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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자주 찾는 부모, 평생 그리운 부모가 되는 법 6가지 | 법정스님

지혜봉우리25:13

Transcription

자식이 항상 찾아오는 부모는 이렇게 합니다. 시작하기 전 구독과 좋아요 눌러 주시고 이 길을 함께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첫째, 아무렇게나 던진 말로 자식 마음에 흉터를 남기지 말라. 말이 상처가 되지 않을 때 자식은 부모 곁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자식에게 말이 많습니다. 하지만 정작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저 습관처럼 감정처럼 생각나는 대로 내뱉지요. 그 말이 자식의 마음에 어떤 자국을 남기는지는 돌아보지 않습니다. "너는 왜 그렇게 게으르냐?" "그게 뭐가 힘들어?" "다 내 탓이야." 별뜻 없이 건낸 말들이 어느새 자식의 마음을 닫아버립니다. 그런데도 부모는 모릅니다. 왜 자식이 예전처럼 웃지 않는지, 왜 대화가 자꾸 짧아지는지. 말은 공기처럼 흘러가지만 마음에는 흔적을 남깁니다. 자식이 나를 떠올릴 때 그 얼굴보다 먼저 떠오르는 건 내가 무심히 던졌던 말 한마디일지도 모릅니다. 사람의 관계는 말로 시작해서 말로 무너집니다. 그중에서도 부모와 자식의 말은 가장 오래 남는 말입니다. 한 때는 자식의 첫 단어를 함께 배웠던 우리가 이제는 자식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우리의 말 한마디가 자식을 멀어지게 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말 한마디에 피어나기도 하고 시들기도 합니다. 훈계와 잔소리는 금세 잊히지만 따뜻한 한 마디는 평생 남습니다.

법정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말은 씨앗이다. 어떤 말을 뿌리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달라진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던지는 말 한마디가 자식의 마음밭에 씨앗으로 남습니다. 좋은 말을 심으면 좋은 사람이 되고, 차가운 말을 심으면 들은 말 그대로 자라나 마음을 닫아버립니다. 자식의 마음밭은 부모의 말로 길러지고 부모의 말로 다칩니다. "오늘 고생 많았지?" "요즘 참 열심히 하더라." 이런 말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자식의 어깨를 다시 세우는 햇살이 됩니다. 반대로 "다 내 탓이야." "넌 왜 그 모양이냐?" 이 말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마음속에 남아 검은 그늘이 됩니다. 자식은 부모의 말을 평생 안고 삽니다. 그 말이 빛이 되면 세상을 당당히 걸어가고, 그 말이 상처가 되면 세상 앞에서 작고 작아집니다.

우린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야." 하지만 그 말은 자식을 위한 말이 아니라 나는 이렇게 너를 위하고 있다는 자기 확인에 마을 때가 많습니다. 사랑의 언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나는 괜찮은 부모야"라는 착각을 스스로에게 확인시키는 말이지요. 자식의 마음을 위하려는 말이 아니라 "나는 옳은 부모다." 자기 위안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자식은 듣고 싶지 않은 조언을 억지로 듣는 순간 그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립니다. 듣지 않겠다는 자식에게 조언을 던지는 건 도움을 주는 게 아니라 벽을 더 높이는 일입니다. 진짜 사랑은 말로 설득하지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지켜보며 필요할 때 손 내밀 뿐입니다.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아무도 깨우칠 수 없다." 자식이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 가장 깊은 믿음이고 가장 조용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좋은 부모는 훈계 대신 인정의 말, 충고 대신 존중의 말을 건냅니다. "내가 있어서 든든하다." "그 일 내가 해 줘서 고마웠다." 이런 구체적인 말이 자식의 마음에 자신감을 심습니다. 법정 스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인정받을 때 잘하고 비교받을 때 작아진다." 사람은 듣는 대로 잘하고 들은 말로 자신을 믿습니다. 부모의 말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자식의 마음속에 새겨지는 자기 이미지의 밑림입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이다." 이 믿음은 결국 부모의 입에서 나온 말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말은 가르침이 아니라 존재의 허락입니다.

