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cription
오오오, 으, 으. [음악] 그렇죠. 여러분, 안녕하 시키니까. 아, 지금은 상당히 많이 시간이 흘렀지만, 아, 제가 수유동 해서 목회를 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아, 저희 교회 1 여 집사님이 동네 어귀에 조그만 건강 식품 가게를 새로 내었습니다. 그래서 아, 담임목사 이기 때문에 제가 우리 집사님께서 새로 아, 시작하는 그 가게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가 보니까 뭐 동네에 어디에 정말 조그만한 가게였습니다. 뭐 이제 가면서 아, 가게를 보니까 위치도 그렇고, 예, 장사가 잘 될 거 같은 생각은 안 들었어요. 아, 이런 곳에서 이런 가게가 잘 될까 하는 생각이 좀 들었습니다. 그런데 에 가게 들어가 보니까 아, 뭐 정말 크지 않았어요. 아, 눈에 익숙한 그러한 식품들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아, 제 생각에는 우리 교회 본당도 자가마 1 데 이 절반도 채 안 되는 그런 공간처럼 풀었습니다. 4 그런데 거기에 손님이 있었어요. 그것은 참 되었습니다. 예. 3 우리 집사님과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뭐 자연스럽게 그 공간이 협소하고 이 때문에 에 그것에 온 2 그 손님이 줘. 손님과 아,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좀 어색하지 않기 않도록 제어 먼저 인사를 건넸어요. 사실성 처음 본 사람한테 이렇게 인사를 하는 그런 성격이 아닌지라. 아, 그것도 아, 여성에게. 에 그 손님은 물론 남자가 아니라 그런 식료품을 에, 또 구입할 분은 당연히 여성 고객이었습니다. 에, 중년의 약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러한 정말 단아한 그런 분이었습니다. 인상도 아, 괜찮아 보였어요. 그래서 뭐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네고 아, 간단한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전체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저는 아실 교회의 목사입니다. 아, 이렇게 제가 제 자신을 소개하니까 2분이 약간 좀 놀라는 기색이었습니다. 저는 이번에 그 모습을 통해서 2분이 예, 아마도 교회에 출석하는 그리스도인일 것이다 라는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또 계속해서 물었습니다. 혹시 교회에 다니십니까? 교회에 다닌다. 올해 뭐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질문이죠. 왜 교회를 나가십니까? 2분이 수유 제일 교회에 출석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사실 실체 1 교회는 에, 그 수유동에서 제가 목회할 당시에 가장 큰 또 아, 평판도 좋은 장로 교회였습니다. 그러면서 전 또 질문을 이어 나갔습니다. 혹시 재림 교회에 대하여 아십니까? 2분은 아, 제게 잘 모른다고 어,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재림교회에 대하여 잘 모릅니다. 그러면 재림교회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렇게 또 물었습니다. 아, 그때 그 대답은 좀 의외였습니다. 뭐 재림교회에 이단 아닌가요? 아, 이런 배가 비었습니다. 사실 제가 약간 좀 아, 별로 이렇게 즐겁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뭐 우리 교회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다 고 분명히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우리 교회를 또 이단이라고 또 생각할까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 뭐 제가 또 계속해서 또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 그렇죠. 저는 이렇게 예수를 믿습니다. 제가 예수를 어떻게 믿는지 아주 간략하게 이야기했어요. 아, 그러면서 아, 우리 혹시 집사님 되십니까? 라고 물어 아, 물으니까 그렇다 그래요. 우리 집사님은 다르게 믿으시나요? 어, 그랬죠. 상당히 에 의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책은 바로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 수제 1 교회에 나가신다고 했는데, 혹시 수유 제일 교회에 나가시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까? 왜 수유 제일 교회에 나가십니까? 제가 이렇게 질문을 받았습니다. 사실 이 질문은 2분을 약간 당혹스럽게 했던 질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자기가 왜 수요 제일 교회를 다 가는지 별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약간 주저하는 턴 느낌을 제가 봐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당황하지 않도록 제가 한번 알아 맞춰 볼까요?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머리를 끄덕여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해야겠습니다. 아마 집사님께서 수유 제일 교회를 나가시는 중요한 이유는 수류 제일 교회가 집에서 제일 가까운 꽤 괜찮은 장로 교회이기 때문일 것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 그랬더니 가만히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 아이가 맞아요. 자신이 수 제일 교회를 다가는 다른 특별한 이유가 없어요. 그 이후에는 그 제가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저한테 한번 물어 보세요. 