습니다. 그리고 이건 인터넷에서 구매한 전원을 켜면 어떤 불그스름한 빛을 내는 유리관일 뿐이죠. 근데 이 안에 수소가 있다는 걸 어떻게 알죠? 그건 표현하자면 이 빛 속에 수소 원자의 바코드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관찰하기 위해 필요한 건 이 플라스틱 필름 한 장이면 됩니다. 회절 격자라고 불리는 이 플라스틱 필름은 프리즘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즉, 회절 격자를 지난 빛은 파장이 클수록 더 크게 꺾이기 때문에 마치 프리즘처럼 빛을 파장별로 분리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우리는 회절 격자로 빛을 갈라서 이 수소 원자가 내는 빛의 성분을 확인해 볼 겁니다. 일단 수소 원자가 내는 빛만 잘 보이도록 카메라 광량을 조절해 주고, 이 상태에서 회절 격자를 카메라 앞에 갖다 대면 양쪽으로 파랑, 하늘, 빨강 3개의 선이 보이시죠? 수소 원자가 내는 빛은 이렇게 몇 개의 불연속적인 파장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또한 서로 다른 상품에는 서로 다른 바코드가 붙어 있는 것처럼 서로 다른 원자들은 서로 다른 스펙트럼을 가집니다. 수소, 헬륨, 질소, 네온. 역시나 같은 방법으로 관찰해 보면 이 서로 다른 원자들은 각각의 고유한 선 스펙트럼을 가진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태양도 수소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지금 유리관 속에도 똑같은 수소 원자가 있는데, 왜 어떤 건 연속 스펙트럼이고 또 어떤 건 불연속이죠? 그런데 사실 태양빛 속에도 수소의 선 스펙트럼이 있습니다. 이 태양빛을 보다 정밀한 장비로 보면 우리 눈에는 여러 개의 어두운 선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관측 결과는 19세기 초부터 있었고, 사람들은 이 선들을 처음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프라운호퍼 선이라 부르죠. 처음에는 이 선들이 왜 있는지 몰랐지만, 사실 이것들은 방금 보셨던 것과 같은 특정 원자나 분자의 스펙트럼 데이터와 정확히 일치하는 선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태양에 존재하는 원소에 대한 선 스펙트럼이었던 것이죠. 무지개 속에 태양을 이루는 물질의 바코드가 담겨 있다니 정말 신기하지 않나요? 당연히 여기엔 수소 원자가 내는 선들이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수소 원자는 불연속적인 특정 파장을 내고, 그리고 그 특정 파장을 흡수하기도 하죠. 이런 관측 결과는 보어가 살던 100년 전과 오늘날이 서로 다르지 않고, 지구에 있는 수소 원자와 태양에 있는 수소 원자가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보어가 말한 대로 원자의 성질은 언제 어디서 측정해도 똑같은, 매우 매우 안정적인 성질을 가지는 것이죠. 그리고 앞서 불연속적인 궤도와 전자가 그 궤도 사이를 순간 이동한다는 얘기는 바로 이 수소 원자의 선 스펙트럼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보어는 이 불연속 스펙트럼의 원인이 전자의 불연속적인 궤도 때문이라 설명했습니다. 그는 전자들이 이 궤도 사이를 순간 이동하면서 그 에너지 차이만큼의 빛을 흡수하거나 방출한다고 주장했죠. 또한 보어는 그런 개념적인 설명에 그치지 않고 수소 원자의 스펙트럼을 설명하는 어떤 정확한 수식을 유도해내는 데까지 성공했습니다. 전자의 에너지 준위를 나타내는 이 한 줄의 수식은 가시광선 영역 밖에 있는 스펙트럼까지 정확히 설명해내는 매우 훌륭한 결과였던 것이죠. 하지만 아직 의문이 다 풀린 건 아닙니다. 대체 왜 전자가 이 특정 궤도 사이에 있지 못할까요? 또 그것은 어떻게 이 사이를 순간 이동한다는 걸까요? 보어는 그런 모든 질문에 답하지는 못했습니다. 이 보어의 행성형 원자 모형은 한편으로는 성공적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정의 가정을 덧붙여 만들어낸 불완전한 이론이기도 했던 것이죠. [음악]
