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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모른다] 인생무상을 깨달으면 삶이 달라집니다ㅣ지혜ㅣ강연ㅣ조언ㅣ법정스님ㅣ부처님지혜

지혜붓다29:21

Transcription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은 단 한 마디입니다.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이 말이 너무 단순해 보이십니까? 혹시 이미 다 아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는 이 간단한 진리를 알면서도 평생을 그것을 모르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기쁜 일이 생기면 영원할 것처럼 들뜨고, 슬픈 일이 생기면 영혼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절망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 중 누군가는 떠나보낸 사람 때문에 가슴 아파하고 계실 겁니다. 누군가는 실패의 아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계실 겁니다. 또 누군가는 나이 들어가는 것이 두렵고, 다가오는 죽음이 무서워 밤잠을 설치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이 시간이 끝날 쯤 여러분의 마음속에 작은 평화 하나가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이 진리가 여러분의 무거운 짐을 조금이나마 내려놓게 하는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자, 그럼 함께 천천히 걸어가 보겠습니다.

무상(無常)은 말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을 관찰하시고 발견하신 가장 근본적인 진리 중 하나가 바로 이 무상입니다. 재행 무상(諸行無常). 모든 것은 변한다는 이 가르침은 불교의 핵심이자 출발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왜 이 당연한 진리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할까요? 그것은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영원함에 대한 갈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좋은 것은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고, 나쁜 것은 빨리 지나가기를 바랍니다. 사랑한 사람과는 영원히 함께 있고 싶고, 젊음과 건강은 영원히 유지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의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습니다.

저는 지리산 자락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자연을 관찰했습니다. 봄에 피어난 꽃은 어김없이 지고, 여름의 푸르름은 가을이 되면 노랗게 물들어 떨어집니다. 자연은 한 순간도 멈춰 있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흐르고 순환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태어나면 반드시 죽습니다. 만나면 반드시 헤어집니다. 생기면 반드시 없어집니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그런데 이 무상의 진리를 단순히 허무한 것으로만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 진리 속에 깊은 위로가 담겨 있습니다. 왜냐하면 좋은 것이 지나가듯이 나쁜 것도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기쁨이 영원하지 않듯이 고통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여름이 영원하지 않듯이 겨울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겪고 있는 그 아픔도, 그 괴로움도 반드시 지나갑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괴로워할까요?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집착은 곧 고통이다"라고요. 우리가 괴로운 이유는 변하는 것을 변하지 않는 것으로 붙들려 하기 때문입니다. 지나가야 할 것을 붙들고 놓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놓지 못합니다. 그 사람이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의 기억 속에 머물러 있으려 합니다. "왜 나를 떠났을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 하며 끊임없이 과거를 되새깁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이미 떠났습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아무리 붙들려 해도 붙들을 수 없는 것이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젊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울 속에 내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흰머리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슬퍼합니다. "예전에 젊고 건강했던 내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간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젊음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재산을 잃었을 때, 명예를 잃었을 때, 건강을 잃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되찾으려 애쓰고, 되찾을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절망합니다.

저는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손에 쥔 모래를 생각합니다. 모래를 꽉 쥐면 질수록 손가락 사이로 더 많은 모래가 빠져나갑니다. 힘을 주면 줄수록 더 빨리 손에서 떨어져 나갑니다. 집착이 그렇습니다. 붙들면 붙들수록 더 아프고, 놓지 않으려 하면 할수록 더 괴롭습니다.