왜 목사님은 하필 안 실 교회 목사입니까? 물어보세요. 아,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그랬더니 분이 저를 이렇게 보면서 목사님은 그러면 왜 안 실 교회 목사인데요? 아, 제가 그 자리에 서서 2시간 동안 내가 안시 꽤 목사가 아니면 안 되는 이유를 이야기했습니다. 2시간도 에 이야기를 다 두고 입은 깜짝 놀랐어. 아니, 안 실 교회도 그렇게 믿나요? 그러면 집사님은 다르게 믿으시나요? 이런 대화가 끝난 다음에 제가 이렇게 이야기 이야기했습니다. 13 제가 보기엔 집사님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교훈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은 그러한 마음이 아주 많은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제가 느낌을 받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저도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4 또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열망하며 이다. 우리는 이 부분에 있어서 서로 같은 생각을 갖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안 실금 목사하고 성경을 한번 공부해 보시면 어떨까요? 우리가 함께 대화하면서 저는 우리 집사님께 집사님은 제게 우리가 서로 알지 못하는 특별한 성경의 진리가 있다면 그들을 함께 나눔으로 더 우리가 서로 좋은 그리스 되지 않 않겠습니까? 이렇게 제가 이야기했어요. 그래서 아, 제가 좀 바쁘지만 [웃음] * 바쁘지 않습니다. 그 외에도 자막 집사님께서 원하시면 제가 언제든지 시간을 낼 일 많이 있습니다. 아, 이 가게 주인이 우리 교회 집사님 대. 이분께 연락하시면 절 만날 수 있습니다. 돼서 원하시면 우리가 성경을 공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경 공부는 정말 아무 때나 그만 드셔도 되는 정말 자유로 아주 자유로운 그런 분입니다. 아, 원하시면 연락 하시기 바랍니다 하고 해줬어요.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아, 이 그 가게 집사님이 저에게 전화를 했어요. 아, 목소리 들어보니까 좋은 거 같아요. 약간 이렇게 상기된 들어온 목소리라고 한 것을 금방 느끼면서 아, 성경 공부하자는 뜻이구나. 그렇게 제가 생각이 금방 들었습니다. 이 집사님이 에 성경을 공부하기 원합니다. 목사님. 아, 그래요. 그러면 시간과 장소에 올 때마다 합니다. 제 생각에는 비싼 가게에 327 좋을 것 같은데 에, 가게도 장사 잘 안 됐거든요. 우리 문 닫고 거기서 성경 공부 아파도 하십시다. 아, 좋다는 거예요. 그래서 약속을 하고 아, 이제 그 다음 주에 2분을 정해진 시간에 만났습니다. 2분이 혼자 왔어요. 얘는 먼저 2분과 함께 율법과 복음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부터 풀어 나갔습니다. 많은 개신교인들이 재림 교회가 가지고 있는 신앙이 율법주의적인 신앙이 아니냐 라고 하는 의구심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한 사실 제가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과 복음의 관계, 믿음은 에 관계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2분이 에 충분한 이해를 얻은 것 같아요. 1, 2시간 동안 우리가 성경을 공부했습니다. 성경 공부가 마친 다음에 제가 이번에 게 또 물었습니다. 다음 주에 또 할까요? 그랬더니 고개를 끄덕여요. 다음 제 딸 또 하겠습니다.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또 하십시다.
다음 주가 되었습니다. 이번이 이번에는 혼자 오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아주 가까운 나중에 알고 보니까 2분이 그 교회 구역장이에요. 그래서 동료 구역장 친구 한 분을 데리고 와서 두 사람이 함께 성경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역시 우리가 한번 보이면 2시간씩 성경을 공부합니다. 게 입히는 성경 연구를 통해서 또한 대화를 나누면서 아주 유쾌하고 즐거운 시간을 거였습니다. 2시간 성경공부가 마친 다음에 또 제가 물었습니다. 여러분 다음 주에 우리 또 할까요? 고개를 그 덕에 요. 두 분 다 하겠다는 거예요.
그 다음 주가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또 다른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처음 만났던 2분이 자기 구역에서 자신이 양육하는 1 신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세 사람이 함께 성경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공부가 마친 다음에 또 매 번째가 질문했습니다. 다음에 또 할까요? 왜냐면 요순 다음이 기약된 게 아니야. 약속된 게 아닙니다. 무조건 2분들이 원치 않으면 언제든지 중단할 수 있는 그러한 성경 연구였습니다. 다시 한번 불었어요. 다음 주에 떠 할까요? 예, 또 하십시다. 여기서 계속 그 다음 주가 되었습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렇게 계속 1주일이 또 지났습니다. 또 다른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1, 6주 정도 지난 어느 날 이 성경 모임에 2분들이 누구를 데리고 왔는가 하면 2분들이 교회에서 개인적으로 매우 따르고 존경하는 한 여 전도사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제가 만난 이 여 전도사님은 참 인품이 훌륭한 분 같이 느껴졌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분은 진리에 대한 관심이 컸습니다. 우리는 함께 또 성경을 연구했습니다. 마치 진 다음에 다음에 또 할까요? 모두가 다 통했습니다.
