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et Our Mobile App

Take your business learning on the go!

Download on the App StoreGet it on Google Play

이건희 회장이 60살에 깨달은 인생의 진실 3가지 | 시간·관계·건강 관리법

부의 통찰29:21

Transcription

60을 넘으면 모든 것이 보입니다. 젊은 날엔 세상을 바꾸려 했지만, 결국 바꿔야 할 건 나 자신이었습니다. 세 가지 진실만 알았다면 삶은 훨씬 달라졌을 겁니다.

예순살이 나이가 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봅니다. "낫습니다. 이 이 사람이 아닌가?" 주름이 깊습니다. 머리는 히끗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숫자가 안 보입니다. 매출, 자산, 순위 그 모든 숫자가 허릿합니다. 대신 선명해지는 게 있습니다. 얼굴입니다. 표정입니다. 눈빛입니다. 저 눈이 말합니다. "너는 행복했느냐?" 대답이 막힙니다. 행복. 그게 뭐였지? 회사를 키웠습니다. 불을 쌓았습니다. 인정받았습니다. 그런데 행복했냐고 물으면 모르겠습니다. 이상합니다. 평생 무엇을 했던 걸까요?

주변을 봅니다. 가족이 있습니다. 하지만은 뭡니다. 친구가 있을까요? 명암은 많은데 전화할 사람이 없습니다. 밤이 깁니다. 잠이 안 옵니다. 생각이 많아지는 자꾸 과거가 떠오릅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달렸을까? 무엇이 그리 급했을까?" 답이 없습니다. 예순이라는 나이는 심판됩니다. 스스로를 심판하는 시간입니다. 변호사도 없습니다. 정인도 없습니다. 오직 나와 나의 대화입니다. 이 대화가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피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발견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두 종류의 질문으로 자신을 평가합니다. 첫 번째는 숫자입니다. "얼마나 벌었나? 얼마나 높이 올랐나. 얼마나 많이 가졌나." 이런 질문들입니다. 20대부터 50대까지는 이 질문이 유효합니다. 답할 수 있습니다. 측정할 수 있습니다. 성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60을 넘으면 다릅니다. 숫자가 텅비입니다.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대신 두 번째 질문이 올라옵니다. 이건 숫자가 아닙니다. 질입니다. "나는 편안한가? 나는 외롭지 않는가? 나는 후회하지 않는가?" 이런 질문들입니다. 이 질문에는 숫자로 답할 수 없습니다. 오직 느낌으로만 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렵습니다. 느낌은 숨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거짓말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60이 됐을 때 느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시간의 무게입니다. 젊을 땐 시간이 가볍습니다. 앞으로 50년이 있으니까 실수해도 괜찮습니다. 다시 하면 됩니다. 그런데 60이 넘으면 다릅니다. 남은 시간이 보입니다. 20년, 30년 구체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무서워집니다. "이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 지금처럼 살 것인가? 아니면 바꿀 것인가?" 선택의 순간입니다. 대부분은 바꾸지 않습니다. 익숙한 게 편하니까, 지금 방식이 안전하니까. 그래서 그대로 갑니다. 그리고 70, 80이 됐을 때 후회합니다. "왜 그때 바꾸지 않았을까? 왜 그때 멈추지 않았을까? 왜 그때 돌아보지 않았을까?" 하지만 늦습니다. 체력도 없고 의지도 없고 시간도 없습니다.

그래서 60이 중요합니다. 마지막 기회입니다. 진짜 마지막입니다. 이때 바꾸지 않으면 끝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지금 방식을 유지하시겠습니까? 아니면은 멈추고 돌아보시겠습니까?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하지만은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돌아보지 않는 인생은 반복입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합니다. 같은 고통을 반복합니다. 같은 외로움을 반복합니다. 그게 지옥입니다. 살아 있는 지옥입니다. 반면 돌아보는 인생은 진화입니다. 나를 알아갑니다. 나를 고쳐갑니다. 나를 채워갑니다. 그게 천국입니다. 살아 있는 천국입니다. 응. 60살의 선택이 이후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어떻게 늙을 것인가? 무엇을 남길 것인가? 누구로 기억될 것인가? 이 모든 것이 지금이 순간에 달려 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께 하나만 묻겠습니다. 거울 속에 당신은 웃고 있습니까? 이 이 질문에 적할 수 없다면 이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십시오. 반드시 답을 찾게 될 것입니다.