저 역시 젊은 시절에는 많은 것에 집착했습니다. 학문에 집착하고, 명예에 집착하고, 소유에 집착했습니다. 더 많이 알고 싶었고, 더 많이 이루고 싶었고, 더 많이 가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산으로 들어온 후 저는 서서히 깨달았습니다. 내가 집착했던 그 모든 것들이 실은 나를 더 무겁게 만들 뿐이었다는 것을요.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해서 더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아집이 생기고, 남과 비교하게 되고, 교만해졌습니다. 명예를 얻었다고 해서 더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명예를 잃을까 봐 두려워지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고,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소유가 많아진다고 해서 더 평화로워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더 많은 걱정을 하게 되고,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고, 끝없는 욕망의 늪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씩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책도 내려놓고, 명예도 내려놓고, 소유도 내려놓았습니다. 여러분께도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이 지금 붙들고 있는 그것, 놓지 못하고 있는 그것이 혹시 여러분을 더 무겁게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놓으면 모든 것을 잃을 것 같지만, 실은 그것을 놓아야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무상의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첫째,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대로, 우리가 원하는 대로 현실을 왜곡해서 봅니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싫어서 거울을 멀리 합니다. 병이 있는데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병원에 가지 않습니다. 관계가 끝났는데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자꾸만 연락을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의 부정이나 회피로 바뀌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실을 외면하면 할수록 문제는 더 커지고 고통은 더 깊어집니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내가 늙어간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더 이상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내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보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현실과 싸우지 않아도 되고, 변화에 저항하지 않아도 되고, 흐름을 거스르지 않아도 됩니다.

둘째,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살거나 미래에 삽니다. 과거의 후회 속에 머물거나 미래의 불안 속에 머뭅니다. 정작 지금 이 순간은 놓치고 삽니다. 하지만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오직 지금 이 순간뿐입니다. 밥을 먹을 때는 밥을 먹는 것에만 집중합니다. 밥맛을 느끼고, 힘든 느낌을 느끼고, 목으로 넘어가는 것을 느낍니다. 다른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걸을 때는 걷는 것에만 집중합니다. 발이 땅에 닿는 느낌, 바람이 뺨을 스치는 느낌, 햇살이 피부를 따뜻하게 하는 느낌을 온전히 느낍니다. 이렇게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할 때 과거도 미래도 사라집니다. 오직 현재만 남습니다. 그리고 그 현재 속에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도 한번 시도해 보십시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호흡을 느껴 보십시오.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느껴 보십시오. 그것만으로도 여러분은 살아 있다는 것을,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모든 만남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것은 잠시 스쳐가는 인연입니다. 사람도, 사물도, 순간도 모두 일시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소중합니다. 영원할 것이라면 감사할 필요가 없습니다.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아쉬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만남은 이례적이고, 모든 순간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지금 여러분 곁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부모님, 배우자, 자녀, 친구들. 그들은 영원히 여러분 곁에 있지 않을 것입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헤어져야 합니다. 함께 있을 수 있는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저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이렇게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어제 잠들 때 오늘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눈을 떴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합니다. 걸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합니다. 생각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합니다. 숨 쉴 수 있는 것에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없어질 것들입니다. 그렇기에 더욱 감사하며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감사는 집착의 반대입니다. 집착은 붙들려고 하지만, 감사는 받아들입니다. 집착은 더 많이 가지려 하지만, 감사는 지금 가진 것으로 충분합니다.

무상의 진리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죽음입니다.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찾아옵니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권력자든, 평범한 사람이든, 젊은 사람이든, 늙은 사람이든 모두 예외 없이 죽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먼 미래의 일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죽음은 그렇게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내일이 올지, 다음 순간이 올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제가 출가한 후 가장 크게 변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죽음에 대한 인식입니다. 속세에 있을 때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죽음은 불길하고 무섭고 피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이 가지려 했고, 더 많이 이루려 했습니다. 마치 죽음을 늦출 수 있다는 듯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듯이 살았습니다. 하지만 산에서 지내면서 죽음을 가까이해서 보게 됐습니다. 봄에 피어난 꽃이 시들어 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름 내내 울던 매미가 가을이 되면 사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무에 둥지를 틀었던 새가 어느 날 떠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죽음은 자연의 일부였습니다. 슬프거나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저 순환의 한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죽음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삶이 온전해진다는 것을요.

