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cription
[음악] 어느 깊은 산속 암자에 한 스님이 살고 계셨습니다. 스님은 출가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음악] 여전히 마음속에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스님이 처음 출가할 때부터 [음악] 품고 있던 화두였습니다. 젊은 시절 스님은 [음악] 번잡한 도시에서 성공한 사업가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부러워했고, 그 자신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밤, [음악] 호화로운 사무실에 홀로 앉아 있던 그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내가 쌓아온 이 모든 것이 정말 [음악] 나일까?"
명함에 적힌 직함, 통장에 찍힌 숫자, 사람들이 [음악] 부르는 이름. 그것들을 모두 벗어던지면 과연 무엇이 남을까? 그날 [음악] 밤,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산으로 들어왔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제 [음악] 그는 한 남자의 주지 스님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음악]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일은 새벽, 스님은 [음악] 평소처럼 선방에 앉아 자선을 하고 있었습니다. 고요한 정적 속에서 자신의 호흡을 관찰하며, 스님은 다시 한번 물었습니다.
"지금 이 호흡을 지켜보는 존재는 누구인가?"
들숨과 날숨 사이, 그 찰나의 공간에서 스님은 무언가를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붙잡으려 하는 순간, 다시 사라져 버렸습니다. 마치 [음악] 물속에 달 그림자를 손으로 움켜쥐려는 것처럼, 잡으려 할수록 더 멀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금강경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모든 모양 있는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니,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님을 본다면 곧 여래를 보리라."
스님은 이 [음악] 구절을 수천 번도 넘게 외웠지만, 여전히 그 깊은 의미를 온전히 [음악]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자선을 마치고 스님은 암자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동쪽 하늘이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산새들의 지적임이 고요한 새벽을 깨우고, [음악] 이슬 맺힌 풀잎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였습니다. 스님은 우물가로 가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렸습니다. 맑은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스님은 다시 한번 물었습니다.
"물에 비친 이 얼굴이 나인가? 아니면 [음악] 물을 바라보는 이가 나인가?"
그때 마당 한쪽에서 어린 동자승이 빗자루를 들고 낙엽을 쓸고 있었습니다. 동자승은 열심히 낙엽을 한 곳에 모았지만, 바람이 [음악] 불 때마다 낙엽들은 다시 흩어졌습니다. 동자승은 답답한 표정으로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스님, 제가 아무리 쓸어도 낙엽이 자꾸 흩어집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스님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습니다. "낙엽을 쓰려는 내가 누구인지 먼저 알아보거라."
동자승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습니다. "제가 누구냐고요? 저는 이 암자의 동자승입니다."
스님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동자승이 되기 전에 너는 누구였느냐?"
동자승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습니다. "마을에 사는 평범한 아이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아이가 되기 전에는 부모님의 자식이었겠지요. 그보다 더 이전에는..."
동자승은 더 이상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습니다. 스님은 동자승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습니다.
"우리는 항상 무언가가 되려고 합니다. 좋은 사람이 되려 하고, 훌륭한 스님이 되려 하고, 깨달은 자가 되려 합니다. 하지만 무언가가 되려는 순간, 우리는 이미 [음악] 본래의 나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동자승은 [음악]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지만, 스님 자신도 방금 한 말의 깊은 의미를 완전히 [음악]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오후, 스님은 경전을 [음악] 읽다가 한 구절에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색이 [음악]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
이 유명한 반야심경의 구절을 스님은 수없이 읽고 외웠습니다. 하지만 오늘따라 이 구절이 유독 마음에 걸렸습니다. 내가 보고 있는 이 몸, 이 생각, 이 감정들이 모두 공하다면 과연 무엇이 나인가? 스님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습니다. 주름이 잡힌 손등, 굳은살이 박힌 손바닥. 이 손은 분명 스님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20년 전 사업가였을 때의 그 매끈한 손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것이 진짜 내 손인가?
스님은 몸을 일으켜 암자 뒤편에 작은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산길을 [음악] 걷다 보니 큰 바위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스님은 [음악] 그 바위 위에 올라가 앉아 계곡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계곡물이 바위를 타고 흘러내리며 맑은 소리를 냈습니다. 물은 쉼 없이 흘렀지만, 바위는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있었습니다.
"물처럼 흐르는 것이 나인가? 바위처럼 머무는 것이 나인가?"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지고, 산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습니다. 스님은 여전히 바위 위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때 한 마리 나비가 스님 곁으로 날아왔습니다. 나비는 잠시 스님의 어깨에 앉았다가 이내 날아가 버렸습니다. 스님은 문득 장자의 호접몽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장자가 [음악] 꿈에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녔는데, 깨어나 보니 자신이 장자인지 나비가 장자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는 이야기.
"내가 지금 스님으로 살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스님이 과거의 사업과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스님은 [음악] 천천히 바위에서 내려와 암자로 돌아왔습니다. 저녁 예불 시간이 되자, [음악] 스님은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 앞에 앉았습니다. 은은한 촛불이 법당을 밝히고, 향 연기가 천천히 피어 올랐습니다. 스님은 부처님 상을 바라보며 합장했습니다.
"부처님, 제자는 20년을 수행했지만 [음악] 여전히 제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찾아야 할 나는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
고요한 법당에는 [음악] 스님의 목소리만 울려 퍼졌습니다. 부처님 상은 [음악] 여전히 자비로운 미소를 지으며 스님을 내려다보고 계셨습니다.
