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et Our Mobile App

Take your business learning on the go!

Download on the App StoreGet it on Google Play

【99%는 모른다】 인간관계에서 꼭 숨겨야 할 ‘4가지’ 정주영의 철칙ㅣ교훈ㅣ조언ㅣ철학ㅣ명언ㅣ오디오북

생각이 돈이다25:41

Transcription

나는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시장 바닥에서 쌀을 퍼나르던 시절부터 세계를 상대로 배를 만들겠다고 외치던 날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악수를 했고 셀 수 없이 많은 이름을 외웠다. 그런데 말이야, 참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게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끝까지 내 편이 되어준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어릴 때는 몰랐어. 사람은 다 좋은 줄 알았지. 말 한마디 따뜻하면 그게 전부인 줄 알았고, 같이 웃고 울면 그게 인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인생은 내게 가르쳐 주더군. 사람은 웃으며 다가와 마음을 빼앗고 등을 돌린다고. 너무 늦게 알았지. 그리고 그 대가는 꽤 혹독했어.

처음 장사를 시작했을 땐 믿을 수 있는 동업자 하나 있으면 세상 무서울게 없다고 생각했어. 같이 시작한 그 친구는 늘 나보다 말이 앞섰고, 사람들 앞에서는 내가 없는 것처럼 행동했지. 나중에 알았어. 내가 버는 돈보다 그가 빼가는 돈이 더 많았다는 걸. 허탈했지. 배신이라는 게 이렇게 조용히 찾아오는 건가 싶었어.

그런데 말이야. 그때부터였던 거 같아. 내가 사람을 보는 눈을 갖기 시작한 건. 누구든 처음에는 웃지. 좋은 말만 골라서 하지. 그런데 진짜 중요한 건 그 사람의 시간 속 행동이더군. 말이 아니라 그가 지키는 약속, 위기에서의 태도, 남들 모를 때의 선택. 그게 사람이지. 그래서 내가 하나 깨달은 게 있어. 사람은 많지만 내 편은 드물다는 거. 그리고 그 드문 사람을 알아보려면 나부터 먼저 감춰야 한다는 거지. 있는 그대로 다 내보이면 세상은 날 소모품처럼 써 버릴 뿐이야.

이제부터 내가 겪은 일들을 하나씩 이야기해 보려 해. 건강을 숨기고, 돈을 속이고, 사람을 시험하고, 마음을 감추는 법. 속임이 아니라 지혜로서의 숨김. 그것이 내가 끝까지 살아남은 방법이었다.

그날을 잊을 수 없다. 햇빛이 유난히 따사롭던 봄날이었다. 북청장터 골목길 위해서 마침내 내 손으로 처음 쌀가게를 열게 된 날. 작은 간판 하나. 빗발엔 저울 하나. 그리고 내 모든 꿈을 담은 쌀자루 몇 포대. 난 세상이 내게 드디어 기회를 준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무너졌다.

거래처라고 소개받은 어떤 장사꾼이 있었다. 말이 어찌나 능청스럽고 살가운지 처음엔 의심할 틈도 없었지. 그는 내게 통 큰 거래를 제안했다. "형씨, 이번에 내 쪽으로 쌀 좀 몰아줘. 대신 이자까지 언제 두 배로 갚겠네." 나는 젊었고, 순진했고, 믿고 싶었다. 아니, 믿어야만 했다. 내겐 믿을 사람 하나쯤은 있어야 했으니까. 며칠 후 그는 쌀을 실어간 뒤 감쪽같이 사라졌다. 가게인 빛만 남았고 나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밤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이를 악물었어. 왜 나는 이렇게 쉽게 속았을까? 그 자책이 오랫동안 날 붙잡았지. 하지만 그 절망 속에서 하나의 씨앗이 자라기 시작했어. 사람은 겉만 보고는 모른다는 것. 그 뒤로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나든 말보다 눈을 보고, 눈보다 행동을 기다렸다. 당장 겉으로 드러나는 성실함보다 위기의 순간에 드러나는 본심이 훨씬 중요하다는 걸 그때 알았지. 그래, 속 같지. 하지만 나는 무너지지 않았어. 오히려 더 단단해졌어. 그때 배신이 내 사람 보는 눈을 만들었고, 그 눈이 내 회사를 지켰고, 나 자신을 지켜 주었다. 사람에게 속았던 첫 경험은 고통이었지만 동시에 나를 성장시킨 첫 번째 연장이었다.

