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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 쉬운 깨달음과 양육의 과보

법륜스님의 즉문즉설15:04

Transcription

네, 안녕하세요. 스님. 행복학교 남편입니다. 너무 감동입니다.

네,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스님을 알게 됐고, 스님 말씀을 듣고 너무 재밌게 쉽게 배우며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 일어나는 모든 괴로운 일들이 그 누구의 탓도 아니고 제 마음의 움직임일 뿐이라는 게 너무 놀라웠습니다. 이렇게 마음의 수행 가정이 이렇게 공짜로 쉽게 듣고 이해해도 깨달음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지 궁금합니다.

지금 13살짜리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그동안 부모로서 저의 연예인과 양육환경이 너무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반드시 과거가 따른다고 하시니 무섭기도 합니다. 또 과거는 돌이킬 수 없지만, 지금부터라도 주어진 환경을 어떻게 개선시키고 현명하게 사는 그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지 스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천년 동안 햇빛이 없어서 깜깜한 동굴이 있는데, 거기 들어가서 내가 횃불을 탁 캐면 천 년 있다가 발가질까요? 금방 밝아야 될까요? 천년 동안 불을 밝혔던 동굴이 있는데 불을 탁 꺼버리면 천 년이 따가 어두워질까요? 금방 어두워질까요? 그러니까 우리가 불을 끄고 살면 천 년 아니라 5천 년을 가도 늘 어둡게 사는 거고, 불을 밝히는 데는 그게 뭐 5천 년이 걸리는 건 아니에요. 불을 밝히면 바로 밝아지는 거지. 그래서 우리가 누구나 다 이치를 알게 되면 어떻게 살았든 내가 뭐 지난 50년, 70년을 괴롭게 살았던 지금 바로 밝아지는 거지. 70년 있다가 밝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지금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지금 내가 한 생각 사로잡히게 되면 금방 어두워져 버린다. 지금 내가 뭐 30년 수행을 했기 때문에 안 어두워진다 이런 건 없습니다. 그러니까 한 생각 사로잡히면 즉시 어두워지고 그 한 생각을 놓아버리면 즉시 밝아지는 게 이 마음공부의 원리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로잡힌 상태로부터 사로잡히지 않도록 사로잡히면 금방 벗어나고 사로잡히지 않도록 늘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것, 자기 상태를 늘 점검하는 것, 이게 공부지 뭐 특별히 어떻게 하면 영원히 밝아진다 이런 건 없어요. 불은 켜지기도 하고 꺼지기도 하는 거기 때문에. 그러나 캠프를 끄트리지 않도록 자기가 조금 유의하면 된다. 그 유일한 게 딴 게 아니라 뭐 밥을 공고자를 하고 그게 아니라 자기 상태를 늘 알아차려 내가 화가 나면 내가 화가 났구나, 내가 화가 났네. 아, 내가 조급하구나. 내가 지금 불안해 하구나. 왜 불안해하지? 내가 걱정을 갖고 있구나. 이렇게 자기 점검을 하고 걱정할 일인가? 걱정한다고 될 일인가? 아니지. 이렇게 자기를 알아차려 가는 게 중요하다. 이렇게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더 추가적으로 질문하실 수 있습니다. 제가 그 아이를 키우면서 늘 주변 시선이나 어떤 그 상황들을 의식하면서 아이를 굉장히 간섭하고 비교하면 끊임없이 그 사교육이라든가 이런 게 너무 관심을 많이 두어서 아이도 저도 너무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스님 말씀을 듣고 많이 공부하면서 지금 절제하고 내려놓는 중인데, 가끔 그런 아이를 보면은 문득문득 화가 나게 마냥 놀고 있는 아이를 좋아해 주면서도 문득 화가 나고 불안하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너무 높은 것만 바라보지 않고 낮은 자세로 마음 편하게 아이와 제가 살아가도 괜찮은 건지 아주 궁금합니다.