자식이 세상에 나가 흔들릴 때 마음속에서 들리는 부모의 목소리가 등불처럼 그를 붙잡습니다. "괜찮다." "넌 해낼 수 있다." "실수해도 된다." "그게 사는 거다." 이런 말은 돈보다 깊게 남고 세월을 견디는 숨결이 됩니다. 반대로 "넌 왜 그렇게밖에 못 하니?" "내가 너 키운 게 후회된다." 이런 말은 가슴속에서 오래 썩습니다. 그래서 부모의 말은 옳고 그름보다 따뜻함이 중요합니다. 말이 고유할수록 관계는 깊어집니다. 말이 다정할수록 마음은 다시 열립니다. 화가 나면 잠시 입을 다물고, 답답하면 말 대신 눈빛으로 전하세요. 말보다 마음이 앞서면 말은 자연히 부드러워집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선한 말의 향기는 어디서나 퍼져 간다." 말은 하라면 흩어질 것 같지만, 그 말은 마음에 남아 세월을 건너갑니다. 자식이 나이를 먹어 부모가 된 뒤에도 그 마음속에는 여전히 부모의 말이 살고 있습니다. 결국 부모의 말은 사랑의 향기이자 평생의 기억입니다. 지금 내 입에서 나오는 한 마디가 내 자식의 마음을 피우기도 다치기도 합니다. 오늘 자식에게 어떤 말을 심으시겠습니까? 그 말이 바로 자식의 평생이 될지도 모릅니다.

둘째, 사랑을 붙잡지 말고 놓아라. 간섭 대신 믿어주는 부모에게 자식은 편안히 머물고 싶어진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그 사랑이 깊어질수록 때로는 자식을 더 세게 움켜집니다. 그 손나기의 힘이 강해질수록 자식은 숨이 막히고 마음은 도망칠 자리를 찾습니다. "넌 아직 어려." "엄마가 다 겪어 봤어." "내 말 들으면 틀릴 일이 없어." 이 말들은 사랑의 언어처럼 들리지만 자식의 귀에는 "넌 나 없이 아무것도 못해"라는 말로 들립니다. 부모가 자식을 통제하려는 마음은 결국 자식을 도망치게 만듭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유를 원합니다. 어릴 때는 부모의 손이 울타리였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그 울타리는 벽이 됩니다. 자식은 통제 속에서 자라나는 동안 언제쯤이 그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 그 울타리 밖으로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려 합니다. 그건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 사랑이 너무 무거워져서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집착은 슬픔의 뿔이요, 놓아줌은 자유의 문이다." 사랑이란 이름의 집착은 결국 슬픔을 낳습니다. 내가 사랑해서 붙잡았는데, 그 붙잡음이 자식을 밀어내는 결과가 됩니다. 진짜 사랑은 간섭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자식이 넘어질까 봐 겁이 나더라도, 그가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비켜서 줄 때 그 사랑은 오래 갑니다. 법정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이해다. 붙잡는 것은 욕심이고 바라보는 것이 사랑이다." 부모는 자식의 길을 대신 걸을 수 없습니다. 자식의 인생은 그들 자신의 발자국으로 완성되어야 합니다. 부모가 걸음을 대신 내디일 수 없듯, 마음의 길 또한 대신 걸어 줄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이제 내 자식은 내가 지켜줄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를 지켜야 할 존재가 되었구나." 이 마음이 들면 그때부터 사랑은 간섭에서 존중으로 바뀝니다. 간섭은 자식을 어리게 만들고, 존중은 자식을 어른으로 세웁니다. 존중받은 자식만이 다시 부모를 존중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한 걸음 물러설 때 자식의 마음속에는 묘한 여백이 생깁니다. 그 여백이 바로 그리움이 되고, 그리움은 감사로 변합니다. "엄마는 말없이 나를 믿어줬지." "아버지는 끝까지 내 편이었어." 그 기억이 자식의 마음 속에서 오래 향처럼 피어납니다. 법정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짜 사랑은 붙잡는게 아니라 놓아줄 줄 아는 것이다." 자식을 향한 마음도 그렇습니다. 붙잡을수록 마음은 멀어지고, 놓아줄수록 마음은 깊어집니다. 자식은 이런 부모를 잊지 못합니다. 아무 말 안 했지만 늘 내 편이었던 사람. 내가 잘못해도 다그치지 않고 조용히 믿어 준 사람. 그런 부모는 세월이 흘러도 자식의 마음에 살아 있습니다. 결국 사랑의 깊이는 얼마나 붙잡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믿고 기다려 줬느냐로 남습니다. 비켜서 줄 때 사랑은 더 단단해지고, 조용히 물러설 때 자식의 마음엔 그리움과 고마움이 함께 피어납니다.