나는 누구보다 건강에 자신이 있었다. 젊은 날에 내 몸은 돌덩이 같았고, 하루 종일 일하고도 지치지 않았다. 삽질이든 지게질이든 그 어떤 일도 "안 됩니다"란 말을 꺼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절대 내 힘을 자랑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감췄다. 왜냐고? 한 번은 있었지. 동네 토목 일감을 얻기 위해 공사 현장에 찾아갔을 때 일이었어. 힘 좋다는 걸 보여주려 일부러 쌀자루를 혼자서 들고 날랐지. 그걸 본 관리자가 비웃듯 말했어. "그래, 젊은 친구 힘은 좋은데 너무 앞서되면 금방 고장나지."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깨달았다. 세상은 강한 자를 돕는 게 아니라 강한 자를 이용하려 한다는 걸.

그 이후부터였어. 일부러 천천히 움직이고 몸이 약한 척도 했지. 대신 묵묵히 누구보다 오래 일했어.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 사람들은 나를 일벌레라 하기보단 믿을 만한 사람이라 여겼고, 오히려 일감을 더 주더군. 강한 사람 옆에는 늘 경쟁자가 몰려들고, 약해 보이는 사람 옆에는 동지가 모인다. 그게 내가 몸으로 배운 진리였다. 몸을 자랑하면 세상은 그 힘을 소진시키려 달려든다. 그러나 몸을 낮추면 사람들은 당신을 도와주고 지켜주려 한다. 나는 자식들에게도 이렇게 말했지. "건강을 자랑하지 마라. 자랑하는 순간부터 세상이 그 건강을 소모하기 시작한다." 젊을 땐 체력이 무기이지만, 그 무기를 휘두를 땐 방향을 알아야 한다. 진짜 건강은 과시하지 않는다. 드러내지 않고 숨기는 것, 그것이 오래 가는 힘이라는 걸 나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처음 돈을 벌기 시작했을 때, 정말 순수한 기대를 했었다. 이제 좀 사람 대접받겠구나. 하지만 곧 알게 되더군. 돈이 많아지면 사람의 태도도 바뀐다는 걸. 존경이 아니라 계산으로 다가오는 눈빛들. 그게 얼마나 서글픈지 몰라. 처음 쌀장사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내 손에 몇 장의 집회가 남았을 때였지. 한동안 나를 거들떠 보지도 않던 사람이 밥을 사자며 다가오더군. 반가웠지. 하지만 그 웃음 뒤에 숨어 있는 탐욕을 알아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어.

그 이후부터 나는 항상 빈손인 척했지. 지갑엔 일부러 낡은 집회 몇 장만 넣어두고 다녔고, 옷도 늘 허름하게 입었어. 고의적인 가난이었지. 그러자 신기하게도 곁에 남는 사람들의 얼굴이 달라지더군. 그들은 내 돈이 아니라 내 말을 듣고, 내 일하는 모습을 보았지. 그게 진짜 사람이었다. 내가 사람을 판단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이거였다. 돈이 없는 척했을 때 여전히 그가 나를 대하는 태도는 변하지 않는가? 돈은 사람을 드러낸다. 아니, 그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돈은 사람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게 해 준다. 드러내면 주변은 들끓고, 숨기면 진심만 남는다. 그래서 나는 어느 날부터 돈을 감추는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지. 심지어 큰 협상 테이블에서도 나는 늘 이렇게 말하곤 했어. "우린 지금도 빠듯합니다." 그 말 한마디에 상대는 오히려 더 양보하고 더 성의를 보였지. 그것이 자존심을 굽히는 게 아니라 돈에 휘둘리지 않는 방식이었다. 돈은 흘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드러나선 안 된다고 믿는다. 돈을 속이는 건 거짓이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지혜야. 그것을 깨닫기까지 나는 꽤 많은 대가를 치렀다. 그리고 그 덕분에 더 단단한 인연을 얻을 수 있었지.