예불을 마치고 스님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촛불을 켜고 방바닥에 앉아, 스님은 다시 한번 호흡을 가다듬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을 되풀이하며 스님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았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 품에서 자라던 순진한 아이,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학생, 회사에서 성공을 향해 달려가던 사업가, 그리고 지금 산 속에서 돌을 닦는 스님. 이 이 모든 모습이 과연 나일까? 스님은 거울을 가져와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주름진 얼굴, 흰머리가 섞인 눈썹, 깊어진 눈가의 주름. 거울 속의 얼굴은 분명 스님 자신이었습니다. 하지만 20년 전 거울에 비친 얼굴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나는 어디에 있는가?
스님은 거울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스님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려 했습니다. 생각이 일어나고, 감정이 흘러가고, 기억이 떠올랐다 [음악] 사라졌습니다. 마치 강물처럼 끊임없이 흐르는 마음의 흐름. 이 흐름을 지켜보는 존재가 나인가? 하지만 그 지켜보는 존재조차 또 다른 생각으로 느껴졌습니다. 생각이 생각을 지켜보고, 그 지켜봄을 또 다른 생각이 지켜보는 끝없는 순환.
스님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때 창 밖에서 바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소나무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며 사각거리는 소리. 스님은 귀를 기울였습니다.
"바람소리를 듣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귀가 듣는 것인가? 마음이 듣는 것인가?"
만약 귀가 듣는다면, 귀는 단지 고막의 진동일 뿐인데 어떻게 소리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만약 마음이 듣는다면, [음악] 그 마음은 어디에 있으며 무엇인가?
스님은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주 하셨던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너희들은 나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어느 날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 한 제자가 물었습니다. "부처님, 저희는 [음악] 부처님을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고개를 저으셨습니다. "나는 지혜로운 자가 아니다." 다른 제자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깨달은 자이십니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고개를 저으셨습니다. "나는 깨달은 자도 아니다." 제자들이 당황하여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부처님께서는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음악] 나는 단지 깨어 있는 자일 뿐이다."
스님은 이 이야기를 떠올리며 깊이 생각했습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매일 아침 잠에서 깨어나지만, [음악] 정말로 깨어 있는 것일까? 눈을 뜨고 [음악] 있지만, 여전히 꿈속을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님은 자신의 하루를 되돌아보았습니다. 새벽 예부를 하면서도 잡념이 [음악] 일어났고, 경전을 읽으면서도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었습니다. 밥을 먹으면서는 맛에 대한 집착이 일어났고, 걸으면서는 목적지에 대한 조급함이 있었습니다. 나는 정말 깨어 있었던 적이 [음악] 있었던가?
스님은 문득 자신이 항상 과거나 미래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음악] 깨달았습니다. 과거의 기억을 붙들거나 미래를 걱정하거나,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머물러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항상 무언가를 찾고, 무언가가 되려 하고, 무언가를 얻으려 했습니다. "나를 찾으려는 나, 그것조차 또 하나의 집착이 아닐까?"
밤이 깊어 갔습니다. 스님은 촛불을 바라보며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촛불은 고요히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없는 밤, 촛불은 흔들림 없이 그 자리에서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그 촛불처럼 고요해지고 싶었습니다. 생각에 바람이 불지 않는 그런 고요함. 하지만 고요해지려 애쓰는 순간, 이미 그것은 고요가 아니었습니다.
"[음악] 고요해지려는 노력조차 또 하나의 번뇌구나."
스님은 씁쓸하게 웃었습니다. [음악] 20년을 수행했지만,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마을 어귀의 개가 밤손님을 경계하며 짖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문득 조주 스님의 유명한 화두가 떠올랐습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무(無)라는 조주 스님의 이 한마디 대답은 천년이 넘도록 수많은 수행자들을 깨우쳐 왔습니다. 무(無)라는 것은 없다는 뜻이 아니라, 분별을 넘어선 경지를 가리키는 것. 스님은 이 [음악] 화두를 수없이 참고했지만, 여전히 그 깊은 뜻을 온전히 [음악] 체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촛불이 점점 짧아졌습니다. 스님은 일어나서 세초를 가져와 불을 붙였습니다. [음악] 낡은 초의 불이 세초로 옮겨가는 순간, [음악] 스님은 잠시 멈춰섰습니다.
"이 불은 같은 불인가, 다른 불인가?"
[음악] 낡은 초에서 세초로 옮겨간 불. 형태는 같지만 타고 있는 초는 다릅니다. [음악] 마치 윤회하는 생명처럼,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았습니다.
스님은 다시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제 곧 동이 틀 시간이었습니다. [음악] 하루가 끝나고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그 경계.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은 나일까? 다른 나일까? 스님은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아직 어둠이 남아 있었지만, 동쪽 하늘이 조금씩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밤과 낮의 경계, 어둠과 빛의 경계. 그 경계에서 스님은 문득 깨달았습니다.
"나를 찾는 여정은 끝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찾음 자체가 바로 수행이고, 이 의문 자체가 [음악] 바로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스님은 깊은 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습니다. 새벽 예불 종소리가 고요한 산사를 깨울 때까지, 스님은 [음악] 그렇게 앉아 있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이 질문은 여전히 답이 없었지만, [음악] 스님은 이제 그 답 없음 속에서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찾아야 할 나는 어쩌면 찾는 자와 찾아지는 자의 구분이 사라진 곳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주체와 객체가 하나가 되는 곳. 보는 자와 보이는 것이 둘이 아닌 곳.