그 다음 주가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이 전도사님이 자기가 가르치고 자기가 양육하고 자기가 데리고 있던 그런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이 태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또한 두 가지 나면 1수학 힘들어합니다. 매주 한 사람 힘들어합니다. 그렇게 약 세 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거의 4주 이상의 2, 4, 12주 이상 시간이 흘렀습니다. 몇몇 모였어요. 예, 이렇게 선도 해보셔야 한테 약 15명 정도의 성경 연구 그룹이 완전히 형성되었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성경을 매우 즐겁게 정말 행복하게 함께 말씀을 나누는 훌륭한 시간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제게 전화가 나왔어요. 그 정황은 몹시 침통한 전화였습니다. 아, 제가 처음 만났던 그 집사님의 전화였습니다. 목사님, 우리 아버님 집사 의 아들이야. 어디에 저녁 올림픽대로 해서 회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중 교통사고로 그만 그 자리에서 사망했습니다. 이 아들은 바로 이 두 번째 많았던 그 구역장 대신은 집사님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었습니다. 물론 그에게 딸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젊은 아들 결혼도 하자 직장에서 회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게 사고가 발생했는데 뒷좌석에 타고 있던 이 청년 하나만 밖으로 튀어 나왔어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만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제 마음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소식이었습니다. 충격적인 소식이었습니다. 덕이 어려운 일을 제가 아무것도 2번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뭐 저는 이 분들의 담임 목회자가 아니었습니다. 2분들과 함께 모여서 성경을 연구하는 그러한 그냥 그런 사이였습니다. 그렇게 인간관계가 아주 많이 이렇게 형성된 그런 시간이 많이 흐른 지도 않았습니다. 불과 3달 그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이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 이제 이 성경 연구 모임을 더 계속 할 수 있을까 라고 하는 생각도 들어 왔습니다. 사실 이 대부분의 모인 사람들이다 수유 제일 교회 신자들이 기 때문에 이 모임이 그렇게 막 시끄럽게 앞에 높이 가지고 널리 알려져서 그렇게 되는 것은 그렇게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줘 힘스럽게 뭐 성경을 연구하고 있었지만 은 알음알음 주변에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어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생각들을 했을지 모릅니다. 아쉽게 목사고 성경 공부 하다가 좋은 일이 아닌 생기는구나. 뭐 이런 생각도 들 수 있지 않겠나 하는 그런 염려도 들어왔습니다. 여러 가지 인간적인 생각들이 복잡하게 들어왔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의 성령님께서 이 큰 고통 가운데 빠져 있는 집사님의 마음을 위로해 주실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한 가지 아들을 잃어버린 인간 이익 이 땅에서 경험할 수 있는 어쩌면 가장 큰 고통 가운데 그 하나를 주님께서 헤아려 주시고 만져 주시고 그 상한 심령을 주는 위로하여 주십시오. 이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실망과 낙담 속에서 1주일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확히 일주일이 지난 시간 되게 전화가 안 타고 왔어요. 바로 아들 잃은 이 집사님의 전화였습니다. 목사님, 우리 집을 좀 방문해 주실 수 있을까요? 방문을 초청한 것이오. 사실 저의 마음은 참 기뻤습니다. 야, 내가 이 끊어질 것 같은 이 인연을 다시 이어나갈 수 있겠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한편 너무나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왜냐하면 도대체 가서 뭐라고 2분들을 위로 할 수 있을까 라고 하는 그 부담 때문에 정말 또 한편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제가 방문하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약속한 시간에 그 집을 갔습니다. 집에 갔더니 참 놀라운 모습을 제가 보았습니다. 저는 기대하지 않은 그러한 방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보니까 거기에는 함께 성경을 연구했던 모든 분들이 다 한 자리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저를 놀라게 한 건 수 제가 그 자리에서 2분들에게 어떠한 위로도 할 필요가 없었다 라고 하는 그 사실이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이 끔찍한 사고를 경험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 집사님의 마음을 이미 하나님께서 다 위로 하셨던 놀라운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2분은 한 마디에 하나님을 원망한 탄 느낌과 그러한 어떤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가 만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이렇게 의연한 그리스도인인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하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다 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성령님께서 이미 그의 상한 마음을 만지고 계셨습니다. 제가 한 마디도 2분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예배가 맞춰진다 2분들이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에요. 목사님, 우리가 이 일을 로 인해서 이렇게 성경 연구하는 모임을 여기서 중단할 수는 없습니다. 다음 주일부터 우리가 성경 연구 모임을 계속하고 싶은데 그렇게 해주실 수 있습니까? 이 탐하다 어 제가 여러분과 함께 성경을 연구하는 모임을 다음 주부터 다시 재개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일에 우리는 다시 모였습니다. 마치 이전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우리는 함께 성경을 연구하는 그 즐거운 모임을 계속해 나갔습니다.
6개월이 지나 어느 날 제이 분들에게 이렇게 물었어요. 여러분, 우리 재림교회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랬더니 이 분들이 이렇게 대답하는 거에요. 목사님, 재료 교회가 이단이 아닌 것 같아요. 아, 제 약속으로 좀 웃음이 닿았어요. 일단 이식 거야. 그런데 그 대답은 충분한 제가 기대한 대답이 아니었습니다. 아, 아, 그렇군요. 이제 좀 아시는 분이 하고 끊었어요. 우리는 계속해서 이 성경 연구 모임을 지속해 나갔습니다.
그렇게 한 일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제가 일 년쯤 지난 어느 날 2분들에게 같은 질문을 다시 앉았습니다. 여러분, 재림 교회가 어떤 교회라고 생각하십니까? 2분들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목사님, 재료 교회는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교회이군요. 재료 교회는 진리를 사랑하는 교회이군요. 재림교회는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따르려고 하는 참된 하나님의 진리의 교회군요. 10:02 들의 대답이었습니다. 제가 그 대답을 들은 다음에 아, 이제 좀 아쉽네. 예. 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저는 2분들과 함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말씀들, 모든 진리를 함께 공유했습니다. 심지어 대쟁투 총서까지 읽어 나갔습니다.
그렇게 또 얼마의 시간이 나왔습니다. 하루는 분들이 함께 모여서 무엇인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한 집사님이 책의 에 조그만 카드를 하나 적어서 좋습니다. 못산 집에 가서 보세요. 합니다. 까 내줬습니다. 내가 돌아오는 길에 그 내용이 궁금해서 집에 가서 볼 수가 없고 으 중간에 차를 옆으로 붙이고 그 카드를 거에서 그 내용을 읽었습니다. 그 카드의 내용은 아주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이제 우리가 이렇게 있어서는 안 될 것 같군요. 다음 한 10일부터 목사님 교회에 출석해서 우리도 안식일 지키겠습니다.