사람을 다 알았다고 믿는 순간부터 그 사람에게 속기 시작한다. 이건 내가 수없이 배신당하고도 다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 믿음이 깨어질 때마다 난 나 자신에게 되물었지. 내가 너무 빨리 마음을 열진 않았나? 한 때는 그랬다. 처신상 좋은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먼저 앞섰고, 말이 번듯하면 신뢰부터 줬다.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면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고 믿었지. 그런데 사람은 말과 겉모습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존재야.

내가 한번 크게 당한 적이 있었지. 평소에도 깔끔하고 성실해 보이던 직원이 있었어. 업무도 성실했고 인사도 잘했지. 나는 그를 믿었고 중요한 거래 하나를 맡겼다. 그런데 그 돈이 사라졌지. 나중에 알고 보니 조용히 빼돌리고 있었던 거야. 차라리 거칠고 투박했더라면 덜 믿었을 텐데 말이지. 그날 이후 난 결심했지. 어떤 사람도 너무 빨리 내 편이라고 여기지 말자고. 겉모습은 참고 사항일 뿐. 진짜는 시간이 지나야 드러나는 법이야. 그래서 난 늘 한 발 물러서 있었지. 다가오면 웃었지만 속으론 거리를 두었어. 그 간격이 있었기에 나는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지.

사람은 위기에서 본색이 나온다. 평상시엔 누구나 좋은 말 한다. 그러나 약속을 지켜야 할 때, 손해를 감소해야 할 때 그때가 진짜 그 사람의 얼굴이지. 그래서 나는 늘 이렇게 말한다. "사람을 다 알았다고 착각하지 마라." 속이라는 말은 의심하라는 게 아니다. 단지 기다리라는 거야. 행동을 보고 판단하라는 거지. 겉으로 다 믿는 듯 보이되 속으로는 냉정하게 지켜보는 것. 그게 사람을 지키는 방법이자 나를 지키는 지혜였다.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아니, 사람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한다. 사업도, 가정도, 인생도 결국 사람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나니까. 하지만 동시에 나는 사람에게 가장 많이 다쳤다. 내가 젊었을 때 한 사업가와 동업을 제안했다. 겉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성실하고 겸손해 보였지. 말도 조심스럽고 행동도 믿음직스러웠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열리더군. 그러나 왠지 모를 이질감이 있었지. 설명할 수 없는 불안 같은 것. 그래서 일부러 거리를 두었어. 같이 일은 했지만 전부를 맡기지는 않았지. 믿는 듯 보이되 중요한 건 내가 쥐고 있었지. 그러던 어느 날 그 사람이 다른 이들에게 거액을 사기쳤다는 소문이 돌았다. 난 피했다. 아니, 지켜냈다. 그때 깨달았지. 사람은 가까워질수록 일정한 간격이 더 필요하구나. 이해받지 못할 수도 있어. 왜 다가오는 사람에게 마음을 다 열지 않느냐고. 하지만 나는 그랬다. 밑에 담장을 두는 것, 의심이 아니라 보호였다. 나도 그 사람을 지키고 싶었고, 동시에 나 자신을 지키고 싶었다. 그 담장이 없었다면 함께 무너졌을지도 모르지.

가장 위험한 순간은 우리가 누군가를 내 사람이라 확신하는 그 순간이다. 정작 그 사람은 아직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 간극을 알지 못하면 배신은 늘 기습처럼 다가오지. 사람은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한 관계는 결국 오래 가지 못하더군. 그래서 나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했다. "믿어라. 그러나 너무 빨리 전부를 주지는 마라. 믿는 마음에도 쉼표는 필요하다. 그 간격이 곧 지혜다." 그리고 그 지혜가 나를 수없이 구해냈다.