스님은 천천히 일어나 법당으로 향했습니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고, 나를 찾는 여정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새벽 예불을 마친 스님은 홀로 [음악] 법당에 남아 부처님 앞에 앉았습니다. 촛불이 흔들리며 부처님의 자비로운 얼굴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합장한 채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나를 찾으려 할수록 [음악] 나는 더 멀어지는구나."
지난 20년간 스님은 수많은 수행법을 익혔습니다. 참선도 하고, 염불도 하고, 경전도 읽고, [음악] 절도 했습니다. 하지만 수행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무언가를 얻으려는 자신의 집착이었습니다. 깨달음을 얻으려는 집착. 좋은 스님이 되려는 집착. 번뇌를 없애려는 집착.
"집착을 없애려는 것조차 집착이구나."
스님은 씁쓸함을 지었습니다. 그때 법당 밖에서 [음악] 동자승이 마당을 쓸고 있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빗자루가 바닥을 쓸 때마다 사각사각 소리가 났습니다. 스님은 일어나 법당 밖으로 나갔습니다. 동자승은 여전히 낙엽과 씨름하고 있었습니다. 쓸어 모아도 바람이 불면 다시 흩어지는 낙엽들. 동자승의 얼굴에는 답답함이 가득했습니다.
스님이 물었습니다. "낙엽을 쓸고 있는 내가 느껴지느냐?"
동자승이 고개를 들며 대답했습니다. "네, 스님. 팔이 아프고 등에 땀이 흐르는 게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그 느낌을 느끼는 존재는 누구냐?"
[음악] 동자승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습니다. "제가 느끼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너는 누구냐?"
동자승은 대답하지 못하고 멈춰 섰습니다. 스님이 다시 물었습니다. "팔이 아프다고 했지? 그렇다면 너는 팔이냐?"
"아닙니다."
"등에 [음악] 땀이 흐른다고 했지. 그렇다면 너는 등이냐?"
"그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팔도 아니고 등도 아닌 너는 [음악] 도대체 무엇이냐?"
동자승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스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스님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우리는 항상 몸을 나라고 생각합니다. 배가 [음악] 고프면 내가 배고프다고 하고, 다리가 아프면 내가 아프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몸과 나는 같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자승이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제 생각입니까?"
스님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생각도 네가 아니다. 생각은 구름처럼 왔다가 사라지는 것이니, 그것을 어떻게 너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렇다면 저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스님은 잠시 침묵하다가 [음악] 말했습니다. "그것을 찾는 것이 바로 수행이다. 서둘러 답을 얻으려 하지 말고, 매 순간 깨어서 관찰하거라. 그러면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
동자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낙엽을 쓸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암자 뒤편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좁은 산길을 따라 올라가니 작은 샘터가 나타났습니다. 맑은 물이 바위틈에서 [음악] 솟아나와 작은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웅덩이에 고인 물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물은 맑고 고요했습니다. 물 위로 하늘이 비치고 [음악] 구름이 흘러갔습니다. 스님의 얼굴도 물에 비쳤습니다.
"이 이 물은 하늘을 담고 있으면서도 하늘이 아니고, 내 얼굴을 비추면서도 내가 아니구나."
스님은 문득 화엄경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마음이 화공과 같아서 온갖 세간을 그려내나니, 온 이 모두 마음으로부터 생겨나고 법계에 한 법도 마음밖에 있는 것이 없느니라." 우리의 마음이 마치 화가처럼 온 세상을 그려낸다는 가르침. 스님은 이 말씀을 곱씹으며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보고 있는 이 세상도,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괴로움도 모두 내 마음이 그려낸 것인가?
스님은 손을 뻗어 물을 떠마셨습니다. 차가운 물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습니다. 그 시원함을 느끼는 순간, 스님은 잠시 모든 생각이 멈췄습니다.
"이 느낌도 마음이 그려낸 것일까?"
스님은 천천히 암자로 돌아왔습니다. 점심 공양 시간이 되자, 스님과 동자승은 함께 밥상 앞에 앉았습니다. 소박한 밥과 나물 반찬이 전부였지만,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스님은 첫 숟가락을 뜨기 전에 잠시 멈췄습니다.
"이 이 밥을 먹는 누구인가?"
입으로 밥을 넣고 씹고 삼키는 과정. 그 모든 과정이 자동으로 일어나는 것 같았지만, 분명 어떤 의지가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배가 고프니 밥을 먹는다. 하지만 [음악] 배고픔을 느끼는 존재와 밥을 먹는 존재가 같은가? 스님은 천천히 밥을 씹으며 그 맛을 느꼈습니다. 달콤한 밥맛, 고소한 나물맛. 맛을 느끼는 순간, 그 맛에 대한 좋고 싫음이 일어났습니다.
"이 맛있다는 생각도 나인가?"
공양을 마치고 [음악] 스님은 홀로 산책을 나섰습니다. 오후의 햇살이 따스하게 [음악] 내리쬐었습니다. 산길을 걷다 보니 큰 소나무 한 그루가 나타났습니다. 그 소나무는 수백 년은 되어 보이는 거목이었습니다. 굵은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 있고, 푸른 솔잎이 바람에 흔들렸습니다. 스님은 소나무 아래 앉아 쉬었습니다.