셋째, 외로움을 자식에게 기대어 달래지 말라. 스스로 즐겁게 사는 부모일수록 자식은 자주 찾아오고 싶어진다. "너라도 내 옆에 있어야 한다." 이 말은 부모의 사랑 같지만 듣는 자식에게는 무거운 짐이 됩니다. 사랑의 표현이 아니라 "내 행복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자식은 부모의 짐을 짊어지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내기에도 벅차기 때문이지요. 부모가 자식에게 기댈 자식은 점점 숨이 막히고 마음에 거리를 둡니다. 결국 부모는 더 외롭고 자식은 더 멀어집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괴로움은 의지함에서 비롯된다." 누군가에게 기댈 마음은 더 불안해집니다. 기댄 기대가 무너질까 두렵고, 그 기대가 채워지지 않으면 서운함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진짜 평안은 누군가에게서 오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 길러져야 합니다. 법정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외로움을 피하지 말고 그 속에서 나를 달려나라." 외로움은 피해야 할 감정이 아니라 나를 단단하게 세우는 기회입니다. 혼자 있는 시간에 마음을 들여다 보면 그동안 자식에게 기대어 눌러두었던 감정들이 보입니다. 그 속엔 불안도 있고 두려움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을 그대로 바라보는 순간 조용한 평안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부모가 자기 안에서 평온을 찾을 때 자식은 그 부모를 존경하게 됩니다. 늘 불안하고 의지하려는 부모보다 스스로를 다스리며 웃을 줄 아는 부모가 자식에게는 더 든든한 존재로 남습니다.

이제는 이렇게 말해 보세요. "이젠 내가 내 곁에 있지 않아도 괜찮다." 이 말은 자식을 밀어내는 게 아니라 "나는 내 인생을 잘 지키고 있다"는 가장 큰 안심의 표현입니다. 스스로서 있는 부모는 그 자체로 자식에게 위로가 됩니다. 자식은 부모가 외로움 속에서도 평온한 모습을 볼 때 "우리 부모님은 괜찮구나" 하고 마음을 놓습니다. 그 안심이 바로 사랑의 다른 이름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덜 찾을수록 자식은 오히려 부모를 더 그리워하게 됩니다. 언제나 기대려는 부모보다 묵묵히 자기 삶을 살아가는 부모가 더 오래 기억되고 더 깊이 존경받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자식의 어깨가 아니라 내 마음의 중심에 기대세요. 자식이 아닌 나에게 의지할 때, 그게 자식에게는 평생 잊지 않는 든든함이 되고 가장 고마운 기억으로 남습니다.

넷째, 나이를 앞세우지 말고 존중으로 대하라. 자신을 어른으로 대해주는 부모에게 자식은 마음을 연다. 자식이 커가면 부모의 역할도 달라져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이 여전히 예전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넌 아직도 내 앞에서 내야." "부모 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내가 너 나이 되는 말이야." 이런 말들은 사랑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은 자식을 여전히 자립하지 못한 존재로 묶어 두려는 말입니다. 자식의 마음은 점점 숨이 막히지요. 몸은 어른이 되었는데 부모 앞에서는 여전히 어린애로 취급받는 기분. 그 답답함이 쌓이면 결국 대화는 단절됩니다. 자식은 언제까지나 어린애가 아닙니다. 자라면서 사회에서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어른이 됩니다. 부모는 그 사실을 가장 늦게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 인정이 늦어질수록 관계는 점점 멀어집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남을 존중하되 그 마음을 먼저 내 안에서 일으켜라." 존중은 말로 하는 게 아니라 마음의 자세에서 드러납니다. 부모가 먼저 자식을 한 사람으로 인정하면 자식의 마음은 자연히 열립니다. 우리가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자식을 대할 때, 그 속엔 종종 "내가 더 잘 안다"는 마음이 숨어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바뀌었고, 이제는 자식이 부모보다 더 많이 아는 시대입니다. "그건 내가 몰랐네." "내가 그런 생각을 했구나."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부모가 진짜 어른입니다. 모르는 걸 인정하는 순간 대화의 문이 열립니다. 법정 스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진짜 어른은 가르치려 들지 않고 묵묵히 배운다." 자식에게서 배운다고 해서 부모의 자리가 작아지는 건 아닙니다. 부모가 배우려는 마음으로 자식을 대할 때, 자식은 "이제 내 이야기도 들어 줄 수 있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 순간 경계가 사라지고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집니다.