그 다음 주가 되었습니다. 약속한 대로 우리 함께 공부하던 모든 분들이 재림 교회에 첫발을 들여 놓았습니다. 그리고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정말 의미있는 안식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에 교회는 이 분들의 침례식을 거행하고 의미있는 그러한 침례식을 준비하고 또 k 캐서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디서 침례식을 하기로 했는가 하면 사슴의 동산에서 침례식을 하기로 했어요. 버스를 빌려서 모든 신자들이 함께 그것으로 가기도 했습니다. 예배가 마친 뒤에 안식일 오후에 우리가 사슴의 동산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른 그 지금부터 비가 오기 시작하는데 보통 비가 안에 엄청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어쨌든 우리가 사슴의 동산을 도 차 했습니다. 그런데 침례식을 파르 고 보니까 미치는 식을 못해요. 할 수가 없어. 물이 더 빨라지지 너무 물이 불어 가지고 침례식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피클이 나왔어요. 근데 가만 생각해보니까 조금 상류로 올라가면 좀 괜찮은 곳이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아는 곳으로 좀 것으로 올라갔습니다. 올라갔더니 아직은 괜찮은 곳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제 비가 계속 오는 그 우중에도 침례식을 가야겠습니다. 그 침례식은 잊을 수 없는 침례식이었습니다. 비 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뭐 어차피 다 젖을 거에요. 우리는 그 퍼붓는 우산 같이 내리는 그 피를 맞으면서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에게 성령의 물줄기를 마치 부어주신다는 그러한 느낌을 가지면서 2분들이 함께 침례를 받는 훌륭한 경험을 나눴습니다.
여러분, 왜 재림 교회입니까? 이것은 어쩌면 바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대답이 간단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재림 교인으로 태어나서 그 안에서 잘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택의 여지 없이 재림 교인이 된 것이죠. 사회적 문화적 요인으로 재림 교인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의 부모님들이 그랬습니다. 2분들이 재림 교인이 되는 데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엄청난 희생을 요구했습니다. 사실 저는 자라면서 제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많이 들었지만 은 그러나 세밀하게 우리 부모님들이 어떠한 신앙적 경험을 하면서 살아왔는지 에 대하여 잘 알지 못했습니다. 특별히 제 아버지의 그 모든 삶의 경험들에 대한 이야기들 제가 많이 들었는데 들을 때 막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꼭 소설 같아요. 야, 뒤 이런 삶을 살 수 있단 말이야. 그럼 뭐 지금 같은 그러한 상황에서는 거의 상상이 가지 않는 그런 삶을 사셨어요. 그런데 너무나 또 재미도 있어요. 그래서 제가 한번은 이런 이야기를 제 아버지께 한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 그 이야기 너무 재밌는데 그 한 번 다 쓰시죠. 그랬더니 2분 어, 2분이 앉아 가지고 그 타스 있었어요. 그 모든 스토리를 다 쓰셨어요. 아버지 경험 모든 삶의 경험들을. 그 일이 지금부터 90년 전의 일입니다. 지금 제 아버지는 90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그 그 당시에 90년 전에 2분이 앉아서 아 자신의 모든 경험들을 다 글로 썼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글들을 읽으면서 교정하고 수정도 하고 아, 그래서 제 아버지의 스토리를 정말 소상하게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만든 그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어느 인민군 전사의 기도. 이 우리 조 장모님 출판사에서 출판한 책입니다. 그래서 이 어느 인민군 전사 기도라고 하는 이 책을 만들면서 이것 원고들을 제가 교정하고 또 문장도 다 수정하고 하면서 제 아버지에 대한 몰랐던 너무나 많은 사실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아버지는 환경 묵도 언성 출신입니다. 두만강 바로 옆에. 그런데 1950년 10월 19살 때 6.25 전쟁이 발발 합니다. 그 당시 1950년 7월 제 아버지는 청진 상업 전문 학교 재학 중이었습니다. 그때 인민군으로 징집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후방 고사포 포대에 배속되었습니다. 그러니 고사포대는 무시무시한 부대입니다. 특별히 이것은 아주 위험한 부대입니다. 왜냐하면 비행기가 공습을 하면 그 공수 파는 비행기를 하에 고사포 그 총을 쏘는데 비행기의 제일 먼저 타겟으로 삼는 그 그것이 무엇인가 하는 게 아니에요. 고사포 아닙니까? 정말 생사를 넘나드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수도 없이 넘었습니다. 그래서 제 아버지 아버지는 이제 또 이 삼수갑산 여러분 삼수갑산이라고 들어보셨죠? 아마 보통 뭐 산수갑산 뭐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본래 지명 이름이에요. 삼수갑산이에요. 이게 지명 이름이에요. 사실은 이걸 지금의 함경북도 양강도 지역을 그렇게 봅니다. 이제 그쪽으로 이제 인민군들이 후퇴하고 도망가고 그러면서 어디에 들어가는가 하면 풍산이라고 한 곳에 가서 풍산 아시죠 여러분 풍산 게 이름으로 유명했던 그 풍산에서 제 아버지가 유엔군의 혼자 몰래 귀순합니다. 근데 제 아버지가 그렇게 귀순하게 된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제 아버지는 본래 그리스도인입니다. 제 부모님들의 모든 그 제 그 할아버지 할머니 이런 분들 이런 분들이 전부 다 어떤 의미에서 한국의 제1세대 기독교인들입니다. 그 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래서 이 함경북도 온성 교회를 지켰던 그 분의 바로. 그런데 제 아버지가 인민군에 징집된 날 이제 인민군에 입대하기 바로 전날 이 온성 교회 모든 신자들이 한데 모여서 마지막 이 기도회를 갖는 것이고 있다. 극히 도에서 이제 인민국에 가는 우리 제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특별히 재개는 제가 한번도 본적이 없는 누가 계시는가 하면 큰아버지가 계셨어요. 