"이 소나무는 자신이 소나무라는 것을 알까? 소나무는 그저 소나무로 존재할 뿐입니다. 자신이 크다거나 작다거나, 아름답다거나 [음악] 추하다거나 하는 생각이 없습니다. 봄이 오면 세순이 돋고, 겨울이 오면 눈을 이고 서 있을 뿐입니다. 나무는 나무로 살아가는데, 사람은 왜 자신이 누구인지 고민하는가?"
스님은 문득 깨달았습니다. 인간만이 자기 자신을 의식합니다. 나라는 생각, 나라는 정체성, 나라는 이미지. 이 모든 것이 인간만의 특징입니다. 어쩌면 나를 찾는 괴로움 자체가 나라는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스님은 어린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아마도 대여섯 살 무렵. 그때는 나라는 생각이 지금처럼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음악] 세상과 자신이 분리되어 있다는 느낌이 희미했습니다. 나무를 보면 그냥 나무였고, 하늘을 보면 그냥 하늘이었습니다. 내가 본다는 생각 없이 그냥 보였고, 내가 느낀다는 생각 없이 그냥 [음악]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교육을 받고 사회화되면서, 나와 세상이 점점 분리되었습니다. 나는 여기 있고, 세상은 저기 있습니다. 나는 주체이고, 세상은 객체입니다. 이 분리가 모든 괴로움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스님은 눈을 감고 깊은 숨을 들이마셨습니다. 바람이 불어와 얼굴을 스쳤습니다.
"이 바람을 느끼는 나와 바람은 [음악] 정말 둘인가?"
바람이 피부에 닿는 순간, 바람과 피부는 하나가 됩니다. 경계가 사라집니다. 느끼는 자와 느껴지는 것이 둘이 아닙니다. 스님은 잠시 그 경험 속에 머물렀습니다.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순간, 오직 느낌만 있는 순간. 하지만 그 순간을 의식하는 순간, 다시 분리가 일어났습니다. "아, 지금 좋은 경험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일어나는 순간, [음악] 경험하는 나와 경험되는 것이 다시 갈라졌습니다.
스님은 씁쓸함을 지었습니다. "이 분리를 넘어서는 것이 바로 깨달음인가?"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일어나 암자로 돌아가려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길가에 작은 풀꽃 한 송이가 피어 있었습니다. [음악] 이름 모를 작은 꽃이었습니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산길에서 홀로 피어 있는 꽃. 스님은 무릎을 굽혀 그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작지만 완벽한 형태, 은은한 색깔.
"이 꽃은 누가 보든 안 보든 상관없이 피어 있구나. 꽃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피지 않습니다. 그냥 [음악] 필 때가 되어 피고, 질 때가 되면 집니다. 아무런 의도도 집착도 없이, 그저 자연스럽게. 나도 이 꽃처럼 살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않고, 무언가를 증명하려 하지 않고, 그저 이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면서."
스님은 천천히 일어나 암자로 향했습니다. 저녁 예불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법당에 들어가니 동자승이 이미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함께 예불을 올리는 동안, 스님은 문득 깨달았습니다. 예불을 올리는 이 순간에도 나는 나를 찾고 있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예불문을 읽으면서도, 절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나를 찾고 있었습니다.
"[음악] 하지만 만약 나를 찾는 것을 멈춘다면..."
예불을 마치고 스님은 홀로 방에 들어갔습니다. [음악] 촛불을 켜고 가부좌를 틀고 앉았습니다.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자선을 하기로 했습니다. 나를 찾지 않는 자선. 스님은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했습니다. 들숨과 날숨을 관찰하면서 어떤 것도 얻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깨달음을 얻으려 하지도, 고요해지려 하지도, 번뇌를 없애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숨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고, [음악] 숨이 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여러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과거의 기억, 미래의 계획, 온갖 잡념들. 하지만 스님은 그것들을 쫓아가지 않았습니다.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그냥 지켜보았습니다. 구름이 하늘을 지나가듯, 생각이 마음을 지나갔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스님은 문득 깊은 고요 속에 있었습니다. 생각이 멈춘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생각은 일어났다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에 휘말리지 않았습니다. 마치 물 위에 잎사귀가 떠가는 것을 바라보듯, 생각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 순간, 스님은 이상한 경험을 했습니다. 지켜보는 나와 지켜지는 생각 사이의 경계가 희미해졌습니다. 생각을 보고 있는 것인지, 생각 속에 있는 것인지 구분이 안 됐습니다. 주체와 객체가 하나가 되는 듯한 느낌. 하지만 그것을 말로 표현하려는 순간, 다시 경계가 생겼습니다.
스님은 천천히 눈을 떴습니다. 촛불이 여전히 고요히 [음악]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방 안은 고요했고, 밖에서는 [음악]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스님은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나를 찾으려 할 때는 나를 찾을 수 없었는데, 나를 찾지 않으려 할 때 무언가가 드러났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스님은 문득 옛 조사들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어느 제자가 조사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부처를 볼 수 있습니까?" 조사가 대답했습니다. "부처를 보려 하지 마라." 제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조사가 말했습니다. "보려 하지도 말고, [음악] 보지 않으려 하지도 마라. 그냥 있어라."