존중받는 부모가 되려면 먼저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자식의 말에 끼어들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는 일, 다른 세대의 방식을 무조건 틀렸다고 하지 않는 일. 그 사소한 행동 속에 품격이 담깁니다. 나이가 든다는 건 세월의 무게를 자랑하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다듬는 일입니다. 세월이 쌓일수록 말은 짧아지고 표정은 부드러워야 합니다. 그게 진짜 어른의 얼굴입니다. 자식에게 존중을 원한다면 "내가 부모니까"라는 말 대신 "나는 너를 동등한 어른으로 본다"는 마음으로 대하세요. 그 한마디의 태도가 자식의 마음을 다시 부모에게 향하게 만듭니다. 법정 스님은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겸손은 가장 강한 힘이다. 나를 낮추는 순간 세상은 나를 높인다." 나이가 많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닙니다. 마음이 자라는 사람이 진짜 어른입니다. 자식은 나이를 보고 존경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기억하는 부모는 잔소리 대신 웃음으로, 지시 대신 공감으로 다가왔던 사람입니다. 결국 존중받는 부모란 권위를 내세우지 않아도 자연히 따르게 되는 사람입니다. 그런 부모 곁에서 자식은 마음이 편하고 멀리 있어도 그리움이 이어집니다.

다섯째, 말하기보다 먼저 들어라. 내 이야기를 들어 주는 부모에게 자식은 마음을 털어 놓는다. 부모는 늘 말합니다. "이렇게 해야지." "그건 아니야." "내 말 좀 들어." 하지만 정작 자식의 말은 듣지 않습니다. 자식의 이야기를 듣는 대신 대답을 먼저 준비하지요. 그래서 대화는 주고받는 말이 아니라 부딪히는 말이 됩니다. 사람의 마음은 말로 열리지 않습니다. 진심은 말보다 귀를 통해 들어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많이 말하는 것보다 잘 듣는이가 더 지혜롭다." 듣는다는 건 단순히 소리를 듣는 게 아닙니다. 상대의 마음이 닿을 때까지 기다려 주는 일이지요. 자식이 무슨 말을 하든 옳고 그름을 재단하지 말고, 그 마음이 어디에서 온 건지 헤아려 보세요. "엄마, 그때 좀 힘들었어." "아빠, 나도 내 방식이 있어." 이런 말을 들을 때 대부분의 부모는 변명부터 떠올립니다. "내가 너 그렇게 하라고 키운 거 아니야?" "그게 다 널 위해서였어." 하지만 이 말들은 대화의 문을 닫습니다. 자식은 "아, 내 마음을 들으려 하지 않는구나." 그 순간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지요.

법정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듣는 일은 말보다 더 큰 사랑이다." 진짜 사랑은 설득이 아니라 경청입니다. 자식의 말이 불편하게 들릴수록 그때가 진짜 들어야 할 때입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듣는다는 건 그 사람의 세상을 잠시 빌려 사는 일입니다. 들을수록 마음이 넓어지고, 판단을 멈출수록 관계가 단단해집니다. 가족 사이에서도 듣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식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끝까지 들어 주는 힘이 사랑의 시작입니다. "그래, 그런 생각을 했구나." "그럴 수도 있지." 이런 말이 부모와 자식 사이에 막힌 길을 다시 엽니다. 그리고 듣는다는 건 그저 고개만 끄덕이는 일이 아닙니다. 자식의 말속에 담긴 마음을 느껴 주는 일입니다. "그때 많이 힘들었겠구나." "내가 그런 마음이었다니 이제 알겠네." 이런 한 마디가 그동안 쌓였던 오해와 거리감을 녹입니다. 대화는 말로만 하는 게 아닙니다. 눈빛으로, 표정으로, 침묵으로도 마음을 나눌 수 있습니다. 때로는 아무 말 없이 들어주는 시간이 그 어떤 조언보다 큰 위로가 됩니다.