이제 큰아버지가 우리 제 아버지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인민군에 들어가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귀순해라. 이것이 아주 인민군에 입대하는 동생에 대한 당부였습니다. 2분들이 다 그리스도인입니다. 204년이 애가 아니에요. 그래서 기회를 엿봐서 이제 유엔군에 귀순하게 됩니다. 이 귀순 이야기가 보통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가 지금 설교 시간이라서 다 이야기 할 수 없어서 어 이것은 자칫 잘못하면 중단입니다. 귀순도 그냥 가서 귀순을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그렇게 유엔군에 귀순한 다음에 어디로 보내지는가 하면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보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아버지는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3년 동안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거제도 포로 생활 여러분 그것은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무신 것이란 생활이었습니다. 이 히스토리를 갖다 다른 책에서 볼 수가 없어요. 근데 제 아버지가 포로 생활의 그 이야기를 여기에다 다만 왔습니다. 설치가 보니까 하 참 아 엄청난 이야기들이 더해서 너무나 강렬하고 흥미롭다는 말은 지금 보니까 흥미로운 것이지 정말 놀라운 사건들이 벌어졌던 그러한 장소입니다. 밤마다 살육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 반공포로 앞 특별히 공산 포로가 함께 섞여 있었기 때문에 그런 곳에서 밤마다 이 공산 포로들이 반공 포로를 잡아서 고문하고 죽이는 일들이 매일 매일 밤마다 벌어졌습니다. 그런 속에서 제 아버지가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수용소에서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지만 은 이승만 대통령이 위해서 반공 포로가 석방될 때 그때 석방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또 어디로 갔는지 아십니까? 여러분 반공 포로 석방된 듯 간 곳이 국군입니다. 그래서 국군에서 3년 동안 복무합니다. 그리고 나서 군에서 제대한 뒤에 갈 곳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제 아버지는 이북에서 이남으로 이렇게 혼자서 왔기 때문에 이 남에는 아는 사람도 어떤 가족 어떤 친척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홀로 단신이죠. 제 아버지가 찾아간 교회가 되었는가 하면 그 당시 순복음이 시작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제 아버지가 원래 그리스도인이 없기 때문에 그도 신학교에 찾아가면 무슨 대책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순복음 신학교에 갔습니다. 그래서 돈도 순복음 학교 입학했습니다. 순복음 순복음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셨습니다. 그때 같이 공부했던 분들이 누군지 아십니까? 여러분 분야로 잘 아시는 거죠. 얼마 전에 작고하신 우리 조용기 목사님이 제 아버지 동창입니다. 이번 하고 나이 차이가 많이 떨어져 보니까 우리 조용기 목사님은 뭐 85세에 작고하셨더라 보니까. 근데 여기서 신학교를 졸업한 뒤에 이제 순복음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셨습니다. 물론 그때 제 어머니를 만나셨습니다. 그래서 2분들이 순복음 신학교를 졸업한 뒤 교회를 개척하고 순복음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목회를 잘 하셨습니다. 교회가 부흥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 아버지가 목회하던 그 지역의 재림교회 설교자가 찾아왔습니다. 그 당시 재림교회 설교자들은 한 곳에 와서 거의 한 달 동안 전도회를 개최했습니다. 지금처럼 며칠 전도하는 그런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천막을 치고 교회가 없는 곳에서 보통 한 달씩 전도하던 그런 때였습니다. 그때 제 아버지가 목회하던 그 지역의 한 재림교회 설교자가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집회에 누가 참여하게 되는가 하면 제 외할머니께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제 조문은 돌아가셨지만 오래전에 으 제 부모님들과 같이 사셨어요. 이번 듯하 이북에서 오신 분들이에요. 제 어머니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다가 제 할머니의 신앙도 아주 특별합니다. 얼마나 열심인 분인지 몰라요.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분입니다. 제 기억 가운데 아주 생생하게 살아있는 분입니다. 이번엔 특별히 기도해 온 사업 탁월한 분입니다. 제 할머니가 기도하면 그 기도가 보통 기도가 아니었어요. 그 기도의 그 말들을 기도를 듣는 그 사람들이 감동을 받을 만큼 정말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아, 그런데 그 안식일 교회 전도회 우리 할머니가 참여하시다가 제 아버지에게 야, 또 이상하더라. 어떻게 그렇게 소개가 되어서 그 설교자를 제 아버지가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분이 누군가 하면 반내온 목사님이었습니다. 우리 반내온 목사님과 제 아버지가 만났습니다. 그래서 이 두 분이 함께 모여서 성경을 토론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그 토론한 이야기들이 다 들어있습니다. 안식일 문제로부터 많은 이야기들 함께 나눴습니다. 마침내 제 아버지가 이 반내온 목사님을 아버지가 목회하는 그 교회 강단에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 안식교의 설교자가 순복음 교회 강단에 와서 설교한 거예요. 이게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 아버지가 순복음 교회로부터 징계를 받았습니다. 근데 그 징계 내용이 참 재밌습니다. 그 징계는 훨씬 더 좋은 교회로 옮겨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생활비를 본부에서 부담하는 것이었습니다. 김세원 목사 소위 하나님의 성의 이태웅 교류로 부인 발령 키로 결의와 미키 징계 내용이 이 책에 쓰여 있습니다. 김세영 목사의 봉급은 각 교회가 지급하지 않고 하나님의 소외 본부가 지원한다. 그런데 해야 할 게 하나 있습니다. 시무 기간 동안 비교종교학과 조직신학 강의를 순복음 학교에서 매주 이외 출장 강의를 받도록 하고 그 학점을 인정 받도록 한다. 이게 징계가 내려졌습니다. 