그냥 있다는 것. 무엇을 하려 하지도 않고, 무엇이 되려 하지도 않고, 그저 이 순간에 있는 것. 스님은 이제야 그 말의 의미를 조금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하려 합니다. 좋은 사람이 되려 하고, 나쁜 사람이 되지 않으려 하고, 행복해지려 하고, 불행해지지 않으려 하고, 깨달음을 얻으려 하고, 번뇌를 없애려 합니다. 이 이 모든 노력이 사실은 현재의 나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나는 충분하지 않아. 나는 달라져야 해." 이런 생각 자체가 괴로움을 만듭니다.
스님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습니다. 주름진 손, 굳은살 박힌 손. 이 이 손은 그냥 이 손일 뿐입니다. 좋은 손도 나쁜 손도 아닙니다. 젊은 손이어야 한다거나, 부드러운 손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괴로움을 만듭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바로 해탈의 시작이 아닐까?
스님은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밤하늘에 별이 총총 떠 있었습니다. 그 별들은 수백만 년 전에 빛입니다. 지금 보고 있는 별은 이미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과거의 빛을 보면서 현재라고 생각하는구나.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사실 과거입니다. 빛이 눈에 도달하는 시간, 신경이 뇌에 전달되는 시간. 우리가 지금이라고 느끼는 순간은 이미 지나간 순간입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지금은 무엇일까?
[음악] 생각이 일어나기 전, 느낌이 해석되기 전, [음악] 그 찰라의 순간. 어쩌면 그곳에 진정한 나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스님은 다시 눈을 감았습니다. 이번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호흡을 세지도 않고, 생각을 관찰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얼마나 흘렀는지 모를 만큼 깊은 고요 속에서, 문득 스님은 웃음이 났습니다.
"나를 찾으려 20년을 헤맸는데, 알고 보니 찾는 자가 [음악] 바로 나였구나."
칼로 칼을 자를 수 없듯이, 나로 나를 찾을 수는 없습니다. 눈이 자기 자신을 볼 수 없듯이, 나는 나 자신을 객체로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나를 알 수 있을까?
스님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여전히 답은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변하고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음악] 집착하는 마음이 조금씩 느슨해지고 있었습니다. 꼭 답을 얻어야 한다는 조급함이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촛불이 거의 다 타 들어갔습니다. 스님은 일어나서 촛불을 끄려다가 문득 멈춰섰습니다.
"촛불을 끄는 이 순간에도 나는 여기 있습니다. [음악] 촛불이 꺼져도 나는 여전히 있을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도, 빛 속에서도, 잠들어 있을 때도, 깨어 있을 때도. 이 변하지 않는 존재. 그것이 진정한 나인가?"
스님은 조심스럽게 촛불을 껐습니다. 방안이 어두워졌습니다. 하지만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이 [음악] 희미하게 방을 밝혔습니다. 스님은 어둠 속에 앉아 잠시 명상에 잠겼습니다. 밖에서는 여전히 귀뚜라미가 울고,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음악] 그 변화를 지켜보는 무언가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일까?"
스님은 조용히 자리에 누웠습니다. 내일 다시 새벽이 밝아오면, 또다시 하루가 시작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찾는 여정도 계속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스님은 알았습니다. 나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나를 찾으려는 집착을 내려놓는 것. 그것이 진정한 수행이라는 것을.
새벽이 밝아왔습니다. 스님은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어젯밤의 깨달음이 아직 마음속에 여운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스님은 일어나 창문을 열었습니다. 시원한 새벽 공기가 방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동쪽 하늘이 [음악] 붉게 물들고 있었습니다. 해가 떠오르기 직전의 그 신비로운 순간. 스님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깊은 숨을 들이마셨습니다.
"매일 아침 해가 뜨지만, 오늘 아침은 왠지 다르게 느껴지는구나."
스님은 세수를 하고 법당으로 향했습니다. 동자승도 이미 와서 예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함께 예불을 올리는 동안, 스님의 마음은 유난히 고요했습니다. 평소처럼 잡념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예불문을 읽는 그 순간에 온전히 있었습니다.
예불을 마치고 스님은 홀로 법당에 남았습니다. 부처님 앞에 앉아 깊은 명상에 들어갔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이 질문을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되뇌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답을 찾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음악] 그 질문과 함께 있었습니다. 질문이 마음속에 울려 퍼지고, 그 울림이 사라지고, 그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스님의 마음속에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아주 오래 전,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의 일입니다. 한 제자가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부처님, [음악] 제가 깨달음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잠시 침묵하시다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제자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음악]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습니다. "[음악] 듣고 있는 너는 누구냐?" 제자는 당황하여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부처님께서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깨달음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지금 여기, 듣고 있는 그 자리에 있느니라."
스님은 이 이야기를 떠올리며 깊이 생각했습니다. "지금 여기, 이 자리. 우리는 항상 어디론가 합니다. 더 나은 곳, 더 행복한 곳, 깨달음이 있는 곳.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여기에 있다고."