[음악]

약간 횡설수설하는 것 같은데 두 가지 관점에서 말씀을 드리면요. 내가 아이를 어릴 때 너무 심리적으로 좀 억압을 했다. 내 마음에 안 든다고 야단을 치거나 고함을 치거나 뭐 짜증을 내거나 심리적으로 억압을 했다. 만약에 내가 그런 게 있다면 그러면 이 아이는 그런 심리적 억압이 지금 내재 있다가 사춘기를 넘어가면서 그 불만을 토로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인생이란 것은 반드시 기계론적으로 인과를 따르는 게 아니에요. 확률적으로 따르지. 그럴 확률이 높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주사위를 던지면 1이 나올 확률이 6분의 1이다. 그러면 6번 던지면 한번 1이 나온다가 아니라 6번 던졌을 때 1이 나올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이렇게 말할 수가. 그런 현실은 6번 다 일어나올 수도 있고 6번 다 안 나올 수도 있는 게 현실이다. 현실은 매우 확률이 낮은 일도 일어난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요번에 이 캘리포니아의 데스밸리에서 이렇게 폭우가 쏟아졌다. 그건 확률이 매우 낮다 이 말입니다. 확률이. 그러나 그런 일이 날 때도 이런 얘기거든요. 그러나 우리 인생은 확률이. 그래서 조금 높은 쪽으로 가야 돼. 내가 남을 칭찬했는만 나도 칭찬받을 확률이 높아지지. 내가 칭찬한 반드시 나도 칭찬받는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내가 남을 비난했을 때보다는 내가 남을 칭찬하는 것이 칭찬받을 확률이 뭐하다? 더 높다. 그렇기 때문에 그 더 높은 쪽으로 인생을 살아간다. 우리가 소비를 줄이고 이렇게 이렇게 노력하면 기울기를 극복할 가능성이 확률이 조금 높아진다 얘기지. 이렇게 한다고 기회가 반드시 해결된다든지, 이렇게 안 한다고 반드시 기운이 온다든지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 만약 우리가 어떤 행동도 안 하고 이런 서비스전을 유지하면 기후위기는 필연적으로 다친다. 이 말은 교회가 올 확률이 90% 이상이다 이런 얘기고. 우리가 이러이러한 노력을 하면 기기를 극복한다가 아니라 극복할 가능성이 한 30% 된다, 50% 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거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아이들에게 그렇게 했다면 아이는 그것이 심리적 억압을 통해서 언젠가는 그것이 표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다 이 말입니다. 그걸 내가 미리 알면 더 이상 이제 억압하는 일은 안 하는 것을 한다 하더라도 과거에 살았던 것이 나타날 가능성이기 때문에 그거는 감수를 해야 돼. 그걸 두려워한다는 것은 뭐냐? 안 나타났으면 좋겠다라고 인연을 지어놓고 과부는 안 받겠다고 하니까 두려움이 생기지. 기꺼이 받겠다. 내가 지었기 때문에 기꺼이 받겠다. 이러면 두려울 일이 없다 이 말이야. 나타나면 어때요? 아, 역시 부처님 말씀이 맞구나. 피할 수가 없는 거구나. 그래 기꺼이 받지. 기꺼이 받는다는 게 뭐 아이가 그런 증상을 보이고 짜증을 내고 폭발을 해도 아이고 내가 죄지었다가 아니라 그럴만하다. 왜 저런 행동하냐가 아니라 그래, 역시 지은 인연은 피할 수가 없구나. 아이가 막 그렇게 반응을 해도 수용이 가능하다는 거. 그걸 갖고 맞대응하고 막 내가 힘들어하고 이게 아니라 아이고 아이가 얼마나 힘들겠나. 이렇게 오히려 화내는 짜증내는 아이 입장에서 아이고 얼마나 힘들겠나 하는 이해하는 마음을 내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증상이 나도 전혀 나한테 큰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어쩌다가 여행이 그런 증상이 안 나타나면 어때요? 내가 아니라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렇게 내가 그렇게 제대로 못 돌봤는데도 우리 아이가 이렇게 큰 문제 없이 커져서 아이고 애한테도 감사하고 부처님이 계신다. 부처님한테도 감사하고 감사하고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렇게 안 나타나면 감사 기도를 해야 되고 나타나면 기꺼이 과거를 받는 자세를 갖는다면 이 아이를 내가 어떻게 키웠냐는 지난 과거 때문에 지금 내가 불안해하거나 처제하거나 괴로울 일은 없어져 버린다. 어떻게 되더라도 나는 이미 다 수용할 준비가 돼 있기 때문에 이게 마음공부다 이런 얘기.