제 아버지가 목회하던 교회의 신자가 약 100여 명, 1, 30명 정도 성인 되는 그러한 교회였는데 그 당시 약 30여 명이 함께 재림교회 신앙을 받아들이고 개종했습니다. 제 아버지가 재림교로 옮길 때 많은 회유와 간곡한 만류가 있었습니다. 사실 제가 지금도 기억합니다. 그때 제가 비록 아주 어린 나이였지만 은 제 집에는 항상 무슨 초콜렛 같은 게 있었어요. 땅콩 사탕 뭐 이런 게 있었어요. 그 다음에 없던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이 왜 있었나. 미국 선교사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 분이 늘 갖다 줬어요. 저를 아주 예뻐 했어요. 그런데 이 선교사님은 여성분이었습니다. 제 아버지를 마치 아들처럼 사랑했던 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2분들이 언어가 잘 통했어요. 제 아버지가 일본어를 유창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 선교사님이 일본어를 안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 분들이 서로 대화가 잘 되었습니다. 그래서 짜 제 아버지 정말 정말 사랑했어요. 그런데 이젠 마지막 재림교회로 옮기겠다고 하니까 2분이 만나자고 해서 그러면서 마지막 간곡한 만류를 했습니다. 다른 것 다 해줄 테니까 제발 한 가지만 하지 말 안식교회로 왕까지 말아. 미국 가고 싶으면 미국 보내주고 그리고 내가 여기서 얼마 있으면 이제 학교를 시작하는데 이거 다 막 거 맞게 수 하도록 다 도와줄 테니까 제발 안식 교회로 가는 것만 하지 말아달라고 못하겠습니까? 그 학교가 영생 학원입니다. 나중에 보니까 제가 그 학교의 영생대학교도라고 지금의 전주대학교. 제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안식일. 그런 간곡한 만류를 다 뒤로 하고 재림교회로 제 부모님들이 다 옮겨 오게 됩니다. 생계가 정말 막막했습니다. 바로 우리 교회로 옮겨 온 바로 그 다음날부터 생계가 정말 어려웠습니다. 제 어머니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전쟁에도 굶어보지 않았는데 안식일 교회로 개종해서 처음 굶어 봤다. 제 어머니는 같이 재림교회로 옮겨온 다른 신자들 보게 민망해서 쌀이 떨어진 듯 알 빈 솥을 걸고 군불을 떼었습니다. 2분들은 정말 많은 고통을 감소했습니다. 그래 저는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제가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 부모님들 도대체 생각이 있는 겁니까? 이건 무모한 결정 아닙니까? 제 어머니 같은 경우는 안식일 교회로 에 재림교회로 개혁 때문에 모든 가족 관계가 다 끝났습니다. 어머니 형제들과 결별했습니다. 제게는 외삼촌이 한 분 계셨습니다. 이번은 1960년대 이미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졸업하고 돌아온 그 당시 그리스도교회 목사였고 장래가 촉망되는 그런 시작이었습니다. 그래서 신학교 교수였고 많은 사람들이 아 미래 그리스도교회 총회장 감이다 라고 말할 정도의 그런 아주 장래가 유망한 그러한 목회자였습니다. 제 할머니가 제 할머니가 모든 교육에 투자를 다 입어야겠다 했어요. 왜 삼촌에게 그랬던 외삼촌과 제 외할머니 남남이 되었습니다. 형제들과 완전히 다 끊어졌습니다. 제 외할머니 이미 돌아가신 뒤에 2분들이 그 소식을 어떻게 건네 들었어요. 제 외삼촌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가 수년 뒤 한국에 왔습니다. 그때 제가 처음 외삼촌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그 목회자가 우리 교회에서 이 교회에서 목회자고 끝까지 목회한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들이 재림 교인이 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진리에 대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존중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자기 희생과 헌신의 삶에 대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는 열정과 의지가 충만했습니다. 그리고 재림교회는 재림교회만이 가지고 있는 다른 교회가 가지지 못한 성경적 진리가 있었습니다. 재림교회만이 지닌 독특한 신앙 정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거룩한 자부심이었습니다. 신념이었습니다. 진리에 대한 종말적 계시에 대한 그런 신념이 신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 교회를 다른 교회와 차별화시켜 주는 가장 중요한 특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재림교회의 신앙 전통은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따를 가치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나의 부모님들만이 아니라 재림교회로 개종한 수유 제일 교회 신자들에게도 마찬가지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재림교회는 어떠한 거라 사람들이 재림 교인이 되어야 어떤 이유가 있을까? 여전히 이 교회는 모든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들어올 가치가 있을까? 여전히 우리는 그런 신앙을 유지하고 있을까? 이러한 질문 앞에서 우리는 과연 그렇다 라는 대답을 분명히 할 수 있을까요?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이러한 질문들을 깊이 생각하며 우리가 가진 재림 신앙의 본질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보자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재림교회 신앙이 아직도 유효한지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오늘날의 재림교회가 재림교회 희망 정신의 기초를 많이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재림교회를 복음주의 교회들 중 하나로 인식하게 하는 그런 경향에서 발견되곤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재림교회가 복음주의적 교회가 되는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또한 엘렌 와이트와 안식일의 종말론적 관계와 하늘 성소 등의 가르침을 깊이 합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주의적 교회와 그렇게 다르지 않게 보이려고 애씁니다. 진정 재림교회는 그저 안식일이나 죽은 자의 상태에 대하여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그런 교회 제7과 어떤 음식 문제들의 목을 매고 있기 때문에 다른 교단들에 비해 약간 이상한 것으로 판명된 단지 다른 하나의 교단인가? 