나는 화가 많은 사람이었다. 아니, 많았었다고 말하는 게 맞겠지. 젊었을 땐 억울한 일도 많았고 답답한 상황도 많았거든. 그럴 때마다 가슴이 들끓었지. 그러나 어느 순간 깨달았어.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순간 내가 손해를 본다는 사실을. 한 번은 외국 업체와의 큰 계약이 걸린 협상이 있었지. 상대방은 교묘하게 우리 사정을 들춰내며 압박을 넣었고, 회의실은 무거운 침묵으로 가득 찼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이 자식들, 우리를 무시하나?" 그런데 그 순간 내가 입을 열면 지는 싸움이란 걸 알았지. 그래서 난 웃었다. 겉으로는 여유 있는 척 농담까지 섞으며 분위기를 풀었지. 안에서는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쥐고 있었지만 말이야. 그리고 그 작은 여유 속에서 상대는 흔들렸고, 우리는 계약을 따냈다.

그 이후부터 나는 마음을 감추는 법을 배웠어. 감정을 삼킨다는 건 거짓이 아니라 절제야. 웃고 있지만 마음은 날카롭고, 침묵하고 있지만 머리는 치열한 그런 상태 말이지. 사람들은 말하더군. "회장님은 항상 침착하시네요." 하지만 몰랐겠지. 그 침착함이 얼마나 많은 싸움 끝에 만들어졌는지. 내 안에서는 언제나 파도가 치고 있었지만, 겉은 바위처럼 보여야 했지. 그게 내가 지켜야 할 리더의 얼굴이었다. 마음을 속인다는 건 두려움을 감추는 용기야. 분노를 삼키는 인내야. 조급함을 억누르는 여유야. 그리고 결국 그 모든 감정을 견딘 자만이 마지막에 웃게 된다. 감정을 바로 드러내는 건 쉬워. 하지만 그 쉬움을 참아낸 자만이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는다.

우린 왜 자꾸 보여주려 할까? 가진 걸, 이룬 걸, 남보다 앞선 걸. 마치 보여줘야만 내가 존재하는 것처럼. 나도 한 때는 그랬다. 첫 번 돈을 모았을 때, 첫 번 직원이 생겼을 때 나도 모르게 자랑하고 싶더군. 하지만 그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변했지. 칭찬과 박수 뒤에 감춰진 탐욕이 보이기 시작했어. 누군가는 내 성공을 축하했지만, 누군가는 내 곁에서 기회를 노렸지. 내가 가진 걸 뺏으려는 게 아니라 내가 되는 걸 꿈꾸는 사람도 있었지. 그러다 보면 사람은 결국 주변에 의해 달아버려.

그래서 난 감추는 쪽을 택했어. 성공해도 담담하게, 돈이 생겨도 검소하게. 일부러 낡은 양복을 입고 다녔고, 회사를 키워도 사무실은 늘 소박했지. 처음엔 직원들도 의아했어. "회장님, 왜 이렇게 검소하세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지. "이게 내 갑옷이야." 있는 걸 드러내면 세상이 그것을 시험하려 들고, 숨기면 스스로 단단해질 수 있더군. 과신은 결국 나를 얇게 만든다. 남의 시선에 맞춰 살아가는 건 내 중심을 넘겨주는 거지. 요즘 세상은 더 그렇다군. 누가 뭘 샀는지, 뭘 먹었는지, 어디 갔는지를 보여주는 게 당연해졌어. 하지만 보여주는 순간 우리는 그 기준에 스스로 묶이는 거야. 더 잘 보여야 하고, 더 많아야 하고, 더 빛나야 해. 그건 자유가 아니야. 그건 족쇄지.

나는 그래서 감추는 삶을 택했어. 속은 뜨겁게 살아도 겉은 조용하게. 그것이 나를 지켜주었고, 사람을 가려주었으며, 내 중심을 지켜주었지. 보여주는 삶은 화려해 보이지만, 감추는 삶은 오래 간다. 나는 후자를 택했고, 그 선택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돈도, 성공도, 명예도 세월이 지나면 다 흐릿해지더군. 그런데 이상하지. 나를 가장 오래 기억해 주는 건 결국 가족이었다. 내가 북청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을 때 주머니엔 몇 푼도 없었지만, 마음속엔 단 하나의 책임이 있었어. 내가 이 집안을 먹여 살려야 한다. 학교는 포기했고, 동생들 학비와 부모님의 쌀값이 먼저였지. 어린 마음에 억울할 때도 많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게 내 삶을 일으킨 뿌리였던 것 같아.