고백합니다. 저는 오만했습니다. 30년 동안 한 가지 방식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게 정답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왜냐면 효과가 있었으니까요. 30대 저는 기계였습니다. 하루 18시간 일했습니다. 주말이 없었습니다. 추가도 없었습니다. 오직 속도만 있었습니다. 빨리 달려야 했습니다. 느리면 죽는다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빨리 달린 사람이 이겼습니다. 저는 가장 빨랐습니다. 그래서 이겼습니다. 성진도 빨랐고 매출도 빨랐고 인정도 빨랐습니다. 이 방식이 옳다고 확신했습니다.

40대 더 정조해졌습니다. 모든 것을 숫자로 봤습니다. 감정은 대제했습니다. 사람도 데이터였습니다. "얼마나 생산적인가? 얼마나 효율적인가? 얼마나 기어하는가?" 이것만 봤습니다. 냉혹했습니다. 하지만 필요하다고 믿었습니다. 감정을 섞으면은 판단이 흐려진다고. 그래서 더 차갑게. 내 직원들이 두려워했습니다. 해실 공기가 얼어붙었습니다. 하지만 성과는 나왔습니다. 그래서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50대는 절정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제 손 안에 있었습니다. 결정권, 영향력, 지배력. 저는 신이 된 것 같았습니다. 누구도 제 앞에서 아니요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저는 그게 존경이라고 착각했습니다. 실은 두려움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30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60이 됐습니다.

어느 날 몸이 신호를 보냈습니다. 가슴이 조였습니다. 숨이 찼습니다. 시근땀이 났습니다. 병원에 실려갔습니다. 신근경색 초기 증세였습니다. 의사가 말했습니다. "이번엔 운이 좋으셨습니다. 다음엔 장담 못 합니다." 그날 밤 병실에 혼자 누웠습니다. 천장을 봤습니다. 빈 천장이었습니다. 제 인생 같았습니다. 텅빈 느낌. 아무도 없는 느낌. 전하기를 봤습니다. 누구에게 전화할까? 가족. 오랜만입니다. 제대로 대화한 게 언제죠? 친구. 누가 친구였죠? 동료. 그들은 상사를 걱정하는 겁니다. 저를 걱정하는 게 아닙니다. 결국 아무에게도 전화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천장만 봤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뭘 한 거지?" 회사는 키웠습니다. 숫자는 만들었습니다. 권력은 가졌습니다. 그런데 나는 어디에 있지? 저는 없었습니다. 30년 동안 나를 지웠습니다. 회사를 위해, 성과를 위해, 성공을 위해 나를 버렸습니다. 그리고 지금 남은 건 빈껍데기였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동시에 분노였습니다. 누구에 대한 분노? 나 자신에 대한 분노입니다. 왜 이렇게 살았을까? 왜 멍추지 않았을까? 왜 돌아보지 않았을까? 답은 간단했습니다.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멈추면 뒤쳐질 것 같았습니다. 돌아보면은 약해 보일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계속 달렸습니다.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그게 용기라고 착각했습니다. 실은 도피였는데 말입니다. 무엇으로부터의 도피? 나 자신으로부터입니다. 나를 마주하기 두려웠습니다. 나의 약함을, 나의 외로움을, 나의 공허함을. 이 모든 걸 보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바쁘게 살았습니다. 바쁘면 생각할 시간이 없으니까. 생각하지 않으면 아프지 않으니까.

하지만 병원 침대는 강제로 멈추게 합니다. 도망갈 곳이 없습니다. 오직 나와 나의 대면입니다. 그게 고통스러웠습니다. 동시에 해방이었습니다. 이제 더는 도망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나를 마주하겠다고, 나를 인정하겠다고, 나를 고치겠다고. 그날이 제 인생의 시작이었습니다.

여러분께 묻습니다. 지금 달리고 계십니까? 앞만 보고 달리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잠시 멈추십시오. 뒤를 돌아보십시오.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보십시오. 멈추는 게 약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용기입니다. 진짜 용기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자산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교환 가능한 자산입니다. 낸 돈, 명예, 권력 이런 것들은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이어도 다시 얻을 수 있습니다. 형태가 바뀔 수도 있습니다. 유동적입니다. 두 번째는 교환 불가능한 자산입니다. 시간, 관계, 건강. 이것들은 주고받을 수 없습니다. 한 번 이르면 끝입니다. 돌이킬 수 없습니다. 비가역적입니다. 젊을 때는 이 차이를 모릅니다. 모든 것이 교환 가능해 보입니다. 시간을 돈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성과로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건강을 희생해서 성공을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착각입니다. 교환이 아니라 소진입니다. 나이 들어보면 압니다.