그러나 우리는 역사적으로 재림교회는 싫든 좋든 간에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의 종말론적 계시들의 담당하게 뿌리 받고 있다 라고 한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교회는 온 세상에 전할 예언적 기별을 가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대실망을 경험한 후 재림교회 선구자들은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의 종말론적 계시들을 다시 연구하면서 비록 시간에 대한 해석은 틀렸지만 성소의 정결이 그리스도의 재림이 아니라 하늘 성소에서의 그리스도의 봉사의 새로운 국면의 시작이라고 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그리스도의 하늘 성소의 봉사의 새로운 국면의 성격을 계시록의 기별들을 통하여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그들이 안식일 준수 재림교회로 발전하는 데는 계시록 14장 6절부터 12절의 세 천사의 기별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하나님께서 재림 직전에 세 천사의 기별을 정말 마지막 날에 백성들을 가지실 것임을 분명하게 인식했습니다. 이것은 재림교회 희망 정체성의 본질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을 고무시키고 그들의 선교의 방향을 제공하는 기별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이 기별이 제공하는 재림교회의 신앙 정신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계속 14장 7절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런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습니다 라는 말씀을 읽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함을 선포하는 것이 이 시대에 부적절한 것이다 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나 라고 한 말을 하나님을 존중하고 경외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 말하는 소리를 종종 들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을 두려워 하라고 하는 계시록의 말씀은 죄 뜬 태고 들과 행동들을 영원토록 용납하지 않으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의미에서 그 두려움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라는 이 말을 단지 경외와 존중으로 의미한 존중을 의미한 것으로 우리가 이야기한다면 이것은 이 본문의 의미를 왜곡하는 것이다 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아마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과 관련된 우리의 참된 문제가 무엇일까? 그래서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죄에 대한 성경적 개념을 제거해 온 것이다 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버 말씀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바울의 그 천둥소리 같은 외침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재림 신자들 이렇게 아무 결국 우리는 우리의 재림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때때로 속이기도 하고 악을 행하기도 합니다. 여전히 교회 안에 사도 바울의 말처럼 싸움과 시기와 분노와 야심과 비방과 수긍거림과 교만과 무질서가 존재한 것입니다.
여러분, 또 다른 재림교회 향정 신중 하나는 계시록 12장 17절에 대한 이해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그러면 이것은 마지막 때 계명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뿐 아니라 세상 역사의 끝이 가까울 때 이러한 계명들에 대한 갈등이 일어날 힘을 의미합니다. 재림 신앙의 선구자였던 조셉 베이츠는 이 말씀을 토대로 대쟁투 신학을 발전시켰습니다. 여러분, 대쟁투 신학이라고 하는 것 이것은 정말 매우 중요한 재림.
또 신앙 정신입니다. 재림 때에 아주 독특하고 특별한 기별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저는 제가 어렸을 때 제 아버지께서 목회하시던 그 장면들을 기억하곤 합니다. 때때로 제 아버지는 전장에 나가는 비장한 군인의 모습으로 어떤 곳을 갈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종종 성경 토론을 벌이는 개신교 신자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아, 오늘 누구와 어떤 사람들과 함께 성경을 토론한다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떠나는 제 아버지를 볼 때마다 우리는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이번에 어떤 결과 있을까 늘 그 시 궁금했습니다. 그렇지 아버지 흔들 그것에서 돌아올 때마다 전리품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 전리품은 다름 아니라 진리에 굴복한 영혼들이었습니다.
그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야, 재림 교회는 영적 싸움이 상정하는 실제 실제 않은 그런 현장이고요. 영적 싸움이라고 한 것이 실제 한 것이고요. 이것이 그냥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분들은 쓴 영적 3부 건 싸움도 있어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 얼마나 되겠어요. 그 정말 영적 싸움이라고 한 것이 상종하고 실제 한다 그 사실을 들어 확인했어요.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성경은 그것을 경정 싸움으로 비유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 6장 10절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둠의 세상 주간 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의 대안이다라고 하는 말씀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그리스도인 삶을 싸움으로 묘사하는 풍부한 상진격 얻어가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성경의 군사라고 하는 다우 등장하고 원수라고 하는 말도 등장하고 대적이 라고 한 마도 등장하는 겁니다.