"그래, 내가 그랬구나." "그럴 수 있지." 이 두 문장은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다정한 경청의 언어입니다. 듣는다는 건 상대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저 그 자리에서 함께 머물러 주는 일. 그게 마음의 온도를 지키는 가장 깊은 사랑입니다. 부모가 자식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는 집. 그 집은 싸움이 오래 가지 않습니다. 오해가 쌓여도 다시 돌아갈 길이 열려 있습니다. 법정 스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귀를 닫으면 마음도 다친다. 마음을 열고 들으면 사랑이 흘러든다." 자식의 목소리를 잊는 그대로들을 수 있을 때, 부모의 말도 비로소 사랑으로 들립니다. 말보다 귀로, 판단보다 공감으로 다가가세요. 그 순간 자식의 마음은 "그래, 내 이야기를 들어 주는 사람이 있구나" 하며 따뜻하게 열릴 것입니다.

여섯째, 따뜻한 말을 습관처럼 건네라. 고운 말이 쌓일수록 자식은 그 목소리를 그리워하며 다시 찾는다. 세월이 흐르면 자식이 떠올리는 건 그때 들었던 한 마디입니다. "괜찮다." "고맙다." "넌 잘될 거야." 이 짧은 말들이 자식의 마음을 평생 지탱합니다. 자식이 지치고 흔들릴 때, 그 말이 마음속에서 다시 피어오릅니다. 부모의 말은 결국 자식이 세상을 견디는 힘이 되고, 그 말이 남긴 울림은 자식의 안에 자라납니다. 부모의 한마디가 자식의 판단이 되고, 결정의 순간마다 마음속에서 방향이 됩니다. 그래서 좋은 말은 가르침이 아니라 삶의 기준으로 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천상의 향기보다 오래 남는다." 감사로부터 나온 말은 오래 갑니다. 칭찬과 믿음의 말은 마음을 따뜻하게 덮지만, 비교와 비난의 말은 마음을 차갑게 시킵니다. 욕 대신 칭찬을, 걱정보다 신뢰를, 지적보다 감탄을 건네 보세요. "오늘 하루도 애썼다." "너라서 믿음이 간다." 이런 한 마디가 자식의 마음을 다시 세웁니다. 좋은 부모는 자식을 바꾸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대신 자식을 살리는 말을 남깁니다. "괜찮다." "실수해도 돼." "나는 언제나 내 편이야." 이 짧은 말이 자식의 세상을 다시 밝힙니다.

법정 스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말에는 그 사람의 삶이 묻어난다. 고운 말을 쓰는 이는 이미 고운 마음을 가집니다." 결국 부모의 말은 부모의 마음입니다. 진정으로 따뜻한 마음은 따뜻한 말을 만들고, 그 말은 자식의 가슴속에 평생 머뭅니다. 그렇게 자식의 가슴속에 남은 부모는 언제나 자식이 곁에 있고 싶은 사람이 됩니다. 자식은 그 부모를 자주 찾고 싶고,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자식은 완벽한 부모를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저 따뜻했던 순간, 자신을 믿어 주던 눈빛, 고마웠던 말 한마디를 오래 기억합니다. 부모의 역할은 잘하려 애쓰는 일이 아니라, 그저 마음을 고요히 비우고 따뜻하게 머무는 일입니다. 말이 부드럽고 눈빛이 따뜻하고 마음이 편안한 부모. 그런 부모는 자식의 인생이 흔들릴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으로 남습니다. 그리움이란 멀리 있어서 생기는게 아닙니다. 함께 있을 때 편안했던 사람. 그런 부모가 평생에 그리움이 됩니다.

오늘의 말씀이 마음에 닿으셨다면 잠시 멈추어 당신의 하루와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으로 남기 바랍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이 마음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따뜻한 인연이 됩니다. 함께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도 당신의 하루가 고요하고 평안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