첫 번째 진실. 시간은 통장이 아니라 모래 시계입니다. 많은 사람이 시간을 은행 계좌처럼 다룹니다. 투자하고 관리하고 배분합니다. 효율을 따집니다. 생산성을 측정합니다. 틀렸습니다. 시간은 저축되지 않습니다. 오늘 아낀 두 시간이 내일 네 시간이 되지 않습니다. 그냥 흘러갑니다. 모래처럼 빠져나갑니다. 되돌릴 수 없습니다.

제가 50대 했던 계산이 있습니다. 하루 회의 시간을 재봤습니다. 평균 9시간이었습니다. 1년이면 2,300시간. 5년이면은 만 시간 넘게 회의실에 있었습니다. 그 시간에 무엇을 했을까요? 보고서를 읽었습니다. 숫자를 봤습니다.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기억이 남는 게 없습니다. 만 시간이 그냥 정발했습니다. 무엇으로 바뀌을까요? 매출. 그것도 지나가면 사라집니다. 성진. 그것도 언젠가 끝납니다. 인정.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은 칩니다.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만 시간이 허공으로 사라졌습니다.

반면 아들과 보낸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계산해 봤습니다. 1년에 열흘. 그것도 안 됩니다. 다세. 그것도 넉넉합니다. 실제로는 4흘 정도였습니다. 5년이면 보름. 겨우 보름입니다. 그 보름 동안 무엇을 했을까요? 기억이 없습니다. 제대로 얼굴을 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 아들은 마음입니다. 저와 어색합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릅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가 아니라 낯선 사람과 낯선 사람 같습니다. 만 시간의 회의와 보름의 아들. 저는 어느 쪽을 선택한 걸까요? 명백합니다. 회의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잃었습니다. 되돌릴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시간은 모래시계입니다. 한 번 떨어진 모래는 다시 올라가지 않습니다.

두 번째 진실. 관계는 수비지 정원이 아닙니다. 정원은 설계할 수 있습니다. 나무를 심고 꽃을 심고 길을 냅니다. 통제할 수 있습니다. 관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숲은 다릅니다. 숲은 스스로 잘합니다. 통제할 수 없습니다. 관리할 수 없습니다. 그냥 함께 자라는. 많은 사람이 관계를 정언처럼 다룹니다. 필요한 사람을 심습니다. 불필요한 사람을 뽑습니다. 효율을 따집니다. 그러면서 외롭다고 합니다. 당연합니다. 정원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인공적입니다. 차갑습니다. 진짜 관계는 숲입니다. 거칠고 불규칙하고 예측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살아 있습니다. 따뜻합니다.

제가 70에 만난 사람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동창이었습니다. 거의 60년 만에 제였습니다. 그 친구가 말했습니다. "야, 기억나냐?" 우리 6학년 때. 기억났습니다. 선명하게 기억났습니다. 그날의 햇살, 그날의 웃음, 그날의 우정. 전부 살아 있었습니다. 60년이 지났는데 생생했습니다. 반면 작년에 만난 사람들 이름도 기억 안 납니다. 얼굴도 허릿합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모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는 숲이었고 하나는 정원이었기 때문입니다. 숲은 시간이 지나도 살아 있습니다. 정원은 관리를 멈추면 시듭니다. 명암 천장이 있어도 소용 없습니다. 그건 정원입니다. 진짜 친구 한 명. 그게 숲입니다.

세 번째 진심. 건강은 빚입니다. 많은 사람이 건강을 자산으로 생각합니다. 가지고 있는 것, 쓸 수 있는 것. 틀렸습니다. 건강은 빚입니다. 우리가 몸에게 진 빚입니다. 젊을 때는 빚을 늘립니다. 밤을 셉니다. 술을 마십니다. 운동을 안 합니다. 몸은 참습니다. 견딥니다. 버팁니다. 하지만 기록합니다. 모든 걸 기록합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은 천구소를 보냅니다. 이자를 붙여서 복리로. 그때는 갚을 수 없습니다. 이미 늦었습니다.

저는 예순셋세 청구서를 받았습니다. 신장이 청구했습니다. 30년치 밤샘 값을 내라. 허리가 청구했습니다. 20년 지운동 안 한 값을 내라. 간이 청구했습니다. 10년치 술값을 내라. 한꺼번에 청구서가 왔습니다. 어떻게 갚습니까? 갚을 수 없습니다.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평생 약을 먹으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건강은 빚입니다. 매일 갚아야 하는 빚입니다. 내일로 미룰 수 없습니다. 미루면 이자가 붙습니다.

시간, 관계, 건강. 이 세 가지는 교환 불가능합니다.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권력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명예로 바꿀 수 없습니다. 오직 지금이 순간 선택하고 지키고 채워야 합니다.