죽음을 의식하며 사는 것과 죽음을 외면하며 사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죽음을 의식할 때 우린 더 이상 사소한 것에 집착하지 않게 됩니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분명해집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누구를 만나겠습니까?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 답 속에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종종 이렇게 자문합니다. "내가 오늘 죽는다면 후회할 것이 무엇인가?" 그렇게 생각하면은 대부분의 걱정이 사소해집니다. 남의 평가가 중요하지 않아집니다.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의미 없어집니다. 오직 이것만 남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았는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는가? 내가 해야 할 일을 다 했는가?"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허무주의가 아닙니다. 오히려 죽음을 생각할 때 우리는 더 충실히, 더 의미 있게 살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죽음을 생각하며 사는 것을 중요한 수행으로 여깁니다. 매일 죽음을 생각하라고 가르칩니다. 그것은 우울해지라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사십시오. 그러면 모든 순간이 소중해집니다. 모든 만남이 감사해집니다. 모든 것이 기적처럼 느껴집니다.

무상해질리는 때로 가혹하게 느껴집니다. 특히 큰 상실을 경험했을 때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말이 위로가 되기보다는 허무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그 아픔이 지나간다는 말이 무슨 위로가 됩니까? 오히려 그 아픔마저 잊혀진다는 것이 더 슬프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런 여러분의 마음을 압니다. 하지만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지나간다는 것이 잊혀진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통은 지나가지만 사랑은 남습니다. 아픔은 옅어지지만 추억은 남습니다. 눈물은 마르지만 그 사람이 내 삶에 준 의미는 영원히 남습니다.

산에는 계절이 있습니다. 봄이 지나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지나가면 가을이 옵니다. 가을이 지나가면 겨울이 오고, 겨울이 지나가면 다시 봄이 옵니다. 그런데 봄이 지나간다고 해서 봄이 없었던 것이 됩니까? 아닙니다. 봄은 지나갔지만 봄에 피었던 꽃들은 씨앗을 남깁니다. 그 씨앗은 다음 해 봄에 다시 꽃을 피웁니다. 우리의 경험도 마찬가지입니다. 슬픈 경험, 고통스러운 경험도 우리 안에 씨앗을 남깁니다. 그 씨앗은 언젠가 지혜의 꽃으로, 자비의 꽃으로 다시 피어납니다. 고통을 겪지 않은 사람은 진정으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상실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가진 것에 소중함을 모릅니다. 절망을 맛보지 않은 사람은 희망의 가치를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감히 말씀드립니다. 그 고통이 여러분을 더 깊은 사람으로, 더 지혜로운 사람으로, 더 자비로운 사람으로 만들 것이라고요.

제 삶도 그랬습니다. 젊은 시절 저는 많은 방황을 했습니다. 학문의 길에서도, 인간 관계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도 수없이 넘어지고 좌절했습니다. 그때는 너무 괴로웠습니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든가? 왜 내 삶은 이렇게 꼬이기만 하는가?"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모든 고통이 필요했습니다. 그 고통이 없었다면은 저는 진리를 찾지 못했을 것입니다. 고통은 때로 우리를 가르치는 가장 훌륭한 스승입니다. 고통은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칩니다.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내가 원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칩니다. 고통은 우리에게 연민을 가르칩니다. 고통을 겪어 본 사람만이 타인의 고통에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습니다. 고통은 우리에게 본질을 가르칩니다. 모든 것을 잃어봤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고통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을 숨기려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 고통을 온전히 느끼십시오. 그 안에서 배우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성장하십시오. 고통도 지나갑니다. 하지만 그 고통을 통해 얻은 지혜는 영원히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무상을 이해하는 것과 실제로 놓아주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손이 저절로 붙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놓아줄 수 있을까요?

첫째, 천천히 놓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놓아주는 것을 한 순간의 결단으로 생각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입니다. 놓아줌은 과정입니다. 한걸음씩 천천히 나아가는 여정입니다. 나무가 열매를 맺으면 저절로 떨어지듯이, 우리도 때가 되면 저절로 놓게 됩니다. 억지로 떼어내려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또 다른 집착입니다.