스님은 눈을 떴습니다. 법당 안이 [음악] 밝은 햇살로 가득했습니다.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이 부처님 상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얼굴은 여전히 자비로운 미소를 머금고 계셨습니다. 스님은 그 미소를 보며 문득 깨달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미소 짓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모습을 통해 우주의 자비가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음악] 스님 자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스님이라는 형상을 통해 무언가가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나라고 생각했던 이 몸과 마음은 단지 그릇일 뿐이구나. 마치 파도가 바다의 일부이듯, [음악] 스님이라는 존재도 더 큰 전체의 일부였습니다. 파도는 자신을 파도라고 생각하지만, [음악] 사실은 바다입니다. 물이 일시적으로 솟아올라 파도의 형상을 만들었을 뿐, 본질은 [음악] 여전히 물입니다."
스님은 일어나 법당 밖으로 나왔습니다. 마당에서 동자승이 물을 긷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다가가자 동자승이 공손하게 인사했습니다.
"스님,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스님은 [음악]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습니다. "자네는 언제부터 자네였느냐?"
동자승은 또다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스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음악] 스님이 다시 물었습니다. "자네가 태어나기 전에는 누가 있었느냐?"
동자승이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습니다.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네가 죽은 후에는 역시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음악] 스님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태어나기 전에도 없고, 죽은 후에도 없는 것이 어떻게 지금은 [음악] 있다고 할 수 있느냐?"
동자승은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스님이 계속 말했습니다.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것은 한낱 이름일 [음악] 뿐이다. 태어날 때 부모가 지어준 이름, 사회가 부여한 역할. 하지만 그 이름과 역할을 모두 벗어던지면 [음악] 무엇이 남느냐?"
동자승이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까?"
스님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자네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는 어떻게 존재합니까?"
[음악] 스님은 하늘을 가리켰습니다. "저 구름을 보거라. 구름은 어디서 왔느냐?"
동자승이 대답했습니다. "물이 증발해서 생긴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름이 사라지면 어디로 가느냐?"
"다시 비가 되어 내립니다."
"그렇다. 구름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물의 순환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난 형상일 뿐이다. 우리도 [음악] 마찬가지다. 우주의 흐름 속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난 형상일 뿐이다."
동자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를 이해하는 듯했습니다.
스님은 마당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아침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고, 새들이 지적이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평소와 같았지만, 스님의 눈에는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습니다. 나무 한 그루, 돌 하나, 풀잎 하나하나가 살아 숨쉬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나무는 땅에서 물을 받고, 하늘에서 햇빛을 받고, 공기에서 탄소를 받습니다. 이 모든 것이 모여 나무가 됩니다. 그렇다면 나무는 단지 나무일까요? 아니면 [음악] 땅이고, 하늘이고, 공기일까요?
스님은 법화경의 한 구절을 떠올렸습니다. "시방의 부처님들도 오직 일대사 인연으로 세상에 출연하시니,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의 지견을 열어보이고 깨닫게 하여 그 길로 들게 하고자 함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중생들에게 부처의 눈을 열어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부처의 눈이란 무엇일까요?
스님은 이제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부처의 눈은 분리되지 않은 눈입니다. 나와 너를 나누지 않고, 주체와 객체를 나누지 않고, 안과 밖을 나누지 않는 눈입니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눈입니다.
스님은 암자 뒤편으로 올라갔습니다. 어제 앉았던 그 바위가 있는 곳으로. 바위 위에 올라가 앉자 계곡물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스님은 눈을 감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물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물소리가 되었습니다. 바람이 불어와 얼굴을 스치는 것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되었습니다. 새가 지적이는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새의 노래가 되었습니다.
그 순간, 듣는 자와 들리는 것 사이에 경계가 사라졌습니다. 안과 밖의 구분이 없어졌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의 전체로 느껴졌습니다. 스님은 깊은 평화를 느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본래의 상태였습니다. 우리가 늘 찾아 헤매던 그것. 사실은 한 번도 잃어버린 적이 없었습니다. 단지 우리가 그것을 잊고 있었을 뿐입니다. 나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분리된 존재라고 믿으면서.
스님은 천천히 눈을 떴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였습니다. 하지만 스님의 시선은 달라졌습니다. [음악] 나무를 보지만 나무를 넘어선 것을 보았고, 돌을 보지만 돌을 넘어선 것을 보았습니다. 모든 형상 너머에 있는 본질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바위에서 내려와 천천히 걸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명상이었습니다. 발이 [음악] 땅에 닿는 감촉, 몸의 균형을 잡는 느낌, 모든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과거를 생각하지도, 미래를 걱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이 순간의 걸음만이 있었습니다.
암자로 돌아오는 길에 스님은 다시 그 작은 풀꽃을 보았습니다. 어제 본 그 꽃이었습니다. 스님은 무릎을 굽혀 그 꽃을 바라보았습니다. [음악] 작지만 완벽한 생명. 그 꽃을 보는 순간, [음악] 스님은 깨달았습니다.
"이 꽃이 나이고, 내가 이 꽃이구나."
꽃과 스님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없었습니다. 둘 다 우주의 표현이었습니다. 둘 다 생명의 춤이었습니다. [음악]
스님은 조심스럽게 일어나 걸음을 옮겼습니다. 암자에 도착하니 [음악] 점심대가 되었습니다. 동자승이 공양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함께 앉아 공양을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음악] 첫 숟가락을 입에 넣으며 깊은 감사를 느꼈습니다.
"이 밥 한 톨이 여기까지 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연이 필요했을까요?"