이제 행동입니다. 깨달음은 충분합니다. 문제는 실행입니다. 대부분은 여기서 멈춥니다. 알아서 됐다고 생각합니다. 틀렸습니다. 아는 것과 사는 것은 다릅니다. 하늘과 땅만큼 다릅니다. 구체적으로 가겠습니다. 세 가지 설계입니다.

첫째, 경계선을 걷습니다. 시간의 경계선입니다. 새벽 5시부터 6시. 이 한 시간은 협상 불과입니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습니다. 회사도 가족도 친구도. 오직 나만의 시간입니다. 무엇을 합니까? 아무것도 안 합니다. 그냥 걷습니다. 생각합니다. 숨집니다. 생산성 제로입니다. 효율성 제로입니다. 그래서 좋습니다. 평생 생산하고 효율 따졌습니다. 이제 그만입니다. 이 한 시간만은 아무것도 만들지 않습니다. 그냥 존재합니다. 처음 일주일은 불안합니다.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뭔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참으십시오. 2주일째부터 달라집니다. 머리가 맑아집니다. 생각이 정리됩니다. 3주일째부터는 기다려집니다. 내일 새벽이 다시 그거를 시간이. 이게 중독입니다. 좋은 중독입니다. 단 규칙이 있습니다. 휴대전화는 집에 둡니다. 아무도 만나지 않습니다. 목적지도 없습니다. 그냥 걷습니다. 이것만 지키십시오.

둘째, 관계의 지도를 그립니다. 종이를 내십시오. 원을 세 개입니다. 가장 안쪽 원. 여기는 핵심입니다. 나 없이 못 사는 사람 또는 이 사람 없이 내가 못 사는 사람. 몇 명입니까? 세 명, 다섯 명. 이 숫자가 당신의 진짜 부위입니다. 중간 원. 여기는 계절입니다. 봄에 한 번, 가을에 한 번 만나도 괜찮은 사람, 편하지만은 자주 볼 필요는 없는 사람. 열 명 정도입니다. 바깥 원. 여기는 풍경입니다. 수쳐 지나가는 사람. 인사는 하지만은 깊이 들어갈 필요 없는 사람. 이건 숫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제 결정합니다. 안쪽 원 사람들에게 시간을 씁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납니다.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거나 그냥 전화하거나. 형식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연결이 중요합니다. 중간 원은 분기에 한 번. 바깥 원은 우연에 맡깁니다. 여기서 잔인한 선택이 필요합니다. 원에도 들어가지 않는 사람 지웁니다. 연락처에서 지웁니다. SNS에서 지웁니다. 미안해 할 필요 없습니다. 그 사람도 당신을 지웠을 겁니다. 이미 오래 전에. 지난해 저는 500명을 지웠습니다. 남은 사람은 18명. 처음엔 불안했습니다. 네트워크가 무너지는 거 같았습니다. 한 달 지난이 개운했습니다. 세 달 지난이 가벼웠습니다. 6개월 지난 지금은 확신합니다. 이게 맞다고. 18명으로 충분하다고. 아니 넘친다고.

셋째, 몸의 계약서를 씁니다. 종이에 적으십시오. "당 몸과 계약한다. 매일 이것을 지킨다." 세 가지만 적습니다. 하나. 6시 기상. 둘. 점심 후 20분 눈감기. 셋. 저녁 10시 취침. 이게 전부입니다. 운동이 없습니다. 식단이 없습니다. 영양제도 없습니다. 왜냐면은 그건 나중입니다. 먼저 리듬을 잡아야 합니다. 몸의 리듬, 잠과 깨의 리듬. 이 이 리듬이 잡히면은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옵니다. 배가 고프면은 먹고 싶어집니다. 몸이 뻐근하면은 움직이고 싶어집니다. 자연스럽게 됩니다. 억지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 리듬은 매일 지켜야 합니다. 휴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행 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외가 없어야 습관이 됩니다.

작년 제 이야기입니다. 사흘간 리듬을 깼습니다. 손자 돌잔치 때문이었습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고 낮잠도 못 잤습니다. 나을째 되니 몸이 무너졌습니다. 소화가 안 됐습니다. 머리가 아팠습니다. 짜증이 났습니다. 일주일 걸려 회복했습니다. 그뒤로 절대 안 됩니다. 손자보다 리듬이 우선입니다. 냉정하게 들립니까? 하지만 이게 현실입니다. 내가 무너지면 손자도 볼 수 없습니다. 나를 지켜야 모두를 지킵니다.

세 가지 정리합니다. 경계선 새벽 한 시간을 사수하라. 관계지도 세계 원으로 나누고 집중하라. 몸의 계약 리듬을 매일 지켜라. 이것만 하십시오. 1년 하십시오. 보장합니다. 당신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됩니다. 더 가볍고 더 또렷하고 더 평온한 사람이 되니 저를 믿으십시오. 제가 그렇게 됐습니다.