내 깊이 새기겠습니다 스님. 그리고 하나 더 붙여서 아이가 공부를 안 한다. 내버려 둬야 되느냐? 막 보면 화가 난다. 이렇게 얘기하는데 레벨의 화를 내는 것은 아이 문제가 내 문제입니다. 애는 그냥 컴퓨터 게임을 하고 교회는 TV를 보고 있고 애는 뭐 스마트폰을 보고 있지. 화를 내는 건 내 문제라는 거야. 그걸 보고 내가 화가 났다 그러면 이건 내 문제다. 그런데 애가 공부 화는 안 났다. 그래 볼 수도 있지. 이렇게 이해하면 화나 안 나는데. 그러나 그 나이에 그것만 보고 있는 것보다는 공부하는 게 좋겠다라고 생각한다면 아이한테 얘기할 수 있죠. 부모가 왜 자식한테 자기 견해를 얘기 못 해요? 해야 재밌니? 그런데 이렇게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싫은데요. 그래, 네 생각은 그렇다는 거 이해가 되는데 엄마가 이렇게 인생을 살아보니까 그래도 시간을 이렇게 보내는 게지나 놓고 보면 더 좋은 거 같더라. 이렇게 대화는 할 수가 있잖아요. 아이가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수업하는데 아이가 조는 거는 수업을 방해하는 행위가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그건 야단치면 안 돼요. 그건 내버려 둬야 되느냐? 선생이라면 내버려둘 수가 없죠. 왜 아이가 이 시간에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아이에게 손실이 생기니까 아이에게 손해가 생기기 때문에 흔들어 깨워서 해야 피곤하지. 그래도 일어나서 공부해라. 이렇게 아이의 이익을 도와줘야 된다는 거예요. 근데 내가 수업하는데 감히 네가 줘라. 이거는 아이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나를 생각하는 거예요. 화내고 짜증내는 것은 나의 문제다. 그러나 내버려둔다. 그건 내 일만 안 되면 내 손실만 안 되면 내버려둔다. 그건 자유예요. 그러나 선생님으로서 부모로서는 자기 부족하죠. 왜냐하면 학생을 가르치고 아이를 돌봐야 할 책임이 있으니까. 그러면 그것을 깨우쳐 줘야 된다. 열 번을 깨워서 안 일어나더라도 그건 야단칠 일은 아니라는 거예요. 왜 나쁜 짓을 한게 아니니까. 남에게 방해한게 아니기 때문에. 남을 해친게 아니라 남을 때리거나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성추행하거나 사기치거나 이런게 아니잖아요. 근데 여러분들은 자기 생각만 하기 때문에 내 생각들 하나만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그러다가 기분이 나쁘니까 에이 적도 있어야 네 맘대로라면 공부 안 하면 너만 손해지고 외면하거나 간섭하거나 외면했다 간섭했다 외면했다 간섭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자식을 외면합니까? 아끼고 사랑해야지. 그러나 간섭은 하지 말라는 거예요. 독립된 인격이기 때문에 조언을 해줘라. 그러나 그걸 받고 안 받고는 그 아이에게 선택권이 있는 거예요. 우리는 강제할 권리는 없습니다. 특히 폭력적으로 강제할 권리는 없다. 이 폭력적으로 옛날에는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선생님이 많이들을 위해서 폭력적으로 강제할 권리가 있다 이렇게 생각해서 사랑의 매라 그랬잖아요. 근데 지금은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가. 그거는 학교 폭력 가정폭력에 해당이 됩니다. 사랑의 매가 아니고 개념이 바뀌어 버렸어요.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좋아도 우리는 폭력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다. 군대마저도 지금 그렇게 변했습니다. 그래서 내버려두라는 얘기가 아니라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이 의견을 충분히 얘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 강제할 수는 없다. 이 관점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예, 욕구가 많았던 저를 바로 깨우치고 괴롭지 않게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