농부가 씨를 뿌리고, [음악] 햇빛과 물이 곡식을 키우고, 수확하고, 도정하고, 운반하고, 조리하는 과정. 수많은 손길과 자연의 은혜가 모여 이 밥 한 톨이 되었습니다.
"이 밥을 먹는 것이 나인가? 아니면 우주 전체가 이 밥을 통해 자신을 먹이고 있는가?"
스님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동자승이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스님, 오늘은 왠지 표정이 밝으십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스님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좋은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보게 되어서 그렇다."
"있는 그대로요?"
"그렇다. 우리는 늘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한다. 우리의 생각과 판단과 기대를 통해 세상을 본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보면, 세상은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
동자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밥을 먹었습니다.
공양을 마치고 스님은 홀로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창가에 앉아 먼산을 바라보았습니다. 산은 >> [음악] >> 묵묵히 그 자리에서 있었습니다. 수천 년, 수만 년을 그렇게 서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태어나고 죽었지만, 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저 산에게 나는 무엇일까?"
산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삶은 찰나에 불과합니다. 아침 이슬처럼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존재. 하지만 그 찰나 속에서도 우리는 기쁨과 슬픔을 느끼고, 사랑하고 [음악] 미워하고, 집착하고, 괴로워합니다. 이 이 모든 것이 꿈과 같구나.
부처님께서 금강경에서 말씀하신 대로, "모든 유위법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고,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으니, 응당 이와 같이 관찰할지니라."
스님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사업가로 살던 시절의 영광과 좌절, 출가하여 수행하던 20년의 세월, 나를 찾아 헤매던 긴 여정. 이 이 모든 것이 마치 한바탕 꿈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꿈이라고 해서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꿈속에서도 우리는 배우고 성장합니다. 꿈속에서도 자비를 실천하고 지혜를 키웁니다. 꿈인 줄 알면서도 꿈을 소중히 여기는 것. 그것이 보살의 >> [음악] >> 길 아닐까?
스님은 일어나 법당으로 향했습니다. 부처님 앞에 앉아 [음악] 깊은 감사의 절을 올렸습니다.
"부처님, 제자가 20년을 헤맸지만,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제가 찾던 나는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 속에, 모든 순간 속에 있었습니다."
스님은 저를 마치고 일어나 법당을 나왔습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습니다. 하루가 또 저물어가고 있었습니다. 마당에서 동자승이 저녁 예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동자승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자네가 아까 물었지, 자네가 누구냐고."
동자승이 고개를 들어 스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스님이 계속 말했습니다. "나도 20년을 그 질문과 씨름했다. 하지만 이제 알았다. 그 질문에는 답이 없다는 것을."
동자승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답이 없다고요?"
"아니, [음악] 정확히 말하면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나를 어떤 고정된 실체라고 생각한다. 찾을 수 있는 무언가, 규정할 수 있는 무언가. 하지만 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입니까?"
스님은 하늘을 가리켰습니다. "저 하늘을 보거라. 하늘은 무엇이냐?"
동자승이 대답했습니다. "공간입니다."
[음악] "그렇다. 하늘은 텅 비어 있다. 하지만 그 비어 있음 속에서 구름이 피어나고, 새가 날고, 해와 달이 떠오른다. 나도 그와 같다. 본질적으로는 비어 있지만, 그 비어 있음 속에서 생각이 일어나고, 감정이 흐르고, 경험이 펼쳐진다."
동자승은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스님이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서두르지 마라. 이해하려 애쓰지도 마라. 그냥 살아가거라. 매 순간을 깨어서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해가 완전히 넘어가고 어둠이 찾아왔습니다. 함께 저녁 예불을 올리는 동안, [음악] 스님의 마음은 고요했습니다. 예불을 마치고 [음악] 스님은 홀로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촛불을 켜고 가부좌를 틀고 앉았습니다. 오늘 밤은 특별히 무언가를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음악] 그저 앉아 있었습니다. 고요히, 평화롭게. 생각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대로, 사라지면 사라지는 대로 두었습니다. 감정이 흘러가면 흘러가는 대로 두었습니다. 아무것도 붙들지 않고, 아무것도 밀어내지 않았습니다.
[음악] 시간이 흘렀습니다.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스님은 깊은 삼매에 들었습니다. 몸의 감각이 사라지고, 시간의 흐름이 멈춘 듯했습니다. 고요함 속에 고요함, 텅 빈 속에 충만함. 그곳에서 스님은 무언가를 보았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생각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것. 하지만 분명히 거기 있었던 것. 그것은 시작도 끝도 없었습니다.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습니다.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았습니다. 더럽혀지지도 깨끗해지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모든 것의 근원이었습니다. 나의 본래 면목이었습니다.
스님은 천천히 삼매에서 나왔습니다. 눈을 떴을 때 촛불은 거의 다 타 들어가 있었습니다. 밖에서는 새벽을 알리는 닭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밤새 자선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스님은 전혀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깊은 평화와 기쁨이 마음속에 가득했습니다.
스님은 일어나 창문을 열었습니다. 동쪽 [음악] 하늘이 또다시 붉게 물들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음악] 깊은 숨을 들이마셨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이 질문은 이제 더 이상 괴로움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매 순간을 깨어 있게 하는 화두였습니다. 나를 찾는 여정은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스님은 알았습니다. 여정 자체가 목적지라는 것을. 찾는 과정 자체가 발견이라는 것을.