사업이 커지고 바빠질수록 가족과 멀어진다는 느낌도 들었지.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아이들이 어색하게 인사하고, 아내는 말없이 식탁만 차렸지. 언젠가 한밤중에 혼자 앉아 이런 생각이 들더군. 내가 뭘 위해 이토록 달려왔지? 돈은 있었지만 따뜻한 저녁 한 끼가 그리운 순간들이 있었어. 그때 깨달았지. 가족은 짐이 아니라 내가 버텨야 할 이유라는 걸.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다시 가족을 붙들었어. 직원들을 대할 때도 저 사람도 누군가의 자식이고, 아버지고, 형제라고 생각했지. 한 번은 아들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 "아버지, 돈은 많은데 우리는 아버지를 잘 몰라요." 그 말이 칼처럼 꽂혔다. 그날 이후 나는 달라지려 했어. 일보다 식탁에 온 길을 먼저 챙기고, 회의보다 가족의 안부를 먼저 묻기 시작했지. 가족은 내가 지켜야 할 마지막 성이야. 그 성이 무너지면 그 어떤 업적도, 부도 아무 의미가 없더군. 가족 앞에서는 무너지지 말자. 아무리 힘들어도, 지쳐도, 불안해도 가족 앞에서는 든든한 벽이 되어야 해. 그게 내가 지켜온 가장의 얼굴이었고, 끝까지 잃지 않으려 한 내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돈이 많으면 세상을 다 가질 수 있을 줄 알았다. 사람도, 기회도, 존경도.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느끼게 되더군. 돈은 사람을 끌어 모을 수는 있어도 진짜 사람을 남기지는 못한다는 걸. 한창 사업이 잘 나갈 때였지. 하루에도 수십 명이 나를 찾아왔다. 점심 한 끼 같이 하자며 명함을 내밀고, 형님 소리를 하며 팔장을 꼈지. 하지만 내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내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었어. 그제야 알았지. 내 돈을 보고 웃던 사람과 내 마음을 보고 웃던 사람은 다르다는 걸.

나는 부자가 되기 위해 돈을 벌었다. 하지만 진짜 부자가 되기 위해선 사람을 얻어야 한다는 걸 늦게 배웠지. 돈은 쓰면 줄어들지만, 신뢰는 쓸수록 커지더군. 관계는 통장 잔고보다 깊고 오래 남는 자산이었다. 어떤 직원은 내게 큰 손해를 입히기도 했지. 초반엔 화가 나기도 했어.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 그 사람이 지금 내게 남긴 건 손해지만, 내가 그를 대하는 태도는 나를 남긴다. 그 순간부터였어. 손해를 보더라도 사람은 품어야 한다는 걸 마음에 새기게 된 건. 사람은 숫자가 아니야. 이름이고, 이야기고, 인연이지. 그래서 나는 임원 면접을 볼 때도 스펙보다 눈빛을 봤다. 그리고 말이지, 신기하게도 사람을 믿고 기다려 주면 언젠가 반드시 돌아온다. 성공으로든, 충성으로든, 혹은 인연의 깊이로든. 진짜 부자는 은행에 돈을 쌓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의 사람을 쌓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떠나도 남는 건 돈이 아니라 그와의 기억이고 신뢰다. 나는 그걸 알게 된 순간부터 돈보다 사람을 먼저 챙겼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인연, 그게 인생을 부자로 만들어 준다.

한 번은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회장님, 회사를 처음부터 다시 세우라고 하면 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지. "그건 자신 있어." 하지만 시간을 돌릴 수는 없지. 그 말이 내겐 참 아팠다. 돈도, 조직도, 실패한 사업도 다시 시작할 수는 있어. 하지만 무릎이 덜덜 떨리고 손이 예전처럼 따라주지 않을 때 비로소 깨닫게 되지. 아, 진짜 중요한 건 시간이었구나. 그 시간 속에 건강이었구나.

젊었을 땐 몰랐어. 아침에 일어나면 현장으로 뛰어갔고, 삽을 들고 벽돌을 날랐지. 밤늦게 회의를 하고 새벽까지 공정을 점검하면서도 지치는 줄을 몰랐어. 그땐 내 몸이 쇠붙인 줄 알았거든. 그런데 세월은 누구도 이기지 못하더군.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는데 허리가 일어나질 않아. 무릎이 시큰거리고 어깨가 굳어 있더군. 그때 비로소 알았지. 내가 너무 오래 내 몸을 기계처럼 썼다는 걸.