둘째, 놓는다는 것이 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떠난 사람을 놓아준다고 해서 그 사람을 잊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과학을 놓아준다고 해서 과학을 지워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놓아 준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고통받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랑했던 사람의 추억은 간직하되, 그 사람이 없는 현실을 받아들입니다. 과거의 경험은 기억하되, 과거에 머물지 않습니다. 가졌던 것은 감사하되, 이런 것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셋째, 놓을 수 있는 것부터 놓으십시오. 한꺼번에 모든 것을 놓으려 하면 압도당합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하십시오. 오늘 하루 남의 평가에 대한 집착을 놓아 보십시오. 오늘 하루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을 놓아 보십시오. 오늘 하루 과거에 대한 후회를 놓아 보십시오. 작은 것을 놓는 연습이 쌓이면 큰 것도 놓을 수 있게 됩니다.

자연은 놓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나무는 가을이 되면 잎을 떨어뜨립니다. 아무리 애쓰며 붙들지 않습니다. 그냥 순순히 놓아줍니다. 그리고 봄이 되면은 다시 새 잎이 돋아납니다. 강물은 같은 자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흘러갑니다. 어제의 물은 오늘 그 자리에 없습니다. 하지만 강은 여전히 흐릅니다. 구름도 바람도 그렇습니다. 오고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머무는 것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자연처럼 흐르면서 살 수 있습니다.

놓아준다는 것이 포기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놓아줄 때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손을 꽉 쥐고 있으면 아무것도 받을 수 없습니다. 손을 펴야 새로운 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로 꽉 차 있으면 현재가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과거를 놓아 줘야 현재를 온전히 살 수 있습니다.

무상의 진리를 깨닫는다고 해서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이별은 슬프고, 상실은 아프고, 늙어가면 두렵습니다. 하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그 아픔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무상을 깨닫기 전에는 고통에 저항했습니다. "왜 하필 나에게? 이건 불공평해. 이럴 리 없어."라며 현실을 부정했습니다. 그 저항이 고통을 더 키웠습니다. 하지만 무상을 깨닫고 나면은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면 고통은 여전히 있지만, 그것에 압도당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평화입니다. 평화는 고통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평화는 고통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가진 상태입니다. 바람이 불면 나무는 흔들립니다. 하지만 뿌리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폭풍이 지나가면 나무는 다시 고요해집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습니다. 표면은 흔들려도 깊은 곳은 고요할 수 있습니다. 감정은 오락가락해도 중심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중심이 바로 무상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을 깊이 이해할 때 우리는 변화 속에서도 평화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제가 산에서 얻은 가장 큰 선물이 바로 이 평화입니다. 예전에는 작은 일에도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누가 나를 비난하면 화가 났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좌절했고, 미래가 불확실하면 불안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여전히 감정은 일어나지만, 그것에 휩쓸리지 않습니다. 화가 나도 "아, 지금 내가 화가 나는구나" 하고 관찰할 수 있습니다. 슬퍼도 "아, 지금 내가 슬픈구나" 하고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압니다. 이 감정도 지나갈 것이라는 것을. 지금 이렇게 강렬하게 느껴지는 이 감정도 잠시 후면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이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큰 차이입니다. 모를 때는 감정에 완전히 빠져 들어갑니다. 내가 곧 그 감정이 됩니다. 화가 나면 내가 화가 되고, 슬프면 내가 슬픔이 됩니다. 하지만 이것을 알면 감정과 나 사이에 공간이 생깁니다. 나는 화가 난 사람이 아니라, 화라는 감정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나는 슬픔 그 자체가 아니라, 슬픔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생각이 자유를 줍니다. 화가 나도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슬퍼도 슬픔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두려워도 두려움에 지배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이것이 자유입니다. 이것이 바로 평화입니다.