스님은 마당으로 나갔습니다. 동자승이 벌써 일어나 마당을 쓸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다가가자 [음악] 동자승이 인사했습니다.
"스님, 밤새 주무시지 않으셨습니까?"
스님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잠들어 있었느니라."
동자승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스님이 계속 말했습니다. "깨어 있으면서 잠들어 있고, 잠들어 있으면서 깨어 있었다. 이것이 진정한 선정이니라."
동자승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음악]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 것 같았습니다. 스님은 그것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깨달음은 말로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각자가 스스로 체험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해가 완전히 떠올랐습니다. 황금빛 햇살이 온 산에 비쳤습니다. 새들이 노래하고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평소와 같았지만, 모든 것이 새로웠습니다. 스님은 걸음을 옮겼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기도였습니다. 호흡한 호흡이 명상이었습니다. 이제 스님은 알았습니다. 수행은 특별한 시간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매 순간이 수행이고, 모든 행위가 기도라는 것을. 밥을 먹을 때도, 걸을 때도, 말할 때도, 쉴 때도 늘 깨어 있으면서, 늘 지금 여기에 있으면서. 그것이 바로 진정한 수행이었습니다.
스님은 법당으로 들어가 부처님 앞에 섰습니다. 부처님의 자비로운 미소를 바라보며, 스님도 미소를 지었습니다.
"부처님, 이제 알겠습니다. 제가 찾던 나는 처음부터 여기 있었습니다. 보는 것 속에, 듣는 것 속에, 느끼는 것 속에. 모든 순간, 모든 것 속에 있었습니다."
스님은 깊은 절을 올렸습니다. 감사의 절이었습니다. 20년의 구도 여정. 때로는 고통스럽고, 때로는 혼란스러웠던 여정. 하지만 그 모든 것이 필요한 과정이었습니다. 헤매지 않았다면 [음악] 길을 찾지 못했을 것입니다. 괴로워하지 않았다면 해탈을 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질문하지 [음악] 않았다면 답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스님은 저를 마치고 일어섰습니다. 법당 밖으로 나가니 동자승이 아침 공양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동자승을 도와 밥상을 차렸습니다. 함께 앉아 공양을 하는 동안, 스님은 깊은 [음악] 행복을 느꼈습니다. 단순한 밥 한 끼. 하지만 그 속에 우주 전체가 담겨 있었습니다.
공양을 마치고 스님은 산책을 나섰습니다. 산길을 걸으며 모든 것을 새롭게 보았습니다. 돌멩이 하나, 나뭇잎 하나에도 생명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살아 숨쉬고,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문득 깨달았습니다. 나를 찾는다는 것은 곧 모든 것과의 연결을 발견하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과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나무가 있어 내가 숨쉴 수 있고, 햇빛이 있어 내가 따뜻할 수 있고, 땅이 [음악] 있어 내가 설 수 있었습니다. 나는 나만의 힘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인연의 도움으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빚진 존재구나. 온 우주의 빚진 존재. 이 빚을 갚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감사하며 살고, 자비롭게 살고, 깨어 있게 사는 것."
스님은 다시 암자로 돌아왔습니다. 동자승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스님, 그렇다면 저도 언젠가 제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요?"
스님은 동자승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습니다. "자네는 이미 알고 있다. 단지 그것을 모른다고 생각할 뿐이다."
"무슨 뜻입니까?"
"물고기가 물속에서 물을 찾는 것과 같다. 이미 물속에 있으면서 물을 찾고 있는 것이다. 자네도 [음악] 이미 자네 자신 속에 있으면서 자신을 찾고 있는 것이다."
동자승은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스님이 계속 말했습니다. "서두르지 마라. 수행은 평생의 과업이다. 하지만 동시에 매 순간에 깨어 있음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있거라. 그것이 바로 진정한 자신을 아는 길이다."
해가 중천에 떠올랐습니다. 스님은 법당으로 들어가 경전을 펼쳤습니다. 익숙한 글자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음악] 이제는 그 의미가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글자 너머의 진리가 보였습니다. 말 너머의 침묵이
들렸습니다.
[음악]
스님은 경전을 덮고 눈을 감았습니다. 고유한 침묵 속에서 모든 답이 있었습니다.
[음악]
나는 누구인가? 이 이 질문은 이제 더 이상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살아가는 방식이었습니다. 매순간 새롭게 태어나고 매순간 새롭게 죽는 것. 집착하지 않고 흘러가게 두는 것.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자비롭게 응답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나로 사는 길이었습니다.
스님은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습니다. 창 밖으로 넓은 세상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았습니다. 아직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아직 나누어야 할 자비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스님은 두렵지 않았습니다. 나를 찾는 여정은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막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진정한 나로 살아가는 여정, 매순간 깨어 있는 여정, 자비와 지혜로 세상을 밝히는 여정.
스님은 법당을 나와 넓은 세상을 향해 걸음을 내뒤졌습니다.
나무 아미타불
[음악]
관세음보살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은 지혜의 아미타불과 자비의 관세음보살께 귀의한다는 [음악] 뜻입니다. 이 이 염성 한 마디가 마음을 맑히고 삶을 부드럽게 합니다. 댓글에 나무암타불 관세음보살를 한번 남겨 보세요. 당신의 그 한마디가 복덕의 씨앗이 되어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도드립니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