그래서 후배들에게 자주 말했어. "젊을 때 건강을 잃으면 그 어떤 성공도 아무 소용 없다. 돈은 다시 벌 수 있지만 젊음의 체력은 다시 못 산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건강을 과시하지 말라는 거야. 젊다고 힘 좋다고 떠벌리는 순간 세상은 그 힘을 끌어다 쓴다. 결국 남은 일만 하다 탈이 나지. 나는 일부러 아픈 척한 적도 있어. 무겁지 않은 짐에도 "이건 내가 들기엔 좀 무겁군" 하며 주변을 바라보았지. 그러면 누군가는 도와줬고, 누군가는 조심했다. 그 작은 속임이 나를 더 오래 버티게 해줬다. 시간은 생명이고, 건강은 그 생명을 지키는 방패다. 그걸 일찍 깨달았다면 나는 내 몸을 더 아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건강을 속인 자가 결국 인생을 지켜낸다는 걸.

사람들은 늘 이렇게 묻는다. "어떻게 그 많은 위기를 견디셨습니까?" 나는 대답하지. 원칙이 있었으니까. 정말 수없이 흔들렸다. 노조 파업, 자금줄 막힘, 정권 교체, 해외 수주 실패. 하나만 터져도 무너질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올 때도 있었어. 그럴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더군. "이번엔 접으셔야죠. 이건 무립니다." 하지만 난 알았지. 고개를 숙이면은 모든 게 무너진다는 거예요. 거센 바람 앞에서 허리 한번 펴지 않으면 뿌리까지 뽑히는 게 이 세계니까.

그럴수록 난 더 절제했어. 지출을 줄이고, 말수를 줄이고, 표정을 줄였지. 불안할수록 침착해졌고, 절망스러울수록 묵묵해졌지. 사람들이 말하더군. "회장님은 왜 이렇게 담담하세요?" 하지만 속은 아니었지. 밤마다 사무실 불 끄고 혼자 앉아 서류를 몇 번이고 들쳐보며 어디서 무너지는가만 생각했어. 하지만 그 와중에도 지킨 게 하나 있었어. 바로 신용이었지. 아무리 급해도 약속은 깬 적이 없어. 거래처엔 한 푼이라도 먼저 갚았고, 직원들 월급은 나보다 먼저 챙겼지. 그 신용 하나가 회사를 살렸어. 힘들 때 다 떠난다 해도 "저 사람은 약속을 지킨다"는 믿음은 사람을 다시 돌아오게 만들더군. 위기 속에 무너지지 않으려면 돈도, 기술도, 인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있어야 할 건 지켜야 할 원칙이야. 그리고 그 원칙은 결국 나 자신을 지키는 울타리가 되어줬지. 나는 수많은 위기에서 내 회사를 지켜낸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원칙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던 거야.

어떤 날은 일어나기가 무서울 정도였다. 현장에선 사고가 나고, 은행에선 자금이 막혔다고 했고, 언론에선 내 욕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졌지. 그런데 아침이 되면 난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출근했다. 겉으로 웃었지만 속은 무너지고 있었다. 이해 못 할 수도 있다. 왜 솔직히 힘들다고 하지 않느냐고. 왜 그냥 한번 울지 않느냐고. 하지만 난 그렇게 배웠다. 사람은 리더의 표정을 보고 흔들린다고. 내 얼굴이 무너지면 현장 사람들의 손이 떨리고, 협력 업체 대표들의 마음이 꺾이더군.

그래서 나는 혼자 울었다. 사무실 문을 닫고, 창문을 닫고, 불 꺼진 건물 안에서 혼자 숨 죽여 울고, 또 계산하고, 또 견뎠다. 누구에게 털어놓기엔 내가 짊어진 게 너무 많았어. 나 하나가 쓰러지면 수천 명이 함께 쓰러진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거든. 그때부터 난 내 안에 비밀 창고를 만들었지.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안에 넣고 잠가 버렸어. 불안, 분노, 절망, 초조. 사람들이 보는 곳에선 꺼내지 않았지.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강하다고 말하더군. 하지만 강한 게 아니라 누구보다 절실히 버틴 거야. 나는 이런 삶을 두고 비겁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봤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보여주는 용기보다 감추고 견디는 힘이 진짜 용기일 수도 있다." 내가 버텼던 시간들, 그 누구도 몰랐던 전쟁 같은 밤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세상은 그걸 기억하지 않지만, 나는 잊을 수 없다.