그렇다면 이 무상의 지혜를 어떻게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을까요? 특별한 무엇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상의 작은 순간들이 모두 수행의 기회입니다. 아침에 눈을 뜰 때 감사하십시오. 오늘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십시오. 어제 잠들었던 내가 오늘 다시 눈을 뜬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적입니까? 밥을 먹을 때 온전히 먹는 것에 집중하십시오. 밥맛을 느끼고, 음식의 질감을 느끼고, 목으로 넘어가는 것을 느끼십시오. 그 순간 여러분은 완전히 지금 여기에 있게 됩니다. 걸을 때 걷는 것을 느끼십시오. 발이 땅에 닿는 느낌, 다리의 움직임, 몸의 균형을 느끼십시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걸으십시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걷는 그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누군가와 대화할 때 온전히 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십시오.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하지 말고 그냥 듣기만 하십시오. 그러면 그 사람의 마음이 들립니다. 화가 날 때 잠시 멈추십시오. 숨을 깊이 들이쉬고 내쉬십시오. 그리고 물어보십시오. "이 화가 정말 필요한가? 이것이 지나가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슬플 때 슬픔을 억누르지 마십시오. 울고 싶으면 우십시오. 하지만 관찰하십시오. "아, 지금 내가 슬픈구나. 슬픔이란 이런 느낌이구나." 그러면 슬픔에 빠지지 않고 슬픔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기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쁨을 만끽하되 알아차리십시오. "이 기쁨도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기쁨이 사라졌을 때 절망하지 않습니다. 저녁에 잠들기 전 하루를 돌아보십시오. 오늘 하루 어땠는지,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놓아 주십시오. 오늘에 좋았던 일도, 나빴던 일도 모두 놓아주고 잠드십시오. 이렇게 작은 실천들이 쌓이면 어느새 여러분의 삶 전체가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무상을 깨닫는 것은 거창한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매 순간 깨어 있는 것입니다. 매 순간 지금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매 순간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함께 지나간다는 무상의 진리를 살펴보았습니다. 이 말이 여러분에게 어떻게 들리십니까? 여전히 슬픈 말로 들리십니까? 아니면 이제는 조금 다르게 들리십니까? 저는 이 말 속에서 깊은 위로를 발견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겪고 있는 고통도 지나갈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을 짓누르는 그 무거운 짐도 언젠가는 가벼워질 것입니다. 지금 끝이 없을 것 같은 그 터널도 반드시 출구가 있습니다. 역설적이에도 모든 것이 지나간다는 사실이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을 더 소중하게 만듭니다. 영원한 것은 없기에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합니다. 언젠가는 헤어져야 하기에 지금 함께 있는 이 시간이 감사합니다.

무상은 허무가 아닙니다. 무상은 오히려 삶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모든 것이 영원하다면 아무것도 소중하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든 할 수 있다면 지금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영원히 함께 있다면은 지금 사랑한다고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소중합니다.

오늘 이 강연이 끝나고 여러분이 집으로 돌아가실 때 한 가지만 기억해 주십시오. 지금 이 순간을 살자. 과거에 머물지 말고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십시오.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할 때 여러분은 이미 깨달음의 길 위에 있는 것입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흐르는 강물처럼, 바람처럼, 계절처럼 우리도 흐르면서 삽니다. 놓아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놓아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집니다. 비워낼 때 비로소 채워집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변화입니다. 하나의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의 전환입니다. 나뭇잎이 떨어져 흙이 되고, 그 흙이 다시 나무를 기르듯이 모든 것은 순환합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 자신을 사랑하십시오. 여러분의 약함도, 두려움도, 상처도 모두 받아들이십시오. 그것들도 여러분의 일부입니다. 그것들도 지나갈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겪으며 성장한 여러분의 지혜는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여러분, 산에서 내려다보면 세상이 참 작아 보입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 작은 점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작은 점들 하나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전부입니다. 그 작은 일상들이 모여 삶이 됩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일상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거창한 깨달음을 얻으려 하지 말고 오늘 하루를 잘 사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감사하고, 밥을 먹을 때 음미하고, 사람을 만날 때 온전히 함께 있고, 저녁에 잠들 때 하루를 놓아 주십시오. 이것이 수행입니다. 이것이 깨달음입니다. 이것이 자유입니다.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이 말을 기억하십시오. 힘들 때 이 말이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기쁠 때 이 말이 겸손을 가르쳐 주기 바랍니다. 변화가 두려울 때 이 말이 용기를 주기 바랍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모두 평안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