많은 성경의 부분이 그리스도인의 삶과 진리는 항상 대립관계에 있다고 한 사실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여러분 그래서 거기에는 항상 긴장이 있어요. 이 전선의 가면 전선의 긴장이 있는 것처럼 선과 악의 그 대결의 그 장소에는 항상 긴장이 있어요. 그리스도와 사던 선과 진리와 피질, 이 참 교회와 거짓 교회 사이에 그 대쟁투의 그 현장이 실제 한다고 한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6장 12절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권고한 믿어라. 여러분 이것은 세속적 투쟁의 개념이 아닙니다. 양심과 영혼의 싸움을 의미합니다. 복음의 싸움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질의 싸움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썸 니까? 우리는 어떻게 진리의 싸움을 싸우고 어떻게 영적인 싸움을 싸우고 허 k 양심과 영혼의 싸움을 싸 옵니까? 무엇을 가지고 그것은 힘으로 말로 싸우는게 아니라 사랑 쌓은 것입니다. 고난으로 싸운 것입니다. 산상 순으로 싸우는 것입니다.
정 오늘의 재림 교회 문제가 무엇인가를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 오늘 익혀 회가 이러한 대쟁투의 정신이 실종된 것도 아닌가.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그런 정식 신념을 지키는 정신 정직히 행하고자 하는 그러한 정신이 실종된 것 아닌가. 여러분 이것은 결국 재림 교회의 재림 교회 다움의 상실로 이어진 것입니다. 신앙적 위기가 찾아오고 정체성의 상실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재림 교회 신앙 역시 맨 마지막 하나는 무엇일까? 그것은 와이프 이를 통하여 초진 예원의 선물에 대한 우리의 확신입니다. 이 교회는 예언의 선물을 소유한 교회라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이 재림 교회는 예언의 선물을 포기하려는 교회처럼 보일 때가 있어요. 예언의 신을 무시하거나 기피하는 정서가 도처에서 발견됩니다. 와이프 이는 이제 영감받은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위해 보내신 선지자라고 하는 입장에서 단지 훌륭한 기독교 저술가 정도로 폄하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언의 신을 읽으면 너무 아프다. 아 또 어떤 사람들은 무섭다 뭐 이렇게 이야기해요. 저도 그렇습니다. 아프기도 하고 무섭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때로는 아프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야 되는 거야. 그것이 그치게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를 깨우시고 마침내 구원하시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언의 신을 기피하는 방법은 뭐 간단하죠. 안 읽으면 되는 거예요. 그분의 권면을 경시하는 것이죠. 오늘날 예언의 힘에 대한 가장 큰 위협 중 하나가 무엇인가? 그것은 여러분 예언의 힘에 대한 저항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일까요? 우리가 보여주는 무관심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것을 모르거나 일지 않고 그저 무시합니다. 함 그러나 우리가 예언의 선물 기피하거나 경시한다면 재림 교회의 희망 정신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교회는 더욱 세속 정신으로 물들고 우리의 영적 도덕적 표준들은 저하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삶의 질은 더욱 낮아질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지 못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재림 교회 희망 정신은 세상에 대한 문화적이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재림 교회는 다른 복음주의 교회들과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만약 재림 교회가 특별한 진리가 없다는 이 교회를 나가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에게 특별한 진리가 없다면 왜 우리가 재림 신자로 남아 있어야 할까요?
여러분 재림 교회 신앙은 우리의 시대를 위한 예언적 기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선포함으로 우리의 신앙은 강화됩니다. 종말적 계시는 재림 교회 신앙의 모든 것입니다. 우리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로써 하나님은 우리를 이 예언적 기별을 선포하는 사람들로 부르셨다고 한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대쟁투의 정신은 양심과 영혼의 싸움, 복음의 싸움, 진리의 싸움을 하도록 재림 신자를 깨우는 외침입니다. 예언의 선물에 대한 확신과 존중은 우리를 큰 비친 성경의 진리에 는 뜨도록 깨우는 외침입니다.
이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 저는 재림 교회를 늘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교회 말씀을 사랑하는 교회다. 여러분 재림 교회의 선부자들은 이렇게 불렸습니다. 그들은 말씀의 백성, 노들 불렸습니다. 비프 오브 더 북, 책의 백성, 성경의 백성, 말씀의 백성. 이것이 바로 후 재림 교회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말씀을 있는 그대로 따르려고 하는 교회. 외모가 빈약하고 건물이 초라하고 교세가 약할지라도 그래서 이 교회를 어떤 사람들이 이단이라고 함부로 말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여러분 이 교회야말로 깊고 깊은 생명이 있는 교회입니다. 깊은 산속에 옹달샘과 같은 교회입니다.
여러분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넣어 다 으 그 아무나 와서 먹는게 아니야. 그것은 누구보다도 진리에 대한 깊은 갈 격으로 목이 마른 사람들이나 찾을 수 있는 그런 교회란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는 재림 교회의 신앙 정신을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을 살아야 할 때입니다. 진리에 대한 갈망으로 우리의 마음이 평망하고 하나님 말씀에 대한 존중이 우리 안에 회복되어야 합니다. 진리로 영적 싸움을 싸워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열망이 우리 안에서 회복되어야 합니다. 자기 희생과 헌신의 삶, 무엇보다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열정과 의지가 우리 안에 회복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우리를 기쁨이 편망한 백성으로 만드는 그 예언의 선물에 반응하도록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믿음의 가족 여러분, 점 오늘 제 말씀에 제 몸을 재림 교회의 신앙은 아직도 유효한가 이렇게 붙여 보았습니다. 던 오늘 그 질문에 대한 마지막 대답을 이렇게 드리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재림 교회의 신앙은 아직도 유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