실제 원자 속에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거기에 대한 답을 찾아내는 것이 20세기 초반 과학자들의 커다란 숙제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보어의 원자 모형을 바탕으로 치열하게 논쟁하고 연구했고, 그들은 결국 양자역학이라는 새로운 물리 법칙을 만들어냈죠. 제가 이번 영상에서 그 양자역학의 탄생 스토리를 일일이 설명하진 않을 겁니다. 대신 저는 앞서 말씀드린 문제들을 단박에 해결할 수 있는 어떤 핵심 개념을 보다 직접적이고 개념적으로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머리가 복잡해지셨다면 이전 내용들은 잠시 옆으로 밀어 두셔도 좋습니다. 대신 우리는 이 수소 원자의 선 스펙트럼에 집중할 겁니다. 이 선 스펙트럼은 우리가 원자에 대해서 얻을 수 있는 굉장히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임과 동시에, 이것은 원자에 대한 안정성을 우리의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즉, 앞서 말씀드린 그 많은 문제와 모순에 대한 답이 이 불연속 스펙트럼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이죠. 원자는 왜 이런 선 스펙트럼을 낼까요? 제가 양자역학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 와인잔을 제목으로 삼은 이유가 바로 선 스펙트럼의 물리적 원인을 설명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놀랍게도 와인잔은 선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와인잔의 선 스펙트럼을 통해 원자를 이해해 볼 생각입니다. 우선 저는 이 선 스펙트럼에 대한 간단한 그래프 하나를 그려보려 합니다. 지금 이 화살표의 방향은 빛의 파장이 커지는 방향입니다. 이 파장에 따라 스펙트럼의 밝기가 어떻게 변하는지 한번 생각해 보죠. 아무 색깔도 없는 새까만 부분은 밝기가 그냥 0입니다. 그리고 스펙트럼 선을 지나면 순간적으로 밝아졌다가 어두워지면서 삐죽한 피크가 하나 생기겠죠. 다시 감소했다가, 이후 감소했다가… 제가 굳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스펙트럼을 두고 이런 그래프를 그리는 건 와인잔의 스펙트럼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귀로 듣는 스펙트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 와인잔이 내는 소리 속에 이런 형태의 삐죽삐죽한 선 스펙트럼이 있다는 걸 보여드릴 겁니다. 앞서 빛의 성분을 분석하기 위해 사용한 이 플라스틱 필름은 일종의 광학 장비라 할 수 있습니다. 소리의 성분을 분석하기 위해선 음향 장비가 있어야겠죠. 이것도 뭐 거창한 장비가 필요치 않습니다. 그죠? 이 노트북의 내장된 마이크 정도면 충분합니다. 지금 여기 띄워져 있는 건 인터넷에서 주소만 치면 바로 쓸 수 있는 음파 분석 프로그램인데요. 지금은 제 말하는 목소리에 대한 스펙트럼이 실시간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제 말하는 목소리는 주로 190Hz 정도에서 피크를 찍고 그 이후로 한 3000Hz 정도까지 점점 약해지는 형태를 보이는데요. 이건 뒤죽박죽 튀어나온 선 스펙트럼과는 상당히 달라 보이죠. 하지만 와인잔은 다릅니다. 사실 저도 와인잔으로 소리 내는 걸 영상 준비하면서 처음 해봤는데요. 이거 정말 쉽습니다. 일단 손에 물기를 좀 묻힌 다음에 이 상태에서 적당한 압력으로 테두리를 부드럽게 문지르기만 하면 마치 현악기 같은 소리가 나죠. 바로 이 소리에 대한 스펙트럼이 선 스펙트럼의 형태입니다. [음악]
이렇게 특정 주파수에만 삐죽삐죽하게 봉우리가 솟아 있다는 건 와인잔이 내는 소리가 어떤 불연속적인 특정 주파수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이걸 수소 원자의 선 스펙트럼처럼 나타내면 이런 형태가 되는 거죠. [음악] 원자와 와인잔 모두 선 스펙트럼을 낸다. 좀 쌩뚱맞으면서도 신기하지 않나요? 그런데 한 단계 더 들어가 보죠. 만약 이런 선 스펙트럼들이 어떤 동일한 물리적 원리를 가진다면, 그럼 원자는 똑같은 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