요즘 세상을 보면 가끔은 참 낯설다. 스마트폰 하나면 누구든 나를 들여다보고, 사진 한 장, 글 몇 줄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판단해 버리지. 사람들은 말한다.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고. 있는 그대로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과연 그게 전부일까? 우리는 보여주는 용기는 배웠지만, 지켜내는 절제는 배우지 못했다. 나는 안다. 지금 이 시대야말로 감추는 용기가 더 필요한 때라는 걸. 운동을 시작하면 몸 사진부터 올리고, 차를 바꾸면 키를 들고 인증하고, 밥 한 끼도 남의 눈을 의식해야만 삼킬 수 있는 세상. 그러다 보면 내 중심은 점점 밖으로 밀려난다.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 남들이 좋아할 것만 좋게 되지. 나는 그런 삶이 무섭다. 빛나는 줄 알았던 그 길 끝에서 텅 빈 마음만 남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으니까.

정주영의 '속임'이라는 철학은 사실 속임이 아니라 감추고 다스리는 법이다. 건강을 속이라는 말은 자랑하지 말고 지켜내라는 뜻이고, 돈을 속이라는 말은 보여주지 말고 흘려보내라는 의미고, 사람을 속이라는 말은 겉보다 시간을 보라는 교훈이며, 마음을 속이라는 말은 감정을 내세우기보다 인내를 품으라는 이야기다. 요즘 사람들은 쉽게 지치고, 쉽게 무너지고, 쉽게 떠난다. 그건 보여주느라 너무 힘을 빼버렸기 때문 아닐까? 나는 말하고 싶다. 감추는 것이 거짓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조용히, 깊이, 묵묵히, 그렇게 삶을 걸어가는 사람만이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이제 다 걸어왔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수없이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며 여기까지 왔다. 많은 걸 이루었다고들 한다. 회사를 세우고, 나라의 산업을 일으키고, 수천 명의 식구들을 먹여 살렸다고. 하지만 정작 내가 끝까지 지키려 했던 건 돈도, 회사도, 명예도 아니었다. 바로 나 자신이었다. 겉으로는 강해 보여야 했고, 속으로는 끝없이 흔들렸지만 나는 매일 나를 지켜내기 위해 싸웠다. 젊었을 때 몸으로 밀어붙였다. 그 어떤 힘든 일도 "안 된다"는 말 대신 "해보자"고 말했다. 그러다 세월이 지나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게 되자 나는 마음을 단단히 다졌다. 이제부터는 더 깊이 견디는 싸움이야. 그 싸움의 무기는 크고 거창한 게 아니었다. 숨기고, 감추고, 참고, 버티는 것.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도 혼자만이 아는 그 조용한 결단들. 건강을 자랑하지 않고 지켜냈고, 가족을 위해 약한 모습을 숨겼고, 사람을 너무 믿지 않고 기다렸고, 마음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의지를 지켰다. 그래서 결국 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죽음을 앞두고도 나는 사람들에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무모해서 유유오를 만든 사람이다. 다시 태어난다 해도 똑같이 살 자신이 있다." 그 말 안에는 '속여라'라는 철학이 담겨 있었다. 세상이 날 시험할 때 나는 나를 보여주기보다 지켜내는 걸 선택했다. 보여주는 건 멋있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끝까지 지켜내는 건 진짜 단단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이제 이 이야기를 마치며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지금 당신은 무엇을 드러내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지켜내고 있는가? 삶은 결국 드러내는 용기가 아니라 끝까지 지켜내는 힘이다. 누구도 준비하지 못한 이 길 위에서 당신만은 끝까지 준비된 사람으로 서길 바란다. 그럴 때 비로소 인생은 당신의 편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