끝입니다. 하지만 진짜 시작입니다. 여러분의 시작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손을 펴십시오. 지금 손에 진 것이 뭡니까? 돈입니까? 명예입니까? 권력입니까? 그것들이 당신을 행복하게 합니까? 아니라면 놓으십시오. 단순합니다. 쥐고 있으면 새것이 들어올 수 없습니다. 손을 비워야 채워집니다. 역설입니다. 하지만 진실입니다.

제가 70에 경험한 일입니다. 주식을 정리했습니다. 반을 팔았습니다. 자선 단체에 기부했습니다. 주변에서 말렸습니다. "회장님, 왜 그러십니까? 자식들 줄 생각은 안 하십니까?" 대답했습니다. "자식에게 줄 가장 좋은 것은 돈이 아니라 철학입니다. 손 안에 쥐지 않는 법, 흐르게 두는 법. 이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희부하고 나니 이상했습니다. 가난해진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부자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가벼웠습니다. 힘을 내려놓은 느낌. 오래된 빚을 갚은 느낌. 편안했습니다. 그날 밤 잠이 잘 왔습니다. 수십 년 만에 제대로 잔 것 같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선명했습니다. 모든 것이 선명했습니다. 나무가 보였습니다. 하늘이 보였습니다. 새 소리가 들렸습니다. 평생 옆에 있었는데 처음 봤습니다. 그동안 뭘 본 겁니까? 숫자만 봤습니다. 보고사만 봤습니다. 권력만 봤습니다. 정작 세상은 안 봤습니다. 내려놓으니 보였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웠구나. 삶이 이렇게 풍요로웠구나. 부끄러웠습니다. 왜 진작 몰랐을까? 왜 이렇게 늦게 알았을까? 하지만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행입니다. 여러분은 저보다 빨리 아셨으면 합니다.

손을 펴십시오. 쉬고 있는 것 중 하나를 놓으십시오. 오늘 하나, 내일 하나. 하나씩 놓다 보면은 어느새 손이 텅비입니다. 그때 비로서 받을 수 있습니다. 진짜 중요한 것을. 햇살를 바람을 미소를 이런 것들을. 이게 진짜 부입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부. 권력으로 얻을 수 없는 부. 명예로 바꿀 수 없는 부. 그냥 주어지는 부. 손만 비우면은 주어지는 부.

거울 앞에 서십시오. 거울 속 당신에게 물으십시오. "나는 지금 흐르고 있는가? 아니면 막혀 있는가?" 흐르고 있다면 계속 가십시오. 막혀 있다면 뚫으십시오. 어떻게 뚫습니까? 놓으면 됩니다. 쥔 것을 놓으면 됩니다. 그러면 흐릅니다. 물처럼 흐릅니다. 물은 막으면 썩습니다. 흐르면 낡아집니다. 인생도 똑같습니다. 쌓으면 썩습니다. 나누면은 맑아집니다. 저는 이제 압니다. 인생은 쌓기 게임이 아니라는 것을. 벌음이라는 것을. 강물이라는 것을. 강물은 바다로 갑니다. 도중에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돌도 놓고 나뭇잎도 놓고 흙도 놓습니다. 그렇게 비워지면서 바다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바다가 됩니다. 우리도 똑같습니다. 가는 길에 내려놓습니다. 욕심도 놓고 집착도 놓고 두려움도 놓습니다. 그렇게 비워지면서 마지막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평온이 됩니다. 이게 인생입니다.

여러분께 작은 숙제를 드립니다. 오늘 집에 가십시오. 종이 한 장을 꺼내십시오. 적으십시오. 내가 놓을 것 하나. 구체적으로 적으십시오. 추상적이면 안 됩니다. 불필요한 모임 하나. 부담스러운 약속 하나. 의미 없는 습관 하나. 이렇게 구체적으로 적으십시오. 그리고 내일 실행하십시오. 취소하십시오. 거절하십시오. 끊으십시오. 그게 첫걸음입니다. 비움의 첫걸음입니다. 자유의 첫걸음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걷고 싶습니다. 이 길을. 비움의 길을. 자유의 길을.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 함께 갑니다. 천천히 갑니다. 조급할 거 없습니다. 남은 시간은 충분합니다. 중요한 건 방향입니다. 지금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계속 가십시오. 아니라면 지금 돌아서십시오.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 적기입니다. 여러분의 후반전이 빛나기를 바랍니다. 아니 확신합니다. 반드시 빛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